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관은 늘었는데 왜 공연장 잡기도 힘들까

[주장] 공공 예술법인의 일차사명은 민간 예술단체 꽃 피우게 돕는 것

등록 2012.05.28 15:31수정 2012.05.2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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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예술단체나 기관들이 공연장을 독점하거나 선점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이들의 무료 혹은 저가 공연 때문에 민간예술단체들의 설 땅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경기도에서 공연 단체를 하는 한 분의 푸념이다. 그는 국가의 녹을 받는 공공예술단체들의 독과점 행태와 도덕적 해이는 훨씬 심각하다고 했다.


수년간의 국가지원에도 '경쟁력 있는 공연'은 보기 힘들다. 대신 국제교류라는 구실로 국가·자치단체 예산으로 해외공연을 간다. 치열한 공연 마케팅을 통해 자구책을 펼칠 이유도 없다. 물가상승분을 감안해 올라간 정부예산을 매년 받아들면 된다.

"삶의질 향상" 구실로 전문성 없는 문화관련 기관만 크게 늘려

한 예로 국립발레단은 일반회계만 연간 69억 원을 쓴다. 이중 39억은 공연하는 데 쓴다. 국가에서 돈을 받아 공연하지만 공연의 성패와 관계없이 월급이 나오니 '좋은 직장'이 아닐 수 없다. 이것도 부족해 단원 25명이 해외공연을 갈 2억7000만 원도 따로 지원받는다. 국립발레단이 경쟁력이 있다면 치열한 공연 마케팅을 통해 벌써 홀로서기를 했을 것이다. 공공 예술단체들이 주최하는 공연 객석에는 공무원들이 가득한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이들 공공 예술단체들은 나아가 공연장도 '선점'한다. 공연장 대부분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소유이기 때문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들은 공공 예술단체의 공연에 공연장을 먼저 할애한다. 나머지 빈 날짜를 채우기 위해 민간예술단체들은 경쟁해야만 한다.

지방으로 내려 가보자. 연간 수억에서 십수억까지 쓰는 공공 예술단체가 즐비하다. 도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시립 교향악단, 도립 합창단, 시립 합창단, 시립청소년오케스트라 등등. 빚에 허덕이는 웬만한 지방자치 단체에 교향악단이나 예술단 없는 곳이 거의 없다. 수원에는 도립오케스트라가 있고 시립교향악단이 따로 있다.


공공 예술단체 단원들은 입단할 때의 실력은 쟁쟁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국가의 '녹'을 먹기 시작하면 예술의 생명인 창조성은 쳐진다고 한다. 치열한 공연기획을 하지 않아도 되고, 공연 표가 팔리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가끔씩 소외계층을 찾아다니며 정해진 근무시간표를 채운다.

연간 단원 월급으로만 수억을 쓰는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최근 연주회를 보자. 겨우 중고등학교 협연자를 모집해 연주회를 펼쳤다. 그렇지만 마음만 먹으면 국제교류라는 취지로 예산을 받아 해외로 나설 수 있다. 외관상 국제초청을 받았다며 해외로 나가 공연을 하는 단체도 있다. 하지만 국가 예산을 들여 언젠가 상대를 초청해 줘야 한다.

공공 예술단체뿐만 아니라 이들 단체를 운영할 문화관련 공공기관도 크게 늘고 있다. '삶의 질' 운운하며 국가와 지자체가 국민세금을 들여 앞 다퉈 이러한 기관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시 문화재단' '○○문화원' 등등. 문화예술 발전과 예술인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세금 쓰는 기관들이 자리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일은 정작 문화경쟁력을 낮출 뿐이라는 게 일선 문화예술인들의 지적이다. 재단업무에는 전문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공모형태를 띠지만 문화 관련기관의 장은 대개가 대통령이나 자치단체장이 정치적으로 임명한다. 이들은 국민세금을 모아 '시혜를 베풀듯' 공모사업을 벌인다.

주객이 바뀌어 버렸다. 거의 모든 예술사업은 정부가 주도하고 여기에 예술인이 참여하는 형국이다. 예술인도 정부 돈을 따내지 못하면 구실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예술단체를 잘 운영하려면 뒤를 봐주는 의원 몇 사람 정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들 문화재단들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필요 없다. 공연 경쟁력이 없어도, 성과를 내지 않아도 한 번 생긴 기관은 그대로 흘러가면 된다. 월급 걱정도 없다. 사후관리나 모니터링 시스템도 거의 없다. '갑'의 입장에서 국가예산을 거머쥔다. 그러니 치열한 경쟁이나 부가가치를 창출할 필요도 없다. '갑'의 입장에서 재원만 말썽 나지 않게 분배하면 그만이다.

공공 예술단체의 일차사명은 민간 예술단체 발전을 돕는 것

상기 A씨의 경우, 삼겹살집 수익금으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실력 있는 많은 예술인들이 일자리 없이 노는 것이 안쓰러워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오케스트라 운영은 '고난의 길'이었다. 몇 번을 접을까 망설이던 차에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에 선정되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실망한 것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예술기관이나 단체들이 오히려 민간 예술단체들의 씨를 말린다는 사실이었다. 몇 개월의 피나는 연습을 통해 작품을 올려놓으면 공공 예술단체들은 옆에서 무료공연이나 저가공연으로 바람을 쏙 뺀다는 것이다. 또 공연장이란 공연장들은 공공 예술단체들이 독점하거나 선점해 버려 작품을 만들고도 공연장이 없어 공연을 못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신들이 좋은 날짜를 먼저 고른 뒤 나머지 빈 날짜가 있으면 민간 예술단체간 경합을 시킨다.

공공기관 소유의 각종 홍보및 광고공간도 이들 공공예술단체들이 독점한다. 막강한 국가예산과 우월한 지위를 이용, 대부분의 공공기관 홍보, 광고공간이 그들 차지다. 공공 예술단체들이 들어찬 한 광역단체 산하 공연장에는 민간예술단체들의 홍보는 엄두를 못낸다. 구민회관, 문화의 전당, 문화재단 등 국민이 주인인 이들 홍보공간에 민간 예술법인의 포스터나 전단은 공동사업이 아니면 아예 게시할 수 없다.

돈을 주고 빌린 공연장소에 공연을 알리기 위한 현수막을 부치지 못하게 하는 지방의 시민회관도 있다. 대신 이 시민회관에는 공공 예술단체의 홍보물만 그득하다. 공공 예술단체가 주최하는 공연에는 공무원의 '동원령'이 떨어져 객석을 채워주기도 한다. 하지만 민간 예술법인들이 공연하는 곳에는 공무원을 초청을 해도 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민간예술법인의 경우다. 이 단체는 지역의 세계문화유산을 활용해 국내외 관광객을 창출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공연을 개최했다. 악극 형식의 창작공연이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직결된 공연이어서 지자체의 관심을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연이 몇 개월 지속되고 있는데도 관할 지자체 리더들은 보이지 않았다. 문화관계자조차 공연을 보러오지 않았다고 한다. 몇 개월 뒤 다음 공연장을 찾지 못해 상설공연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공연장 협조를 위해 문화관계자를 찾았다는데 반응은 싸늘했다.

문화예산이나 기관들을 늘리며 자신들의 '밥그릇'은 챙겨도 정작 민간 예술단체를 도울 준비는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일 국가 산하 혹은 도립이나 시립 예술단체들이 이런 공연을 기획했다면 기관의 리더들과 관계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궁금해진다. 지역사회에 이바지했다며 훈장을 주지는 않았을까. 이 민간단체의 '관광객 개발-지역 경제활성화 공연'은 오히려 공공 예술단체들이 해야 할 일은 아닌가!

대한민국이 발전할수록 삶의 질은 더 큰 관심사가 될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질 향상을 구실로 문화관련 공공기관이나 단체가 크게 늘릴지 모른다. 문제는 조직의 개혁성, 사업의 투명성과 방향성이다. 지금처럼 '무개념'으로 국가 예산을 좀 먹는 공공 예술단체나 문화기관들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국민의 불행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낸 재원을 '떡 하나 나눠 주듯'해서는 결코 국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리 없다. 문화는 국가가 주도할 수도 없으며 창조적 꽃 피우는 것은 국민들이다.

국가나 공공예술단체도 민간예술단체와 경쟁해야 한다. 공공 공연장 사용도 민간 예술법인과 경쟁을 통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 산하단체라고 해서 정부 소유 공연장을 '자신의 것'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공공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도 이제 독립채산제를 검토해야 한다. 여론의 화살을 피하듯 일부는 재단으로 바꾸고 있다고 하지만 정부의 개념 없는 지원은 여전하다. 일정기간 국가 예산을 지원해 준 뒤 자립을 유도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다.

공공 예술단체들도 민간 예술법인처럼 치열한 마케팅과 전략을 통해 살아남지 못한다면 퇴출되어야 한다. 국가에 의존해 생존하는 방식으로는 예술의 생명인 진정한 창조력을 발휘할 수 없다. 공공 예술단체들이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차라리 그 예산으로 턱 없이 부족한 국민복지를 위해 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국가나 공공 예술단체, 문화재단의 기능은 민간 예술단체가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일차사명이다.
#문화예술 #예술단체 #공연장 #문화정책 #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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