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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공포를 키울 뿐... 그저 부딪쳐라

[추천공포영화] 여름 시원하게 보낼 심리 공포영화의 진수 <미스트>

10.08.17 14:49최종업데이트10.08.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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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스트>의 한 장면 ⓒ 청어람&엠엔에프씨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본 일출 직전의 칠흑 같은 어둠은 도시 생활에 익숙한 나에게 공포였다. 곧 태양이 떠오를 것이란 걸 알았지만, 당장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어둠과 마주친다는 것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은, 비록 나보다 더 겁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옆에 함께 있다는 것.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 <미스트>는 짙은 안개로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함께 고립된 사람들의 심리적인 변화를 그리고 있다. 안개 속에는 정체불명의 괴물이 버티고 서서 불안감을 조성한다.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타인밖에 없다. 함께 뭉치거나 혹은 적이 되거나.

 

작은 마을에 큰 태풍이 몰아치고, 아버지와 아들은 비상식량을 사러 마트에 들르게 된다. 때마침 거대한 안개가 발생하여 사람들은 마트 안에 고립된다. 감독이 영화의 무대를 마트 안으로 설정한 것은, 인간의 1차적인 욕구인 식욕이 충족되는 상황에서 고차원적인 심리변화에 초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기가 고조될수록 어떤 태도를 보일까?

 

감독의 본격적인 심리학 장치는 5살, 8살짜리 아이들을 집에 두고 온 애기 엄마가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며 자신을 집까지 바래다줄 사람이 없느냐고 묻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밖은 안개가 가득 차 있어 앞을 분간하기 힘들며, 생명을 보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한명 한명 클로즈업하면서 각자의 불편한 심정을 읽어낸다. 사람들은 방관자 처지에서 부실한 말만 늘어놓는다. 이 장면에서 애기 엄마는 관객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인간이 가진 나약함에서 나오는 방관자 이론

 

영화 <미스트>의 한 장면 ⓒ 청어람&엠엔에프씨

초반부터 감독은 관객이 인간의 나약함에 직면하도록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의 태도는 심리학에서 방관자 이론에 해당하는데 집단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서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고 "다들 너무 냉정하군요"라며 원망어린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마트를 빠져 나가는 애기 엄마. 그녀의 뒷모습에 죄책감과 더불어, 불편한 상황을 모면한 것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트 안에 고립되어 있다면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모두 함께 협력하여 대책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카모디라는 광신도가 사람들을 선동하게 되면서 그녀를 따르는 무리와 그 외 사람들의 대치 구도가 성립된다. 종교에 광적으로 몰입한 카모디는 지금 처한 현실이 신이 인간에게 단죄를 내린 것이라며 사람들을 선동한다. 나중에는 자신의 뜻이 곧 신의 뜻이라며 인간 제물을 요구하는 사태까지 간다.

 

카모디는 편집형 정신분열증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 안개 속에 괴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극도의 공포스러운 순간, 그녀는 타인과 함께 위기에 대처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후퇴한다. 타인과의 접촉 상실은 자신의 생각이나 공상을 외부적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카모디는 자신이 신과 직접 통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자기의 내적 언어를 외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모디의 추종자들은 학습된 무기력과 우울증을 보여준다. 자신이 어떤 주도적인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일반화된 무력감이다. 그들은 처음엔 카모디를 미친 여자라고 손가락질 했으나 점차 불안감이 고조되자 절대 권력을 표방하는 사람에게 복종하며 위안을 얻는다. 결국엔 인간 제물이라는 터무니없는 요구에도 복종하게 된다.

 

그나마 영웅적인 인물 데이빗의 판단 착오

 

영화 <미스트>의 한 장면 ⓒ 청어람&엠엔에프씨

주인공 데이빗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영웅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이라 관객들은 데이빗이 위기를 타개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감독은 관객의 기대를 여차 없이 꺾어버린다. 데이빗의 판단 착오는 그와 함께 탈출을 감행하던 사람들을 모조리 죽게 만든다. 데이빗은 영화에서 또 다른 괴물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심지어 괴물로부터 자신을 끝까지 지켜달라는 어린 아들을 제 손으로 직접 안락사시키는 상황을 초래한다.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린 아들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이제껏 주인공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기대들을 깨트리게 된다.

 

데이빗과 함께 탈출을 감행한 사람들이 최후에 선택한 것은 자살이다. 왜 단 한발의 총알이 부족했을까? 감독은 공포의 실체를 확인시켜 주고 싶었을 것이다. 눈앞의 보이지 않는 공포에서 도망치지 말라. 통제 불가능한 순간이 와도 공포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피하지 말라. 신이 아닌 이상 다음 장면은 어떤 그림일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으므로.

 

사랑하는 아들을 제 손으로 보내고 나서야 데이빗이 확인한 공포의 실체는 허상이었다. 무시무시한 괴물의 소리라 여겼던 소리는, 괴물을 처단하기 위해서 투입된 탱크가 내는 소리였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오열하는 데이빗 앞으로 한 여인이 두 아이들을 양팔에 끌어안은 채 탱크를 타고 지나간다.

 

그 여인은 영화 초반에 아이들을 지키려 혼자 떠났던 애기 엄마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애기 엄마가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애기 엄마는 공포에 정면으로 맞서 아이들을 지킬 수 있었고, 데이빗은 공포의 실체를 대면하기 직전에 아들을 제 손으로 안락사시켰다.

 

불안이 만들어낸 공포의 허상이 모두를 허무하게 한다

 

영화 <미스트>의 한 장면 ⓒ 청어람&엠엔에프씨

'불안은 영혼을 잠식 한다'고 했다. 재앙 앞에서 인간은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극단적인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앙은 곧 지나가리라고 말한다. 자신을 선택받은 자라 여기며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던 카모디는 영화 중반 내내 긴장감을 조성하다가 총알 한 방에 맥없이 쓰러져 버린다. 도무지 처단할 수 없을 것 같던 괴물도 결국엔 탱크에 죽임을 당한다. 감독은 영화에서 긴장을 유발하던 요소들을 모두 제거해버림으로써 우리가 가졌던 공포의 무상함을 일깨운다.

 

<미스트>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래 안고 있는 보편적인 두려움을 상기시킴으로써 내적인 불안을 자극한다. 통제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대부분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고, 가중되어가는 불안 속에서 경미한 정신이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극악무도한 살인자가 친절한 이웃 아저씨의 탈을 쓰고 있으며,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불경기로 취업 대기자 수는 점점 늘어난다. 이 모든 복잡한 현상들을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거대한 안개로 묶어서 표현했다.

 

정신분석학면에서 프로이드는 공포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는데, 긴장의 증가는 불쾌감을 느끼게 하고 긴장의 방출은 즐거움을 가져온다고 했다. 공포영화는 긴장을 증가시키면서 두려움과 공포를 누적시키고 결정적 순간에 긴장의 방출을 유도한다. 그때 쌓인 긴장이 방출되면서 사람들은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미스트>는 카타르시스보다는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 영화다. 거대한 세발 낙지를 닮은 괴물만 제외하면, 영화 속 인물들은 일상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 <미스트> 개봉 2008.01.10

- 이 기사는 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8.17 14:49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미스트> 개봉 2008.01.10

- 이 기사는 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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