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 그건가?"

[소설-2011 한일합방 7] 작전명 '노란토끼'...여우사냥 상편

등록 2008.12.12 09:13수정 2008.12.1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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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강대수외다. 사십년전 그리고 삼십년전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도 민주화 한번 제대로 해서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외치다 정치 군인놈들한테 사지를 들려 개처럼 끌려 나갔던 바로 그 강대수외다. 나가 이 자리에 다시 돌아왔소이다.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하도 한탄스러워서 내가 이 절룩거리는 병신 다리를 하고도 이 자리에 나왔소이다.

 

그라니께 거기 그 중절모 쓰고 하드 빨고 있는 아저씨, 그리고 저쪽 구석에서 수다 떨고 있는 아줌씨 모두 이 앞에 좀 모여보소. 나가 오늘 여러 어르신들 모시고 눈뜨고는 봐줄 수가 없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얘기해볼라고 이 자리에 왔소이다. ”

 

강대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탑골공원 곳곳에 흩어지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공원 구석 좁은 벤치에서 장기를 두던 두 노인과 친구인 듯 보이는 다른 노인과 멱살잡이를 하고 있던 또 다른 노인, 잠시 짬을 내 데이트를 나온 듯한 젊은 연인 한 쌍 등, 이곳 저곳에서 조금씩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강대삼은 타고난 대중 웅변가였다. 어떻게 들으면 천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상소리를 섞어가며 하이톤의 음성으로 내뱉는 강대수의 연설은 지난 40년간 그의 정적들이 가장 두려워한 무기였다. 혹자는 그의 연설에 20년 넘게 철옹성처럼 지켜져 온 군부독재정권이 무너져 내렸다고까지 표현하곤 했다. 그의 연설을 듣고 있자면 반대자들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걸 경험했다. 어느 순간이면 강대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오늘 집회는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백완수는 강대수의 애초 주장과는 달리 첫 번째 대중집회의 장소를 광주로 잡았었다. 강대수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라면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극우단체의 테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대수는 백완수의 계획을 무시해버렸다. 아침 일찍 백완수에게 전화를 걸어 ‘탑골공원’으로 가겠다며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곤 두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결국 백완수는 강대수의 지시대로 탑골공원에서 즉석 집회를 갖기로 하고 준비를 서둘렀다. 다행히 급조된 계획하에 열리는 집회이기에 극우 쪽의 테러 가능성은 접어둘 수 있었다. 그쪽에서도 서둘러 대응할 수 없게 집회를 일찍 종료해 버렸으면 됐다.

 

다만 워낙 급하게 마련된 집회라 사람들이 너무 적게 모일까 그게 걱정이었다. 그래도 야권의 큰 어른이고, 전 대통령인데 경로당에서 노인네들 모아놓고 환담하듯이 열리는 집회면 곤란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열 명, 백 명 조금씩 늘어나던 사람들이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천 여 명으로 불어나 탑골 공원 구석구석을 꽉 채워나갔다. 백완수는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점심시간을 맞은 근처의 직장인들까지 가세해 모여든 사람들이 만 명을 훌쩍 넘길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같은 시간 미도리는 탑골 공원의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강대수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핸드폰으로 기다리던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여우 사냥 계획은 최초와 변동 없음. 사냥개는 계획된 사냥지로 이동한다. 몰이꾼과 사냥꾼들은 여우의 위치변동에 경거망동 말 것

 

미도리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시지 대로라면 자신이 더 이상 공원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싸구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강대수의 유난히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소음과 섞여 계속 귀에 거슬리는 중이었다. 미도리는 사람들을 제치면서 공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공원 안은 물론 거리까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런데. 여우 사냥이라? 어딘가에서 많이 들어 본 듯 한데. 픗. 그거였군. 가츠 팀장다운 작명법이군. 역사는 반복된다 그건가.’

 

미도리의 오피스텔에는 가츠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츠는 요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눈이 잔뜩 충혈되어 있는 상태였다. 미도리는 커피포트에서 커피를 따라 가츠에게 가져다 주었다.

 

“고마워. 커피 냄새를 맡으니 좀 살 것 같군. 이틀 동안 세시간도 못 잔 것 같아.”

“요기는 하셨어요? 뭐, 좀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

“언제 내려가실 거예요?”

“모레쯤. 미도리는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 알고 있지? 평상시 대로 행동하면 돼. 최구일 총장을 이용해서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하니까. "

 

미도리는 최근 들어 자신이 뒤에 물러나 있는게 맘에 들지 않았다. 물론 직책이 올라가면서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자신은 전사였다. 서류나 뒤적이면서 뒤에서 음모나 꾸미는 건 애당초 체질에 맞지 않았다.

 

“몸이 근질거릴 거라는 건 알아. 피 냄새가 맡고 싶을 때가 됐지. 하지만 참아. 어차피 이번 일은 우리들이 직접 나서는 게 아니야. 최소한 겉보기에는. 그냥 조센징들끼리 치고 받고 하는 거지. ‘사냥개’는 만일을 위해 준비한 거고. ”

 

가츠가 미도리의 속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군 주둔 일정은 정해졌나요?”

“나도 확실히는 모르지. 하지만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면 한달 이내가 되겠지.”

“그런데 여우사냥 장소가 좀 마땅치 않지 않나요? 차라리 다른 곳이 더 낫지 않나 싶은데.”

“아니. 애초 정한 곳이 최적이야. 두고 보면 알겠지만 더 이상의 장소는 없어. 그건 그렇고 눈 좀 붙여야겠는데, 소파 정도는 빌려줄 수 있지?”

“침대에서 주무세요.”

 

가츠가 고개를 끄덕이고 미도리의 침대로 향했다.

 

미도리는 TV를 켜고 뉴스를 확인했다. 혹시나 가츠의 잠을 방해할까 볼륨은 최대한 줄인 상태였다.

 

TV의 케이블 뉴스 채널에서는 강대수의 탑골 공원 집회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전직 대통령 강대수, 탑골 공원에서 반 정부 연설. 즉석 집회임에도 만 오천명 가량의 인파 몰려.’

 

최근 한국 정부의 강력한 언론 통제를 감안하면 강대수에 대한 뉴스는 꽤 자세하게 다뤄지고 있었다. 하긴 전직 대통령이고, 야당의 실질적 대부라는 강대수의 위치를 감안하면 정부에 충실한 언론이라 할지라도 그가 반 정부 연설을 한 뉴스를 소홀하게 다루기는 힘든 노릇이었다.

 

어쨌거나 한국은 공식적으로는 표현의 자유가 살아있는 민주주의 국가였으니까. 강대수가 노린 것 역시 이것이었다.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못 받는 그저 그런 야당 정치가들이 나서봐야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해 자신이 직접 거리로 나선 게 분명했다.

 

‘강대수. 이 늙은 여우 같으니라고. 하긴 그래 봐야. 얼마 남지 않았다. 대 일본 제국에 대항하는 네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 걸 곧 알게 될거니까.’

 

미도리는 잠시 뉴스를 지켜보다 채널을 돌렸다. 마침 다른 채널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2008.12.12 09:13 ⓒ 2008 OhmyNews
#소설 #한일합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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