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 그까이꺼 나무젓가락만 있으면 돼유”

조건이 아니라 마음이다

등록 2009.01.23 11:07수정 2009.01.2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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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어디 없어유? 윷놀이 그까이꺼 나무젓가락만 있으면 돼유.” 한 사모님의 그 말씀, 정말 맞는 말이었다. ⓒ 김학현

“젓가락 어디 없어유? 윷놀이 그까이꺼 나무젓가락만 있으면 돼유.” 한 사모님의 그 말씀, 정말 맞는 말이었다. ⓒ 김학현

 

며칠 전 지역의 교회들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 부부들이 수련회를 간 적이 있다. 막간을 이용하여 윷놀이를 하기로 전격 결정하였다. 예정에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윷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의 지하에 있는 대형슈퍼에는 윷가락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시내로 나간 일행에게 윷가락을 사오라고 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아니, 통영에는 윷가락이 없단 말예요?”

 

짜증난 일갈이 터져 나왔다. 왜 없겠는가. 들어간 슈퍼나 마트에 윷가락이 없는 것일 뿐이다. 하는 수 없이 그럼 다른 놀이를 생각하자고 웅성거리고 있을 때, 한 사모님께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었다. 윷가락 대타를 찾은 것. 대타는 다름 아닌 나무젓가락이었다.

 

궁하면 통한다

 

“젓가락 어디 없어유? 윷놀이 그까이꺼 나무젓가락만 있으면 돼유.”

“예? 나무젓가락으로 윷을 만들어요?”

“그럼유. 동전만 있어도 되는데?”

“그래도 묵직하니 던지는 맛이 있어야지요. 떨어지는 소리도 있어야 하고.”

“한 번 해보기나 하구 그런 말해유.”

 

여러 사람의 긴가민가한 의아함과 야멸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사모님의 확고한 비전에 우리는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라면을 사며 가져온 나무젓가락 두 개가 재료로 올라왔다. 그리고 볼펜 한 자루. 그 사모님은 한 면을 볼펜으로 쓱싹쓱싹 아무렇게 칠하더니, “여깄슈!” 하고 방바닥에 던졌다.

 

“어? 걸이네?”

 

일행 중 한 명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쳤다. 모두 다 “그러게”라며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었다. 말판이 필요하다. ‘뭐로 한담?’ 서로 수군거리고 있을 때 한 목사님이 시내투어를 안내한 팸플릿 뒷면에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A4용지이기에 고작 말판이 A4사이즈밖엔 안 되었다. 보통 윷놀이를 할 때는 적어도 달력 한 장쯤은 되지 않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말은 무엇일까?’ 이젠 나도 궁금해졌다. 과일 껍데기가 곁에 널려 있으니까 그것으로 하기로 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난 것이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정말 그랬다. 막 편을 짜고 윷놀이를 시작하려는데 한 목사님이 말했다.

 

“툇도(뒷도)가 있어야지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젓가락 하나를 들어 그 목사님이 볼펜 칠을 한 뒤편에 검게 뒷도임을 나타내는 기다랗고 굵은 점을 찍었다. 이렇게 하여 완벽한 윷놀이 도구가 완성된 것이다.

 

참,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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팸플릿 뒷면 말판, 과일 껍데기 말, 그리고 나무젓가락 윷가락, 이들도 놀이와 재미의 도구일 수 있다. ⓒ 김학현

팸플릿 뒷면 말판, 과일 껍데기 말, 그리고 나무젓가락 윷가락, 이들도 놀이와 재미의 도구일 수 있다. ⓒ 김학현

 

이렇게 궁색한 도구를 가지고 놀아도 윷놀이가 재미있을까? 모두가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재미있었다. 난 글을 쓰는 지금, 거의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무젓가락 가지고 윷놀이 해봤슈?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유.”

 

기가 막히게 재미있었다. 이처럼 재미있는 윷놀이는 내 생전 처음 해봤다. 교회에서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안고 살던 이들이 모처럼 해방된 기분으로 멀리 남녘까지 내려와 여관에 든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다. 거기다 실컷 웃을 수 있는 윷놀이가 있으니 말해 뭐하겠는가.

 

근데 한국 사람은 내기를 해야 된다고 우기는 목사님이 있었다. 할 수 없이(?) 진행본부에서 내준 치약을 걸기로 했다. ‘목사님들도 내기 도박을 합니까?’ 혹자는 이리 비방할지 모른다. 그런 이들에게는 ‘목사들도 그럽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치약이 얼마짜리인지는 모른다. 관심도 없다. 어차피 ‘내기’라는 룰을 정하고 재미있게 놀기 위한 장치일 뿐이니까. 대강 부부가 한 팀이 되도록 섞여 앉고 윷놀이를 진행했다. “윷이다!”, “툇도다!”, “큰 거 한 사리!” 떠드는 함성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하도 커 옆방에서 달려올까봐 조바심이 일 정도였다.

 

서로 자제하기를 당부해가며 나무젓가락 윷을 던지는 꼴이라니. 상상이 가는가? 그런 모습 자체가 벌써 한 편의 코미디다. “좀 높이 던져요!”, “얼마나 더 높이 던져요? 나무젓가락 날아가겠네.”, “하하, 깔깔 ….” 게임이 끝난 후 치약은 모두 원래의 제 주인을 찾아갔다. 내기는 결국 허탕이 되었다.

 

사람들은 조건이나 상황이 행복을 여는 열쇠인 줄 안다. 아니다. 아무리 넉넉해도 불행할 수 있다. 아무리 궁핍해도 행복할 수 있다. 마음 속에서 행복은 자라기도 하고 삭아들기도 한다. 겉의 것이 행복을 좌우하는 게 아니고 속의 것이 행복을 좌우한다. 마음을 열면 행복은 그냥 다가온다.

 

우리의 윷놀이는 그럴싸한 윷가락이나 말판을 가지고 한 놀이가 아니다. 윷가락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진짜 윷판을 벌인 것이다. 윷가락을 탓했다면 결코 이르지 못했을 웃음과 행복이 우리들의 윷놀이에는 있었다.

 

“이번 설에 나무젓가락 윷놀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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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도(뒷도)가 있어야지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젓가락 하나를 들어 그 목사님이 볼펜 칠을 한 뒤편에 검게 뒷도임을 나타내는 기다랗고 굵은 점을 찍었다. ⓒ 김학현

“툇도(뒷도)가 있어야지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젓가락 하나를 들어 그 목사님이 볼펜 칠을 한 뒤편에 검게 뒷도임을 나타내는 기다랗고 굵은 점을 찍었다. ⓒ 김학현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갓피플, 당당뉴스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1.23 11:07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갓피플, 당당뉴스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윷놀이 #내기 #명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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