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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갈등·외압·예산부족으로 국내영화제 '흔들'

영화제 위기론 흘러 나와... 지자체와도 유연성 있는 협력 필요

13.03.29 17:25최종업데이트13.03.2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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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개최되는 전주영화제와 8월 개최되는 제천영화제 포스터 ⓒ JIFF. JIMFF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최근 SNS에 올린 글을 통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아래 전주영화제) 불참을 선언했다. "남의 빈자리라도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게 불참의 이유였다. 조 위원장은 지난해 전주영화제의 프로그래머 해임과 스태프들의 집단 사임 등으로 논란이 빚어진 것에 대해 "지자체들이 사람 잘라도 다른 사람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독립다큐의 대부라 불리는 김동원 감독 역시 "올해 전주영화제에 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이기도 한 김 감독은 2010년 전주에서 회고전을 열기도 했으나 지난해 전주영화제가 프로그래머 해임과 스태프 집단 사퇴 등의 논란을 겪은 이후 올해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 집행위원장 자리 역시 지난 1월 말 오동진 집행위원장이 사임한 이후 두 달 넘게 공석 상태로 있다. 오 위원장의 석연치 않은 사임으로 제천영화제를 바라보는 영화인들의 시선도 많이 차가워졌다. 2년 만에 집행위원장이 바뀌게 되면서 영화제가 불안정한 모습으로도 비쳐지고 있다. 오 위원장의 사임 이유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국내 영화제들이 조직 내부의 문제와 외풍 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아래 부산영화제) 등 한두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화제들의 안정감이 약해진 모습이다. 내부의 문제도 있지만 외부의 간섭과 압력이 영화제 자체를 흔들면서 영화제 위기론이 솔솔 새어나오고 있을 정도다. 안팎의 논란으로 인해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 등 핵심 인력들이 자주 바뀌는 것은 영화제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혼란 겪고 재정비하는 '전주'... 집행위원장 선임 늦어지는 '제천'

26일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기자회견 ⓒ 성하훈


지난 26일 오후 신세계 문화홀에서 열린 전주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하진 전주시장은 지난해 전주영화제의 논란에 대해 일부분 오해가 있었고 잘못 전달된 부분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불미스러운 일은 짧은 시간에 해결됐다며 심기일전의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지역 언론으로 대표되던 토호 세력들이 전주영화제를 흔들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프로그래머 해임 논란을 거친 이후 새로 선임된 집행위원장과 기존 스태프들이 충돌하며 집단 사직 문제로 확산됐다. 이날 송하진 조직위원장은 "지난해 발생했던 논란이 영화제의 본질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고 강조한 후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으나 일부 영화계 인사들의 반응은 쌀쌀하다.

한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은 "영화제는 관객만의 것도 감독, 배우만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곳에 영화를 즐기는 감성은 사치스럽다"라며 "올해 전주영화제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독립영화 진영의 한 관계자는 "전주영화제 불참에 대해 독립영화단체 차원에서 논의된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독립영화를 통해 성장한 대표적인 배우 김꽃비씨와 <러시안 소설>의 신연식 감독, 독립 다큐 <춤추는 숲> 강석필 감독 등은 심사위원으로 올해 전주영화제에 참여한다.

제천영화제를 두고서는 지난 2년 간 의욕적으로 활동해 온 오동진 위원장이 물러난 이유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임기만료에 따른 사임은 형식적인 답변일 뿐 지역 관료들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오동진 전 위원장은 구체적인 이유에 대한 언급을 삼간 채 "불분명한 사퇴압력이 이어졌을 때 절차의 민주화를 존중할 것을 요구했었다, 임기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만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남성의 전라 뒷모습이 나온 포스터에 대해 시청에서 불쾌해 한 건 알려진 사실이고, 오 위원장이 시청 공무원들과의 관계가 많이 불편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내부의 갈등도 작용한 부분이 있다"면서 "지난해 9월 부집행위원장이 사표를 냈으나 시장이 반려된 것도 집행위원장 사임에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일부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제천영화제 참여를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행정 조직이 영화제의 자율성을 훼손시킨 것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시선이다. 제천영화제 측은 후임 집행위원장 인선을 위해 애쓰고 있으나 이 같은 분위기가 작용한 듯 고사하는 인사들이 나오면서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천영화제의 관계자는 "집행위원장 부재를 절감해 서두르고는 있으니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그래머 변동 잦은 'DMZ' '부천'... 최열 위원장이 수감된 '환경'

지난해 9월 열린 2012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 모습. ⓒ 성하훈


국내 영화제들의 흔들림은 비단 전주와 제천에 국한되지 않는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아래 DMZ영화제) 역시 지난해 강석필 프로그래머가 개막을 앞두고 사임한 데 이어, 정우정 프로그래머도 물러나면서 프로그래머가 공석인 상태가 돼 경고등이 켜졌다.

DMZ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독립적인 사단법인으로 운영되는 기존 영화제들과는 다르게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경기영상위원회의 한 부서로 존재하는 특성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의 산하 기관이라 2년이 넘으면 비정규직 법에 의해 정규직으로 채용돼야 하는데, 그럴 경우 프로그래머가 영상위원회(아래 영상위)의 일반직 직원으로 다른 업무까지 떠맡아야 해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장기적인 계약이 어려운 탓에 같은 일이 되풀이 발생하고 있다"며 "강석필 프로그래머나 정우정 프로그래머나 비슷한 경우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DMZ영화제 서용우 사무국장은 "조재현 위원장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며 "영화제를 영상위 산하 부서에서 따로 독립시킬 예정이고 프로그래머는 공모를 통해 곧 선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DMZ영화제는 경기도가 지원하고 있으나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충실히 지켜지고 있어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는 편이다.

5월 초 개막하는 환경영화제는 지난 2월 최열 집행위원장이 정치적 탄압 논란 속에 대법원 판결로 실형이 확정되면서 수감됐다. 그간 환경영화제를 이끌어온 최열 위원장의 부재로 운영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일단 지난해 11월 배우 장미희 명지대 교수를 공동집행위원장에 위촉한 데 이어,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이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전열을 정비했다. 김영우 프로그래머는 "최열 위원장은 없지만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4년 당시 홍건표 부천시장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집행위원장을 해임해 홍역을 앓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상대적으로 안정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래머의 변동이 잦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년 간 수석프로그래머를 제외하고 해마다 일부 프로그래머의 교체가 이어지고 있다. 임기 3년을 마친 김영빈 집행위원장은 올해 연임됐다.

여성 "예산 줄어 거리에 나앉을 판"... 청소년 "규모 있는데도 지원 축소"

지난해 4월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모습.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내부 갈등이나 외압의 영향을 덜 받는 영화제들은 예산 부족으로 허덕이면서 안정적 운영을 위협받고 있다. 지자체의 지원이 기대만큼 못 따르는 경우인데, 서울에서 개최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아래 여성영화제)와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청소년영화제)가 대표적이다. 이들 영화제는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의 지원 예산마저 줄어들면서 힘겨워하는 모습이다.

여성영화제의 관계자는 "2년 전 3억 원이었던 서울시 지원 예산이 지난해 2억5000만 원으로 줄었다"며 "더 이상 줄어들게 되면 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위기감을 호소했다. 지난해는 예산 압박으로 인해 상근 스태프들이 순환 근무에 들어갈 만큼 압박을 받았다. 위기극복을 위해 발전기금을 모금하고 있는데, 변재란 공동집행위원장은 "학교 강의 나가는 것 외에는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며 "무척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고 한숨지었다.

청소년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제는 미래 영화인재를 육성하자는 취지로 지난 15년 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었다. 또한 최근 학교 폭력과 청소년 자살 문제 등 사회적 문제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며 영화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청소년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라 가족 관람이 많고 교육적인 효과도 인정받고 있으나, 지자체의 후원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이들 영화제들은 특정한 주제뿐만 아니라 개최시기도 오래돼 특성 있는 영화제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영진위의 국제영화제 지원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김종현 청소년영화제 위원장은 "콘텐츠나 규모 면에서 4위인데도 제일 낮은 지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영화제 측은 "영진위의 지원 평가 기준이 영화제의 특성들을 무시하고 있다"며 "기준이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많다"고 말했다. 이들 영화제는 전년 대비해 올해 지원 금액이 각각 2000만 원씩 줄었다.

지난해 8월 개최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개막식. 조직위원장의 개막선언을 김종현 집행위원장과 홍보대사들이 지켜보고 있다 ⓒ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이에 대해 영진위 관계자는 "4월 중 영화제 관계자 간담회를 통해 평가 기준과 영화제 특성 반영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디다큐페스티벌이나 인디포럼 등 독립영화제들도 역시 영진위의 지원이 20%나 줄어들면서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독립영화제들은 빚을 내서 영화제를 열고 나중에 채무변제 파티 등을 열어 빚을 갚기도 했다.

영화제-지자체 사이 철학·지향점 공유로 상호 협력·보완해야

국내 영화제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산영화제의 역할도 바빠졌다. 부산영화제는 전주영화제의 위기 극복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고, 몇몇 영화제들에 대해서도 협력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영화제가 한 곳씩 흔들리기 시작하면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며 "부산이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진위는 최근 내놓은 '국제영화제 현황 및 개선점 점검'을 주제로 한 연구 자료를 통해 "영화인들과 지자체가 같은 철학과 지향점을 공유해야 한다"며 영화제의 본질이 해소되지 않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협력과 보완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2012년 전주영화제 기간 중 영화상영 외에 부대행사로 열린 야외공연. ⓒ 전주국제영화제


이 자료는 '영화제가 영화 외적인 축제까지 안고 가야 한다면 문화적 기능 외에 산업적 차원에서 영화산업의 기회를 넓히는 장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유료 관객 확충 및 수입 증가 방안 등의 중장기적 전략과 함께 패러다임을 바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또한 다른 영화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재단법인화가 돼야 한다"는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위원장의 말을 언급하며 '정체성과 자율성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내부의 반목을 막기 위해서는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영화제가 지역축제의 역할을 원하는 지자체의 요구를 무시할 순 없기에 일부분 감당할 필요가 있다"며 "부딪히기보다는 유연성을 가지고 상대 쪽의 입장을 이해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제의 한 프로그래머는 영화제들의 예산 문제와 관련해 "이명박 정권의 영화계 탄압 과정에서 국고로 지원되던 영화제 예산이 영진위 기금에서 지원되는 것으로 바뀌었다"며 "국고지원으로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제들이 한국영화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고 국제적인 위상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프랑스나 독일처럼 영화제 지원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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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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