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의원은 미 쇠고기 정말 안 먹냐"

[현장] 국회 쇠고기 청문회... 또 '설거지' - '선물' 공방

등록 2008.09.05 16:01수정 2008.09.0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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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국회 제3회의장에서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 이태식 주미대사,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등 증인들이 참석하여 선서를 하고 있다. ⓒ 유성호

5일 오전 국회 제3회의장에서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 이태식 주미대사,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등 증인들이 참석하여 선서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기사 보강 : 5일 저녁 7시 58분]

 

지난 5~6월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미국산 쇠고기 파동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국회 청문회가 5일 열렸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민동석 차관보의 자체 판단으로 4월 18일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다"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설명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이 18대 총선(4월 9일) 이전부터 협상 관련 보고를 수시로 받은 정황이 확인됐다.

 

이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과 FTA 비준 등을 의식해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단을 직접 내린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이같은 쟁점은 '참여정부 설거지론'과 '한미정상회담 선물론'으로 엇갈린 여야의 설전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명박 정부의 4월 협상은 참여정부 로드맵을 그대로 이행한 것"(윤상현·김용태)이라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참여정부는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려고 했는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양승조·강기정)"고 맞섰다.

 

대부분의 증인·참고인들은 여야 의원들의 질문을 익히 예상한 듯 차분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한덕수 "정부가 해결못한 현안, 다음 정부가 맡아야"

 

참여정부 시절 쇠고기 협상에 적극적인 입장이었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총리주재 회의 등에서 내려진 단계별 쇠고기 수입 결정이 정부 방침으로 채택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외교의 최고 통수권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제부처 의견을 완전히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과 정식 협상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설명이었지만, 한 전 총리는 "쇠고기처럼 중요한 현안은 한 정부가 해결을 못 하면 다음 정부로 넘어가서 해결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한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이 대선 패배 후 청와대 회의(2007년 12월 24일)에서 "당신들은 피도 눈물도 없느냐, 나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했다는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왜 거론하냐"고 참모들을 다그쳤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선거에 졌다는 이유 하나로 (협상을) 중단하라는 취지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 전 총리는 이듬해 1월3일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를 접촉한 것에 대해서도 "12월 24일 회의가 협상을 중단하라는 말은 아니었고, '30개월 미만을 미측이 받는다면 해봐라'는 말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작년 4월2일 한미 FTA 타결 직후 담화문에서 "OIE(국제수역사무국) 권고를 존중해 합리적 수준으로 쇠고기를 개방하겠다"고 말한 노 전 대통령의 언급을 놓고 참여정부에 몸 담았던 관료들이 미묘한 해석의 차이를 빚는 일도 있었다.

 

한 전 총리가 "이것이 OIE 기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아니고 일본 등 주변국가와의 균형을 고려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대통령으로서 대외적인 약속을 강도 있게 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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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전 총리가 5일 오전 국회 제3회의장에서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참석하여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한덕수 전 총리가 5일 오전 국회 제3회의장에서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참석하여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정운천 "인터넷 퍼가기로 상상 못할 공포국가 됐다"

 

이명박 정부의 전직 청와대 참모들은 초기의 안이한 대미협상 자세로 인해 야당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문제들의 책임을 전적으로 정부에 지우려는 공세에는 소신껏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이 "협상이 타결된 후 청와대로서는 쌍수를 들어서 환영하는 입장이었겠다"고 묻자 김중수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당초 계획대로 협의가 끝났다고 보고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 있겠다, 협의 자체가 계획대로 되었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4월 협상이 잘 됐다면 정부가 허겁지겁 추가협상에 나선 것은 어떤 설명이 가능하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김 전 수석은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추가협상이 이뤄진 것"이라고 답했다.

 

김병국 전 외교안보수석도 "4월에 기술협의를 했을 때는 보도나 광우병 괴담과 같은 현상들을 미리 예측할 수 없었다"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거들었다.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광우병 괴담을 유포한 진원지가 이라는 데 동의하느냐"는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의 질문에 "그게 인터넷으로 퍼가기를 해 가지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공포국가가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농림부 장관 및 통상교섭본부장 등으로부터 쇠고기 협상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정황도 처음으로 확인됐다.

 

김중수 전 수석은 "4월 11일에 (한·미간의) 기술협의가 시작됐지만, 그 이전에 농림부 장관(4월 1일)과 외교통상부 장관(4월 7일)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에 배석했고, 3월 중순 내부에서도 앞으로 이런 문제(쇠고기 협상)가 과거에 어떻게 전개됐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토론했다"고 전했다.

 

4월 1일과 7일의 대통령 보고에 참여했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당시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한미 FTA를 풀어나가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드렸다"고 증언했다.

 

농림부는 총선 다음날 "미국 측의 요청(4월 4일경)에 따라 미 쇠고기 협상을 11일부터 과천청사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고 발표했지만, 김 전 수석의 증언은 우리 정부가 총선 이후 곧바로 열릴 협상을 다각도로 준비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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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택기 한나라당 의원이 5일 오전 국회 제3회의장에서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유학여부 및 자녀들 미국 장기체류 현황 자료를 보이며 "이분들이 아직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 유성호

권택기 한나라당 의원이 5일 오전 국회 제3회의장에서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유학여부 및 자녀들 미국 장기체류 현황 자료를 보이며 "이분들이 아직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 유성호

청와대 전 수석 "조율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협상 내용) 알고는 있었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이와 관련해 "(농림부 장관이) 4월 1일 대통령께 보고한 내용 그대로 같은 달 18일 타결됐고, 이 부분에 대해서 사전 조율했다는 걸 왜 자꾸 부정하냐"고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을 몰아세웠다.

 

김중수 전 수석은 "(쇠고기 협상 당시) 농림부의 입장이 정해져서 (대통령에게) 보고드렸다"며 "조율이라는 표현이 맞을 지는 모르지만 저희가 (협상 내용을) 알고는 있었다"고 답했다.

 

한나라당 권택기 의원은 "미국에 체류했거나 미국에 자녀들을 유학 보낸 야당 의원들의 수가 20명이 넘는다"며 명단을 정리한 표를 꺼내들었다가 야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 민주당 간사를 맡은 김동철 의원은 "권 의원이 야당 의원들의 미국 체재기간과 목적, 자녀들의 신상까지 다 공개했는데, 이는 정보기관의 협조 없이는 국회의원이 전혀 알 수 없는 내용들"이라며 "야당 사찰에 대한 해명과 사과가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권 의원은 "국회의원 홈페이지에도 있고 제보받은 내용도 있다"며 "우리가 이미 쇠고기 시장을 개방했는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먹으면 안 된다'고 얘기하면 국민들이 더 혼란에 빠진다, 여기 계신 분들은 쇠고기 정말 안 먹냐"며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 의원들이 "누가 먹냐?", "안 먹는다"고 고함을 질렀고, 최병국 특위위원장이 분위기를 진정시킨 후에야 사태가 일단락됐다.

 

한편, 청문회의 핵심증인으로 꼽혔던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은 세계지리학연합회(IGU) 총회 참석을 이유로,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참고인)는 해외연구 활동을 이유로 각각 불참하는 등 무려 16명의 증인·참고인이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아 김을 뺐다.

 

역시 증인으로 채택된 남호경 전국한우협회회장과 윤희숙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부의장은 각각 심포지엄 참석과 결혼 및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출석 거부 사유서를 제출했다.

2008.09.05 16:01 ⓒ 2008 OhmyNews
#정운천 #권택기 #쇠고기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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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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