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학생 놓고 장사하는 곳으로 변했지요"

[인터뷰] 다큐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 안창규 감독

등록 2008.12.11 11:42수정 2008.12.1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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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안프레도'가 되고 싶어요." 안창규 감독의 꿈은 영화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처럼 '안프레도'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카메라를 들고 싸워야 하는 현실이지요. ⓒ 이인


수능 점수 발표가 났어요. 고3 학생들은 어느 대학 무슨 학과를 지원할까 고민을 하겠지요.  대학 지원을 하고 논술을 본 뒤 합격 소식을 기다리겠지요. 예전처럼 고3 학생들은 합격 발표가 났다고 마냥 좋아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액수의 대학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경제사정을 얘기하며 "내년 대학등록금 동결"을 대학에 요청하였고 일부 대학은 동결 선언을 하였지요. 하지만 이미 너무 올라버린 대학등록금은 동결이 아니라 줄여야 하는 게 맞지요. 한해 1000만원에 가까워진 대학등록금 때문에 서민 가정들은 빚더미에 올라앉고 대학생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는 '대학생 노동시대'가 되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주최한 제8회 퍼플릭 액세스 시민 영상제(10월 24일~26일)에서 대상을 받은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다큐/ 33분 44초/ 2008)은 이러한 세태를 잘 담았지요. 한 달에 100만원 벌어서 80만원을 저축해도 학자금 대출 1000만 원을 갚느라 빠듯한 대학생, 학자금 대출이자를 내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대학생, 등록금뿐만 아니라 재개발로 하숙비도 올라 생활고에 시달리는 대학생 등 안타까운 현실이 그려져 있지요.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 피를 뽑는 대학생도 있지요.

이런 가슴 아픈 현실에 카메라를 비춘 감독이 궁금하더군요. 12월 8일, 영화를 만든 안창규(32) 감독을 만나 대학등록금 문제와 안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안 감독은 젊었고 웃는 얼굴이 무척 인상 깊었지요. 더욱이 속깊은 생각은 대학생들을 어설프게 걱정하는 정치인들보다 훨씬 뜨겁고 진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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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의 한 장면 ⓒ 민주언론시민연합


- 대학등록금이 동결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 있네요.
"동결했다고 하지만 연 평균 등록금이 738만원이라고 알고 있어요. '눈 가리고 아웅'식이죠. 근본해결 방안이 아니잖아요. 평균 등록금이 이렇지 1000만원 넘은 학교 무척 많아요. 문제는, 제가 영화를 찍으면서 알아보니 대학이 재정을 투명하게 안 하고 있다는 거예요. 도대체 대학 운영하는 데 얼마가 필요하고 등록금이 얼마 들어오며 어떻게 썼는지 사용내역을 안 만들어요.

재정탄탄한 학교는 국가지원 뿐 아니라 기업 지원이 많아서 수입이 많아요. 기업이름 딴 건물을 학교에 짓잖아요. 대학교 안에 학생들 공간이 필요한데, 상업시설을 끌어들여와 임대료 받고 장사하는 학교도 많아졌어요. 학생 놓고 장사를 하는 것이죠. 더 이상 대학은 배움의 장이 아니에요. 20대에 만끽해야 하는 낭만과 배움이 없어요. 등록금 때문에 고생이죠. 이제 대학생노동자들은 흔해졌어요. 돈도 적게 받으면서 알바를 하여 등록금을 마련해야 되지요."

"학생 놓고 장사하는 곳으로 변한 대학교"


- <88만원세대>를 보면 짱돌을 들고 권리를 주장하라는 내용도 있는데요.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길을 가기보다 무기력하게 행동하는 것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잘못된 세상이라면 짱돌도 던질 필요가 있겠지요. 그랬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기도 해요. 하지만 학생들이 자격조건을 갖추지 않고 다른 거를 하면 앞날이 보장 안 되는 현실이잖아요. 사회는 젊은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몰아가고 있어요. 그 틈바구니에서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시키려 하지요.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고 있지요.

근본 문제는 수동적인 대학생들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젊은 층을 그렇게 몰아가는 구조에 있어요. 운동 시위해봤자 귀 기울이지도 않고 그 시간에 도서관에서 앉아서 토익 점수라도 올리는 게 개인에게 더 이득이 되는 세상이잖아요. 대학생들이 모여도 바꿀 수 없도록 되어가는 세상에서 대학생들을 비난할 수 없어요.

물론, 학생들도 무기력한 면이 있지요. 그런 모습 보면 답답하지요. 그러나 그렇게 만든 사회가 더 문제인 거예요. 비싸고 부당한 등록금이 문제지요."

- 영화 찍으면서 느끼신 게 있다면?
"대학생들이 적은 돈 받아가며 노동하는 모습 보니, 어떻게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공감하면서 이렇게 영상을 찍어 현실을 알리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기성세대에게 화가 나요. 세상 위해서 정치하는 분들이 잘 해야 하는데, 자기 이득 때문에 다투기만 하잖아요.

세상에 잘못된 흐름으로 가고 있어요. 기업과 사회의 목적이 더 좋은 기업이 되고 더 나은 사회가 되는 거잖아요. 행복하게 살려고 있는 것들이죠. 그러기 위해서 경쟁이 필요한 것인데, 이익만을 우선하게 되면서 주객전도가 되었어요. 무조건 경쟁만 하면 더 나아질 줄 알고 있어요. 따라서 삶의 질이 떨어졌지요. 경쟁촉발은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하는 것인데, 경쟁이 목표가 되어버린 세상이에요." 

"88만원 세대 3부작, 대학등록금, 취업, 결혼"

- 그렇다면 다음 영화도 잘못된 세상에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을 담을 건가요?
"내년에도 88만원 세대를 찍어서 3부작으로 마무리 할 거예요. 등록금 문제가 1부였다면, 취업 문제가 2부, 결혼 문제가 3부예요. 그만큼 젊은이들 살기에 현실이 너무 답답하네요. 연애시절 좋았던 친구들 봐도 결혼한 뒤, 애가 생기고 생활비 때문에 싸우는 일 잦아지더라고요. 배우자를 사랑하지만 먹고사는 일 때문에 하루하루 귀한 감정을 희생하고 있더라고요.

요즘 젊은이들은 집값 때문에 한숨이 나오고 앞날이 불안하여 걱정이 많아요. 그래서 결혼가치관도 바뀌잖아요. 20대 후반이 되면 집, 차, 이러한 경제능력과 조건을 볼 수밖에 없게 되요. 안타깝지요. 결혼정보회사에서 정한 등급대로 서열화한 만남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사람이 1등급, 2등급이 있겠습니까. 물론 저야, 후배들이 우스개로 '형은 번외야'라고 할 정도로 가입조차 어려운 사람입니다.(웃음) 이런 것들은 기본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고 싶어요."

- 영화 찍는 비용은 얼마나 드나요?
"제 인건비 말고는 제작하는데 그렇게 돈이 많이 들지 않아요. 저는 제작비가 많이 안 들어가는 범주에서 촬영을 해요. 다큐멘터리 하겠다, 마음먹은 지 7, 8년 되었어요. 이번 작품도 습작 개념이었는데 후배와 의기투합해서 성과가 좋아서 다행이에요. 

원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올해로 접으려 했어요. 가족들 눈치도 보이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말들이 많았어요. 제 고집만 내세울 수 없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결과가 좋아서 말리던 목소리가 쑥 들어갔고 시작하기도 전에 구박했었는데 이제는 '해봐라'라고 하시네요. 자신감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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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안창규 감독 저 멀리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지요. 잠깐 석양을 바라보는 그의 옆모습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진지함과 패기가 엿보이네요. ⓒ 이인


"어렵다 말하지만 말고 왜 세상이 어려운지 고민해봤으면"

- 안 감독은 20대를 어떻게 보냈나요?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20대를 후회 없이 보낸 것 같아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제가 원하는 걸 잘 골랐고 20대를 만족스럽게 보냈어요. 하지만 많은 20대가 만족도가 낮지요. 제가 젊은 분들에게 무슨 말을 할 입장은 아니지요. 다만 제 생각을 얘기하면, 젊은 친구들이 각박하게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지요. 풍족하지 말고 풍요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풍족이 물질개념이라면 풍요는 돈으로는 살 수 없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에요.

어렵다, 어렵다 말하지만 말고 왜 세상이 어려운지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삶이 더 풍요롭게 되어요. 시간이 지난 뒤에 얘깃거리가 많은 것들을 구해야 해요. 삶이 풍요로웠으면 좋겠어요. 풍요롭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을 계속 고민해야 하지요."

- 풍요로운 경험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하셨나요? 일본 유학생활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대 때는 틈만 나면 여행을 갔어요. 저 때만 해도 공사장 알바를 한 달 반을 하면 등록금과 적지만 여행할 수 있는 경비가 마련되었거든요. 국토대장정도 2번 했고 단체여행도 나름대로 의미 있게 갔다 왔어요. 혼자 떠나는 여행은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고 마음 속 생각을 정리할 수 있지요. 일본은 신문배달 장학생으로 갔어요. 2년 동안 신문배달을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죠.

일본 가게 된 것은 여러 가지가 맞물렸어요. 노동제 영화제 참여하면서 노동자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노동자로서 살아봐야 그 분들 마음을 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신문배달 장학생을 했는데, 군대보다 2배 더 힘들더라고요.(웃음) 하루에 4시간 밖에 잠을 못 잤어요. 물론 우연하게 도쿄에서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집회'를 이끌며 귀중한 경험도 했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

"구타당하는 노동자들 영상 본 뒤, 다큐멘터리를 하기로 결심"

- 극영화도 있는데 다큐멘터리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00년에 막 제대하고 나서 영화를 배우려고 비디오 강좌를 듣는데, 비정규직노조 현장을 담은 영상을 봤어요. 그때 너무나 살벌하게 벌어지는 노동자 구타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지요. '언론에서 다뤄주지 않고 세상이 외면하는 이런 현장이 있구나' 생각이 들며 가슴 아팠어요. 그때 다큐멘터리를 하기로 결심을 했어요. 20대 중반에 운동을 시작한 셈이지요."

- 요즘은 UCC를 만드는 사람도 많고 영상을 찍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정부지원정책은 줄어들 거라고 합니다.
"기자재가 비싸서 영화를 찍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었어요. 이제는 누구나 조금만 관심 가지면 영상으로 세상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되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기에 이러한 변화를 좋게 봐요. 예전에는 충무로에서 스태프으로 일하면서 '입봉'하거나 아니면 영화과를 나와야 영화를 할 수 있었잖아요.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가 열린 것이지요. 적은 돈으로 다양한 영화들을 찍을 수 있게 되었어요.

환경이 좋으면 안주할 수밖에 없어요. 안주하면 하루아침에 퇴보되지요. 자성의 목소리가 많아요. 정권이 달라지고 정책이 바뀌어도 영화계가 전부 잘해서 떳떳하게 항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거든요. 영화계가 반성하고 변화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해요. 정부 탓만 할 게 아니지요. 정부 탓 해봤자 먹히지도 않고요." 

"지금은 카메라를 들고 싸우지만 '안프레도'가 꿈"

- 정부정책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세요?
"가락시장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목도리 돌려주고 기자들 앞에서 사진 박고, 한마디로 기만이죠. 사진처럼 서민들을 위한다면 같이 살아가는 정책을 펴야 하는데 뒤에서는 특정계급만을 위하고 있잖아요. 사진기 앞에서만 생색내며 선전을 그렇게 하니 얼마나 기만적입니까. 

저는 카메라를 들고 싸워야 하는 입장이에요. 아무리 나빠져도 여기서 살아야 하잖아요. 어디 갈 곳도 없고 도망가지 않을 거예요. 각박해질수록 더 좋은 세상을 꿈꾸며 싸워야 하지요. 지역활동가들과 FTA반대 프로그램을 찍었고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의미 있게 연결되어있어요. 서로 무슨 일 있을 때마다 모여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 꿈이 있다면?
"저는 경쟁위주사회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세상의 아픈 모습들을 찍지만 나중에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요. 50-60대가 되면 동네꼬마들과 친한 아저씨들 있잖아요. 그런 동네아저씨가 되고 싶어요.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처럼 저는 '안프레도'가 되고 싶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마침 얘기 나누던 찻집에서 '시네마천국' 노래가 흘러 나왔어요. 진짜 신기하였지요. 안프레도를 얘기하며 자신의 앞날을 상상하는 그는 알프레도 할아버지처럼 포근하게 웃더군요. 하지만 현실은 '시네마 천국' 같은 영화 한편 볼 여유도 없을 정도로 젊은이들을 옥죄고 있지요.

예전 대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낭만, 지금은 돈, 돈, 돈

등록금 1000만원을 훌쩍 넘은 곳이 많지요. 2008년 고려대 의대 신입생 연간 등록금은 1480만원이었어요. 가구 소독은 점점 줄어드는데 등록금은 해마다 가파르게 올랐지요. 물가가 8배 오르는 동안 등록금은 26배 올랐어요. 등록금 대느라 대학생 둔 부모는 등허리가 휘고 대학생들은 대학 다니고 있는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모르는 상황이 되었지요.

한나라당이 내세웠던 '대학등록금 반값' 공약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9월 9일 KBS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자신은 그런 공약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였지요. 그러자 10월 31일 서울지역 20여개 대학으로 구성된 서울지역대학생연합은 이 대통령을 공직선거법 250조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발한 상황입니다.

예전 대학생들에게는 낭만과 열정, 세상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면 요즘 대학생에게는 돈, 돈, 돈이 필요하지요. 비싼 등록금이 감당 안 되어 학교 다니는 내내 허우적거리거나 졸업하자마자 빚더미에 올라앉는 경우가 너무 많지요. 더구나 취직도 어려운 상황에서 대학교를 다니면서 얻는 것은 취업정보와 높은 학점뿐이지요.  

또 한해가 저뭅니다. 올 겨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대학생들은 알바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푼돈들을 모아가며 내년에 대학을 다닐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고 있지요. 곧 새내기들도 생겨나겠지요. 그들이 대학합격소식과 함께 손에 쥘 대학등록금 고지서를 보면서 내쉴 한숨이 느껴집니다. '대학생노동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대학등록금 #안창규 #대학생노동시대 #88만원 세대 #대학등록금반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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