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방지법이라니? 그럼 우리가 반 국가 세력이란 말이오?"

[소설-2011 한일합방 11] 1. 작전명 '노란토끼'... 광주 하편

등록 2008.12.24 11:20수정 2008.12.2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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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아침 9시. 이른 시각임에도 광주 곳곳이 물샐 틈 없는 인파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집회가 열리는 구 도청 앞 광장에서 금남로, 충장로에 이르기까지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거나 피켓을 든 사람들이 넘쳐났다.

 

주최측이나 경찰의 시위대 예상 규모는 빗나갔다. 집회가 시작되기 까지는 3시간이 넘게 남았음에도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수는 이미 10만을 훌쩍 넘어 20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전라남도 각지에서 집회에 참가하기 위한 사람들을 태운 차량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시위대의 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기하 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30만이 넘는 사람들이 오늘 집회에 모여들게 분명했다.

 

광주는 분노하고 있었다. 비단 강대수의 죽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국민이 주인이어야 하는민주주의가 다시금 사라져가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 노골적으로 가진 자들만 우선시 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분노, 조상대대로 뼛속 깊숙이부터 내재되어 있는 일본에 대한 분노였다.

 

무엇보다 이근삼 정부 들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광주에 대한 역사왜곡은 광주사람들 입장에서는 가장 큰 분노를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였다.

 

광주는 이근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금 '빨갱이'들의 도시로 폄하되어 가고 있었다. 단적인 예가 1980년 군부 쿠테타에 맞서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5.18 항쟁’이 다시금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무장폭동으로 변질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서까지 5.18 광주항쟁은 ‘폭도들의 무장봉기에 의해 국가가 위해를 받은 엄연한 폭동’으로 왜곡되어 기술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근삼 정부를 탄생시킨 실세들 중에는 광주항쟁의 가해자였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는 과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계략일 뿐이었다. 하지만 엄연히 진실을 달랐다. 5.18은 민초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역사를 탈취한 군부세력에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대항한 민중항쟁이었다. 민중이 국가 권력 앞에 무기를 들었다고 하지만 이는 임진왜란 때 왜군들 앞에 맞선 의병들의 이유와 다를 바가 없었다.

 

윤보일 전 대통령은 호텔 방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멀리서도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광주 전역을 메워가고 있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윤보일이 머물고 있는 호텔은 강대수가 죽기 전 마지막 밤을 보냈던 바로 그 곳이었다.

 

"백 의장님. 강대수 선생님도 바로 이 자리에서 지금 저같이 광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나요?"

 

윤보일이 호텔 방 응접실 소파에 앉아있던 백완수에게 물었다.

 

"네. 그러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창 밖을 내다보시고는 '광주만 오면 가슴이 아프다'고 '광주사람들에게 또 죄를 짓는 것 같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죄를 짓다니요. 당치 않은 말씀을 하셨네요. 선생님이 일궈낸 것을 지켜내지 못한 제가 죄를 지은 것이지요. 다시는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서는 안될 놈들한테 정권을 넘겨준 것은 다 제 잘못이지요."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윤 전 대통령께서는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당장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언젠가는 알아줄 것 입니다. 역사가 알아줄 것 입니다."

 

"역사라. 그럴까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너무 순진했고, 무지했었습니다. 순진하고 무지한 나 같은 자는 나라의 중책을 맡아서는 안됐습니다. 너무 욕심이 앞섰습니다. 능력은 안 되는데 욕심이 앞섰어요. 후회만 남을 뿐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윤보일은 계속 창 밖을 바라본채 등을 돌리지 않았고, 백완수는 연신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만을 들이키고 있었다. 집회시간까지는 2시간. 둘 사이에는 그렇게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집회시간을 두 시간 여 남겨놓고 집회장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이 눈에 띄게 불어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시위대와 경찰간에는 이렇다 할 충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광주지방 경찰청 소속 경찰들은 일부 인원만 차량통제를 위해 나와 있을 뿐 대부분은 시위대가 운집한 구 도청 앞 광장 주변 한 곳에 집결해 시위대가 모여있는 장소 근처에는 일절 접근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일순간 상황이 바뀌었다. 경찰본청에서 대규모의 시위진압대가 도착하면서부터였다.

 

서울에서 내려 온 경찰병력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쏠 수 있는 시위진압용 차량을 광장 곳곳에 무차별적으로 배치해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보호복과 방패, 진압용 곤봉으로 중무장한 전경들은 광장 사방을 겹겹이 포위하는 형식으로 인간 바리케이트를 쳐 나갔다.

 

시위군중이 운집해 있는 곳과 맞닿은 지점에는 20여 년 전 군부독재 시절 악명 높았던 '백골단'을 떠오르게 하는 청바지와 재킷, 방석모 차림에 일반 전경들에 비해 더 길고 두툼한 진압용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본청 산하 특수 시위진압대가 빠르게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었다. 특히 특수 시위 진압대는 자리를 잡자마자 시위대의 반정부 구호를 저지하거나, 시위대가 들고 온 피켓 중 일부 강성내용이 적힌 피켓을 뺏는 등 초반부터 시위대를 강압적으로 제압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까닭에 집회현장 곳곳에서 일부 시위대와 진압경찰간 마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호텔 방에 있던 백완수의 핸드폰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백완수가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현장에서 집회준비를 하고 있던 전남대 학생회장 김찬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장님. 상황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경찰들이 시위대와 너무 밀접해 배치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광주경찰청 쪽하고 이야기가 다 끝났는데."

 

"광주 경찰청이 아닙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병력들입니다. 특수 시위 진압대 놈들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병력이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기다려. 내가 현장으로 지금 나간다. 사람들 흥분하지 않게 해."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이미 곳곳에서 전경들과 부딪히고 있습니다. 특수 시위 진압대 놈들은 일부러 도발까지 하고 있습니다."

 

"바로 내가 나갈 테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은 막아."

 

백완수는 마시고 있던 커피를 내려놓고 소파 구석에 놓여있던 자신의 양복 상의를 챙겨 입었다. 백완수의 다급한 전화통화에 귀를 곤두세우고 있던 윤보일이 말을 건냈다.

 

"무슨 일입니까?"

 

"전 지금 먼저 나가봐야겠습니다. 집회현장 상황이 다급한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경찰병력이 파견된 모양입니다. 이놈들이 사람들을 강하게 몰아붙이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답니다."

 

"무슨 소립니까? 광주 집회에 왜 서울에서 병력이 배치돼요?"

 

"이희태 이놈 새끼 짓이겠죠. 정권의 개새끼."

 

"나도 같이 나가겠습니다."

 

"위험합니다. 이대로면 제대로 집회를 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장이 안정될 때까지 여기 계셔야 합니다."

 

"별 걱정을 다하십니다. 백 의장 못지 않게 나도 몇 십 년을 길바닥에서 싸워온 놈이오. 더구나 서울에서 경찰 병력이 내려왔다면 내가 나서는 게 여러모로 유리할 겁니다. 그래도 명색이 전직 대통령이잖습니까."

 

윤보일은 백완수의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자기 역시 옷을 챙겨 입고 호텔 방을 나섰다. 백완수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윤보일의 뒤를 따랐다.

 

********************************************************

 

"우매. 이 씨벌놈의 짭새들아. 엄연히 신고까지 하고 집회하고 있는데 왜 이 지랄들이여? 대한민국은 엄연한 민주국가 아니여. 표현의 자유도 몰러? 이 씨벌놈들아!"

 

"헛소리 하지 말고 뒤로 물러서!"

 

집회현장 곳곳에서는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경찰들 간의 마찰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서로간에 욕설이 오갔고 아직까지는 사소한 수준에 불과했지만 폭력이 오고 가기도 했다. 특히특수시위진압대의 태도가 너무 강압적이어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윤보일과 백완수는 집회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경찰들이 집결해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경찰 쪽 수뇌부로부터 다시 한번 평화적인 집회보장에 대한 확답을 받을 계획이었다.

 

"책임자가 누구요?"

 

"접니다."

 

윤보일의 질문에 경찰쪽에서 정복차림을 한 40대 중반의 사내가 나섰다.

 

"당신이 광주경찰청장입니까?"

 

"경찰청 본청 특수 시위진압대장입니다. 오늘 집회의 질서유지는 저희가 맡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시죠?"

 

"압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요? 집회 신고도 했고, 허가까지 받아서 법이 보장한 집회를 하는데 왜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오는 거요? 그리고 광주에서 집회하는데 경찰청 본청 병력이 왜 출동한 겁니까?"

 

"저희 역시 법에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다. 뭘 보고 강압적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출동한 건 상부지시에 의한 겁니다. 저한테 물으실 사항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그 상부 한번 연결해주시오. 내가 직접 물어볼 테니."

 

"제가 그래야 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내가 직접 연락해 물어보지요. 백 의장님. 위원일 의원이나 길상지 의원한테 전화해서 이희태 경찰청장 핸드폰 번호좀 알아봐주시겠습니까?"

 

백완수가 핸드폰을 꺼내 이곳 저곳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잠시 후 누군가와 통화가 됐는지무언가를 받아 적은 후 윤보일에게 그 쪽지를 건냈다. 윤보일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쪽지에 적혀진 전화번호의 다이얼을 눌렀다. 신호음이 떨어지고 곧 이희태 경찰청장이 전화를 받았다.

 

"이희태 청장? 나 윤보일입니다."

 

"윤 전 대통령 각하. 저 같은 놈한테 전화를 걸고 이거 어쩐 일이십니까?"

 

"제가 지금 어디 와있는지 알고 계시죠?"

 

"글쎄요. 제가 각하께서 지금 어디 계신지 알 턱이 없지요. 어디신데요?"

 

"정말로 모르는 거요? 대한민국 경찰 총수가 경찰의 보호대상이기도 한 전직 대통령의 위치를 모른다는 걸 날 보고 믿으라고 하는 이야기입니까? 지금 광주에 있습니다. 내가 왜 여기 내려왔는지도 모른다고 하시지 않겠지요?"

 

"광주요? 오늘 집회 열리는 그 곳 말입니까? 나라의 큰 어른께서 어찌 그런 곳까지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그런 곳은 어른께서 가실 만한 곳이 아닌데요."

 

이희태의 능청스러우면서도 거만한 태도에 윤보일은 울분이 치밀었다. 이희태는 자신이 발탁해 키운 인물이었다.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있다면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어도 자신에게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거두 절미하고,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요? 경찰들이 우리를 폭도 다루듯이 하고 있지 않소? 그리고 도대체 무슨 근거로 본청에서 광주에 병력을 보낸 거요?"

 

"경찰이야 법에 따라 행동하는 것 아닙니까? 안 그래도 방금 전 보고 받은 바에 따르면 시위양상이 폭력적으로 변질되고 있나 본데, 그럼 경찰도 법에 따라 공권력을 발동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한테 따지실 일이 아니라 시위대한테 따지셔야 할 일인 듯싶습니다. 그리고 본청 병력이 파병된 것은 ‘테러방지법’에 따른 것입니다. 이게 뭔지 아시죠? 각하 때도 한차례 입안이 시도됐었으니까요. 물론 각하 때는 통과되지 못하고 지금 이근삼 대통령 각하 때 통과된 거긴 합니다만. ‘테러방지법’에 따르면 군부대 출동도 가능합니다. 경찰 본청 병력 출동이야 당연히 근거가 있는 것이지요."

 

'테러방지법'. 윤보일은 이희태가 말한 그 법안을 떠올렸다. 반체제, 반국가 전복 세력 등에 의한 국가 위급 상황 발생시 기존 하위법의 테두리를 넘어 군 병력 동원까지 가능하도록 한 법이다. 자신이 재직시 일부 의원들에 의해 입안되었지만, 오남용의 소지가 많다고 하여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었다. 설사 국회에서 통과됐다 하더라도 자신이 거부권을 행사할 그런 악법이었다. 그러다가 이근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수당인 현 여당에 의해 입법화되었다.

 

"테러 방지법이라니? 아니, 그럼 우리가 반 국가 세력이란 말이오?"

 

"아니. 오해는 마십시오. 그런 소리는 아닙니다. 이번 집회에 북한 간첩 놈들이 끼어들어 준동한다는 국정원 쪽 정보에 따른 겁니다."

 

"뭐요? 또 북한이요? 그 쪽도 요즘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걸 날 보고 믿으라고 하는 말이오?"

 

"국정원 판단입니다. 제가 관여할 사항은 아닙니다. 참. 제가 지금 회의가 있어서 통화는 이만 해야겠습니다. 집회가 평화적으로만 치러지면 경찰 역시 헌법에 나온 집회의 자유를 보장할 겁니다. 그러니 괜한 걱정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이희태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테러 방지법이라니'. 윤보일은 어이가 없었다.

 

이때 광장 남서쪽 구석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윤보일과 백완수, 그들 앞에 있던 특수시위대 지휘부까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쏠렸다.

 

"야, 이 새끼들아. 뭐 하는 짓이야!"

 

특수시위진압대 소속 경찰 한 명이 자신을 밀어붙이던 20대 초반의 여대생 한 명을 자신들의 무리 쪽으로 끌어 들인 후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이어 여대생의 몸을 곤봉으로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이들을 제지하기 위해 주변에 있던 몇 명의 사람들이 경찰 쪽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맨손의 그들이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들을 저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 역시 주변의 특수시위진압대 소속 경찰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한 명은 날카로운 방패 끝에 머리가 찍혀 온 몸이 금세 피투성이로 변해버리고 있었다.

 

"형님. 저 쪽 좀 보십시오."

 

집회현장에 나와있던 광주중앙파 보스 황창우가 부하의 말에 소란스런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봤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여서인지 경찰과 군중들이 서로 치고 받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아니 이건 양자간에 치고 받는 것이 아니었다. 경찰 측에 의한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저 씨벌 짭새 놈들. 모두 연장 챙겨서 저쪽으로 이동한다. 다른 쪽에 있는 애들도 몇 명 더 불러들여. 짭새 놈들 대갈통을 부셔버려도 나가 상관 안할랑께. 아주 반쯤 죽여버려."

 

황창우가 주변에 있던 부하들 20여 명을 데리고 사람들이 술렁이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집회현장 곳곳에 흩어져 있던 다른 조직원들 수십여 명도 연락을 받고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2008.12.24 11:20 ⓒ 2008 OhmyNews
#소설 #한일합방 #테러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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