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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페미니스트의 '휴가'는 달랐다

[출발! 마이너 여행③-프랑스편] 엉망진창 일이 꼬일 때 볼만한 영화 <레인>

09.07.26 20:44최종업데이트09.07.2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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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촬영은 어설픔의 연속이다. <레인>의 한 장면. ⓒ 스폰지


언제부턴가 비가 오는 양상이 달라졌다. 내렸다하면 폭우고, 그 폭우도 전체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만 온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폭우와 햇살이 반복되는 '하늘의 변덕'이 계속되는 요즘이다.

이런 여름에 소개된 한 편의 프랑스 영화가 있다. 아네스 자우이 감독의 <레인>이다. 아네스 자우이는 2001년 <타인의 취향>으로 국내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여성 감독이다. 당시 이 영화는 여름 대작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단관 개봉을 감행했음에도, 많은 관객들이 찾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설픈 모습들에서 잔잔하게 터지는 웃음

페미니스트 작가 아가테(아네스 자우이)는 인기와 명성을 바탕으로 정계 진출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성공한 여성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인 미셸(장 피에르 바크리)은 아가테에게 출연 제의를 하고 마침 엄마의 기일을 맞아 휴가를 내고 고향에 내려가는 아가테를 찍기로 한다.

이 작업에는 호텔에서 일하며 영화 만들기를 꿈꾸는 초짜 영화인 카림(자멜 드부즈)이 함께 한다. 아가테가 미셸의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사실 고향에서 함께 지낸 카림 때문이었다.

헌데 미셸의 영화 만들기는 정말 어설프다. 기껏 카림이 인터뷰를 했더니 신호를 주지 않았다며 찍지도 않았고 시골 풍경을 담아야한다는 생각에 산꼭대기까지 아가테를 데리고 가는 고생을 하지만 배터리를 놓고 오는 바람에 찍지도 못했다. 게다가 소나기까지 만나고 주차한 차마저 고장이 나면서 아가테는 약속됐던 정치 연설을 못한다.

아가테의 휴가는 이상하게 꼬인다. 영화를 찍는다는 두 사람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계속 생기고 이제는 애인마저도 이별을 통보한다. 완벽을 추구하던 삶이 이상하게 무너지는 느낌이다.

영화를 찍는 미셸과 카림도 일이 꼬이기는 마찬가지다. 미셸은 아들을 만나지만 외면을 당하고 유부남인 카림은 호텔에서 같이 일하는 오렐리를 좋아하게 된다. 흐린 날씨 탓을 하며 신경질적인 성격을 보이는 아가테의 여동생은 미셸과 은밀한 만남을 가진다.

블록버스터가 버겁다면, 이 영화 어떨까

영화를 찍는 미셸(장 피에르 바크리)와 카림(자멜 드부즈) ⓒ 스폰지


'어설픈 영화찍기'가 중심 사건이긴 하지만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등장 인물들의 여유로움과 따스함이다. 영화를 찍는 이들은 실수를 연발하지만 조급하거나 불쾌한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안 좋은 일들이 계속 되어도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려하지 않는다.

신경질적인 아가테의 여동생도 미셸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워지며 미셸의 영화 찍기에 불만이 있는 카림도 미셸을 스승처럼 생각하기에 대놓고 대들지 않는다. 아들이 외면을 한다해도 미셸은 아들에게 한없이 자상하게 대한다.

아가테는 밖에서는 성공한 페미니스트 작가로 알려져 있었지만 정계 진출이라는 목표 속에서 앞만 보고 가던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휴가 기간 중에 있었던 일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를 통해서 조금씩 자신을 찾아 나간다.

이렇게 영화 속 인물들은 뭔가 모자라고, 현실 감각이 떨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악의가 없고 인간적이다. 영화의 유머는 여기서 나온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그것을 표출하는 말들이 잔잔하고 따뜻한 웃음을 유발시킨다.

구름으로 덮힌 날들이 계속되어도 화창한 날은 오고, 비가 갑자기 내린다해도 곧 해가 나듯이 <레인>은 꼬이는 생활 속에서도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굳이 코믹 코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잔잔함 속에서 만족할 만한 웃음을 주는 <레인>은 대작들이 즐비한 여름 극장가에서 작은 햇볕 역할을 할 수 있는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레인 아네스 자우이 타인의 취향 장 피에르 바크리 자멜 드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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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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