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야", 비정규직 산불...끌 것인가 말 것인가

길거리농성에 이어 단식농성하는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

등록 2008.12.06 14:20수정 2008.12.0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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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한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는 100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50을 준다. 50받는 사람이 따지자 시끄럽다고 잘라버린다. 새로운 사람이 머뭇거리며 50을 받으러 들어오고 100을 받는 사람은 봐도 모르는 척 자신의 100을 움켜쥔다. 잘린 사람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뒤에서 10000을 꿀꺽 삼킨 사람이 씩 웃는다.

 

세상에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갑자기 들이닥쳐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비정규직도 그렇다. 경영합리화를 가장하여 인건비를 팍 줄였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임금만 반토막 났지 그것을 줄인 사람들의 몫은 도리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사람들을 자르고 비정규직을 시켜 남은 돈들은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잘리는 틈에서 자신은 안 잘린 것에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 귀를 막고 입을 닫고 서로 눈치를 보면서 일을 할 뿐이다. 사람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짚으며 옳지 않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당장 자신에게 영향이 오지 않으면 모르쇠다. 멀리서 번지던 산불이 자기 집에도 붙어야 그때서야 '불이다'라고 외치게 된다.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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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농성 453일 째, 길거리에서 몸으로 말한다. 부당하다고. ⓒ 이인

▲ 길거리 농성 453일 째, 길거리에서 몸으로 말한다. 부당하다고. ⓒ 이인

12월 6일, 여의도 코스콤 앞에는 453일째 길거리 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한 권리를 찾으려고 시위를 하는데 사회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의 손아귀밖에 볼 줄 모르는 세태에서 비정규직은 남 얘기다. 그들이 얼마나 오래 시위를 하든지 자기 알 바 아니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 7월 법원은 "파견근무자 66명에 대해 직접고용 관계가 성립한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코스콤은 대꾸하지 않았다. 정치권과 사회단체에서 문제를 지적하자 교섭하는 시늉을 했다. 코스콤은 교섭하는 3주 동안 어떤 해결 대안도 내놓지 않았다. 언론에서 얘기 될 때만 대화를 하는 척하다가 잠잠해지면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교섭을 벌이며 21일 동안 단식투쟁을 하던 황영수 지부장은 끝내 병원으로 실려 갔다. 남은 사람들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황 지부장에 이어 20여명의 코스콤 노동자들이 곡기를 끊었다. 단단하게 마음을 맺었다. 그러한 그들의 결기에 코스콤 김광현 사장은 "정규직 전환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할 방침이다"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조만간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한 발표 뒤로 현재까지 깜깜무소식이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쓰러지고 있다. 4일까지 모두 7명의 조합원들이 쓰러져 치료를 받았다. 벌써, 단식농성 12일째가 되고 있다. 코스콤에서 교섭에 응할 때까지 단식을 풀지 않겠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든 말든 코스콤은 팔짱을 끼고 있고 세상은 조용하다.

 

왜 그렇게 비정규직 전환을 코스콤은 원하지 않는 것일까. 인건비가 그렇게 많이 올라가 회사 운영이 어려워서일까. 재미있는 것이 있다.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밝혔다. 코스콤이 비정규직 탄압하는데 쓴 돈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돈이 비슷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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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콤 하늘로 솟은 코스콤 건물, 너무 높아서일까, 자기 앞에서 453일째 길거리에서 농성하는 사람들을 안 보고 있다. ⓒ 이인

▲ 코스콤 하늘로 솟은 코스콤 건물, 너무 높아서일까, 자기 앞에서 453일째 길거리에서 농성하는 사람들을 안 보고 있다. ⓒ 이인

코스콤은 비정규직 노동조합 탄압하는데 변호사 비용 6억, 경비용역비 10억 등 모두 16억원을 썼다. 비정규직 노조원 7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 드는 돈은 17억 남짓이다. 비정규직문제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회사의 어려움이 생긴다면 변호사 비용과 경비용역비에 그만큼 돈을 쏟아 부었겠는가.  

 

다시 생각해본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대량살상무기를 찾겠다는 뻥을 치고 이슬람에서 총질을 하는 나라가 그렇고, 60년째 수 십 만 젊은이들에게 총을 쥐어주며 싸울 준비만을 시켰지 싸움 끝낼 생각을 까 먹은 나라가 그렇다. 내년부터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 하면서 주식을 사라는 대통령은, 말을 않겠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다. 누구는 '나랑 상관없는'일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다. 자신에게 닥치지 않으면 문제의 심각함을 알기 어렵다. 자신에게 친구에게 불어 닥쳐야 부당함을 느낀다. 그제야 머리띠를 두른다. 자식이 취업을 할 때가 돼서야 청년실업과 비정규직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애면글면 일을 하면서도 푼돈 주는 것에 감격한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형편이지만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는다. 미안하지만, 환상은 깨지기 마련이다. 지금은 크게 산불이 번져서 끄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괜찮을 거라고 방화범이 씩 웃는다. 자기 손에 쥐고 있는 묘목 하나가 아직 안탔기에 불을 멍하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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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철폐 농성하고 있는 거리에 '비정규직 철폐'라고 쓰였있다. ⓒ 이인

▲ 비정규직 철폐 농성하고 있는 거리에 '비정규직 철폐'라고 쓰였있다. ⓒ 이인
2008.12.06 14:20 ⓒ 2008 OhmyNews
#코스콤 #비정규직 #방화범 #무관심 #단식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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