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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한 마리 못 죽이게 생겼다고요?

[인터뷰] 조연배우 정인기... "연기 19년, 이젠 욕심 좀 내보렵니다"

09.06.24 15:59최종업데이트09.06.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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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인기. 그는 최근 개봉한 <약탈자들>에서는 연쇄살인범 택시기사로 분했고 잠깐 출연한 <똥파리>에서는 아내를 두들겨 패다가 사채업자 상훈에게 비굴하게 얻어맞는 남편역을 맡아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 남소연


험악한 인상에 팔뚝에는 '차카게 살자'라는 문신을 새긴 조폭이 사람을 때린다. 그의 폭력은 아무런 잔상을 남기기 않는다. 조폭이니까. 하지만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순박한 표정을 가진 이의 폭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순박한 표정 때문에 섬뜩함은 두 배가 된다.

그러니까 굳이 구분하자면 배우 정인기는 후자 쪽이다. 그는 반전에 능하다. 유약한 표정으로 약자에게는 한없이 야비한 폭력을 휘두르다가도 더 강한 존재 앞에서는 어느새 생존 본능이 빚어낸 비굴함을 내보일 줄 안다. 

<추격자>의 '이 형사'로 대중에게 다가온 정인기

올해로 연기 생활 19년째, 부지런한 조연 배우로 자리매김한 정인기가 대중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은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의 '이 형사' 덕이었다.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시장은 '시장'에 방문했다 똥물을 맞아 이 형사를 뛰게 만든다. 그리고 이 형사는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연쇄살인범을 쫓는 전직 형사 엄중호를 체포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만 했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영화 속으로 뛰어들어 이 형사를 돕고 싶은 연민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는 충무로에서 내로라하는 다작 배우이자 '형사 전문' 배우다. 하지만 정인기의 다른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충무로의 상업영화가 아니라 단편·독립영화들이 제격이다. 지금의 정인기를 키운 것은 '8할이 단편 영화'다.

정인기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독립영화계의 악역 전문 배우다. 그는 최근 개봉한 <약탈자들>에서는 연쇄살인범 택시기사로 분했고 잠깐 출연한 <똥파리>에서는 아내를 두들겨 패다가 사채업자 상훈에게 비굴하게 얻어맞는 남편 역을 맡아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5년 박신우 감독의 단편 <미성년자 관람불가>에서는 처음에는 미성년자를 취조하는 형사에서 나중에는 '너는 미성년자니까 감옥에 안 간다'며 아들에게 엄마를 죽인 살인범 연기를 강요하는 냉혈한 아버지로 분해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다. 그의 얼굴은 항상 두 개였다.

'단편 영화'는 나의 힘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정인기'라는 석 자를 넣고 엔터를 치면 가지런히 정리된 그의 출연작 리스트가 '주르륵' 모니터를 가득 채운다. 무려 6페이지. 미처 목록에 오르지 못한 단편·독립영화까지 포함한다면 배우 정인기의 출연작을 모두 확인하는 데는 몇 번의 '클릭질'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정인기가 일이 없으면 한국 영화계가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영화계의 농담이 그저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2007년과 2008년 각각 11편과 12편의 영화에 이름을 올린 정인기의 활동은 올해도 기세가 대단하다. 독립영화 <똥파리>와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약탈자들> 그리고 상업영화로는 지난달 말 개봉한 <보트>에 출연했고 <백야행> <요가학원> 등은 현재 촬영을 진행 중이다. 특히 작년에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도 좀 된다.

아내의 성화로 이번 인터뷰를 위해서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만지고 왔다는 그를 18일 홍대 앞 북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속보다 훨씬 말끔한 모습의 그는 인터뷰 내내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이 자리까지 온 건 단편영화의 힘"

ⓒ 남소연

- 출연작 중 가장 최근에 개봉한 영화가 손영성 감독의 <약탈자들>이죠? 이야기 구조가 참 독특하더라고요. 또 하나의 잘 만든 독립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어요. 배우들도 참 연기를 잘했고 시나리오 자체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그런데 칸 영화제에 출품하려고 다른 국제영화제는 포기했는데 그래서 주목을 좀 덜 받게 된 것 같아요. 아쉽죠. CGV 무비꼴라주 5개 관에서 개봉하는데 입소문이 많이 났으면 좋겠어요."

- <추격자> 이후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셨죠. 실감하시나요?
"<괴물>에서 제가 격리병동 의사로 나왔거든요. 1300만 관객이 들었는데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근데 <추격자>가 개봉한 후에는 정말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이 많은 홍대 앞이나 강남 같은 곳에 가면 특히 그렇죠. '어? 저 사람 <추격자>에서 형사로 나온 사람 아니야'라고 하시죠. 그런 시선들이 느껴지니까 요즘엔 술 한잔 먹으러 가서 행동도 조심스러워지고 그래요. 그리고 <추격자> 흥행으로 <세이빙 마이 라이프>라는 작품에서는 형사반장으로 승진도 했죠.(웃음)"

- 요즘 촬영하고 있는 영화가 궁금한데요.
"단편 몇 개 준비 중이고 박신우 감독의 <백야행>은 촬영이 마무리됐어요. 공포 영화 <요가학원>에서는 영화 감독 역할을 맡아 촬영 중이죠. 송강호 강동원 주연 <의형제>에서는 큰 역할은 아니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데 있어 중요한 사건에 속해 있는 인물역을 맡았어요. 또 작년에 촬영했던 <똥파리><보트>는 개봉을 했고 <세이빙 마이 라이프>는 개봉을 기다리고 있어요. 특히 단편 같은 경우 그동안에는 가리지 않고 해왔어요. 근데 요즘 다른 작품 촬영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다는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단편 만드는 친구들에게 미안해요. 하지만 작은 역할이라도 시나리오 보고 이 작품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주저 없이 하는 편이에요."

- 독립영화에 상당히 많이 출연하셨는데 '정인기는 독립영화계의 스타'라는 평가가 있어요. 그만큼 독립영화인들이 고마움을 느끼는 배우라는 이야기일 텐데요.
"2005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소감으로 '단편영화 발전을 위해 뼈를 묻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웃음) 그만큼 저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한 것은 단편영화의 힘이죠. 제 얼굴이 알려진 것은 신재인 감독의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였어요. 신 감독의 아카데미 졸업작품이었는데 출연료를 좀 준다고 해서 하기로 했어요. 근데 이 영화가 그해는 물론 그다음해까지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면서 저도 주목을 받게 된 거죠.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도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준 작품이라고 했었고. 그러면서 더 많은 독립영화에 출연하게 되고 충무로 쪽에도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들 보면 그래요. 상업영화들 오디션 보러 다니는 것도 좋지만 단편영화에도 출연하면서 연기력도 갈고닦고 관계도 만들라고요. 언젠가는 그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 그렇게 단편영화에 오랫동안 출연해왔는데 보람 같은 게 있다면요?
"올해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단편영화 발전에 애쓰신 배우'라고 감사장 준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보다는 2005년에 상 받은 작품이 박신우 감독의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는데 박신우 감독이 지금 <백야행> 촬영을 마무리했어요. 그렇게 어렵게 영화작업 하다가 장편 영화 '입봉'하는 감독들을 보면 너무 기뻐요. 그 인연으로 저도 <백야행>에 출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웃음) 그리고 당시에 <미성년자 관람불가>와 작품상을 놓고 경쟁했던 영화가 나홍진 감독의 <완벽한 도미요리>였어요. 결국 <완벽한 도미요리>가 작품상을 탔죠. 나중에 <추격자>에 출연하고 나니 그런 인연들이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리고 올해 들어 <똥파리>나 <낮술>처럼 저예산 영화들이 주목을 받고 있잖아요. 적은 예산으로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동안 독립영화인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쌓아올린 그런 자산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요."

'민중배우'를 꿈꿨던 대학 시절

- 노동연극을 통해 연기를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서울예전 시절부터 관심이 많으셨나요?
"대학 때 '민중배우'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까지 군사독재 정권 시절이었고 그래서 내 연기가 사회를 좀 변화시키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거였죠. 군대 가기 전에 예술사회과학연구회라는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노동극에 관심을 뒀죠. 졸업하고는 대학로의 노동극단에 들어갔고 그때 박철민 선배, 권태원 선배 등을 만났어요. 그때 '뭐 없나 클럽'이라고 있었는데 공연이나 연습 끝나면 저나 박철민 선배가 '뭐 없나, 뭐 없나?' 그러면서 돈 버는 선배들 있으면 술 한잔 사달라고 해서 어려움도 이야기하고 그랬거든요. 당시는 연극배우로서 기운이 넘치던 시기였어요. 관객들도 많이 찾아오셨고 호응도 대단했죠."

- 그래도 경제적으로는 꽤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199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사회주의권이 붕괴했고 문화 쪽에서도 서태지가 나오면서 투쟁적이거나 집단적인 감수성이 외면받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개인적인 감수성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분위기가 된 거예요. 그래서 극을 무대에 올려도 관객들 반응도 시원찮았고 관객 수도 급격히 줄어들었죠."

- 한 인터뷰를 보니까 먹고살기 힘들어서 도배 기술을 배웠다고 하셨더라고요. 도배업계에서는 얼마나 활동하셨나요?(웃음)
"아내랑 대학 때 만나서 6년을 연애했어요. 결혼이 임박하니까 대책이 없었어요. 그래서 연극 안 할 때 어떻게 돈 벌 수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 도배 기술이 있으면 꽤 벌이가 괜찮더라고요. 한 달에 500만 원은 쉽게 벌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혹' 했죠.(웃음) 열심히 기술 배우면서 월급도 좀 타고 그랬는데 임진택 선생님이 <밥>이라는 마당극을 해보자고 하셔서 달인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도배계를 떠났어요.(웃음) 근데 그 마당극이 대성공해서 초청도 많이 다녔고 돈도 좀 벌었죠. 그때 얼굴도 좀 알려졌고 다른 출연 섭외도 많이 들어왔어요. 박철민 선배는 <밥>에서 자랑한 엄청난 입담이 눈에 띄어 김지훈 감독의 <목포는 항구다>에 캐스팅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 인연이 <화려한 휴가>까지 이어진 거죠."

- 그럼 영화 쪽 일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건가요?
"2000년부터인 것 같아요. 근데 오디션을 봐도 캐스팅이 참 안 됐어요. 영화에서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원하는데 연극은 목소리의 톤이나 표정, 제스처가 좀 커야 하잖아요. 그런 연극적 스타일이 안 맞았던 거죠. 그래서 우선 단편 영화에 출연하면서 카메라에도 적응하고 연기를 좀 더 벼리는 기회를 좀 갖고 싶었어요."

- 연기자가 돼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언제였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성당에서 성탄절 기념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대사 한마디 한마디 던질 때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관객들이 참 즐거워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저도 정말 즐거웠고 성취감 같은 것도 느꼈죠. 그때가 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극과를 선택했는데 부모님은 반대가 많으셨어요. 근데 요즘 TV 드라마에도 제가 나오고 그러니까 이제야 연기자로 인정해주시는 분위기예요. 전화도 많이 주시고 자식이 나오니까 남에게 자랑하고 싶으신 마음도 생기시는 것 같고."

"돈 많이 벌었겠다고? 나는 아직 '생계형 배우'"

ⓒ 남소연

- 필모그래피를 보면 상업영화 독립영화 가릴 것 없이 정말 많은 영화에 출연하셨는데 그만큼 시나리오를 많이 받는 건가요, 아니면 찾아다니는 편인가요.
"음… 받기도 받지만 아직 찾아다니는 편이죠. '뚜벅이 배우'라고.(웃음) 처음에는 제가 출연한 단편영화들 복사해서 프로필과 함께 들고 영화사들을 많이 찾아다녔거든요. 그때는 영화사 문 열고 들어가면 거기 직원이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놓고 가세요' 그래요. 그런 상황에서는 들어오는 배역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한 거죠. 단편이든 장편이든,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 프로필을 안 받아본 영화사는 아마 없을 거예요. 요즘에는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문전박대 당하지는 않아요.(웃음)"

- 활발하게 활동하시니까 지금은 경제적인 문제에서는 자유로우시겠어요.
"아직까지 저는 '생계형 배우'라고 봐야죠.(웃음) 주위에서는 '너 돈 좀 벌었겠다'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영화 출연하면서 제 사정보다는 영화사쪽 사정을 더 이해하면서 했기 때문에 출연료를 많이 받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출연료 때문에 얼굴 붉히는 것도 싫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은데 '저 배우는 출연료 적게 줘도 한다' 이렇게 인식되는 부작용이 생길까 봐 걱정이긴 해요. 정당하게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연기에 대해서 인정받고 싶은 생각도 있는데 마음이 약해서 냉정하게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 출연료 부분도 그렇고 매니지먼트 회사에 속하지 않은 채로 활동하시다 보니 받는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소속사를 갖고 활동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예전에 소속사가 없어서 캐스팅에서 미끄러지는 경우가 있긴 했죠.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주연배우가 소속된 회사에서 조연까지 끼워서 패키지로 거래하기도 했거든요. 올해 들어서 후배 한 명이 저 같은 '뚜벅이 배우'들 모아서 서로 교류도 하고 영화사와 미팅 약속도 잡고 하는 기획사 하나 만들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기획사 이름을 '뚜벅이 엔터테인먼트'로 하자고.(웃음)"

- 상업영화 쪽에서는 형사 전문 배우라고 할 만큼 형사 역할을 많이 맡으셨는데요.
"박신우 감독의 <미성년자 관람불가>에서 형사 역을 맡은 후로 그 캐릭터가 워낙 강렬해서인지 형사 역 제안이 많이 들어왔어요(정인기는 이 단편에서 미성년 아이를 취조하는 형사였다가 나중에 미성년자는 감옥에 안 가니까 '니가 죽인 거다'라고 아들에게 모친 살해범 연기를 강요하는 비정한 아버지로 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형사역을 많이 했던 것은 3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그리 넓지 않은 것도 한 이유에요. 그래서 의사나 형사가 주로 돌아오는 역이었죠. 그래도 각 영화마다 같은 형사라도 캐릭터는 좀 달랐어요.(웃음) <검은 집>에서는 사무적이고 명확한 증거가 있는데도 제보를 묵살해 버리는 형사였고, <우리 동네>에서는 능청스러운 형사, <추격자>에서는 무능한 공권력을 상징하는 정말 피곤에 찌든 형사였죠.(웃음) 형사라는 직업보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 반면 단편독립영화 쪽에서는 개성이 강한 역할을 많이 하셨잖아요. 선함과 악함이 한데 버무려진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그런 캐릭터라고 할까. 잠깐 나오는 <똥파리>만 해도 한편으로는 아내를 때리는 잔인함을 보여주다가 자기보다 강한 사채업자(상훈)에게는 비굴하게 맞기만 하거든요. 특히 <약탈자들>에서는 연쇄살인범 택시기사를 연기하셨는데 겉으로는 순해 보이는 얼굴이라 더 섬뜩했던 것 같아요.
"한 감독이 저한테 '이미지가 선하고 착한 면이 있는데 어떨 때 보면 눈빛이 참 사악할 때가 있어' 그런 적이 있어요. 저도 거울을 보면서 잠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죠. 선함과 악함을 편안하게 오가는 그런 배우로 관객들이 봐주시면 정말 고맙겠죠. 외면은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인물인데 내면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악한 기운이 있는 그런 인물을 연기해보는 게 바람이기도 하고요."

- 많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대중의 뇌리에 강하게 남을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지는 않으세요?
"주위에서도 너무 묻어가지 않느냐고 지적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하지만 조연은 주연이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거든요. 자동차가 터널을 지나가는데 거기 켜져 있는 전등이 어떤 것은 환하고 어떤 것은 아예 꺼져 있는 것보다 밝기가 일정해야 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도드라지는 조연이 있는 것보다 보일 듯 안 보일 듯한 조연이 있을 때 작품이 큰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아한 세계>에서 공사현장 소장역을 맡았는데 주인공 송강호씨와 공사 중인 아파트 옥상에서 맞닥뜨리는 장면이 있어요. 어쩌면 조폭의 무시무시한 폭력적인 힘에 압도당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강하게 충돌하기보다는 에너지를 비우고 한마디씩 툭툭 내뱉는 그런 여유를 부렸죠. 그런 자연스러우면서도 여운이 남는 연기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해주셨어요.

그래도 앞으로는 욕심을 한번 내려고요. '저 배우 전에는 볼 수 없는 느낌의 연기를 하네'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백야행>에서 맡은 역할이 아마 그런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맡은 역이 아주 사악한 인물이에요. 관객들이 '아휴~ 어떻게 저런…'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느낌이 잘 나왔는지 저도 많이 궁금해요. 감독은 좀 더 많이 나오는 다른 역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제가 이 역에 욕심을 좀 냈죠."

"연기 생활 19년, 앞으로는 욕심 한번 내보고 싶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에서 '이 형사'로 분한 정인기. ⓒ 영화사 비단길


- 올해만 해도 출연작 <약탈자들><똥파리><바다 쪽으로 한 뼘 더>가 개봉했고 작년에도 장편은 <신기전><눈에는 눈 이에는 이><크로싱><마이 뉴 파트너><추격자>에, 단편도 <암사자(들)><수퍼 살롱 미장원> 등에 출연하셨어요. 2007년에도 개봉한 작품만 11편, 2008년에도 12작품이나 됩니다. 많은 작품에 출연하는데 부담도 없지 않을 것 같아요.
"저야 '생계형 배우'라 어쩔 수 없이 많이 하는 편인데 사실 걱정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너무 자주 얼굴이 나오니까 그냥 익숙해져버리는, 특징이 없는 배우가 될까 그게 가장 두려워요. 뭔가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은데 우선 작품을 잘 만나야 할 것 같아요."

-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을 것 같아요.
"단편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미성년자 관람불가> 같은 작품들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들이고 상업영화에서 처음으로 형사 역할을 맡은 <주홍글씨>도 기억에 남아요. 특히 당대 최고 배우였던 한석규 선배와 같이 작업하면서 설레던 기억도 있고 그 작품을 계기로 <그때 그 사람들>에 한석규 선배 친구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어요. 근데 요즘에는 작품은 좋았는데 흥행이 잘 안 된 작품이 마음에 더 밟히네요. 권형진 감독의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주인공이었던 엄정화씨 오빠 역할이었는데 참 따뜻한 가족영화였고 그런 작품을 하게 된 게 배우로서 큰 기쁨이었어요. 그리고 2007년 KBS 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도 참 좋은 작품이었는데 <주몽>에 밀려서 시청률이 저조했죠."

-드라마와 영화, 영화 중에서도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영역을 모두 경험하고 계신데요. 어느 쪽이 가장 작업하기에 편하세요?
"물론 단편이나 독립영화 쪽이 편하죠. 장편 상업영화는 흥행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느끼는 압박이 상당히 센 편이에요. 굳이 구분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영화쪽은 흥행보다는 감독의 세계관과 철학을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배우나 스태프들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창의력을 발휘해서 연기를 할 수 있죠. 드라마는 정말 힘들어요. 촬영 초반에는 괜찮은데 후반으로 갈수록 '암기력이 연기력'이 되는 상황이 돼버려요. 대본이 촬영 직전에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까."

- 벌써 19년째 연기 생활을 해오고 계신데 그래도 힘든 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 지금도 저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이 돼요. 왜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놀지 못할까, 그게 가장 힘든 점이고 불만이죠."

- 상 욕심은 없으세요? 목표가 있다면요?
"큰 욕심은 없는 게 아니라, 상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웃음) 목표는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라보는 것?(웃음) 그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어떤 배역을 맡아도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이미지보다 더 끌어올리는 연기를 하고 싶죠. 물론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겠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조연상 후보에도 오르고 상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그리고 우리 영화계에서도 40대 배우들이 맹활약하면서 관객층이 상당히 넓어지고 있어요. 이런 흐름이 더 확산된다면 중년 멜로도 가능해질 텐데 그때가 되면 멜로물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웃음)"

정인기 약탈자들 추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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