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토가 두려워? 우리 마을엔 없어요

[신난다~ 매주 '놀토' ①] 성미산 공동체마을이 토요일을 사는 법

등록 2012.02.25 14:36수정 2012.02.2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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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부터 전국 초·중·고교가 주5일제 수업을 전면 실시한다. 매주 '노는 토요일(이하 놀토)'이 되는 것이다. 매주 '놀토'가 되면 어떨까. '놀토'를 맞이하게 될 학생들은 신나기만 할까, 학부모는 아이들과 놀토를 보내는 남다른 '스킬'을 가지고 있을까, 선생님은 과연 놀 수 있을까? 지역 공동체는 노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뭐 하는 거 없나?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궁금증을 그들의 목소리로 들어 보자. 매주 '놀토', 과연 누가 가장 좋을까.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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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없이 열린 만두 요리시간 별로 할 일 없던 놀토에 우리 아이들과 아랫집 아이들은 재미난 만두 요리시간을 즐겼다. 맛은 장담 못했다. ⓒ 한진숙


우리 집 아이들의 '놀토'는 사실상 금요일 밤부터다. 성미산 마을 공동주택(주민 공동체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마을)에 사는 우리집 아이들은 다른 집 아이들과 노느라 집에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놀토'가 있는 금요일 밤에는 10시 취침시간을 넘겨도 아이들은 느긋하게 놀 수 있다.

어른들도 금요일 밤이 홀가분하다. 지난 금요일만 해도 남편과 나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렸고, 느지막이 들어와 아이들을 불러 모아 재웠다. 다음날 토요일 우리 집에선 만두 만들기 요리시간이 열렸다.

남편이 만두피, 새우살, 오징어, 숙주나물, 두부를 사와 만두소를 준비하는 동안 전날의 술기운이 남아있던 나는 소파에 거의 누운 듯 앉아서 구경꾼 노릇만 했다. 만두 만들기에는 우리 집에 놀러 와 있던 아래층 딸내미까지 합세했다.

"피가 찢어졌어!"
"깜박하고 속을 안 넣었어!"
"와 국화꽃 모양이네"

열세 살짜리 큰 놈이 만든 만두는 제법 그럴 듯하다. 아래층 딸내미와 우리 집 둘째 녀석이 만든 것은 끓을 때 터지고 말았다. 여섯 살 된 막내의 만두는 속이 거의 없이 만두피만 붙여놓았다. 이건 수제비 먹는 셈 쳐야 한다.

아래층 아이는 집에 가서 끓여먹는다며 만두 한 접시를 갖고 내려갔다. 갖가지 모양의 만둣국을 제일 맛있게 먹은 사람은 빈둥빈둥 놀기 만한 나였다. 우리 집 '놀토'는 이런 식이다. 마을 행사에 참여하거나 뭘 만들어 먹거나, 동네 어디에 놀러 가거나, 다른 층에 놀러가거나…. 이도 저도 하기 싫을 때는 집에서 빈둥거린다. 우리 집에서 '놀토'는 꼭 무엇을 해야한다는 강박증을 갖지 않는 '쉴토'라서 홀가분하다.

첫째·둘째 1박 2일 자전거캠프 보내고 여유 부릴 흑심 품어


격주 토요일마다 노는 토요일과 안 노는 토요일이 구분되어 있어 노는 토요일을 줄여 '놀토'라는 말이 생겼다. 이와 함께 탄생한 신조어는 '놀토 증후군'이다. 놀토가 되면 아이들이 신나게 놀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부모의 강박증 때문에 생긴 말이다. 주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피곤하기만 한 아빠들이 많이 느끼는 증후군인가 싶다. 그런 아빠들은 놀토가 '골토(골병든 토요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들을 어떻게 할까 걱정돼 '놀토 증후군'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싶다.

같은 동네에 살지만 성미산 마을 주민이 아닌 사람도 이웃에 살고 있다. 토요일 하루 공부 안 하는 게 아쉽기만한 동네 분들도 있다. 그 분들 중에는 부족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보충 할 수 있는 날로 토요일을 지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뭐, 토요일을 보충수업하는 데 활용하는 것을 누가 뭐라 할까. 

그러나 성미산 마을 사람들에게서 '놀토증후군'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가족 혹은 이웃과 어울려 눈과 귀, 몸이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야 아이가 잘 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놀토증후군'은 애초에 없다. 그런 취지에 맞는 프로그램들이 마을에서 진행되고 그것을 접할 기회가 하루 더 생긴 것뿐이다. 굳이 매주 '놀토'인 아이들을 위해 '놀토' 대비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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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배움터 자전거타기 캠프 토요일 자전거타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제주도까지도 간다. 물론 자전거로 바다를 건너는 것은 아니고^^ ⓒ 성미산마을배움터


마을 곳곳에서 진행하는 성미산마을배움터는 문화예술교육을 위주로 한다. 토요일에 뭐하나 봤더니 손바느질과 자전거타기, 택견, 축구강좌가 개설됐다. 요즘 집에 있는 종이란 종이는 다 바느질로 이어 붙이고 있는 둘째와 같이 손바느질을 해도 좋겠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벗어나 멀리까지도 가는 자전거타기는 큰 녀석과 둘째 녀석이 다같이 관심을 갖고 있다.

좀 익숙해지면 1박 2일이나 2박 3일 열리는 자전거 캠프에 두 녀석을 보내 버릴 수도 있으니, 그동안 나는 게으르게 여유를 즐길 수 있으리란 흑심을 품기도 한다. 큰애와 막내는 동네에 자주 오시는 도예미술가 후두둑 선생님이 진행하는 흙놀이에 무조건 간다고 선포했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선생님의 작업장까지 가서 하루 동안 제대로 흙을 주무르는 시간이다. '어떤 거하고 놀지?' 프로그램 안내지들을 보면서 요즘 우리 아이들은 선택 놀이 중이다.


마을 행사로도 충분... 별 고민없이 주 5일제 수업시대 맞는다


공동주택의 안녕을 기원하는 지신밟기 장면 (작년 행사 자료사진) ⓒ 한진숙

'깨갱깨갱 깽깨갱갱' 
"엄마 온다, 온다"

지난 5일 토요일 오전 마을에에서는 지신밟기 행사가 열렸다. 성미산 마을에 장승을 새로 만들어 세우고, 풍물패가 마을 기관과 단체를 돌며 한해동안 무운을 빌어주었다. 이른 아침부터 주차장에 몰려나와 풍물소리를 기다리던 소행주 아이들은 꽹과리 소리 뒤에 만장을 앞 세운 풍물패가 도착하자 울긋불긋 띠를 두르고 재미난 화장을 한 풍물패 단원을 보면서 신이 났다.

소행주 입주민들은 전부 절을 하고 새해 소원을 빌었다. 아이들과 같이 '밀양아리랑'을 부르고 풍물패의 장단에 맞춰 한참동안 춤을 추며 놀았다. 토요일이라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둘째와 막내는 집 곳곳에 술을 부으며 이웃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엄마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흥겨운 가락을 울려대는 풍물패 중에 징을 치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아줌마가 어린이집 친구 엄마여서 놀라기도 했다. '놀토'가 아니어서 그날 학교에 갔던 큰 아이는 행사가 끝난 후 하교해 몹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2월 지신밟기를 시작으로 주말에는 마을 행사가 이어진다. 성미산나무심기, 축제, 운동회, 동아리축제, 단체 행사도 중간중간 끼어든다. 생협 생산지 탐방, 김장행사, 철새도래지견학, 대동계 야유회 등등 연령 구분 없는 행사다 보니 날짜는 '놀토'로 맞춰진다.

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대동계 행사로 올해 5월 중에는 금·토·일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이 결정되었다. 우리 집은 아직 거기까지 여력이 닿지 안아 여행은 먼 미래의 일이다. 크고 작은 주말 행사들이 많으니 별 고민 없이 주5일 수업시대를 맞게 된다.

마을커뮤니티 참여로 ... 매주 '놀토' 시대 해결

매주 '놀토'시대가 오면서 학원가만 들썩이고, 밥벌이에 골몰하느라 아이들을 집에 방치할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 부모들은 가슴이 미어진다는 시사전문가들의 우려를 많이 보았다. 집에 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어 걱정과 죄책감으로 잠 못 이루는 마을 부모는 마을 커뮤니티에 참여해 아이를 믿고 맡길만 한 주민을 알면 이외로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이런저런 커뮤니티에서 수다를 떨고, 활동하고, 뭔가를 같이 하면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오지랖'이라 여겨지는 남의 집 아이 훈계도 애정을 기반으로 하게 되므로 아이 부모도 노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성미산 마을이다. 마을 프로그램에 참여시키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지내게 하고 싶은 맞벌이 부모가 있다면 본인과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면 된다. 아이들을 어떻게 지내게 할 지, 궁리 끝에 비책이 마련된다. 이는 진리다.
#놀토 #성미산마을 #소통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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