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귀성길, 아들아 '도둑'을 챙겨줘

[서평] 명절 연휴에 청소년이 읽으면 좋을 책 3권

등록 2010.09.20 18:40수정 2010.09.2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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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읽지도 못할 거면서 번거롭게 책은 왜 가져가는가?"라고 하지만 명절이나 휴가, 집안의 잔치 등으로 시댁이나 친정 등에 갈 때면 그래도 책 몇 권을 꼭 챙겨가곤 한다. 사실 남편의 말처럼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그래도 책을 언제나 챙기는 이유는 결혼 전부터의 습관인지라 책 한 권 없이 나서는 길이 허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몇 년째 한두 권이 아닌 대여섯 권 정도를 챙겨가곤 한다. 4년 전, 당시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조카가 큰엄마가 읽고 있던, 즉 내 책에 관심을 두고 빌려줬으면 하고 바랄 때부터. 엄마가 읽는 책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우리 아이들마저 큰엄마의 책에 관심을 보이는 사촌 때문에 관심을 보이고 급기야 먼저 읽기 순번을 정한 그 명절 이후부터.


다른 해보다 추석 연휴가 길다. 추석이 끝나자마자 있는 중간고사가 버티고 있지만, 길고 긴 연휴 중 하루쯤은 아이에게 책을 읽게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청소년기를 더듬어 생각해 보건대, 여러 친척들이 왔다 간 부산한 흔적을 정리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기에 책읽기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청소년인 우리아이들과 조카들에게 올 추석에는 어떤 책을 권할까?

<열아홉의 프리킥>|저자:줄리 A.스완슨|뜨인돌|2010.8.5|값:8500

"모든 게 내 뜻대로 되고 있어. 난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 갔고 지역대표팀에 뽑혔어. 그리고 한 발짝 더 가면 진짜 국가대표팀도 되고, 월드컵, 올림픽에도 나가게 돼. 그렇게 난 집으로 돌아왔어. 연처럼 하늘 높이 날면서 돌아와서는 우리 아빠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야. 살 수 있는 날이 앞으로 석 달 남았대. 아빠 6월에서야 이 얘길 나한테 한 거야. 국가대표 캠프는 8월인데. 넌 내가 아빠 생애의 마지막 몇 주를 같이 안 보낼 것 같니? 축구에 마음을 더 쓸 거라고 생각해?"-<열아홉의 프리킥>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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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의 프리킥> 겉그림 ⓒ 뜨인돌

화자인 나 '레아'는 여자 축구선수다. 난 국가대표 선발후보인 지역대표로 뽑히게 된다. 누구보다 아빠가 바라던 일이다. 하지만 2시간을 달려 온 아빠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한다. 췌장암에 걸렸다는 것, 간까지 전이된 상태라 3개월도 못 살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것, 일체의 화학적인 치료는 하지 않고 생애 마지막 순간들을 가족과 보낼 거라고.
와중에도 아빠는 국가대표 선수가 될 것을 독려한다. 위로 남매가 있으나 막내딸인 레아만 자신의 운동기질을 물려받은 터라 레아는 그만큼 특별했던 것. 또한 레아의 꿈이 곧 자신의 꿈인지라 지난 몇 년 간 레아를 늘 훈련장소로 데려다 주곤 했다. 이처럼 아빠의 레아에 대한 사랑은 특별했고 레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아빠가 곧 죽는다는 것이다.

'아빠를 잃고 싶지 않아. 축구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근데 나…대체 왜. 무얼 위해서 이렇게 앞만 보고 살았던 거지?'


세계최고의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당찬 소녀 레아는 몇 년 동안 자신과 아빠가 그토록 바랬던 국가대표 선발이 결정되는 합숙훈련과 아버지의 죽음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만 하는지 혼란스럽다. 자신이 집으로 돌아온 직후부터 아빠의 건강은 더욱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어서 레아의 고민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무엇을 선택할까?

오직 축구밖에 몰랐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여겼던 소녀는  아픈 아빠를 통해 비로소 삶의 다양한 풍경들을 바라보고 미처 몰랐던 가족 간의 사랑과 친구의 우정, '지금 당장'이 아닌 더 많은 시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레아가 선택한 삶의 멋진 프리킥은?

<열아홉의 프리킥>은 국제독서협회와 청소년 도서관 연합이 각각 '주목할 만한 청소년 책'과 '읽어볼 만한 청소년 책'으로 선정했다. 사실 이 책의 스토리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이런 명예를 얻은 것은 세상과 삶을 전혀 모르던 한 소녀가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아빠의 죽음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알아가는 그 과정이 감동스럽기 때문일 것 같다. 스토리보다는 과정이 감동스런 청소년 문고다.

<내이름은 도둑>|제리 스피넬리|우리교육|2009.12.9|값:9500원

나는 달리고 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첫 모습이다. 나는 달린다. 뭔가를 가슴께에 꽉 안고 있다. 물론, 그건 빵이다. 누군가 나를 쫓아 온다. "거기 서! 도둑이야!" 난 달린다. 사람들. 부딪히는 어깨. 짓밟히는 구두. "도둑 잡아라!"

(중략)"근데 넌 누구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다시 말했다. "난 유리, 네 이름은?" 난 내 이름을 알려 주었다. "거기서도둑"-<내 이름은 도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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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도둑>겉그림 ⓒ 우리교육

<내 이름은 도둑>(우리교육 펴냄)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점령한 폴란드 바르샤바. 세상도 삶도 사람도 심지어는 자신의 이름이나 나이도, 가족을 한꺼번에 몽땅 잃은 슬픔조차도 전혀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눈을 통해 전쟁의 황폐함과 나치의 잔인함을 들려줌으로써 우리 삶의 정체성과 인간 본성을 묻는 청소년 문고다.
너무나 어린 까닭에 이름과 나이는 물론 그 무엇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는 주인공인 나에게 누가 이름을 물으면 "거기서도둑"이라고 대답한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가죽장화(나치)의 폭격으로 형제들과 부모를 잃은 그 얼마 후부터 살기위해 본능적으로 도둑질을 했고, 그때마다 "거기서도둑!"이란 말을 셀 수 없을 만큼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아이들과 나치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잠을 자며 날마다,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훔친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나치의 유대인 박해는 잔혹해진다. 바르샤바 내 모든 유대인들은 게토(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에 갇히게 되고, 유대인들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서서히 죽어간다. 그리하여 게토는 시체들로 넘쳐난다.

와중에 나는 우연히 알게 된 유대인 제니나의 가족에게 가족 간의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코르착 박사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하여 제니나의 가족과 코르착 박사의 고아들을 위해 매일 밤마다 생명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게토의 장벽을 넘어 먹을 것들을 계속 훔친다.

-파리가 윙윙 노래를 불렀다. 날은 따뜻하고 시체는 싸늘했다. 파리는 윙윙대며 아이들의 눈동자와 부스럼을 핥았다. 가져갈 옷도 신발도 없었기에 신문지 아래 시체를 건드리는 사람도 없었다. 단지 누더기뿐이었다. 매일 시체 실은 마차가 제시아 거리 입구의 공동묘지로 향했다. 도둑질을 한 사람들이 목에 표지판을 걸고 시든 과일처럼 가로등 기둥에 매달렸다.-책속에서

도둑질이 끊이지 않자 나치는 짭새까지 풀어 도둑을 잡고자 혈안이 되고 유대인들을 더욱 옥죈다. 폐허에서 함께 지내는 소년 올렉이 '나는 도둑질을 했습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건 채 가로등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임을 당하기도 하지만, 도둑이라 불리는 아이에게는 이런 죽음조차 실감나지 않는다.

저자 '제리 스피넬리'는
저자 '제리 스피넬리'는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작가란다. 또한 이 시대 가장 재능 있는 이야기꾼 중 한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즐겨 읽는 성장소설을 쓰는 작가로도 유명하단다. 이처럼 입담 좋은 작가의 작품이라 그럴까. <내 이름은 도둑>은 단숨에 읽힌다. 쉽게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 같다.

저자는 대표작 <하늘을 달리는 아이>(다른 출판사. 2007.8)로는 뉴베리상과 글로브 혼북상을 동시에 수상, 또 다른 대표작인 <스타걸>로는 뉴베리 아너상을 수상했다. 외에 <링어, 목을 비트는 아이> <문제아> <스타걸> <돌격대장 쿠간> <블루 카드>가 국내 소개되었는데, 한 출판사에 의하면 한 작가의 작품 거의 전부를, 한 작가의 두작품 이상이 이처럼 소개되는 경우는 좀 드문 편이라고.
나치의 잔인함에 대해 새삼 말할 필요가 있으랴. 주인공인 미샤, 도둑이라 불리는 나는 지나치다,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순진하다. 혹자들이 아이에게 멍청이, 얼빠진 녀석이라 부를 정도라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동안은 슬며시 웃곤 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내 안에 슬픔이 고이고 있었다. 쉽게 털어낼 수 없는 그런. 결국은 소름이 돋았다.
작가는 왜 하필 이처럼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어린 아이를 통해 전쟁의 황폐함과 나치의 잔인함을, 잔혹한 박해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유대인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왜 하필 도둑질을 하고 살아가는 아이를 통해서일까?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처럼 순진한 영혼의 주인공을 통해 우리의 참모습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양철북|2010.08.13 |값:14,000원

사건이 터졌다 하면 코리건 사람들은 즉각 재스퍼 존스의 이름부터 들먹인다. 자기 아이가 잘못한 게 분명해도 일단 이렇게 묻고 본다. "재스퍼 존스랑 같이 있었던 거니?" 이 질문을 받으면 아이들은 거짓 대답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재스퍼 존스를 대면 자신들의 죄는 크게 사해지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착한 아이들은 악마의 꾐에 넘어가 잠시 길을 잃었던 것뿐이다. 사건이 그렇게 종결되면서 남는 교훈은 간단명료하다. 재스퍼 존스와 놀지 마라.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중에서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우리교육 펴냄)의 배경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오스트레일리아 코리건이라는 탄광 마을이다.

어느 날 밤, 모범생인데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동급생들에게 왕따 당하는 나 찰리에게 재스퍼 존스가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그는 나를 데리고 문제의 숲 속으로 간다. 자신만의 은밀한 아지트가 있는 숲속으로. 그런데 거기에는 동급생이자 주지사의 딸인 로라 워셔트가 목매달아 죽어 있다. 잠옷차림에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어쨌거나 시체가 발견되면 재스퍼 존스가 살해범으로 몰릴 판이다. 자신도 범인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 찰리는 재스퍼 존스를 도와 시체를 유기하게 된다. 이렇게 공부밖에 모르던 찰리는 엄청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이 일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코리건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지어 낸 재스퍼 존스에 대한 편견도 사라진다.

둘은 살인범을 찾아 한 발 한 발 걸어간다. 로라 워셔트를 죽인 범인은? 재스퍼 존스의 추측처럼 정말 미치광이 노인 잭 라이어넬이 범인? 잭 라이어넬로부터 범인이라는 자백을 받아내려던 소년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진실과 맞닥뜨리고야 마는데….

소설 속 주인공들과 함께 범인을 쫓다가 마주친 뜻밖의 반전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읽던 책을 던져버리고 펑펑 울고 싶을 정도로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일어나 우리들을 분노하게 하는 성폭행. 그것도 명예로 감쪽같이 포장한.

"이 책은 '왕따'들에게 세상의 부조리에 대면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소설이면서, 낯선 것과 어울려 살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자신을 한 번도 타자화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비극도 아울러 드러낸다. 이 소설과 <앵무새 죽이기>의 근본적인 공통점은, 진실과 정의를 밝히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에 바쳐진 작품이라는 것이다"-소설가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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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 문제다> 겉그림 ⓒ 양철북

무엇이 사람들의 참 모습일까? 사람의 본성, 그 진실은 무엇일까? 잘난 사람은 너무 잘나서 밉고 못난 사람은 또 못나서 밉다? 이 소설에는 재스퍼 존스와 찰리 외에 또 다른 왕따들과 그로 인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전쟁을 피해 베트남에서 온 제프리 루와 그의 가족도 그 중 하나.
베트남 전쟁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 한국, 태국에 이어 4번째 규모인 8천 명을 파병해 520명의 전사자와 2400명의 부상자를 낸 나라다. 당시의 이런 상황이 소설의 간접배경이다. 전쟁이 터지자 베트남에서 도망 나온 제프리 루와 그의 가족은 마을과 학교에서 '눈이 째진 아이', '공산당'으로 불리며 야만인 취급을 당한다. 시도 때도 없이 무차별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외에도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사랑에 이끌려 아버지와 결혼해 탄광촌에 살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버리는 찰리의 어머니, 위급한 상황의 며느리를 병원으로 데려가던 중 며느리가 죽는 바람에 평생 세상과 등지고 살아가는 괴팍한 노인 잭 라이어넬 등이 로라 워셔트의 죽음과 치밀하게 맞물리면서 소설은 훨씬 의미 있고 읽는 맛이 더욱 맛깔스러워지는 것 같다.

코리건 사람들에게 원주민과의 혼혈아라는 이유와 베트남계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의 왕따인 재스퍼 존스와 제프리 루, 그리고 공부를 잘 한다는 이유로 왕따 당하는 찰리 이 세 소년의 눈을 통해 사회집단이 공공연하게 만들어 낸 편견과 잘난 사람들의 위선 그 실체와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참고로 덧붙이면 줄거리도 등장인물도 썩 매력 있는 이 소설은 2009년에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전 세계 13개국에서 출간, 회자되고 있단다. 2009년 오스트레일리아 인디어워드 선정 '올해의 책'이기도.

열아홉의 프리킥

줄리 A. 스완슨 지음, 모난돌 옮김,
뜨인돌, 2010


#청소년(1318) #성장소설 #유대인(게토) #재스퍼 존스 #추석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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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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