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그가 위대한 군주였던 이유를 알겠네

김준태 <군주의 조건>

등록 2013.07.30 09:36수정 2013.07.3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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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엔 27명의 군주가 있었다(엄밀히 따지면 순종은 군주로 보기 힘듦). 그리고 대한민국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11명의 대통령이 나왔다(윤보선은 의원내각제하 대통령이었고, 최규하는 하야 함). 조선 개국이 1392년이니, 631년 동안 군주(대통령)는 겨우 38명뿐이다. 군주(대통령)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결코 헛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38명 중에도, 세종대왕 같은 위대한 군주가 있는가 하면,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반정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한 군주도 있었다. 또한 박정희와 전두환처럼 군사반란을 일으켜 민주주의를 유린한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김대중-노무현처럼 비주류 정권을 탄생시킨 대통령도 있었다.


백성, 곧 인민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어떤 군주와 대통령을 맞느냐에 따라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세종같은 군주를 모시고 살았던 백성들은 가장 태평한 시대를 보냈을 것이고, 연산군같은 폭군 지배 아래 살았던 백성들은 참혹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군사반란을 일으킨 박정희 치하에 살았던 인민들은 '병영국가'에서 사는 것이 어떤지 경험했을 것이고, 지금와서 생각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적어도 사람답게 살았던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군주(대통령)을 제대로 만나야 한다. 우리 조선은 봉건왕조이므로 민주공화국를 살아가는 우리가 훨씬 더 사람답게 산다고 할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만은 분명 낫다. 하지만 군주다운 군주를 만났느냐를 따져 물으면 조선 백성보다 우리가 낫다고 할 수 없다. 

세종 "가뭄은 내 부덕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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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조건 ⓒ 민음사

세종대왕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한글창제', '측우기 발명', '해시계 발명', '대마도 정벌' 같은 업적을 남겼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세종은 자신이 잘못했을 때 "내 책임이요"를 할 줄 알았고, 자신 주위에 "전하에게 유감입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을 신하로 뒀다.

스피치 라이터 김준태씨가 쓴 <군주의 조건>(민음사)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는 분명히 형벌이 바르게 집행되지 못하여 죄 있는 자가 잘못 하여 용서를 받고 무고한 자가 도리어 화를 입어서일 것이다. 쓸 사람과 버릴 사람이 바뀌었고, 충성스럽고 바른 말 하는 이가 홀대받고 (중략) 세금으로 인해 쪼들려서 원망과 한탄이 일어났으니, 평화로운 삶을 살지 못하게 된 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헤아릴 수 없다. 이는 모두 과인의 부덕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내가 반성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를 그만둘 수가 없다."(27쪽)

1427년 가뭄이 들자 세종이 내린 교서다. 영조도 천둥이 쳤다는 보고를 받은 후 "하늘이 경고하는 뜻을 보이시니, 어찌하여 발생한 것인가. 그 이유를 따져보니 잘못이 실로 과인에게 있다"는 교서를 내렸다.

가뭄을 자기 책임이라고 하는 세종과 천둥친 것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영조를  '세종과 영조도 미신을 믿었는가?'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종과 영조가 이런 교서를 내린 이유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도 임금의 반성을 의무화함으로써 군주가 불시에 자신을 성찰하고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며 "군주로 하여금 잠시라도 마음을 놓거나 나태하지 않게 하는데 효과가 있었기"때문이다.

가뭄과 천둥치는 것까지 자신의 부덕함이라는 임금을 보고, 어떤 신하와 백성이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준태는 세종과 이런 모습에 대해"자신이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다 해도, 일을 그르쳤을 가능성이 단 1퍼센트라도 있다면 그것을 막지 못한 임금의 잘못이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지난 6년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은 "내 책임이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과'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임명한 청와대 대변인이 성추행을 범해 미국에서 몰래 도망왔는데도 말이다. 봉건왕조 군주였던 세종과 영조, 민주공화국 대통령인 이명박과 박근혜 과연 누가 제대로 된 군주(대통령) 자격을 가졌을까?

세종은 딴죽 거는 신하를 좋아했다

세종을 보면 봉건왕조 군주가 아니라, 민주공화국 대통령같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그 중 하나가 비판자와 반대자들을 자기 곁에 뒀다는 점이다.

"세종이 심혈을 기울인 싱크탱크인 집현전의 초대 책임자는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죽이는 데 앞장선 중전의 원수 박은이었으며, 18년간의 영의정으로서 세종을 보좌한 황희는 세종이 세장에 책봉되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다 귀양을 간 세종의 '정적'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맹사성, 허조, 조말생, 최윤덕, 김종서, 최만리 등 당대의 명신들은 세종에게 서슴없이 반대 목소리를 냈던 인물이다."(121쪽)

특히 세종은 중전 소헌왕후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했던 중전 아버지인 심온을 죽인 박은을 집현진 첫 수장에 앉혔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세종이 사람을 쓸 때는 공과 사를 따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인사정책은 정보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을 국정원장에 앉혔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수첩인사'라는 비판을 받는 박근혜 대통령과 달라도 정말 다르다.

이조판서, 우의정을 지낸 허조 반대에 지친 세종은 "허조는 정말 고집불통이야"라고 토로했지만, 세종은 그를 썼다. 이유는 "강력한 반대자가 있어야 비로소 리더는 자신의 판단력에 의문을 던지게 되기" 때문이다. 세종은 한 마디로 자기 정책에 '딴죽' 거는 신하를 좋아했다. 허조 같은 반대자가 있었기에 세종이 추진한 정책은 더 튼튼해졌고, 정치가 더욱 견고해 질 수 있었다. 만약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대 업적인 '4대강사업'을 감사원과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야당과 시민단체만큼은 아니더라도 50%만 반대했더라면 22조 원이라는 혈세를 낭비하거나, '4대강 죽이기 사업'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무지렁이 백성 말도 들었던, 세종

박근혜정권도 별 다르지 않다. '대통령 지시'만 떨어지기를 바란다. 대통령에게 "이건 안 됩니다"라고 반대하는 이들을 볼 수 없다.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입밖으로 내지 못한다. 감히 대통령에게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것은 '불경'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새다. 왜 박근혜 정부에는 허조가 없는가?

세종이 천재라고 생각하는가? 역사기록을 보면 세종은 분명 천재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세종은 반대자들과 비판자들과 끊임없이 논쟁했다. 자신이 부족함을 안 것이다. 김준태는 "군주 스스로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 손으로 더 이상의 발전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라며 "거기에다 사사건건 신하들의 선생 노릇을 하려 든다면 경박해 보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세종은 누구처럼 '깨알지시'하는 군주가 아니었다.

세종은 끊임없이 듣는 군주였다. "설령 무지렁이 농부의 말이라도 반드시 들어 보아서 말한 바가 옳으면 채택하여 받아들이고, 적절하지 않은 말이라 해도 절대 죄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는 임금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오류를 미리 막고, 자칫 놓치기 쉬운 백성들의 사정을 확이하며, 나아가 임금 자신의 지혜를 넓히기 위해서이다"(117쪽)라고 말한 이가 세종이다. 이에 비해 박 대통령은 1시간 동안 '깨알지시'를 할 정도로 자기 할 말만 한다. 듣지 않는다는 말이다.

1시간가량 진행된 국무회의는 거의 박 대통령 발언으로 채워졌다. 신임 장관들은 포부와 각오를 밝힌 뒤 박 대통령 지시사항을 받아적었다. - 3월 12일 <경향신문> 1시간 회의 내내 대통령 발언… 장관들은 지시사항 받아 적기 바빠

이런 박 대통령 깨알지시에 대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 17일 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주도하는 '혁신과 정의의 나라' 포럼에서 "참모의 창조성 죽이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세종이 위대한 군주가 된 이유는 바로,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고, 비판하는 신하를 많이 두었으며, 항상 열린 귀를 가졌기 때문이다. 세종 치하에 살았던 조선 백성들이 부러운 이유다. 우리는 과연 5년 후 이런 지도자를 뽑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군주의 조건> 김준태 지음 ㅣ 민음사 펴냄 ㅣ 14000원

군주의 조건 - 현대의 리더가 조선의 군주에게 배우는 33가지 지혜

김준태 지음,
민음사, 2013


#군주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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