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대가족 100명이 사는 마을이 있다?

[탐방] 밥상·교육·생활 나누는 '수유리 북한산 자락 마을공동체'

등록 2009.04.08 11:47수정 2009.04.0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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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자락 밑 수유리 마을은 봄이었다. 구청의 담장 허물기 행사가 굳이 아니어도 낮은 담벼락 넘어 목련, 진달래, 개나리가 터질듯 봉오리를 머금고 있었다. "여기가 서울 맞아"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조용한 집들은 적당히 아담하고 정감가는 만큼의 세월이 묻어있었다. "이곳 여기저기에 우리 공동체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사람들은 교통이 불편하다고 선호하지 않지만 우리 가족들은 여기를 더 좋아한답니다."


정말 골목 곳곳에서 아기를 안은 엄마와 사람들이 나와 김수연 수련실장과 주재일 '아름다운마을' 편집장에게 인사를 한다. 더불어함께 사는 100여명의 마을공동체, 수유리 마을을 다녀왔다.

이곳의 마을공동체가 시작부터 수유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91년 총신대 신학생들의 모임에서 출발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학교보다는 현장과 거리를 더 많이 쏘다니던 신학생들이 공동체의 필요성을 먼저 느꼈다. '새날을 여는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졌고 94년에는 교회의 청년들을 향해 문을 열었다. 99년이 되자 완전히 열린 공동체로 초기 총신대 신학생들보다는 '성서에서 배운 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이게 됐다.

"아기 안고 마실 갈 수 있는 거리만큼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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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나누는 이곳에서는 점심과 저녁 식사 전에 함께 사회와 공동체와, 자기 자신을 위해 마음을 열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 김진이


"선배들이 목회 현장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지속가능한 싸움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지고지순하고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고백 속에서 생활의 공유가 필요하다는 깨달음까지 이어졌죠."

주재일 편집장은 조금씩 몸집이 커지고 공간이 달라져온 수유리 공동체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당시까지만 해도 주 터전은 혜화동이었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결혼을 하고 삶의 터전이 필요하게 되자 '생활공동체로 어디가 좋을까'에 관심을 두게 됐다. 안정적인 터전이면서도 2세에게는 생태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공간이 어딜까. 서울시내에서 그렇게 어려운 주문을 만족시켜준 곳이 바로 북한산 자락 수유리였다.


"한꺼번에 다 옮겨온 게 아닙니다. 집을 옮길 상황이 되는 지체들이 하나둘씩 이곳으로 이사를 왔죠."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이들답게 이들에게는 마을에 대한 정의가 남달랐다. 김수연 실장은 "공동체 내에서 소외되기 쉬운 여성, 특히 갓난아기가 있는 여성들이 아기를 안고 마실을 갈 수 있는 거리, 아이들이 이모, 삼촌네 집에 자기 혼자 다녀올 수 있는 거리"를 마을이라고 설명했다. 거창하지 않은 쉽고도 선명한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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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가 자라면서 아이들을 함께 키우기 위해 마련한 공동육아 어린이집. 작년에 영구터전을 마련해 영아반부터 취학전까지 20여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다. ⓒ 김진이


그렇게 한집씩 모여 이제는 아이를 합쳐 100명이 넘는다. 100명의 대가족은 3개의 마을과 교회로 나누어진다. 교회는 3명의 목회위원들이 인도한다. 3명 중 최철호 목사를 제외한 2명은 평신도 출신 목회위원이다. 매주일에는 마을별로 모이고 한달에 한번 전체가 모인다.

"실제로 모여 사니 우리가 꿈꾸었던 것보다 더 재미있어요. 햇수가 지나갈수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분명한 삶을 살아간다는 확신이 들어요."

청년이었던 이가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는 만큼 마을공동체도 자랐다. 2001년 대안교육연구모임 내안길, 2003년 품앗이 육아를 시작했다. 2005년 8월 공동육아 아름다운 마을 어린이집이 인가를 받았고 2006년에는 춤추는 방과후 배움터가 생겨났다. 작년 3월에는 대안초등학교인 아름다운마을학교가 문을 열었다.

주말계절학교는 주말과 방학동안 마을의 교사와 어린이, 자원교사들이 새로운 배움을 일구는 소통과 만남의 장으로 열린다. 교육사랑방은 부모, 교사, 마을주민들이 교육의 다양한 주제를 갖고 모이는 자리다. 큰 도로변에 마련한 사무실과 수련실은 공동 회의나 요가, 택견 등의 모임을 위해 활용된다.

"이곳엔 헐레벌떡 분주히 저녁 차리는 광경 볼 수 없어요"

마을공동체는 생명평화연대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만나기도 한다. 마을공동체를 지원하고 이웃과 지역사회와 나누는 나눔마당과 살림마당, 교육수련마당 등으로 나뉘어 안팎의 활동을 펼친다. 이렇게 다양한 터전과 마당이 생기면서 자체 활동가와 실무자도 생겨났다. 김수연 실장과 주재일 편집장처럼.

영구터전인 어린이집을 포함해 대안학교와 사랑방 공간 확보 비용 등 공동체 활동을 위한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는 걸까.

"일반 교회들은 십일조라고 하죠. 우리는 '나눔의드림'이라고 부릅니다. 각자의 여건에 맞게 내고 공동경비는 그때마다 모금을 합니다."

공동체는 가장 중요한 밥상을 공유하고 있다. 점심과 저녁을 나눈다. 맞벌이 주부가 헐레벌떡 뛰어와 저녁을 차리느라 분주한 모습이 이곳엔 없다. 자원 요리사들이 돌아가며 식사를 맡고 비용은 먹는 이들이 부담한다. 점심도 가능해 공동체의 활동가 뿐아니라 임산부나 혼자 식사를 하는 이들도 편한 마음으로 함께 나눌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다 보면 갈등이 있을텐데 어떻게 해결했을까. 주재일 편집장은 이 문제도 속시원하게 답해 주었다.

"대가족이라 생각하면 한사람의 염치없는 행동에 대해 누나가 얘기해주고, 삼촌이, 이모가 지적해주죠. 우리도 그렇게 합니다. 서로가 촘촘한 그물망처럼 연결돼있죠. 그리고 마을마다 목회위원들이 있구요."

누군가에게 쉼과 성찰이 필요하다면 목회위원은 그에게 3박4일의 생활수련을 권유한다. 이를 받아들인 이는 대안학교로 사용되는 주택에서 출퇴근하며 자기와의 대화시간을 갖게 된다. 아이가 자라듯이 마을공동체도 이제 곧 성년이 되는 나이다. 그만큼 성숙하게 강해져 안팎의 크고 작은 문제들쯤이야 큰 품으로 얼른 안아줄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돌잔치를 하면 공동체에서 공동체 방식으로 한번, 가족, 친척들과 사회에서 하듯이 또한번, 그렇게 두 번 치르곤 했어요. 요즘 서서히 잔치 문화가 공동체 안으로 모이고 있어요. 이중적인 모습이 통합되고, 형식없이 조언하고 나누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거죠."

기자가 찾아간 날도 함께 점심을 나눴다. 식사에 앞서 공동체 구성원들은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 일제고사로 부당해고당한 교사들, 그리고 스스로의 온전한 삶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신앙과 생활, 이상과 현실을 온전히 하나로 만들어가는 이들 공동체를 바라보며 마음 가득 부러움이 밀려왔다. "꿈은 서로 꾸어주는 것"이라는 주재일 편집장의 말이 여운으로 길게 남는다.
#공동체 #마을 #수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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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 대안언론이 희망이라고 생각함. 엄흑한 시기, 나로부터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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