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족' 장애인, 부산서 광주까지 걷는 이유

3급 장애인 김동구씨, "민간인 학살 배상 특별법 제정" 촉구 도보순례 나서

등록 2011.10.16 13:28수정 2011.10.17 13:32
0
원고료로 응원
한쪽 다리가 의족으로, 목발에 의지해 걷는 3급 장애인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배·보상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에서 광주까지 도보순례에 나섰다. 320km(800리) 거리를 열아흐레 동안 줄곧 걷는다.

김동구(59)씨가 주인공이다. 이씨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상임대표 김광호)가 마련한 "잠들지 못하는 뼈를 위한 도보순례"에 동참했다. 전국유족회 임원·회원 10여 명은 16일 부산을 출발해 오는 11월 3일 광주에 도착한다.

교통사고로 지체장애 3급인 김동구씨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가 16일부터 11월 3일까지 부산에서 광주까지 벌이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배보상 특별법 제정 촉구 도보순례"에 참여해 걷고 있다. ⓒ 윤성효


김씨는 1989년 교통사고로 왼쪽 무릎 아래를 잘라냈다. 의족을 붙여 생활하는데, 목발을 짚고 다닌다. 그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유족은 아니다"면서 "전국유족회에서 도보순례를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알게 되어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동구씨는 '광주민주항쟁 30주기'와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때 광주에서 김해 봉하마을까지 의족으로 걸었던 경험이 있다. 전국유족회는 이날 오전 부산 중구 40계단 앞에서 도보순례를 시작했는데, 김씨는 각오를 다지며 발언하기도 했다. 다음은 김씨가 "길을 나서는 마음"으로 한 발언 전문이다.

"저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한 쪽 다리를 의족에 의존하고 있지만 여러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소시민입니다. 이런 제가 유족도 아니면서 부산에서 광주까지 걷기로 결심한 것은 국가폭력 문제는 누가 하든 반드시 해결해야만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와 그 일당들이 부마항쟁을 탱크로 깔아뭉개려 했던 것도 국가폭력의 한 형태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학살하고도 은폐하고 지나간다면 앞으로도 유사시에 심각한 국가폭력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피해자들 중에 내 가족 핏줄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국가 폭력 문제는 피해자 유족만의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일이고, 바로 내 일이기고 한 것입니다.

한국전쟁 전후로, 100만 명 정도 국민이 학살당했고 그 이후로 현재까지도, 직접이든 간접이든 다양한 형태의 국가폭력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60년이 지나도록 청산해야 할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언론은 눈치만 보니 국민의 한 사람인 저라도 도보순례를 하며, 국가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빚을 갚지 않으면, 후세들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짐이 됩니다. 제가 도보순례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조금이라도 하기 위해서 입니다. 비록 몸은 좀 불편하지만, 이 땅에서 국가폭력을 추방하고,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데, 보탬이 된다면 앞으로도 걷고 또 걸을 것입니다. 구호 하나 외치겠습니다. '진실이 인정되고 정의가 바로 서는 날까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는 16일부터 11월 3일까지 부산에서 광주까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배보상 특별법 제정 촉구 도보순례"를 벌인다. 사진은 16일 오전 부산 중구 거리에서 도보순례 출발에 앞서 사진을 찍은 모습. ⓒ 윤성효


전국유족회 "특별법 제정 촉구" ... 11월 3일 광주 도착

'6.15 전쟁전후 100만 민간인 피학살자 유가족 대표'인 전국유족회 김광호 상임대표가 16일 오전 부산 중구 40계단 앞에서 "잠들지 못하는 뼈를 위한 도보순례"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윤성효

이날 김광호 상임대표는 "내 부모형제를 비롯한 피붙이들이 어떠한 영문도 모른 채 어디론가 끌려가 죽어갔다. 이 땅 산하 어느 곳도 이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피로 물들지 않은 곳이 없다. 참으로 무섭고도 긴 터널 같은 빨갱이의 덫은 그 후로도 계속 이어져 60여 년의 오랜 세월 동안 유가족들마저 숨죽이며 살아오게 가슴을 옥죄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유족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국가와 정부는 과거 6·25전쟁 전후 이 땅에서 억울하게 숨져간 100만 피학살자의 영령 앞에 사죄하고 그 진상을 과감없이 밝혀 다시는 이 땅에서 이같은 참혹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라"고 촉구했다.

국가와 정부에 대해, 이들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사항인 민간인·보도연맹·미군폭력 등을 비롯한 피학살 희생자에 대한 지체 없는 배·보상을 즉각 실시할 것"과 "이 시각까지도 두려움에 떨며 숨죽이며 살아가는 미신청자에 대한 신고기간의 연장과 아울러 지난 정부의 진실화해위에 준하는 기관을 즉각 재신설할 것"을 요구했다.

또 전국유족회는 "사법부의 권고사항인 특별법의 제정을 위해 국회와 신속히 논의하여 한으로 얼룩진 유가족의 아픔과 피학살자의 명예를 즉각 회복할 것"과 "과거사 특별법의 제정시 추모공원 건립, 과거사 재단 설립 등 유가족의 요구를 즉각 실시할 것"을 강조했다.

도보순례단은 부산-구포-김해(봉하마을)-창원-마산(경남대)-진주-하동-화개장터-구례역-곡성-창평-담양을 거쳐 광주까지 걷는다. 이들은 창원과 진주 등지에서 강연회 등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사진전도 마련한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선안나 성신여대 교수는 "잠들지 못하는 뼈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국가폭력 문제는 누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함께 해결하기 위해 유가족이 아니지만 나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는 16일부터 11월 3일까지 부산에서 광주까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배보상 특별법 제정 촉구 도보순례"를 벌인다. 사진은 16일 오전 부산 중구 거리에서 도보순례 출발에 앞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과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 윤성효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는 16일부터 11월 3일까지 부산에서 광주까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배보상 특별법 제정 촉구 도보순례"를 벌인다. 사진은 16일 오전 부산 중구 거리에서 사진전을 벌이는 모습. ⓒ 윤성효

#전국유족회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 #김동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2. 2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