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다가도 잊을 만하면 그리워지는 곳

[장호준의 물 이야기] 제주도 서귀포 문섬

등록 2009.06.29 09:54수정 2009.06.29 09:5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연산호 서귀포 문섬 가린여 포인트 수심30 미터 ⓒ 장호준


1.


만 4년 만에 다시 문섬을 찾았다. 서귀포 항에서 배를 타면 불과 5분여 만에 닿는 곳. 이 나라 다이버들에겐 성지와 같은 곳. 어느 외국인 다이버에게도 으쓱대며 자랑할 수 있는 곳. 관찰 다이빙과 수중촬영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는 곳이 문섬이다. 그래서 돌아서면 어느새 그리워지는 곳, 물론 가도 가도 질리지 않는 곳은 아니다. 하도 가서 질리다가도 잊을 만하면 그리워지는 곳,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문섬의 바다는 이 나라의 많은 수중사진가와 그보다 많은 다이버들을 길러냈다. 이곳의 수중세계가 한 다이버의 열정에 의해 방송을 타고난 뒤에 방송사들이 줄을 이어 수중세계를 소개했고 그 덕에 물만 봐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수중세계에 이해와 관심을 갖게 한 곳이다.

a

달고기 문섬 불둑 수심15미터 ⓒ 장호준


2.

다이빙 장비를 챙기고 렌즈를 닦고 하우징(일반 카메라를 넣어 조작할 수 있는 방수 케이스)에 기름칠을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하는 이 준비과정은(들이) 내겐 하나의 의식이다. 여행을 계획하고 출발날짜가 일주일 정도 앞으로 다가오면 나는 장비를 챙기기 시작한다. 이런 예비과정들이 본 과정보다 더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a

연산호 문섬 동남쪽 포인트 수심30미터 ⓒ 장호준


3.


제주공항에 내려 다른 곳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리무진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간다. 아무렴, 그처럼 느린 버스가 있을까? 막상 서귀포에 도착한대도 늦은 저녁이라 다이빙을 할 수 없건만 버스는 빌어먹을 느림보 거북이 같다. 문섬아, 내가 간다. 축지법이라도 배워 둘 걸, 그래, 너는 지금도 변함이 없겠지.

한동안 몰두하던 수중촬영을 강 건너 불 보듯 한 때가 있었다. 필카가 디카에 밀려 물속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이미  진취적 성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발 빠르게 장비를 교체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살림 형편과 내 일신상의 문제가 겹쳤기 때문이었다. 밀려오는 무력감과 허망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컴퓨터의 발달은 수중사진에도 많은 진보를 가져왔다.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 할 수 있다는 것, 필름 매수에 신경 쓰지 않고 셔터를 누를 수 있다는 것, 등등은 온갖 제약을 받는 수중사진에서 한 부분의 숨통을 틔워 주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온갖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필카로 한 단계를 올라 선 사람들은 '그간의 노력과 노하우들이 이젠 헛일인가?'하는 상실감에 그걸 표 나지 않게 삭여야 했다. 그러나 이제 나도 새로 장만한 디카로 그 편리함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다려다오 산호야. 너의 그 어엿함을 다소나마 더 멋있게 표현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a

문섬의 수중 풍경 문섬 불둑 수심13 미터 ⓒ 장호준


4.

다이빙 가게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 수많은 세월이 흐르며 호형호제 하는 사이로 바뀐 김사장이 버스에서 내리는 나를 반갑게 맞는다.

"형님 오랜 만이우."

그래 아우야, 반갑다. 그의 다이빙 횟수는 7500회가 넘는다. 이십년 세월의 결과다. 그 엄청난 횟수를 못 미더워 하는 다이버를 만나면 그는 로그북을  꺼낸다. 우리나라에선 누구도 이 횟수를 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그 사이 찍은 수많은 필름도 보유하고 있다. 그래, 인생이 세월만 간다고 관록이 쌓이는 것은 아니겠지. 그대처럼 한 가지 일에 묵묵히 열정을 쏟아야 될 일일 것이다.

a

버드나무처럼 늘어진 연산호 문섬 북쪽 수심13미터 ⓒ 장호준


5.

6월12일 첫 회 잠수.

문섬의 부속섬인 새끼섬에 내렸을 때는 바람이 몹시도 불었다. 같이 내린 다이빙의 '다'짜도 모르는 아내의 얼굴에 걱정하는 빛이 역력하다. 평일인데도 새끼섬의 파식대에는 다이버들이 그득하다. 장비를 한 곳에 모아놓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아내를 남겨두고 물로 뛰어 들었다.

첫 포인트는 새끼섬을 왼쪽 어깨에 붙이고 산호가 밀생한 지역까지 다녀오는 것이었다. 시야는 약 오 미터, 조류도 약간 있었다. 수온은 16.7도, 웻슈트 속으로 파고드는 물이 차갑지만 시원하다. 봄이면 20~30미터씩 자라 숲을 연출하는 모자반은 이미 녹아내리고 없었다. 대신 전갱이 어린새끼들이 섬을 뒤덮고 있다. 

하 많은 세월을 두고 카메라를 들이 댔지만 다이빙을 잠시만 쉬면 허둥댄다. 피사체를 찾는 것도 쉽지 않고 어느 각도에서 들이대야 할지도 난감하다. 문섬 다이빙을 준비하는 동안 동해에서 새 카메라의 조작방법을 익히기 위해 수시로 다이빙을 했는데도 더듬거린다. 그래 첫 회다. 사람도 만나면 잡은 손 흔들며 인사부터 해야 하지 않는가. 욕심을 덜어낸다. 우선 물속 사정부터 살피리라고 마음먹었다.

a

하강하는 다이버 촬영을 하기위해 해저로 내려가는 다이버 ⓒ 장호준


6.

엿새 동안 총 열여섯 번의 다이빙을 했다. 이 중, 사진을 찍기에 바닷속 형편이 좋았던 날은 마지막 날 하루였다. 그러나 불만은 없다. 바람 부는 날이 있으면 비오는 날이 있는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닌가. 최소 일주일의 여정을 계획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니까. 이번 여정의 다이빙을 모두 끝내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놓고 마주 앉았을 때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아내가 김사장 보고 물었다.

"우리나라에 수중사진만으로 밥을 먹는 사람이 있어요?"
"없습니다."

김이 일언지하에 단정했다. 분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다. 하하하 알지 않는가. 수중사진을 한다는 것을 알면 초면인데도 사진 한 장 달라는 것을 아주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다. 마치 당신의 기술을 조금 알아주니 기뻐하라는 투로 말이다. 출판사나 잡지사도 다를 바가 없다. 빈대 낯짝 만한 돈을 받고 필름을 넘길 때면 자존심까지 상한다. 아예 없는 곳도 있다. 실어주니 고마워하라는 투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하세요?"

얼라리오, 아니 이 여자가 시방 무신 소리를….

a

쏠베감펭과 새우 플래시 불빛에 어리둥절하다. ⓒ 장호준


7.

인생은 뭔가를, 한다는 것이다. 그걸 돈으로 계산을 할 수 있겠는가. 어쩌다 보니 나는 다이빙을 시작했고 그러다가 카메라를 들게 되었다. 그게 또 나는 기뻤다. 무식한 나는 다이빙 외에 다른 것을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래서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게 다다. 정말로 그것이 다다. 누구는 그런 나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맞다. 그건 그 방향에서 보면 그렇다. 복이 많아서 다이빙에 수중사진을 한다고? 우리 마누라에게 물어보라. 그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정색을 하고 말이다.

"그 고된 짓거리를 왜 하나 모르겠어요."
싫으면 대통령을 하래도 하겠는가.

말할 것도 없이 나도 내 생활의 다른 한 부분을 희생하고 오늘도 물가를 서성인다. 문섬의 수중세계는 그런 나에게 편안함과 힘이 되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a

연산호 화려하면 천해 보이고 품격이 있으면 쓸쓸해 보인다. ⓒ 장호준


#장호준 #물속이야기 #스쿠버 #다이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