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 "2009년 한국, 1567년 조선 닮았다"

김형오 국회의장 조찬강연 논평하면서 쓴소리 쏟아내

등록 2009.06.11 15:15수정 2009.06.1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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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전 경제부총리 ⓒ 김종철

조순 전 경제부총리 ⓒ 김종철

"임금과 신하들이 긴 안목을 가지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고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진언한 바 있는데, 45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은 비슷하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율곡 이이(1536~1584)의 진언을 동원해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 지도층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이 발언은 오늘(11일) 아침 롯데호텔에서 열린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이 끝나갈 무렵에 나왔다. 조찬강연의 연사는 김형오 국회의장이었으며, 인간개발연구원 명예회장인 조 전 부총리가 마지막 총평을 맡았다. 

 

율곡 이이가 31세 되던 해인 1567년에 선조에게 올렸던 진언은 다음과 같다(지금부터 소개하는 내용은 강연회 현장에서 취재수첩에 받아 적은 부분과 강연이 끝난 뒤 조 전 부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추가로 확인한 부분을 가지고 작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天下之事 不進卽退(천하지사 불진즉퇴) 

國家之勢 不治卽亂(국가지세 불치즉난)

進退治亂 實在於人(진퇴치난 실재어인)

 

조 전 부총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취지로 풀이했다. 

 

"천하의 일은 나아가지 않으면 물러난다.

국가의 세는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지러워진다.

나아가고 물러나고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실로 사람에 달려 있다."

 

풀이를 끝낸 조 전 부총리는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은 간단(間斷)없이 변화한다. 모름지기 변화에 시의 적절하게 부응하는 것이 정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의 혼란을 빨리 수습하는 것이야말로 급선무일 것이다. 나아가 청와대와 여당은 지난 1년 4개월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 어떤 변화가 진행됐는지 차분하게 연구해야 한다. 좋아진 것도 있을 것이고, 나빠진 것도 많을 것이다. 긴 안목을 가지고 나라의 정세를 파악해야 한다."

 

화제는 다시 율곡 이이의 진언으로 돌아 왔다.

 

"율곡 선생은 문제와 해답은 결국 사람에 있다고 했다. 여기서 사람은 당시 조선의 지도층을 가리킨다. 임금과 신하들이 긴 안목을 가지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고 질타한 것이다. 정승과 판서 등 대관(大官)은 자리 보존에 급급하고 소관(小官)은 이해관계로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율곡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책임은 임금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 전 부총리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임금과 신하들이 긴 안목을 가지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45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은 비슷하다. 정치를 주도하는 정당이나 파벌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정치 패턴은 같다."

 

참고로 1567년은 선조가 즉위한 해이며, 임진왜란을 앞두고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한편 조 전 부총리는 "경제 문제에 대해 더욱더 강력하게 발언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선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이날 연사로 나선 김형오 의장은 강연 중에 진반농반으로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에게 '위대한 경제학자가 되는 법'을 알려드리겠다. '지금 경제위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엄청난 경제위기가 닥쳐올 것이고, 한국 경제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라고 말하라. 주변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자꾸 그렇게 떠들어라. 그러면 10년 안에 경제위기가 올 것이고, 그 사람은 한순간에 위대한 경제학자로 칭송받을 수 있을 것이다."

 

총평에 나선 조 전 부총리는 이 발언을 상기시킨 뒤 다음과 같이 받아쳤다.

 

"김 의장이 소개한 '위대한 경제학자가 되는 법'을 잘 들었다. 나한테 한 말처럼 들렸다(청중 웃음). 내가 약간 그런 식으로 말해 왔다. 사실 부족한 측면이 있다. 앞으로는 더욱더 강력하게 발언하겠다(청중 웃음)." 

    

한편 조 전 부총리는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을 지적하면서 "'나만 옳다'는 독선이 조폭 논리와 비슷하다", "속도전과 빨리빨리만 강조하는 조급증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정신적 폭력을 서슴지 않고 있는데, 그것이 주먹으로 때리는 폭력보다 더 무섭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기자, <시민의신문> 기자, <오마이뉴스> 편집위원, <여의도통신>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2009.06.11 15:15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기자, <시민의신문> 기자, <오마이뉴스> 편집위원, <여의도통신>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조순 #김형오 #이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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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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