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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미쳤어?"...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갔다

[호주 아웃백 560km레이스 ①] 9박10일 동안 오지를 달린다

11.07.17 10:40최종업데이트11.07.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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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백(Outback)'을 아시나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TV에서 다니엘 헤니가 선전을 때려주고 스테이크에 칼질을 할 때의 그 미묘한 느낌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야기하려는 건 그 아웃백이 아니라 호주의 중심이자 오지인 진짜 아웃백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내 자신이 살아 남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동안 10년을 달리면서 전 세계 별별 곳을 다 가봤지만 이번 대회처럼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대회도 처음이다. 다른 대회는 참가해보면 '다음에 또 올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번 대회는 정말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미친' 대회인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호주 아웃백 560km 레이스'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호주 아웃백을 달리는 참가자들 모습 ⓒ 유지성


560킬로미터 '미친' 레이스를 시작하다

호주 아웃백 560km 레이스는 서바이벌 오지 레이스 중 세계에서 가장 거리가 긴 대회이다. 말 그대로 자기가 밥해 먹고 장비를 짊어지고 드넓은 호주 아웃백을 5월 10일부터 19일까지 9박 10일간 누벼야 하는 생존 게임인 것이다.

'오지레이스'란?
주로 사막, 정글, 남극, 북극 등과 같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거친 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레이스를 말한다. 대회 방식은 'Non-Stop Race'와 'Stage Race'가 있다. 주최 측에서 식량, 장비 일체를 지원해 주는 경우도 있고, 대회 기간 동안의 식량과 장비를 자신이 직접 배낭에 메고 가야 하는 서바이벌 자급자족 레이스도 있다.

서바이벌 레이스의 경우 보통 하루에 9~10리터의 제한된 물만 공급받고 별도의 개인 지원팀이 없다. 장비는 필수 장비, 선택 장비로 나뉘고 독도법의 숙지와 신체검사를 요구한다. 또한 외부의 도움을 받는걸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적발시 탈락의 가혹한 조치가 따른다. 통상적으로 논스탑 대회는 3~4일, 스테이지 레이스는 일주일 이상 달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선 필자 포함 4명(김경수, 유지성, 안병용, 김혜진)의 오지레이서들이 함께 참가했으며 전 세계에서 총 23명의 진짜 '크레이지'들이 모였다. 인원이 적은 이유는 일단 올해가 첫 번째 대회이고 과연 이 대회가 무사히 치뤄질 수 있는지 많은 이들이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회가 차근차근 진행이 되고 참가자 명단이 나오고 진짜 대회가 열리자 전 세계에서 지켜보던 수많은 이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인터넷과 별개인 세상에서 우리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우리들의 소식을 알아보려는 사람들의 과다 접속으로 인해 대회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출발은 엘리스스프링스에서 했다. 지도를 보니 우리들이 달려서 도착하는 마지막 골인 지점인 울루루(에어즈락)가 호주대륙의 가장 중심에 있고 엘리스스프링스는 동북쪽에 위치해있었다. 자동차로 포장된 도로를 100km 이상의 속력으로 냅다 달려도 5시간 이상이 걸린다는데, 우리는 산 넘고 물 건너 사막 건너 그곳에 가려 하니 현지에서 만난 호주 사람들이 "당신들 미쳤어?"라며 기겁을 한다. 하지만 어떡하나, 이미 일은 벌어졌는데.

시드니 공항에서 갈아탄 국내선 비행기. ⓒ 유지성


영어는 영어인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네

호주 정부 관광청에서 협찬해준 직항기로 인천공항에서 시드니까지 10시간 정도 날아가고, 시드니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또 다시 엘리스스프링스까지 3시간 정도 날아갔다. 시드니를 벗어나자마자 발밑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만이 보인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기에 '이것이 진짜 호주대륙이구나!'를 연신 내뱉게 만들었다.

엘리스스프링스에 도착해선 처음에 잘못 온 줄 알았다. 특별히 숙소를 예약한 것도 아니기에 뭔가 정보를 찾아야 했지만 공항에선 짐 찾고 뭐하는 사이 순식간에 사람들이 빠져나가니 직원들도 안 보이고 순간 '급'당황했다. 특히나 동네 자체가 높은 건물은 하나도 없고 비수기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사람들도 얼마 없고 해서 누구에게 말을 걸고 물어봐야 할지 난감했다.

그나마 공항 로비에 안내책자가 있기에 대충 동네 구조를 파악하고 셔틀버스를 찾아보았다. 공항 밖에 셔틀버스 같아 보이는 중형 버스와 사람들이 있기에 몇 마디 물어봤더니 도통 못 알아듣는 악센트의 영어가 난무한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 때는 앞뒤 문장 다 자르고 '하우 머치(얼마입니까)?'만을 줄기차게 떠든다. 다행히 돈 이야기를 하니 소통이 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호주 영어에 길들여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엘리스스프링스 전경. ⓒ 유지성


한국 사람은 없지만 한국 물건은 잘 팔리는 신기한 동네

엘리스스프링스는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좀 많이 부족한 작은 시골 마을이다. 토드몰이라는 상가를 중심으로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다운타운. 그 인근으로 관공서, 슈퍼, 호텔 등 여러 시설과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그래 봐야 워낙 작은 동네다 보니 끝에서 끝까지 30분 정도면 한 바퀴 돌 수 있다.

하지만 상점은 생각보다 크고 이것저것 물건들이 많았다. 커다란 슈퍼마켓에는 한국산 과자, 라면 등의 식품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한국 식품들이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엘리스스프링스 다운타운인 토드몰 입구. ⓒ 유지성


엘리스스프링스에서 만난 한국 식품들. ⓒ 유지성


숙박은 유스호스텔(YHA)을 이용했는데 회원은 10%의 할인이 적용됐다. 장기간 호주 여행을 떠난다면 미리 회원 가입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작은 마을의 여행자 숙소라해서 시설이 결코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깨끗한 숙소와 수영장, 독립 화장실과 샤워장, 넓다란 주방과 식당은 파티도 가능할 정도로 모든 시설이 완벽했다.

한국에도 이렇게 제대로 된 저렴한 여행자 숙소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어차피 장기간에 걸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배낭족들이 많으니 국가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라도 여행자 숙소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여행자 숙소와 모텔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깔끔한 여행자 숙소의 모습. ⓒ 유지성


참가자가 적은 첫 대회, '전설'이 될 기회다

호주 아웃백 레이스는 내 인생에 있어 17번째 오지레이스다. 지금까지 마라톤, 트레일, 오지레이스를 100번 이상 참가해봤지만 이번에는 뭔가 급이 다른 진짜 제대로 된 센 놈을 만났다. 기존 대회가 250km를 기준으로 열렸지만 이번에는 그 두 배 이상인 560km다.

그것도 대회 이틀간은 산을 달리는 전형적인 트레일 레이스이며, 이후 코스는 매일 10시간이라는 제한시간 안에 60km 이상을 달려야 하는 무지막지함으로 변한다, 더욱이 마지막 구간인 제한시간 32시간의 130km 롱데이는 출발 전부터 사람을 심란함과 의욕상실로 몰아버렸다.

모든 참가자들은 대회전 엘리스스프링스 인근의 캠핑장에서 2박을 하며 장비검사와 현지적응을 마쳤다. 장비검사 이외에 건강검진이 상당히 까다로웠는데 아무래도 초장거리 대회라 그런 것 같았다. 우리는 대회 전에 한국에서 기본적인 건강검진외 심전도 검사까지 받아야 했으며 의사소견서, 보험증까지 제출을 했고 현장에서 다시금 확인을 받았다.

완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그런 면에서 안전에 대한 검증이 보증되지 않은 첫 번째 대회는 참가자가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조금 더 불편하고 약간의 위험을 감수한다면 첫 번째 대회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다. 어찌됐던 첫 대회 참가자들은 이 세계에서 전설로 남기 때문이다.

첫번째 캠프로 가는 모습. ⓒ 유지성



첫 번째 캠프 모습. 텐트는 2인용이었다. ⓒ 유지성



장비 검사 후 받은 정식 대회 배번호. ⓒ 유지성


다시 만난 전 세계의 '사막의 동지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 중 스페인의 살바도르, 아나, 프란시스코, 프랑스의 카림, 뉴질랜드의 조, 호주의 피터 등 여럿은 이전에 한 번은 함께 달렸던 '사막의 동지들'이다. 그중 살바도르는 강력한 우승 후보자로 직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지만 전문적인 선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절친이자 '이 세계' 초창기 멤버인 덴마크의 야콥은 한국음식 애호가이기도 하다. 야콥과는 이전부터 고비, 사하라, 나미비아, 남극, 아타카마 등의 대회에서 함께 달렸는데 준비하는 장비와 식량을 보면 너무나 첨단이라 부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다.

한국 참가자 중 김경수 형님은 나와 아주 절친 관계다. 2003년부터 함께 대회를 참가했는데 사막레이스에서 시각장애인 도우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표본을 만든 사람이다.

2005년 고비사막에서 시각장애인 도우미를 했을 때였다.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도우미라는 역할은 그냥 자원봉사자 정도로만 인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스가 너무나 위험하고 험하다보니 대회가 진행될수록 우리가 몰랐던 도우미의 중요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수 형님은 도우미는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림자'의 역할을 몸소 보여주고 실천했다. 그의 혼신을 다한 살신성인의 모습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모든 참가자들의 관심이 '시각장애인의 도전'이 아니라 '과연 도우미가 어떻게 그 어려운 코스를 헤치며 시각장애인을 인도해서 완주를 시킬 수 있을까?'로 모아졌다.

보통 일반적으로 장애인이 어려운 도전을 할 경우 그 장애인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2005년 고비사막 레이스에서는 그 공식이 깨지고 도우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인식하는 전환점이 됐다. 대회가 끝나고 시상식장에서 그에게 쏟아졌던 참가자들의 찬사와 기립 박수는 영원한 감동으로 아직도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김경수씨가 시각장애인과 함께 모래언덕을 넘고 있다. ⓒ 유지성


덧붙이는 글 월간 <아웃도어>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호주 아웃백 엘리스스프링스 울룰루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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