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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포스터 ⓒ 더블앤조이 픽쳐스
약혼녀 아버지의 사업 동행 차 프랑스 파리에 여행 온 헐리우드 작가 길 펜더(오웬 윌슨 분)는 프랑스 파리, 특히 1920년대 파리를 동경한다.
돈이 되는 영화 대본이 아니라 소설을 고집하는 길을 이해할 수 없는 지독하게 세속적인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 분)와의 갈등 속에서 번민하던 길은 어느 날 우연히 낯선 자동차를 타게 되고, 그토록 꿈꾸었던 황홀한 세계를 체험하는 행운을 얻는다.
이보다 행복한 시간여행자가 있을까
요즘 미국, 프랑스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타입슬립이 대세가 됐다. 그래서일까, 길이 경험한 1920년대 파리 여행은 한국 관객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따지고 보면 길처럼 행복한 타입슬립 경험자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의문사한 세자빈의 죽음과 둘러싼 실마리를 찾다가 2012년 서울에 덩그러니 떨어진 <옥탑방 왕세자> 속 이각 처럼 최첨단 현대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여 난감한 혼란기를 겪은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인현왕후 복위를 위해 1600년대 말기 조선시대 한양과 2012년 대한민국 서울을 목숨 걸고 넘나들 필요도 없다.(<인현왕후의 남자>) 혹시나 자신의 존재 때문에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닥터진>).
2012년을 살아가면서 운 좋게 1920년대 파리를 체험할 일생 일대의 기회를 잡은 길. 고요한 밤 시간대를 이용해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교류하며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사랑스러운 파리의 밤 그 자체를 즐기면 그만이다. 이보다 더 행복한 타입슬립은 없어 보인다.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 더블앤조이 픽쳐스
꿈에서나 그리던 우상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마음이 내내 편치만은 않다. 그 시대를 주름잡던 예술가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뮤즈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 분)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인생 최대의 낭만을 만끽하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그는 이미 약혼한 몸이기 때문이다.
아내와 정부를 동시에 사랑했다던 위대한 조각가 로댕과 달리 순수한 애정관(?)을 가지고 있는 길에게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달콤한 양다리는 상당히 버거워 보이기까지 하다.
우디 알렌식 결말 답습도 파리의 풍경 앞에선 수긍된다
그러나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를 한다'는 미국인이기 때문일까. 길은 그토록 꿈꾸었던 1920년대 파리의 밤을 신나게 즐기면서도 1920년대가 아닌 1890년대를 '벨 에포크'(좋은 시대)로 부르는 아드리아나와 슬기롭게 작별을 고하는 현명함을 발휘한다.
그리고 2012년 파리를 두고 1920년대 파리를 동경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깨달은 길은 시시각각으로 흘러가는 파리의 현재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인생을 개척하는 용기를 얻는다.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 더블앤조이 픽쳐스
영화는 이것으로 끝나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헤밍웨이·피카소도 반했던 1920년대 파리와 고갱과 드가가 살았던 '황금기' 1890년대 파리를 탐내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굳이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우디 알렌의 카메라를 통해 듬성듬성 비치는 2010년대 파리는 충분히 매혹적이다. "현실을 즐겨라"라는 우디 알렌 식의 결말 반복도 시간에 상관 없이 여전히 아름다운 파리 앞에서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금 당장이라도 파리의 밤으로 달려가고 싶으나, 아쉬운 대로 '마초' 헤밍웨이가 남긴 걸작을 남기며 여운을 달래야할 것 같은 <미드나잇 인 파리>. 한 여름 밤 낭만을 꿈꾸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움직이는 축제'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