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창립자 김성수의 '친일', 법원도 인정했다

[정운현의 역사 에세이 20] 건국훈장 취소하고 과천 대공원 동상도 철거해야

등록 2011.10.21 21:08수정 2011.10.2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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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인촌 탄생100주년을 맞아 과천 서울대공원에 세운 인촌 김성수 동상 ⓒ 자료사진



<동아일보> 창립자인 인촌 김성수(金性洙, 1891~1955)를 둘러싼 친일 논쟁이 법원 판결로 마침내 일단락됐습니다. 이번 판결은 비록 1심 판결이긴 합니다만, 새로 나올 만한 증거나 또 다툴 만한 사안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이후 상급심에서도 이와 유사한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조일영)는 20일 인촌의 증손자인 김재호(47) <동아일보> 사장 등이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친일규명위가 인촌에게 적용한 세 가지 친일 사유 가운데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인정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로써 인촌은 친일규명위에 이어 법원으로부터도 '친일파'로 공식 인정(?)된 셈입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규명위)는 '보고서'를 통해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의 조항 가운데 3개 항을 적용, 인촌을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결정하였습니다. 친일규명위가 밝힌 인촌의 구체적인 친일행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1937년부터 보성전문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중일전쟁 때 시국인식 철저를 위한 라디오 시국강좌와 시국순회 강연대 연사로 활동한 사실(제2조 13항)
- 1938년 이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발기인·이사·참사, 1941년 흥아보국단 준비위원,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감사, 1940년 이후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로 활동한 사실(제2조 17항)
-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친일잡지 <춘추> 등에 학병 권유 글을 기고한 사실(제2조 11항)

법원, "인촌,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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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 ⓒ 자료사진

친일규명위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인촌의 증손자인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은 지난해 1월 법원에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취소 청구소송'을 냈던 것이며, 이번에 그에 대해 법원이 근 2년 만에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유사 소송에 비해 판결이 늦어진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법원이 동아일보사의 눈치를 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재판부는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동원된 것일 뿐, 인촌이 친일 행위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는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인촌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의 발기인, 이사, 참사 및 평의원 등으로 활동하며 일제의 침략전쟁 승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을 강조하는 글들을 <매일신보>에 기고한 사실에 대해 "이는 일본제국주의의 강압으로 이름만 올린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 활동내역도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또 인촌이 1942년 '징병제도실시 감사축하대회'에 참석해 징병·학병을 찬양하고 선전·선동한 사실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징병제도실시 감사축하대회를 말하는 좌담회에 참석하고, <매일신보> 등에 징병·학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하는 다수의 글을 기고했다"며 "일부 글은 사진과 함께 게재되는 등 그 글들이 모두 허위·날조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원고 측은 친일규명위에서 근거자료로 사용한 <매일신보> 등의 자료가 과장·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인촌이 친일단체 위원으로 선정돼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와 황민화 운동을 적극 주도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며 인촌에게 특별법 제2조 13항을 적용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는 인촌이 '일제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이름이 올라 있지만 구체적인 친일행적을 확인하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유보적인 판결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법원이 인촌의 다른 친일행위마저 부인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무죄 판결이라도 받은 듯, <동아>의 아전인수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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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의 '학병권유' 칼럼 인촌 김성수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1943. 8. 5)에 기고한 학병 권유 관련 칼럼 ⓒ 매일신보

그런데 21일자 <동아일보>의 관련 보도를 보면 마치 법원이 인촌의 친일을 부인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법원은 인촌의 친일 사유 세 가지 가운데 중요한 사안 두 가지는 인정하였으며, 한 가지는 기각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동아일보>는 기각된 사안(제2조 13항)을 집중 부각시켜 마치 '무죄판결'이라도 받은 듯이 보도하였습니다.

정부가 인촌 김성수 선생(1891∼1955)의 일제강점기 행적 일부를 친일반민족 행위로 결정한 것은 잘못됐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조일영)는 20일 인촌기념회 등이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결정 취소 소송에서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해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에 인촌이 적극 협력했다고 결정한 부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친일반민족 행위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친일행위의 내용과 방법이 상당한 정도로 입증되어야 한다"며 "인촌이 청장년층을 훈련하고 황국 정신을 높인다는 흥아보국단의 준비위원 60인 가운데 1인으로 선정된 것은 맞지만 위 단체가 실제로 어떤 활동을 했으며 인촌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자료 없이 내려진 친일행위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또 라디오 강연 등을 한 것 등을 토대로 일본제국주의 내선융화 운동을 적극 주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이하 생략) - <"인촌 행적 구체 규명없이 '친일반민족' 결정은 위법"> 

지난해 말 국가보훈처는 친일전력이 확인된 장지연 등 독립유공 서훈자 19명에 대해 서훈취소 결정을 내렸으며, 금년 4월 국무회의에서 이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참고로 훈장 수여나 취소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어서 국무회의를 거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논란이 됐던 인물 가운데 인촌 김성수는 '재판이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서훈 취소 대상자에서 빠졌습니다(인촌은 '언론분야' 활동 공로로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은 바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판결로 국가보훈처는 인촌에 대해 조속히 서훈 취소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심판 비껴갈 수 없어... 동상도 철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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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지'에 내걸린 '친일 구호' 서울 광화문 네거리 소재 <동아일보> 사옥(현 일민미술관)에 '보도보국(報道報國)' '내선일체(內鮮一體)' 구호가 내걸려 있다. 촬영 시기는 1930년대 후반이나 1940년경으로 추정된다. ⓒ 자료사진

비단 서훈 취소만이 아닙니다. 인촌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법원의 판결까지 받은 만큼 부적절한 공간에 세워진 그의 동상 철거문제도 공식적으로 거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1991년 11월 인촌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인촌 김성수 선생 탄신 1백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채문식)가 과천 서울대공원 한마당광장에 세운 인촌 동상이 대표적인 경우랄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대공원에 친일전력자의 동상을 방치해 두는 것은 후세교육에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이 동상은 동아일보사가 주도해서 세운 것이기에 특히 그러하다고 하겠습니다.

인촌의 경우 동생 김연수와 함께 형제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된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연수는 각종 친일단체 간부는 물론 중추원참의, 만주국 명예총영사 등 일제가 준 공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김연수는 특별법 제2조 20개항 가운데 무려 5개항에 해당되는 거물 친일파였음에도 반민특위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김연수가 석방되던 날 그의 형인 인촌이 사주로 있던 <동아일보>는 호외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두 형제 모두 역사의 심판을 비켜가지는 못한 셈입니다.

일제 때 창간돼 아직까지 발행되고 있는 신문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둘 뿐입니다. 이들 두 신문은 일제 말기 모두 친일대열에 섰습니다. 두 신문은 추악한 '민족지 논쟁'을 벌여가면서까지 자사신문을 '민족지'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민족지는커녕 두 신문의 사주(방응모, 김성수)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돼 추악한 이름을 남겼을 뿐입니다.

현재 두 신문은 '권력집단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은커녕 그들 스스로가 권력집단이 돼버린 지 이미 오래 됐습니다. 이 역시 언젠가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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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언론사에서 근무했고, 친일청산 등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평소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갈망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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