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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어스', 불안 끝에서 바라본 미래의 희망

[영화리뷰' 불안의 시대를 그리는 M.나이트 샤말란

13.06.02 15:10최종업데이트13.06.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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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프터 어스> 영화 포스터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M.나이트 샤말란의 반전, 그리고 타자성과 불안

M.나이트 샤말란 감독에게 쉽사리 가지는 오해부터 풀자. 그의 데뷔작을 <식스 센스>로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M.나이트 샤말란의 장편 데뷔작은 1992년 작품인 <분노를 위한 기도>이며, 1998년에는 코미디 영화 <와이드 어웨이크>를 만들었다. 1999년에 내놓은 <식스 센스>는 그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흔히 M.나이트 샤말란하면 '반전'을 떠올린다. 이것은 <식스 센스>의 강렬한 반전이 많은 이의 뇌리에 각인된 바가 크다.

문제는 <식스 센스> 이후 <언브레이커블> <싸인> <빌리지> <해프닝> 등의 영화들을 오로지 반전으로 평가하는 현상이다. 주제와 정서보다 반전 효과에만 무게를 실은 평가가 바람직할까?

M.나이트 샤말란의 영화에서 눈여겨 볼 점은 타자성과 불안이다. <식스 센스>(1999)와 <언브레이커블>(2000)은 내가 속한 세계 또는 집단이 남들과 다르다는 타자성에 주목했다.

미국 사회를 근본부터 흔들었던  9·11 테러 이후 M.나이트 샤말란은 미국 내부의 불안을 탐구했다. <싸인>(2002)에서 구체화한 대상에서 불안을 추출했다면, <빌리지>(2004)는 내부가 만들어내는 불안으로 변화했다. <해프닝>(2008)에 이르러선 어떤 대상이나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불안한 공기만이 느껴질 뿐이다.

▲ <애프터 어스> 영화 스틸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는 소년의 성장기

부상당한 아버지 사이퍼 레이지(윌 스미스 분)를 대신하여 불시착하면서 떨어져 나간 우주선 후미의 조난신호기를 가지러 가는 키타이 레이지(제이든 스미스 분). 우주선에서 도망친 외계생명체 얼사의 공격과 인간이 떠난 지구에서 새롭게 진화한 지구 생명체들의 위협을 피해 목표 지점까지 홀로 가는 소년을 그린 <애프터 어스>는 한 편의 모험 영화이자, 성장 영화다.

M.나이트 샤말란은 <애프터 어스>에서 소년이 극복해야 하는 불안과 공포의 대상을 '얼사'로 규정한다. 영화에서 인간이 얼사를 이기는 방법은 공포심의 극복이다. 얼사는 눈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없지만, 인간이 공포를 느낄 때에 발산하는 페르몬에 반응하여 인간들을 사냥한다. 그런 얼사에 대항하여 인간은 특수 훈련을 통해 내면의 공포를 제거하여 무(無)의 심리 상태를 유지하는 전사 '레인저'를 내세운다.

예전에 얼사가 누나를 참혹하게 죽이는 광경을 목격했던 키타이. 자신 때문에 누나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키타이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내가 어떻게 해야 했죠?"라고 반문하고, "그때 아버지는 어디에 있었냐!"고 원망한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의식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결국 그를 힘을 맹신하는 자로 만든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홀로 여정을 떠난 소년은 얼사와 지구 생명체에 맞서며 과거의 아픔과 대면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공포심은 그저 우리의 생각에 있을 뿐 진짜가 아니며, 위험은 존재하나 공포심은 선택이라고 조언한다.

키타이는 외적인 육체의 강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착각이다. 그에겐 기억에 새겨진 공포의 근원인 얼사를 정신의 강함이 필요했다. 얼사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내며 내면의 상처를 이겨낸 아들은 비로소 어른인 '레인저'로 성장한다.

▲ <애프터 어스> 영화 스틸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미래를 걱정하는 기성세대의 눈길

<애프터 어스>에서 사이퍼 레이지의 부인은 남편에게 "당신은 아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아들에게 필요한 건 군인이 아니라 아버지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대사는 <애프터 어스>가 가장 말하고 싶었던 주제일지도 모른다. 지금 미국 사회가 지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힘이 아닌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9·11 이후에 공개된 <로드 투 퍼디션>(2002)은 1930년대 대공황 시대를 관통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다루며, 미국 사회에 내포된 폭력의 고리를 사유했다. 총과 피로 얼룩진 아버지의 역사를 지켜보는 아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게 하며 살인의 역사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이것은 폭력의 대물림을 끊고 싶은 바람이다.

<더 로드>(2009)에선 세상의 종말 후에 살아남기 위해 길을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불'을 유지하게끔 이끈다. 마음의 불을 가진 '좋은 사람들'이 될 것 인가, 아니면 인간이길 포기한 '나쁜 사람들'이 될 것이냐는 갈림길에 선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다.

이들 영화는 모두 전쟁과 테러로 점철된 역사를 만든 미국의 기성세대가 미래의 세대들은 자신들과 다른 길을 걸었으면 하는 희망이 투영되었다. 절망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했던 <미스트>(2007)의 교훈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 <애프터 어스> 영화 스틸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불안의 시대를 그리는 M.나이트 샤말란

<애프터 어스>에선 키타이 레이지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모비 딕>의 에이허브 선장은 집착에 사로잡혀 모두를 희생시키면서 고래를 쫓는 자로, 지금의 미국을 거울처럼 반영한 인물이 아닌가? 복수심에 불타는 에이허브 선장이 보여준 광기야말로 미국이 물리쳐야 할 적이라고 M.나이트 샤말란은 지적한다.

M.나이트 샤말란은 <애프터 어스>에서 <로드 투 퍼디션> <더 로드> <미스트> 등이 보여준 미래를 걱정하는 시각을 계승한다. 또한, 다음 세대를 믿는다.

실체 없는 불안의 끝에서 M.나이트 샤말란이 바라본 희망적인 미래. 다음은 어떤 영화를 내놓을까? 불안의 시대를 사는 지금, 그의 영화는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치열하게 작가적인 색깔을 유지하며 고군분투하는 그를 더욱 응원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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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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