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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적 보수성의 깃발 아래 펼쳐지는 광기의 현장

[영화 갉아먹기 0] <미스트> 텍스트 해독 안내서

09.02.27 09:54최종업데이트09.02.2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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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 줄거리
안개 속엔 무언가가 있다!

 

평화로운 호숫가 마을 롱레이크, 어느 날 강력한 비바람이 몰아친 뒤, 기이한 안개가 몰려온다. 데이빗은 태풍으로 쓰러진 집을 수리하기 위해 읍내 그의 어린 아들 빌리와 옆집 변호사 노튼과 함께 다운타운의 마트로 향한다. 하지만 데이빗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두려움은 현실로 나타났다!

 

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는 도중 동네 노인이 피를 흘리면서 "안개 속에 무언가가 있다!"며 뛰쳐 들어왔다. 마트 밖은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정체 불명의 안개로 뒤덮였고, 정체불명 거대한 괴생물체의 공격을 받는다. 마트 안에는 주민들과 데이빗, 그의 아들 빌리가 고립되었고, 지금 밖으로 나간다면 모두 죽는다는 미친 예언자가 그곳을 더욱 절망스럽게 만든다. 몇 시간 뒤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괴물들의 등장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고, 살기 위해 살아 남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다.

 

과연 그들 앞에 펼쳐진 것들은 인류의 재앙일까? 그곳에서 그들은 살아나갈 수 있을까?

 

- 다음 영화 코너에 공개된 것입니다.

*영화를 안 보신 분들도 계실 것이기에 이렇게 간략한 줄거리를 첨부합니다. 하지만 이 글은 <미스트>라는 난해한 영화를 보셨거나 또는 앞으로 보실 분들을 위한 일종의 설명서 개념임을 알려드립니다.

 

<미스트> 오리지널 포스터(왼쪽). 영화가 국내 개봉하면서 '블록버스터'스러운 떡밥을 던지 듯 변경된 모습. ⓒ Darkwoods Productions

 

우선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낚시의 성격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고편이 앞서 개봉한 우주전쟁 따위의 재난영화 느낌을 풍기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 개봉 당시 포스터도 안개가 아닌 불길에 휩싸인 것으로 바뀌었죠. 더군다나 분명히 '블록버스터'라고 쓰여 있습니다. 블록버스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지기 전에 이미 관객들 사이에는 단어가 뜻하는 것에 대해서 정형화 된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스트>의 어디가 '블록버스터'스럽다는 것인지...

 

그러한 부분들도 함께 비판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영화를 안 본 관객은 우선은 전달된 이미지만을 통해 기대를 품으며 극장을 찾을 것이고 텍스트 분석은 나중이니까요. 이 때문에 마치 블록버스터인 듯 행세하며 분위기를 풍긴 점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CG를 근거로 미스트를 비난했던 관객들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쓰레기 취급당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죠.

 

초반 폭풍우가 몰아치고 안개가 깔리는 장면은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안개가 무슨 여름날 모기유충 박멸하는 소독차 연막 마냥 마을을 뒤덮는 장면에서는 전율마저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열려진 창고 문틈으로 괴물의 일부분이 튀어나온 순간, 맘속으로 "야메떼~!"를 외치며 조금의 불안을 감지하고야만 것입니다.

 

안개하면 고딕 호러의 분위기, <디 아더스>류의 그런 분위기, 유령이나 흡혈귀 따위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지배적이기 마련이죠.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는 괴물의 일부분을 보고선 당황할 수밖에 없더군요. 뭘까? 새로운 시도일까? 그런데 육지에서 왜 바다괴물 촉수가 나타나지? 의아함과 함께 상당히 실망스러운 CG를 애써 무시하면서 작품에 몰입하려고 애썼고요.

 

마트라는 제한된 공간에 고립된 절박감은 다이하드 버금가는 수준. 그리고 생존을 위한 맛있는 것도 많아 아기자기한 판타지도 충족시킴+_+/ ⓒ Darkwoods Productions

 

다행히도 영화는 고립된 공간에 갇힌 군상들의 대립으로 흥미를 더했으며 안갯속 미지의 괴물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의 흐름 또한 서스펜스를 창출하기 충분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높이 평가받을 만한 부분이죠. 하지만 이윽고 나타난 괴물의 정체는 악마의 머리를 가진 대형 모기 유충들과 선사시대 익룡을 떠올리게 하는 몰골들로 기괴한 의문만 더합니다. 누구 말마따나 CG가 정말 '우뢰매' 수준이었습니다. 아니, 괴물의 모델이 애초에 우뢰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스타게이트>도 아니고 갑자기 웬 차원의 문 운운하냔 말이죠. "관객 여러분~난 설명하고 있어요~" 식의 대사를 남기고 죽어가는 캐릭터의 몸부림이 안쓰러움을 넘어 실소를 유발시킬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옥의 티 정도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하건데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영화가 평가 절하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저예산 영화인데다가 나머지는 워낙 짜임새 있는 탄탄한 작품이기 때문이죠. 단지 약간 기스 나는 정도랄까...

 

개봉 당시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너무 역겨워서 토할 뻔 했습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다만 영화의 완성도가 문제는 아니었고요. 하지만 네이버 영화 평점은 지금도 6점대에 머물고 있군요. 왜 그럴까요?

 

이 영화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막판에 극적인 사건들을 몰아서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관객들은 심한 혼란을 느끼게 되는 거고요. 예를 들어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 당시 쏟아진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은 무엇을 방증할까요? 이 영화의 결말이 열려있다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그 결말에서 철저히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의 수준에 대해서 한심함을 느끼게 되니 차라리 각자 편한 해석을 내리며 관람 시간을 합리화 시킬 수밖에 없는 거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영화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려선 안 됨을 설파한다. 주인공의 파국이 그 이유다. 영화가 희망을 남겨 놓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희망을 버렸기 때문에 그러한 파국이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자살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마치 새마을 운동 정신을 계승한 듯, 이러한 해석은 왠지 올바른 것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사실 굉장히 잔인한 주장입니다. 또한 굉장히 보수적이죠. <미스트>의 후반부에서 주인공과 그 일행은 괴물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잔인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길 바라며 희망을 찾아 떠납니다. 이 때문에 영화의 상황 자체가 개인의 의지를 거스르며 주어지는 시스템에 비유될 수 있고요. 하지만 그것을 벗어나려던 주인공 일행의 의지를 무참히 밟아버리는 것은 결국 환경-시스템의 존재였습니다. 때문에 결말에서 말하는 것은, 자살하지 말라거나 희망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 될 수 없죠. 만일 그런 메시지라면 이건 사람 죽여 놓고 빈정대는 조롱이나 다름없고요.

 

예를 들어 주인공 일행이 파국을 맞은 후, 마치 개선행진을 하듯 등장하는 군용 트럭에 탄 아줌마를 보시죠. 영화는 왜 굳이 그 장면을 보여줘야 했을까요? 이것은 테마를 위한 일종의 확인사살 입니다. 다른 해석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주인공 일행의 비극을 통해 '희망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강조하는 장면이 트럭에 탄 아줌마의 모습입니다. '당신이 희망을 위해 무얼 하던 간에 자비란 없으며 저주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셈이죠. 위험 속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안갯속으로 들어갔던 아줌마는 아이들과 살아 돌아오고, 사람들과 살아남고자 했던 주인공은 살인자가 되어 인생을 상실합니다. 몰론 다른 호러에서도 이런 식의 잔인한 결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불편한 것은, 이것을 오락적 요소가 아닌 설교하는 듯, 고자세를 취하며 관객에게 훈계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놀랍도록 완고한 태도로 말이죠. 실제로 주인공이 트럭에 탄 아줌마를 보는 시점은 로우 앵글을 통해 보여 집니다.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느껴지는 그 비참함이라니. 아줌마의 존재와 함께 유일한 '희망'으로 제시되는 것의 정체는 굉장히 불합리한 비유로 읽힙니다. 바로 군대로 상징되는 국가 권력, 즉 시스템입니다. 트럭에 탄 아줌마는 그러한 시스템에 종속됨을 나타내고요.

 

트럭에 탄 아줌마도 사실 보수의 상징입니다. 애초 그 아줌마가 찾아 나선 것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와요. 그것은 다른 누군가, 즉 타인이 아닌 '가족'이라는 존재였죠. 이것은 전통적 개념을 중시하는 가족주의를 반영합니다. 가족을 위해 위험 속으로 들어갔던 아줌마는 살아 돌아오고, 아내를 버려두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주인공은 파국을 맞는 결말.

 

마지막에 구원을 찾아 떠나는 차 안의 무리는 무엇을 반영하나요? 종말론적인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그들은 마치 노아의 방주에 탄 공동 생명체와도 같은 유사 가족입니다. 신세계를 건설할 희망인 것이죠. 하지만 이 급조된 가족은 가치와 존재를 무시당한 채 '진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바로 이러한 부분이 전반부에 전통적으로 인정되는 가족상을 찾아 혼자 안갯속으로 들어갔던 아줌마의 당당한 모습과 대비되는 부분인데, 생각해 보죠.

 

초반에 안갯속으로 들어간 모든 사람들이 끔찍한 비명과 함께 갈가리 찢겨졌는데, 왜 이 아줌마는 살아 돌아왔을까요? 특전사 출신은 아닐 텐데. 아줌마는 결국 순결한 가족의 가치를 지나치게 예민하게 강요하는 가족주의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게다가 (사이비인지 정통인지 논의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기독교 시각에 근거한 논의와 광기만이 존재하다가 이단으로 판명되는 순간 처형당하는 선정적 역겨움. 이렇게 완고한 보수적 상징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미스트>는 안개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삶의 불확실성을 말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그 안갯속에서 나타나는 괴물은 삶의 비극이며, 살아남기 위해 아우성치는 모습들이 그야말로 덧없음을 보여주고 있죠. 시스템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 개인의 비극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개인들이 군중을 이루고 광기에 휩싸이는 장면은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결말은 삶이란 뜻대로 되지도 않으며 희망은 없다는 것만 설파하는 셈일까요? 한 가지 해법이 있다면 보수적인 가치관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초반 아줌마의 행동, 가족주의와 종교, 군대 따위로 상징되는 보수주의적 삶이죠. 종교의 경우도 광신도 여인의 말처럼 재물을 바치며 시간을 끌었다면 살 수 있었겠죠. 군대가 나타나 도와줬을 테니까. 그러나 얼마나 잔인한 폭력입니까.

 

더군다나 영화의 비극이 군대로 상징되는 조직화된 국가 폭력으로 인해 초래되었는데도, 결말의 구원자가 '군대'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다 있을 수도 있다니!

 

때문에 영화를 보고나면, 전근대적인 몰상식이 튀어나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영시간 내내 온갖 절망과 분노와 악이 쏟아져 나오더니 마지막에는 쓸데없는 희망이 기어 나와 조롱하듯 사라지는 거죠. 애써 CG를 무시했던 관객들까지 분노하며 악평을 쏟아내는 것은, 그만큼 어이를 잃게 만드는 불합리한 상황들을 마치 정답인 것처럼 나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미스트>의 묘미가 있습니다. 주인공 일행을 파국으로 이끈 그 상황 자체가 역설적이며 그러한 것이 오히려 잔인한 현실의 시스템을 반영하면서 비판하게 만드는 것이죠. 다만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그러한 것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이것이 우선적으로 해독되어야 시대상이 반영된 부분들을 포착할 수 있을 텐데 의외로 어려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너무 많은 텍스트 장치들이 정신없이 흘러오거든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스쿨 오브 오마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2.27 09:54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스쿨 오브 오마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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