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이유는..."

[인터뷰] 올해 새로운 소설집 내는 소설가 정지아

등록 2013.01.02 12:45수정 2013.01.0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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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여성대통령의 탄생을 축하하며 새로운 기대를 품고, 또 누군가는 집단상실감에 방향을 잃고 떠돌고 있다. 그러나 역사가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든 올 겨울에도 눈은 푸지게 내리고, 사람들은 떠오르는 신년 해를 향해 소원을 빌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수천 년 흘러가는 강물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이름 없는 이들의 일상이다.

신년을 기념하며 소설가 정지아씨를 만났다. 그녀는 통속과 말초적인 자극, 가벼움이라는 오늘날의 대세, 그 대척점에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는 작가다. 더할 수 없이 미적인 문장으로 인간과 역사를, 그 속의 내밀한 아픔을 형상화 해내는 작가다. 그녀는 오직 '깊이'로 한국문단에 묵직한 무게감을 드리운다.

무릇 '소설가란 언제 어디서든 당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 작가에게 이즈음 우리 사회의 새로운 모색을, 그 기미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전남 구례의 자택에서 작가는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문학, 99%의 삶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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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지아 소설가 정지아 씨는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절망하기 전 현실을 냉정하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황윤희


오늘의 사회에서 문학은 무엇일 수 있을까? 작가는 한때 문학이 어두운 밤을 비추는 등대라고 생각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순수예술이 죽어가고 대중예술이 확대되는 이즈음 문학예술에 그만한 기대를 하는 것은 모순인 듯하다고 했다. 문학은 이제 시대의 무엇이라기보다는 지쳐있는 한 개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1%의 삶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99%의 삶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게 문학이 아닐까요?"

99%의 삶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그것이 정지아씨가 기대하는 문학이다. 때문에 작가가 눈여겨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 보도블록 사이에 난 풀처럼 겨우 존재하는 이들이다. 작가는 어떤 인생이든 그 안에는 한 우주만큼의 무게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최근 작가에게 감동을 준 이도 평생 농사일을 하느라 허리가 90도로 휘어버린 이웃의 한 아주머니다. 아주머니가 유기농으로 키운 시래기를 강남의 부유한 이에게 팔아준 적이 있었는데, 백화점 가격을 쳐서 드렸더니 아주머니가 한사코 받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자기가 들인 노동에 비해 보상이 과하다 생각했고 그래서 받기를 거부한 것이다. 작가는 이즈음의 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정직성'을 그 아주머니에게서 발견했던 셈이다.

정지아씨는 그런 평범한 이들의 정직성 앞에 자신의 소설이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지 항상 돌이킨다. 문단의 중견작가지만 그녀가 글을 써서 벌 수 있는 돈이란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부족하다 생각지 않는다.

"농사짓는 게 더 어려운 일이죠. 여름 땡볕에 풀이 얼마나 자랐는지, 작물이 얼마나 목이 마른지, 매순간 살피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또 제 능력이 그보다 뛰어나다 생각한 적이 없고요."

하지만 오늘의 사회는 그녀의 능력을 농부의 노고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이고, 그래서 정지아 씨는 자신이 농부가 한 움큼의 쌀과 고추를 키워내는 만큼의 노고를 기울이고 있는지 늘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 결여된 20대, 그들의 정서 공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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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소설집 '봄빛'2008년 발간된 소설집 '봄빛', 정지아 씨는 올해 세번째 소설집을 발간한다. ⓒ 황윤희

대선이 끝났다. 작가는 이번 대선 후 70년대부터 반독재투쟁을 해왔던 선배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이토록 절망할 상황인가, 라고 묻는다. 정지아씨는 이번 대선의 결과를 두고 대중의 선택이라 못 박는다.

절망하기 전에 현실을 냉정하게 수용하고 대중의 선택이 왜 그러했는지 따져보는 일이 먼저라고 말했다. 작가는 이미 안철수 현상에서부터 예견되었던 것이 대중의 기존정치에 대한 환멸인데, 그를 민주당이 만족시켜주지 못한 결과라 판단하고 있었다.

작가의 시선은 특히 새로운 감성을 가진 세대, 20대에 밀착되어 있다. 대학에 출강하면서 그들을 늘 가까이하고 챙기기 때문인 듯했다. 정지아씨가 보는 20대는 경제적 문제가 치명적인 세대, 더불어 남북이 하나의 민족이었던 기억이 아득히 먼 세대다. 반면에 40대 중반부터는 독재를 겪은 세대, 민족 개념을 가진 세대이다. 그런 상황에서 20대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의 보편적 정서를 끌어안지 않고서는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작가의 의견이다.

"20대는 압도적 취업난으로 결혼, 출산을 포기할 정도로 희망이 결여된 세대입니다. 그런 세대에게 통일 따위는 너무나 먼 이야기죠. 이전 세대는 독재 투쟁을 해도 취업이 안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또 독재는 언젠가 깨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투쟁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었죠. 하지만 오늘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너무나 압도적이고 전 세계적이어서 진보진영에서도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젊은 층의 절망이란 상상 이상의 것입니다. 기성세대는 그들의 희망 없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지아씨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젊은 층과 정서적 공감을 이루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오늘의 진보진영이 다시 출발해야 할 지점도 대중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서부터라고 믿고 있었다. '통일'이란 단어가 사어(死語)가 되어가는 듯한 이 시대, <빨치산의 딸>이라는 작품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작가에게 그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지금 유럽의 경제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가 독일이라는 데 주목한다.

"통일비용 문제를 너무 근시안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통일이 되면 인구가 늘고 국토가 확장되고 경제규모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입니다. 대륙 진출의 새로운 길도 열릴 거고요. 장기적으로 본다면 통일비용은 감당할 만한 것입니다. 기업도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 주목하고 투자를 하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민족이라면 충분한 잠재적 가치가 있죠. 언어가 같고 음식이 같고 문화가 같은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남북이 조금의 접촉만 있어도 한 순간에 정서적 교감이 다 이뤄질 것이라 생각해요."

'적게 벌어 적게 쓰고 삶을 즐기는' 새로운 코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막강한 자본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작가는 돈과 몸이 전부인 세상이지만 누구나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안다고 했다. 또 대중의 생각은 늘 똑같은 것은 아니며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80년대의 대중과 비교할 때 오늘의 대중은 계급성이 약화되었지만 강정마을을 지원하는 희망비행기, 한진중공업·쌍용차 노동자를 지원하는 희망버스를 생각하면 아직도 자발적인 정신이 살아있습니다. 또 대중의 그러한 정신은 언제라도 분출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 대세의 흐름에 섞이지 않는 개인적 차원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지리산 일대에 인구가 늘고 있는데 저는 이런 현상이 무척 고무적이라고 봅니다. 이는 자본주의적 가치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저항이라 할 수 있죠. 적게 벌고 적게 쓰고 삶을 즐기겠다는 의지를 갖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거니까요. 또 이 전면화한 자본주의가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그래서 자기를 끊임없이 돌아보는 자세, 시간을 가질 것을 추천한다. 돌아보는 자세는 곧 문학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출퇴근 시간 전철에서 휴대폰만 들여다보지 않아도 시간적 여유가 생깁니다.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언지 생각해보기만 해도 삶이 변화하죠."

사람들은 생각하면 괴로우니까 안 하려 들지만 그래도 끝내 해야 하고, 그렇게 자기성찰을 해나갈 때 그 개인의 삶도 편하고 즐거운 것으로 바뀔 수 있다고 작가는 믿고 있었다. 그리고 정지아 씨가 화두처럼 툭 한 문장을 덧붙인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곱씹을 필요가 있는 말이었다.

"또 이제 금융이나 부동산에 의한 불로소득을 거부하고 노동에 의한 소득을 기대하는 그런 건감성이 필요한 때라 여겨집니다."  

정지아씨는 자기 소설의 궁극적 도착점이 "인간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가능한 어느 경지이길 희망한다. 그런 연장선에서 욕망도 없이 삶을 견디는 아름다운 인물들을 주로 그리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러운 자, 속물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삶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그런 이들의 삶까지 들여다보고 품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워낙에 과작(寡作)인 그녀는 소설집을 낸 지 5년 만인 올해 2월 드디어 세 번째 소설집 <숲의 대화>(가제)을 발간할 예정이다. 서울과 안성으로 출강하고 있는 작가지만 2년 전 고향 구례로 거주지를 옮겼다. 구례에서의 생활을 물었더니 강태공을 언급한다.

"강태공은 물을 보면서 자신과 세계를 들여다본 사람이죠. 반면에 이태백은 물에 뜬 달을 보고 달로 떠나버린 사람이고요. 저는 강태공 쪽이라 생각합니다."

그녀는 차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는 그 적막한 곳에서 고요히 자신과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소설가 정지아의 일생의 화두는 아마도 '인간'과 '아름다움'이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소설에는 살아 견디는 인간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뼈 속을 저릿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소설가 정지아는 누구?
1965년 전남 구례에서 출생했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됐고, 2004년 소설집 <행복>, 2008년 <봄빛>을 출간했다. 2006년 단편소설 <풍경>으로 이효석문학상을, 2008년 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올해의 소설상을, 2009년 소설집 <봄빛>으로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전공전담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풍경>은 여타의 화려한 수식이 거추장스러울 만큼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소설이다. <풍경>을 두고 소설가 박완서, 김화영, 윤후명은 이렇게 말했다.

'빨치산의 딸로 각인된 작가가 드디어 이렇게 차안과 피안을 상쇄하며, 아니, 포용하며 웅숭깊은 세계를 지향해 갔구나. 이것이야말로 문학이 가야할 진실에의 길, 화해와 승화의 길이다.'  

사실 곁에서 보면 정지아씨는 깊은 모성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작가는 이름 없는 이들, 약한 이들을 살피는데 능통하고,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하는데 유능하다. 세상을 보는 일에는 서늘할 만큼 분명하고 날카로운 작가지만, 그 품은 깊고 넓어 많은 것들을 오래, 질기게 품는다. 그 품이 빛나는 문장, 문장으로 엮어질 또 다른 날이 기대된다. 그 때마다 많은 이들이 그녀와 더불어 깊고 넓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안성신문>에 1월 2일 오후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동시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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