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 교사라는 게 부끄러웠다"

[인터뷰] 국권피탈 100주년 ①-<독립의 기억을 걷다>의 저자 노성태

등록 2010.02.27 18:31수정 2010.02.2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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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춘은 조그마한 소읍이다. 그러나 혼춘은 역사교사인 나에게는 '혼춘사건'이 일어난 잔인한 도시로 각인되어 있다. 봉오동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은 1920년 10월 2일 마적단을 매수해 혼춘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게 한 뒤 이를 한국인에게 뒤집어씌우고, 군대를 출병시켜 1만여 명의 한인을 무차별하게 학살했다. 이것이 '간도참변'이다.… 글을 쓰면서도 손이 떨린다.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백정이었다. 솥에 삶고, 눈을 뽑고, 사지에 못을 박은 인간이 인류역사에 또 있었던가?-<독립의 기억을 걷다> 중에서

올해는 국권피탈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독립의 기억을 걷다>(한울 펴냄)는 국권피탈 100년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의 바탕은 한 역사교사의 '대한민국 역사교사로서의 부끄러운 반성과 제대로 된 역사 교육에 대한 희망'이다. 저자는 중국의 국경도시 혼춘에서 이처럼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그 이면의 뼈아픈 역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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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의 기억을 걷다>겉그림 ⓒ 한울

봉오동은 독립군 최초의 승전지이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최진동이 이끄는 부대가 일본군 정규군을 대패시킴으로써 독립군의 사기를 진작한, 우리나라 항일 운동사에 썩 중요한 전투다. 일본은 봉오동 전투에서의 참패로 그동안 풍문으로만 여기며 무시해온 조선 독립군의 실체와 역량을 비로소 확인한다. 그리하여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시작한다.
하지만 독립군을 토벌하려면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했다. 중국 땅인데다 중국은 내심 독립군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장강호를 매수하여 마적단을 이끌고 혼춘시를 습격, 상가들을 약탈하고 일본 영사관에 불을 지르게 한다. 의도대로 일본인 13명이 죽는다. 일본은 '불량한 조선인이 일으킨 것'이라 덮어 씌워 '재만 일본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인 마을들을 습격하여 무차별 학살을 한다.

이것이 혼춘사건과 간도참변이다. 이때 학살당한 사람은 1만 여명, 조선인 민가 2500여 채와 30여개소의 학교가 소실됐다고 한다. 한편 이때, 청산리에선 독립군이 크게 승리한다. 일본은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작전을 개시한다. 외교문제로 난처해진 중국도 묵인하고 만다. 곤경에 빠진 독립군은 새로운 독립기지를 희망하며 소련 자유시로 향한다. 하지만 그렇게 향한 자유시에서 독립군끼리 총을 겨눠 죽여야만 하는 참극이 발생하고 만다.

…조국을 찾으려고 항일투쟁을 하던 동포끼리 타향에서 피 흘리며 싸우는 참극이 일어난 것이다. 제야 강을 핏빛으로 물들인 자유시참변은 3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독립군 최대의 참극이었다.…자유시 참변은 우리 독립 운동 역사상 최대의 비극이었다.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대첩의 영웅들이 꿈꿔온 독립의 꿈은 거기서 끝났다. 많은 독립군이 제야 강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불귀의 객이 되었고, 포로로 잡힌 이들은 시베리아 벌목장으로 끌려갔다. 이로써 1920년 이후 우리의 독립전쟁은 다시 긴 휴면기에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홍범도 등 독립 영웅들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책속에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은 우리에게 유명하다. 하지만 승리의 혹독한 대가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 역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독립의 기억을 걷다>에는 이처럼 우리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제라도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독립군들의 이야기와 우리의 무관심으로 잊혀진 독립의 현장 이야기들이 생생하고 풍성하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홍범도(1868~1943)가 자유시 참변 이후 극장 수위가 되어 그 극장의 무대에 올려 진 연극 <홍범도>를 관람했다거나, 죽기직전까지 정미소 직공으로 일했다거나….10페이지에 이르는 홍범도 이야기는 쉽게 읽혀지지 못했다. 간도참변에 대한 쓰라림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붙잡고 놔주지 않는 것 같아 읽다가 자꾸 주춤거리다 결국 한 번 더 읽었다. 언제든 꼭 '홍범도 거리'에 가보리라.

이런 감정은 '한국의 체게바라'로 불린 최재형의 이야기를 읽을 때도 그랬다. 최재형은 일반인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를 빼고 우리의 독립운동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헌신은 비중이 컸다. 안중근의 하얼빈의거 성공도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홍범도처럼 출신이 미천하기 때문이란다. 수많은 독립군들을 길러낸 간도 대통령 김약연, 15만원 탈취사건도 다시 한 번 더 읽고 싶은 부분이다. 

'나는 홍범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적의 용맹을 떨친 홍범도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자유시 참변 이후 소련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1921년 이후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차단되었다. 그를 둘러싸고 그릇된 인식이 오랫동안 지속된 데는 우파로써 광복 후 출세한 사람들이 자신을 빛내기 위해 홍범도의 찬란한 과거를 덮어버린 것도 한 이유였다. 역사는 정직해야 한다. 누구든 업적만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여기에는 이념도 학벌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홍범도는 대한민국 독립전쟁 사상 가장 많이 싸웠고, 제일 많이 이겼으며, 제일 오래 투쟁했고, 일본군이 가장 무서워했던 독립전쟁의 영웅이었다.-책속 '평양 진위대 나팔수, 스님이 되다' 중에서

1910년의 국권피탈을 경술년(庚戌年)에 당한 나라의 수치(羞恥)라는 뜻으로 경술국치라고도 한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국권피탈을 최근 몇 년 전까지 제법 오랫동안 우리는 '한일합방'이라고 배웠다. 때문에 아직도 '한일합방'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한일합방이라는 말은 우리의 국권을 피탈한 것을 일본이 정당화하고 있는 말임에도.

'나의 역사 선생님들은 왜 내게 국권피탈 혹은 경술국치가 아닌 한일합방을 가르쳤던 걸까? 나는 우리의 독립운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독립의 기억을 걷다>를 읽는 동안 아쉽고 원망스러운, 그리고 부끄러운 생각들이 분분했다. 이 책의 저자는 거의 모든 독립의 현장들을 몇 차례에 걸쳐 답사,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진 독립 운동과 그 흔적들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저자와 나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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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교사로서 너무 부끄러워 독립 현장들을 알고자 만주 연해주 지역을 6차례나 답사했다는 저자 ⓒ 한울


-100년 전인 1910년, 일본이 우리의 국권을 빼앗은 경술국치를 70년과 80년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한일합방'이라고 배운 것 같다. 요즘 교과서에는  어떻게 명칭 하는가?
"제7차 교과서(2002년~현재)부터 '국권피탈'이라고 명칭 한다. 부끄럽게도 제6차 교과서(2002년 이전)까지는 '한일합방'이라고 명칭하고 그렇게 가르쳤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경술국치라는 말이 자주 보이고 보편화되고 있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한일합방, 혹은 한일병합이라고 하는 것이 아쉽고 부끄럽다."

-국내도 아닌 다른 나라인데도 오직 그곳들이 독립 현장이라는 이유만으로 6차례 답사했다는 것만으로도 남다르다 싶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역사교사로서의 사명감 때문이다. 광복 60주년인 2005년 여름, EBS에서 10부작으로 제작한 <도올이 본 독립운동사>를 통해 처음으로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전적지, 안중근의 의거지인 하얼빈 역, 여순 감옥 등 독립의 여러 현장과 독립운동의 영웅들을 만나게 됐다. 그 방송을 보는 순간부터 그 이후 한동안, 20년 넘게 역사교사로 살아왔음이 부끄러웠다. 역사교사라는 사람이 우리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최재형, 최봉설, 임국정, 정이형 등을 방송을 통해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도올이 다녔던 독립 현장들만이라도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답사해야겠다. 그리하여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잊혀 진 우리의 독립 영웅들의 슬프고도 장엄한 이야기를 전해줘야겠다'는 소명과 희망을 갖게 됐다"

-이 책의 의미는?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경술국치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새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 책을 통해 소개한 독립운동의 현장들 대부분은 우리의 땅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잊혀지고 있다. 일부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겨우 답사하고 있는 곳들이 많아 많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곳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역사 교사로서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이런 우리의 독립운동 역사와 주인공들을 쉽게 알리고 싶었다. 알려야 하거나 재조명해야할 독립 운동가들도 많다. 이 책이 그 시작과 계기가 된다면 더한 보람은 없을 것이다.

주제가 한정되어 독자의 제한이 있을 수도 있겠기에 가급 쉽게 쓰려고 했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자 안중근 의사 순국 100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는 누구든 우리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책 한권만이라도 읽고 되새기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 아닌 어떤 저자가 이런 책을 냈다고 해도 역사교사로서 당연히 적극 추천했을 것이다."

-좀 더 조명되었으면 하는 인물은?
"몇 번에 걸쳐 만주 연해주 지역을 답사하고 또 그 자료들을 정리하고 책을 쓰면서 정말 부끄러웠다. 지난 20년 넘게 역사 교사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만난 인물 중 상당수는 처음 대하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체게바라로 불렸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재무부장으로 선임된 최재형을 알게 된 것도 몇 년 되지 않는다. 역사 교사가 이 정도인데, 일반인이나 학생들은 어떨까? 독립운동은 이념을 뛰어 넘어 평가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최근 80년대 후반 이후 이러한 연구 경향이 이루어지면서 최재형도 김알렉산드라스탄케비치도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어 한편으론 다행스럽다. 간도 대통령으로 불린 김약연이나, 만주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된 민족 종교인 대종교를 중창시킨 나철,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일가, 15만원 탈취 사건의 주역인 최봉설 등이 좀 더 조명을 받았으면 한다.

-독자들에게 특히 알리고 싶은 곳이나 인상 깊은 곳들은?
"신한촌, 라즈돌리노예역, 우수리스크, 우정마을, 연추, 지신허, 봉오동 전적지, 명동, 용정, 15만원탈취사건의거지, 단동, 고마령 전적지, 청산리전적지, 산시, 화룡의 3종사묘역, 하얼빈, 여순, 졸본, 집안…. 답사한 모든 지역들이 의미가 남다르다. 6차례에 걸쳐 이들 지역을 답사하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졌고 아팠다. 좀 더 쉽게 갈 수 있다면 틈틈이 몇 번이라도 찾아가 우리 독립군들의 흔적을 더 찾아보고 싶다.

그래도 굳이 꼭 알리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안중근 의사의 흔적지들이다. 용정에서 기차를 타고 새벽에 하얼빈 역에 내려 확인한, 삼각형으로 표시된 의거지 와의 만남은 떨림이었다. 안 의사가 순국했던 여순 감옥에서는 안 의사가 오늘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붙잡아보려 노력했다. 독방에서 보낸 날들의 그 순간, 순간들을 떠올려보려고도 했다.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 되는 지난해 책을 출간한다고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이들 지역이 자꾸 아른거렸다. 가장 어렵게 찾아간 지신허 마을 옛터비나 독립영웅과 변절자의 비극을 안고 있는 15만원탈취사건의 현장도 인상 깊게 남고 있다.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의 첫 출발지인 라즈돌노예역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허허벌판으로 추방당한 17만 고려인들의 피울음이 들리는 듯해서 먹먹했다."

-가장 안타깝고 아쉬움(아픔)이 많은 곳은?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촌은 김약연의 명동촌과 함께 해외 독립운동의 2대 거점 중 하나였다. 한 때 1만 여 명의 한인들로 북적이던 한인촌의 현장에 남아 있는 당시의 유일한 흔적은 '서울스카야 2A' 문패가 붙은 건물이 유일했다. 그래서 현장에 세워진 기념탑은 더욱 쓸쓸해보였다. 압록강과 두만강변은 어디나 독립군들이 활동하던 근거지였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 흔적을 알려주는 표지판 하나 남아 있질 않았다. 특히 화룡에서 본 대종교 3종사 무덤은 너무도 초라했다. 나철과 서일, 김교헌은 만주 독립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고구려, 발해 유적 유물을 중국이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어가는 것도 쓰렸다. 아무런 흔적 없이 사려져 버린 독립운동의 현장 모두는 아쉬움이자 아픔이다. 이제라도 우리가 어떤 노력이든 해야 하고 기억해야 할 곳들이다."

-현재 이들 지역은 일반인 아무나 쉽게 답사할 수 있는가?
"상연추 중연추 마을은 현재 군사지역이어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지만 대부분의 지역들은 대체적으로 쉽게 갈 수 있다. 연해주의 중심도시 블라디보스토크는 비행기와 배(동춘호)로 지금은 쉽게 갈수가 있다. 연길에서 발해의 수도였던 발해진까지는 몇 년 전에는 10시간도 넘게 걸려 엄두가 잘 나질 않았는데, 최근에는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가 나 있어 5-6시간이면 갈 수 있다. 연길에서 바로 기차를 타고 하얼빈까지 갈 수도 있다.

최근 몇 년 이들 지역들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썩 반가운 일이다. 몇 년 전까지는 교통상의 이유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최근 만주 지역의 교통망이 잘 정비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만주나 연해주의 독립 현장을 찾고 독립영웅들을 만나봤으면 좋겠다. 고구려 발해의 유물을 통해 찬란했던 우리 역사도 되돌아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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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홍범도의 손녀딸 김알라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울


-홍범도의 손녀 딸 김알라씨와의 인터뷰와 연추마을 지킴이 오명한씨도 인상 깊다.
"연추 마을은 한말 의병의 중심지 또는 본영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재형이 살면서 수많은 독립군들을 물심 지원한 곳이자 안중근 의사가 단지동맹을 한곳이기도 하다. 현재 상연추와 중연추는 민가하나 없는 폐허다. 연추 상리에 의병들이 숙식하며 훈련하는 의병 훈련소가 있었음이 최근 몇 년 전에 밝혀졌다. 모두 오명환 회장의 노력 때문이다. 1994년, 충남 도의원 시절에 중국 동포를 돕고자 경운기 등을 가지고 연변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그는 사재를 털어 핫산 지역의 토지 2억 2000만평에 대한 사용권과 석탄 채취권을 취득했다. 2000년에 푸틴 대통령이 연해주를 국제자유무역지구로 선포하자 중국과 일본, 영국이 이들 지역을 차지하고자 각축을 벌였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가 숨 쉬고 있으며 고려인들의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에 오회장의 이들 지역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때문에 그가 이곳을 지켜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사례는 좀 더 주목받아야 할 것 같다"

-역사 교사로서 우리의 역사교육에 바라는 희망이나 아쉬움 등은?
"역사는 일부 사람들의 필요사항이나 선택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필수여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역사 교육은 예전의 교육 범위까지 도리어 축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학교 교과과정에서 역사는 독립과목이 아니라 사회에 편입되어 아주 간략하게만 배우는 정도이며 고등학교 경우 2011학년 이후부터는 선택 과목이다. 수능시험에서 이미 선택과목이 되었는데 사회과목 중 선택하는 학생 수가 가장 적다. 고등학교에서는 우리 역사를 배우지 않는 학생들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어떤 나라가 자신들의 역사 가르치기를 이처럼 무시할까? 교육과정 편성에 국사는 독립과목이 되어야 하고, 고등학교 국사는 필수가 되어야 하고 수능 시험에서도 필수가 되어야 한다.

역사 문제에 접근하는 정부의 태도도 여전히 문제가 많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역사 교과서 왜곡, 중국의 동북 공정 등, 어떤 문제가 터지면 그 때 그때 일회성, 혹은 이벤트 성으로 대응하는 자세를 반성하자는 목소리가 그렇게 높아도 개선 없이 여전한 것 같다.역사교사들의 현장 체험 부재도 안타깝다. 역사는 사료도 중요하지만 역사 현장의 체험과 답사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방학 등 시간 나는 대로 역사 현장을 찾아 그 속에 남아 있는 역사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집필 계획이 있다면? 어떤? 언제쯤?
"역사 교사인지라 집필보다는 학생들의 역사 수업이 우선이다.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제대로의 역사교육과 역사적 자긍심 고취에 우선하고 싶다. 현재 전남일보에 2010년 1월부터 '노성태의 남도 역사 기행'을 주 1회 쓰고 있다. 고향인 전라도 곳곳을 답사, 그곳의 역사를 쓰고 있다. 50회를 계획하고 있다. 이런 작업이 우리고장 사람들이 우리 고장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더할 수 없는 보람이 될 것이다. 연재 후 책으로 묶을 계획이다. 이제까지 역사기행 책은 많이 나왔다. 역사 교사 입장에서 학생들이 꼭 가봐야 할, 어른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는 역사에 학생들이 한 발 더 가까이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역사기행 책을 쓰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독립의 기억을 걷다>|노성태|한울|2010년 2월 1일|18,000원


덧붙이는 글 <독립의 기억을 걷다>|노성태|한울|2010년 2월 1일|18,000원

독립의 기억을 걷다 - 만주.연해주 답사기

노성태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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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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