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1년치 '놀토' 계획을 다 세우라고?

놀토 계획서 만들라며 가정통신문 보낸 학교, 아쉽다

등록 2010.03.11 10:07수정 2010.03.1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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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중학교부터 자취를 했다. 금요일만 되면 내일은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자취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그 때 가졌던 생각 중 하나가 토요일도 일요일처럼 공부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주 5일제 수입을 적극 찬성했던 사람이다. 교육 정책 문제를 떠나 그냥 좋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놀토'(쉬는 토요일)만 되면 무엇을 해야 될지 고민이었다. 처음에는 박물관을 견학하거나 가족 여행을 갔다. 아이들이 요리를 좋아해 요리실습도 했다. 가장 많이 간 곳은 할머니 댁이었다.

문제는 토요일 학습계획서를 짜고, 활동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꼭 이런 것을 짜고, 보고서를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학교에 제출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도 힘들어했다. 제목은 '즐거운 토요학습 체험 활동'이지만 아이들과 부모들에게는 즐거운 토요일이 아니라 부담스럽고 힘든 토요학습이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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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치 토요학습 활동 계획서를 짜 제출하라는 가정통신문 ⓒ 김동수


그런데 오늘(10일)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이 가정통신문을 가지고 왔다. '즐거운 토요학습 활동 계획서'로 2010년 3월 13일부터 2011년 2월 12일까지로 총 18번의 놀토계획서였다. 쉽게 말해 한 학년 토요학습계획를 짜 제출하라는 말이었다.

아내는 가정통신문을 보면서 어이가 없다고 했다. 더 어이없는 일은 이 계획서를 내일까지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아니, 한 학년 놀토 계획을 하룻밤 새 어떻게 짜라는 말이에요."
"머리 좋은 당신이 한 번 잡아보세요."
"아니 자기 주도학습은 자기들이 계획을 세워야지. 엄마인 내가 왜 세워요?"
"그래도 한 학년치를 어떻게 아이들이 다 세울 수 있어요."


물론 1년 동안 토요학습계획을 아이들과 함께 세우는 일도 교육상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갑자기 가정통신문을 보내 하루 안에 1년 계획을 세우라고 하면 부모들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번 놀토는 박물관, 다음 놀토는 가족여행, 그 다음은 친척 방문처럼 18번 토요학습 계획을 다 세울 수 없다. 물론 칸을 메우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칸을 메우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김막둥 놀토계획서 다 세웠어?"
"예, 다 세웠어요."
"세운 계획 한 번 말해 봐."
"친지방문, 요리실습, 도서관 활동, 견학, 현장체험이에요."

"우리 막둥이 학교 다닐 때보다 공부 더 열심히 하겠네."
"아빠, 가족여행 때 진주성 가요."
"가족여행을 진주성으로. 진주성은 가족여행이 아니라 현장 체험이다."
"그럼 현장 체험 때 진주성 가요."

선생님 말씀을 하늘처럼 생각하면 순종하는 우리 아이들은 한 학년 학습계획서를 자리에 앉아 20분 만에 다 세웠다. 정말 대단하다. 아이들이 세운 놀토 계획서를 보니 '친지방문', '요리실습' ' 견학' '도서관활동' '가족여행' '음악회 참석' 따위였다.

아이들의 탁월한 능력 때문에 한 학년 놀토계획은 다 세웠지만 학교에서 학부모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한 학년 놀토계획서를 하루 만에 제출하라고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세운 놀토 계획서대로라면 올해는 굉장히 바쁘게 다녀야 할 것 같다.
#놀토 #학습계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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