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역사 교과서 논쟁’을 말하다

김영명 저 <좌우파가 논쟁하는 대한민국사 62>

등록 2008.12.23 13:45수정 2008.12.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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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대한민국사62 ‘좌우파가 논쟁하는 대한민국사 62' 표지 ⓒ 위즈덤하우스

살아가면서 우리는 항상 보편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 인식의 보편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은 어떻게 해도 미화될 수 없는 나쁜 일이고,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하고, 박정희가 근대화의 공헌을 했지만 독재자의 면모를 갖고 있었다는 인식이다. 사실 내가 역사에 대해서 나름대로 주관적으로 판단하던 시간인 노태우 정권 이후부터는 이 관점이 그다지 변할 일도 없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내 생각이 보편인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보수우파를 내세우는 이들이 계속해서 이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세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가 근대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 김구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재평가, 4·19 데모론, 박정희 이야기 등등.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스스로 현 이명박 정부를 만든데 일등 공신임을 자처하고, 또 그 논공행상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물론 아이들의 교과서까지 급하게 개정해 이런 생각을 심으려 한다. 대표적인 학자가 안병직이나 이용훈 교수 같은 이들이다. 물론 이전에 나와 같이 생각하던 이들은 이 그룹을 ‘꼴통보수’라고 불렀다. 이들은 보수 진보를 넘어서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만들어진 기형적인 괴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런데 그들이 득세해서 자신들이 중립적인 ‘뉴라이트’니 최소한의 중립을 지키라고 말한다.

얼마전 좌도 우도 아닌 중도쪽으로 평가받는 명망있는 역사학자 한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요즘 논란이 있는 역사교과서 문제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금성교과서 등 역사 교과서가 나왔을 때 역사학계에서는 너무 소극적으로 만들었다는 논란이 있었다.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평가였다. 그런데 이번에 일어나는 일을 보면 그렇지 않아도 우측에 있던 역사 교과서가 얼마나 그쪽으로 치우칠지 걱정이다”고 한탄했다.

자, 이제 책을 한번 보자. 책의 저자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의 인생 역정을 보면 그저 보편적인 학자 인생을 걸어온 분이다. 미국서 공부했고, 일본서도 연구를 했다. 한국정치학회라는 나름대로 중립적 학회활동을 했고, 문화에도 관심이 있어서 한글문화연대의 대표도 하고 있다. 이 저자를 좌쪽 우쪽이라고 논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약간 상업적인 목적에서 만들었을 제목인 ‘좌우파가 논쟁하는 대한민국사 62’라는 제목의 이 신작은 논란속에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논쟁 지역을 탐색하는 책이다. 어떻든 작가는 서문에서 “나는 한국 역사를 별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왕이면 미국사람이나 하다못해 일본 사람으로 태어나지 왜 하필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는지 서운할 때도 있다”와 같이 조금은 낯선 표현으로 자신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논란이 되는 역사 부분에 관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겠다고 쓴다.

책을 읽으면서 앞 부분에서는 좀 답답한 점도 있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별다른 이견이 없어졌다. 맞아 이 정도가 맞는 관점일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는 순간 내가 보수쪽으로 흘러갔을 리 없으니 아마 저자의 원래 관점이 나와 비슷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이 저자도 나와 같은 진보 아닌 진보인 것일까. 결국 나는 이런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책의 첫머리에서 필자는 보수진보와 상관없이 저자에게 좀 실망했다. 다름 아니라 저자는 일제시대에 우리 독립 운동이 너무나 무력했다고만 인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가 말하듯 우리는 근대화의 실패로 위기에 빠졌다. 1910년을 기점으로 봤을 때 우리의 GDP는 일본 GDP에 수십분의 1 정도였을 것이다. 아마 국력으로 봤을 때는 지금 우리와 미국의 차를 능가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국력 차이로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엄청난 국력의 차와 정보능력의 차를 바탕으로 한국을 삼킨 일본을 대적할 수 있는 우리는 인물 중심의 국내 활동과 중국이나 미국내 독립 운동을 선택해야 했다. 미국내 활동은 주시하지 못했지만, 중국내 독립운동은 우리가 사회주의라는 이유 때문에 역사교과서에 싣지 못했지만 엄청나게 강했고 중요한 흐름이 있었다. 저자 역시 친일파에게 배운 선생님들에게 역사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제대로 그 부분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 민족의 역량을 폄하한 것이 안타까웠다.

이후 저자에 의해 나오는 역사 이야기는 일반 진보 세력과 별반 차이가 없다. 57페이지 친일 청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진보쪽이라고 해서 지금 전후 프랑스의 부역자처리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친일 문제 자료조사, 정리, 학술 연구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친일파진상규명위원회’등의 특별기구가 언제까지 움직이면서 어떤 결실을 내놓을지 걱정스럽다. 저자는 ‘백범일지’가 빈약한 정신문화의 빈자리를 채워준다고 주장한다. 이 결론에 지금의 사태를 준동하는 세력들이 공감할지 걱정이다. 

심지어 저자는 “더구나 전쟁을 촉발한 책임이 이승만에게도 없다고 할 수 없다”(104페이지)라고 말한다. 보수주의자들이 이 글을 보면 경천동지할 것 같다. 반면에 “(4.19를) 혁명이라고 미화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것을 ‘4월 봉기’라고 부른다”는 말에 윗글을 읽는 진보학자들도 충분히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저자의 현 정부에 대한 의견도 진보학자들과 별반 다르다 생각지 않는다. 그는 관습헌법에 기대어 수도권 이전에 반대한 헌법재판관들에게 통렬한 비판을 쏟는다.

그는 또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진보정권이라기보다는 비주류정권으로 규정되는 것이 더 정확하다”며 “이명박은 그동안 조금 약화되었던 보수 지배를 복원하기 위해 기업 위주 정책, 공교육 자율화, 시장주의 강화, 개발주의 복원, 대북 화해포기 등의 정책들을 과감하게 공표했다. 노무현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진보’정책에 대한 반대로 잘못 읽은 결과였다”고 분석한다.

어떻든 저자가 분석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전반적인 논조에 관해서 크게 반발하고 싶지 않다. 조금은 진보라고 생각했던 필자가 스스로의 위치를 잘못 놓았든지 아니면 저자 김영명 교수가 진보쪽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때문에 앞으로 나올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궁금해진다.

좌우파가 논쟁하는 대한민국사 62

김영명 지음,
위즈덤하우스, 2008


#역사교과서 #김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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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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