비자면제 협정, 대러 교류확대 절호의 기회

[주장] 일·중도 비자면제 가능성... 독점기간 중 러 시장 선점해야

등록 2013.08.09 16:56수정 2013.08.0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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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한국과 러시아는 양국 정상회담에서 상호 비자 면제를 최종적으로 승인할 예정이다. 한국과 소련이 수교한 지 24년 만에 양국은 그동안의 우호 협력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킬 결정적인 조치를 하기로 한 것이다.

1990년 한국은 한반도 분단과 전쟁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이자 그동안 적대관계를 맺어온 소련과 수교를 맺음으로써 한·러 간의 인적 교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1990년 한소수교 이후 한국인의 소련 방문이 합법적으로 가능하였지만, 일반인이 실제 비자를 받고 소련을 방문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수교 이후 소련은 북한을 의식하여 여행 목적의 관광 비자를 내주지 않았으며 한국에서조차 소련 비자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안기부(지금의 국정원)의 허가와 반공교육, 서약서 등을 작성했어야 했다.

1992년 러시아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러 간의 인적교류는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러시아는 체제전환 초기에 필요한 투자와 교역을 위해 한국인의 러시아 방문을 적극적으로 환영하였으며, 보따리 장사나 일자리를 구하려 한국을 방문하는 러시아인도 증가하였다. 1990년대에는 한국은 러시아에 대한 강한 기대감에 부풀어 러시아를 방문하였다. 기업인들은 새로운 시장으로 러시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고 학생들은 러시아의 인문학, 예술, 과학 분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비싼 러시아 비자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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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7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3차 한·러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양측은 교역·투자, 에너지·자원, 건설·인프라 등 전 경제 분야에서 구체적 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 연합뉴스


한·러 간의 본격적인 인적 교류의 전기는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맞이하면서부터이다. 러시아 체류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면서 한국인의 관광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지금은 비용적으로 불가능한 모스크바 단체관광이 여행사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부상하였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 바이칼 호수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크게 증가하였다.

2000년 이후 러시아의 버블경제로 물가가 폭등하면서 한국인의 러시아 방문은 크게 감소하였다. 러시아의 살인적인 호텔 비용, 높은 물가, 부족한 여행 인프라에다가 스킨헤드의 발호 때문에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개인적으로 러시아를 방문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한국인의 러시아 방문이 정체를 보인 또 다른 이유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다른 외국 관광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동남아의 경우, 저렴한 체류비용에다가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작용하였고, 중국은 풍부한 관광자원과 값싼 비자와 호텔 비용으로 한국인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들 국가와 비교해서 러시아는 비자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지금 한국에서 러시아 비자를 발급하려면 적어도 10일 이전에 신청해야 14만 원이고 신청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엄청난 비자비용을 지불하여야 한다.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14만 원의 비용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며 가족여행의 경우 러시아는 고려사항이 될 수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당장 내일 출장이 결정될 경우, 높은 비자비용 때문에 결정을 망설일 가능성이 많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러시아는 자원의존경제를 탈피하기 위해 다양한 내수산업을 발전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현지 고용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광산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몇 푼 안 되는 비자 비용 때문에 관광객들을 받지 못한다면 소탐대실의 전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비자 면제되면 관광 수요 폭증할 것 

실제로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있는 러시아는 유럽과 중동 지역을 방문하려는 허브공항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터키, 유럽 등 한국에서 직항이 없는 도시를 방문할 경우, 러시아 공항을 경유하면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런데 모스크바 공항의 경우 동서남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비자를 받아야만 다른 공항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 런던이나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다시 동쪽으로 돌아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 비자 면제는 이러한 경우 러시아 공항의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비제가 면제되면 다음과 같은 커다란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러시아 관광 수요가 폭증할 것이다. 관광 자원으로서 러시아의 매력은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다. 광활한 원시림의 타이가, 거대한 호수와 강, 북극의 만년 빙하지대, 캄차카 반도의 화산과 온천, 일주일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찬란한 슬라브 문화유산, 그리고 실패로 끝난 사회주의 실험의 유산을 세계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인가? 당장 러시아 극동에 대한 관광수요가 폭증할 것이다.

지금 이미 속초에서 러시아 자루비노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복하는 페리가 1주일에 3편이나 운항되고 있다. 청정지역의 동해바다를 건너 얼지 않는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는 비용이 20만 원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로도 충분할 것이다. 극동 연해주에서 우리 민족의 불굴의 이주 역사와 독립운동의 현장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교육적 가치는 충분하며 유럽으로 연결되는 유라시아 대륙의 출발지에서 학생들은 미래의 장대한 희망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세계 여행 트렌드가 보는 것에서 즐기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점도 러시아 여행의 장점을 부각시켜주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광활한 시베리아를 건너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들이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 비자가 면제되면 이들은 이제 국경을 마음껏 바꾸어 다니면서 중국, 몽고, 카프가즈를 연결하는 다양한 루트를 짤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제일 높은 카프가즈의 엘부르스산을 옆으로 경유하여 조지아로 입국했다가 흑해로 내려와서 다시 러시아로 공짜로 돌아올 수 있다. 반면 미국, EU, 중국, 일본인들은 러시아 복수비자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한국인의 러시아 방문이 증가하면 할수록 그동안 러시아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양국 간의 협력의 필요성과 현지 투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의 러시아 투자증가 예상

둘째, 러시아인의 한국 방문도 크게 증가할 것이다. 러시아에서 한류 열기는 상상 이상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지금도 러시아 클럽을 평정하고 있다. 비자가 없어졌다는 심리적 해방감으로 러시아의 한류 마니아들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달려서 페리를 타고 한국에 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러시아인의 한국 의료 관광도 비자 면제 조치를 계기로 급상승할 가능성이 많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극동과 시베리아에서는 모스크바보다 의료 수준이 훨씬 높고 비용이 저렴한 한국을 선호하고 있다. 이미 2010년 이후 러시아의 한국 방문이 높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2013년부터 아시아나항공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매일 운항하고 있는데다 비자 면제까지 이루어진다면 러시아인의 한국 방문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비자 면제 조치는 한국의 러시아 투자를 크게 증가시킬 것이다. 2012년 푸틴 3기 정부는 극동개발부를 설치하고 이 지역 개발을 위해 약 5조루블(1590억 달러)이 소요되는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와 에너지 관련 92개 프로젝트를 발표하였는데, 이에 따라 인프라와 건설 분야의 경험이 많은 한국기업들에게는 러시아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같은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이 러시아 비자를 받기 위해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면 한국은 당장 날라가서 협상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인편으로 물품들을 쉽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비자 면제를 계기로 상호보완성이 높은 한국과 러시아 경제가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러시아는 일본과 중국에게도 비자를 면제해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은 비자 면제를 독점적으로 누리는 이 기간 동안에 러시아 시장을 선점하여야 할 것이다.

러시아 극동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인적교류와 경제협력이 크게 진전되면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러시아는 극동지역의 안정을 위해 평화적인 남북관계에 힘을 보탤 것이며, 북한도 극동지역의 경제발전에 편승하여 중국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에 협력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미 러시아는 나진과 핫산을 연결하는 철도를 구축하였으며 내년부터 상업적인 운행을 시작할 것이다. 남·북·러 관계가 보다 진전되면 가스관 연결사업도 본격화되고 이를 바탕으로 대륙철도 연결사업의 여건도 형성될 것이다. 한·러 간의 상호비자 면제협정이 북한을 포함한 유라시아 지역의 평화와 공동 발전에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윤성학님은 고려대학교 러시아CIS 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러시아 #비자면제 #한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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