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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미래는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주는 사회였다"

[지나간 책 다시읽기⑨]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등록 2013.03.14 18:49수정 2013.03.1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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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표지 ⓒ 민음사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계속해서 진화 또는 변화해
왔다. 인격화된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교훈을 주기 때문에 이솝이야기처럼 '우화'로 읽히며 어린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읽혔고, 누가 보더라도 정치적 현실과 세상에 대한 비판적 또는 조소적인 이야기였기에 '풍자' 소설로 읽혔다.

여기서 정치적 현실이라 함은 <동물농장>이 출판되었을 1945년 당시의 현실이라 하겠다. 그 중에서도 꼭 집어 말하자면 러시아의 스탈린 독재의 전체주의에 대한 통렬한 풍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은 여기서 진화한다. 말하자면 재조명된 셈인데, 조지 오웰이 우크라이나 서문에서 밝혔듯이 "비록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러시아 혁명의 실제 역사에서 따온 것이지만" 단순히 당시의 정치적 현실 풍자를 넘어 '독재 일반'에 대한 풍자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게 아니라면 러시아 전체주의의 망령이 사라진 지 오래인 지금까지도 <동물농장>이 사랑받는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즉, <동물농장>은 당대 정치적 현실을 풍자함과 동시에, 인간 세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존재할 '독재 일반' 즉 권력으로의 욕망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농장>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앞서 밝혔듯이 <동물농장>은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우화의 성격상, 어릴 때부터 자주 접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읽혔을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은 당시 서방 국가와 소련과의 우호적인 관계 때문에, 출간되기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영국에서 네 군데, 미국에서 열 군데가 넘는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았다고 하니 누가 보아도 러시아, 그 중에서도 스탈린 독재 체제를 비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던 중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며 사실상 세계 2차 대전이 종결된다. 이미 그 전에 유럽전선은 4월 30일에는 히틀러가 자살함으로써 사실상 종결된 바 있다. <동물농장>은 공교롭게도 1945년 8월 17일에 출간된다. 이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한국에 번역 출판되는데, 이는 냉전시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남한에 확실한 반공 사상을 심어주기 위해 미군정에 의해서 실현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조지 오웰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는 전혀 반공주의자, 반사회주의자가 아니었고 오히려 어느 누구보다도 사회주의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을 원한다면 소비에트 신화는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는 확신" 하에 <동물농장>을 썼던 것이다. 즉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부를 만한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확고한 계급 사회로 변모해 간다며 소련의 신화를 폭로하고자 이 소설을 썼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반공 소설의 대표격으로 많이 읽혔던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조지 오웰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였다(혹은 알면서도 이 소설이 갖는 교훈적 내용과 영향력을 이용하려고). 하지만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렀고, <동물농장>을 다시금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에 더 가깝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이며, 너무나도 다른 의도로 이용당해왔던 이 소설에 새로운 생명력을 주는 방법일 것이다.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다시 살펴보는 <동물농장>

<동물농장>이야말로 '지나간 책 다시읽기'의 취지에 가장 알맞은 책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10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어떤 느낌을 받게 되었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과 같이 이 소설은 '우화', '풍자소설'-러시아 스탈린 독재 풍자, 독재 일반 풍자 등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의 초점을 단순히 여기에 맞출 필요도 없다. 이를 배제하고서라도 소설의 중요 세 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이 아주 잘 엮어져 있다.

소설의 배경은 제목대로 동물농장이고, 사건은 자잘한 사건부터 큰 사건까지 쉬지 않고 일어난다. 특히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은 뚜렷하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폴레옹'이 차츰 차츰 변해가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알면서도 당하는 그런 느낌이 들게 만들고, 그의 충실한 대변인 역할을 하는 '스퀼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히 그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한다. 여기에 일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워커홀릭 '복서'는 극 중에서 보여주는 말(馬)의 이미지, 옳고 그름의 판별 없이 주어진 일만 하는 현대인 그리고 당시 독재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가 토사구팽당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다.

동물농장의 원래 주인은 인간 존즈씨이다. 농장 이름은 메이너 농장이었고, 존즈씨는 동물들을 학대하고 착취하였는데, 이를 두고 늙은 수퇘지 메이저는 혁명을 주창하며 죽어간다. 돼지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을 위시한 동물들은 존즈씨를 비롯한 농장의 모든 인간들을 쫓아내고 동물농장으로 개명하며 동물들만의 세상을 꾸려나간다.

그들은 7계명을 만드는 등 정신적인 개조를 실시하고, 풍차를 만드는 등 앞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계획을 짠다. 그러던 중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의 의견 차이가 생기고, 나폴레옹은 스노우볼을 축출한다. 사실상 독재 체제를 구축한 나폴레옹은 우매한 동물들을 서서히 개조시켜 나간다. 7계명을 조심씩 바꾸고, 교묘한 언사와 행동으로 스노우볼을 완전한 반동분자로 만들어 그 반등으로 자신의 지위를 높여만 간다. 또한 자신의 의견에 반대한 동물들을 체제에 반대한 반동분자로 만들어 처형시킨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는 동안 클로버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클로버는 여러 해 전 동물들이 인간을 뒤집어엎기로 했을 때 일이 이 지경이 되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오늘 있었던 공포와 살육의 장면들은 늙은 메이저가 그들에게 반란을 사주했던 그날 밤 그들이 꿈꾸고 기대했던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담긴 미래의 그림이 있었다면 그것은 굶주림과 회초리에서 벗어난 동물들의 사회, 모든 동물이 평등하고 모두가 자기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회, 메이저의 연설이 있던 그날 밤 그녀가 오리새끼들을 보호해 주었듯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 주는 그런 사회였다."(본문 중에서)

역사 상 수많은 혁명이 있어왔고, 그 혁명을 완수한 당사자들이 항상 바라마지 않던 사회. 어김없이 그들이 울부짖었던 사회였을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 주는 그런 사회"

동물들이 그들이 피땀 흘려 세운 풍차는 폭풍에 휩쓸리고, 인간들에 의해서 폭파되는 등 할 일은 더더욱 많아졌지만 처지는 존즈씨 때보다 더욱더 피폐해져만 갔다.

어느 날,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동물농장의 제일가는 일꾼 복서가 쓰러진 것이다. 그런데 나폴레옹을 위시한 지도부는 복서를 도살자에게 팔아넘겨 버린다. 동물들은 당나귀 벤자민에 의해서 이 사실을 알지만, 나폴레옹은 스퀼러를 시켜 다시 정신 개조를 시킨다.

글자를 알고 지식을 만지는 지도부에게 우매한 동물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충성을 다한다. 혁명을 일으켜 존즈씨를 쫓아내자마자 일어난 달걀 횡령 사건에서도 동물들은 아무런 의심이 없었고, 조금씩 변해가는 7계명과 각종의 부당한 대우 속에서도 동물들은 "예전 존즈 씨가 있었을 때는 노예였지만, 지금 나는 이 농장의 주인이야"라며 의심하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한다. 많은 동물들이 처형당했을 때도, 복서가 도살장에 끌려갔을 때도 동물들은 의심을 하지 않았다. 알지 못해서 알려고 하지 않은 건지, 알려고 하지 않아서 알지 못했던 것인지.

급기야 지도자 돼지들은 동물농장의 핵심과도 같은 구호인 "두 다리로 걷는 것은 모두 적이다"의 불문율을 깨고 두 발로 걷더니, 두 다리로 걷는 인간과 거래를 하고, 그들과 흥청망청 파티를 열기까지 한다.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소설은 끝난다.

<동물농장>의 동물들을 다시 생각한다

이 소설을 다시 완독하고 처음 든 생각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였다.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스 2세를 쫓아내고 혁명을 완수했던 만민의 평등을 구호로 내걸은 스탈린. 그는 당시 전 세계 무산 계급의 신화이자 영웅이자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권력의 심장에 칼을 꽂았던 그가 그보다 더한 철갑 속 권력의 심장이 될 줄이야.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과연 권력이 부패하는 과정에서, 그 잘못을 모두 권력자에게 돌려야 하는가라는 생각.

조지 오웰은 여기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권력의 부패에 우매한 대중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동물농장>에서 권력부패의 주 범인은 나폴레옹을 위시한 권력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들인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맹목적인 충성만을 하였다. 생각 없이 우매하였던 것이다.

나폴레옹을 광신적으로 따르며 동물들로 하여금 생각할 시간을 주지 못하게 구호를 꽥꽥 질렀던 양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나폴레옹에게 휘둘려 평생 열심히 일만 했던 말 복서, 글자를 읽을 줄 몰라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조차 잘 모르는 말 클로버, 모든 사실들을 알면서도 아무 말 없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당나귀 벤자민 등. 이들은 권력 부패의 공범이었던 것이다.

조지 오웰은 이 소설로 신랄하게 정치적 현실을 풍자하면서 권력자만을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신이 사회주의자이지만 소비에트 신화를 무너뜨려야 제대로 된 사회주의 실현이 가능해 과감히 비판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우매한 사회주의자는 아무런 의심이나 비판 없이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비판적 수용을 하고 있는바, 무분별한 수용과 방종이 더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대부분 나폴레옹이 되지 못한다. 아마도 우매한 동물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렇다면 여기도 또 질문이 생긴다. 조지 오웰이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벤자민과 같이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방종'하는 자가 더 잘못인가, 대부분의 우매한 동물들 같이 아무것도 모른 채 '무분별한 수용'을 하는 자가 더 잘못인가. 확실한 건 하나다. 기득권층은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는다. 방종이건 무분별한 수용이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지금 이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너는 네 것만 나는 내 것만(그리고 네 것도) 상관하는 것.

지금은 아무나 떠들고 다니는 말이지만, 이미 60년 전 한편의 소설로 묵직하게 한 마디 하고 있는 것 같다.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동물농장>,(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민음사 펴냄, 1998년(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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