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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책 표지 ⓒ 청개구리
▲ 표지 책 표지
ⓒ 청개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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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서 있다. 가을 나무다. 빨간 옷, 노란 옷, 주황 옷. 알록달록 예쁜 색실로 짠 옷들을 입고 서 있다. 이 가을 나무의 예쁜 옷 들은 누가 해 준 것일까? 바람이다. 바람이 고운 옷 짜서 해 입혔다.
왜?
나무가 무더운 여름 내내 죄수 같은 푸른 옷 한 벌로 한 철을 나면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 게 고마워서 바람이 그랬단다. 나무는 열매도 맺고 꽃도 피웠다. 옷 여러 벌 선물 받을 만하다. 그런데 왜 바람이 선물을 했지? 바람이 나무 그늘 아래 쉬어 가기라도 했나?
사실 나무에게 예쁜 옷 선물을 한 사람은 시인이다. 우리가 무심코 탄성 한 번 지르고 말 것을 시인은 이렇게 바뀌는 계절과 자연이 만드는 조화를 뜨개질 하듯 잘 엮어서 시를 읽는 우리 마음도 어여쁘게 물들여 준다.
동시작가 김자연의 '나무의 옷'이라는 시를 내 나름대로 새겨 본 것이다.
'나무의 옷'은 저자의 동시집 <감기 걸린 하늘>에 나오는 시다. 깊은 근원을 향해 이야기의 뿌리가 뻗어있다. 바람과 나무와 계절과 색깔이 잘 직조된 옷감처럼 어우러져 있다. 짧은 동시 한편에 이런 사유를 담는 것이 놀랍다.
'참새네 집' 전문을 보자
사철나무 속 / 참새네 집은 // 바람이 잘 통하고 / 햇빛도 잘 비치는 곳 // 항상 / 대문이 열려 있어 // 여럿이 모여 살기 / 참 좋은 집
시인은 참새 여러 마리가 볕 바른 쪽 사철나무 가지에 집 짓고 사는 모습만을 얘기 하고 있지 않다. 대문이 열려 있어서 바람도 햇빛도 사철나무도 함께 사는 집이다. 대문이 열려 있어서다. 그래서 하늘도 같이 살고, 구름도 한 식구가 되는 집을 이야기 하고 있다. 대문이 열려 있어서다. 대문은 남을 못 들어오게 하는 잠금장치가 아니라 드나드는 입구 표식이라는 말로 들린다.
시 한편 한편을 여럿이 같이 읽어도 좋을 시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같이 읽는다면 더 좋아 보인다. 새길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시들이다.
뜻을 새기려고 하지 않아도 좋다. 실제 이 책에 담긴 동시들은 아주 간결하고 산뜻하다. 잔소리가 없는 책이라고나 할까.
시집의 뒤편에 길게 발문을 쓴 동시작가 이준관님도 지적 했지만 <감기 걸린 하늘>은 일상 속 동심을 잘 발견해 표현한 책이다. 아이들이 놓여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연민으로 감싸 안는 책이다. 참 사람이 무엇인지, 참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사라져 가는 것들은 어디가 아쉬운지 짧은 시구 속에 잘 담아 놓았다.
눈이 오는 날에 소리 지르며 즐거운 아이들이 허리까지 눈이 푹푹 쌓이라고 하면서 올리는 '간절한 기도'가 있다. 학교 안 가도 되게. 학원 안 가도 되게 해 달라는 기도다.('간절한 기도') 아이들이 학원을 가는 이유도 적나라하다. 어른들 기대와 동 떨어져 있다. 놀이터에도 골목에도, 그 어디에도 같이 놀 동무가 없어서 학원엘 가는 것이다.('학원에 가는 이유')
어른들이 학원 속에 동무들을 다 가둬 놨기 때문 아닐까?
'엄마 없는 날'은 엄마 없는 날의 아이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밥을 먹었는데 / 배가 부르지 않다 // 배는 볼록한데 / 여전히 배가 고프다('엄마 없는 날' 전문)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거꾸로 상상을 했었다. 엄마가 없는데도 나 혼자 배불리 먹고 떠들고 장난질이나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엄마가 다쳤거나 병들어 누운 지도 모르고 나 먹을 거 다 먹고 나 할 짓 다하고 있지는 않은가고. 내 상상속의 '엄마'는 정의나 사랑이나 관용이어도 좋다.
김은경님이 그린 그림도 색이나 표현이 시와 잘 어울린다. '짱구네 할매 숫자 세기'의 그림은 갖가지 농사도구와 농자재를 숫자와 연결하여 그려 놓았는데 할머니가 이것을 외고 기억하기 위한 집중된 시선이 진지하다. 시인과 화가가 동시에 만들지 않고서도 시구와 그림 하나하나가 꼭 맞아 떨어질 수 있는 게 신기하다. 숫자 1이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작대기고 8은 절구통이다. 9는 콩나물.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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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따로따로 방'의 그림 ⓒ 청개구리
▲ 그림 '따로따로 방'의 그림
ⓒ 청개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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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따로 방'의 그림도 시를 더욱 시답게 해 준다. 표정을 보라. 같이 방을 쓰면서 만날 으르렁대던 자매가 따로 방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있으면 옆 방 문을 두드린다. 그래서다.
좋지만 / 조금 섭섭한 / 따로따로 방('따로따로 방' 마지막 연)
좋지만 섭섭한. 바로 그 표정이 문 틈새로 들이 민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전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가 책 머릿말에서 말했듯이 땅콩 까 먹듯이 짬짬이 꺼내 읽기 좋다. 짧고 단순해서 읽기 좋다. 땅콩의 고소함과 차원이 다른 티 없이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이끌려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10.02.24 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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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걸린 하늘
김자연 지음, 김은경 그림,
청개구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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