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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안개가 아니라 '종교'와 '인종 편견'

[리뷰] 영화 <미스트>가 던지는 냉혹한 질문

08.01.29 15:10최종업데이트08.02.2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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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스트>의 한 장면. 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은 과연 '괴생명체'였을까? ⓒ 영화홈페이지


이탈리아의 저명한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저작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한 수도사의 입을 통해 중세(中世) 가톨릭이 세상 사람들에게 행한 악행을 이렇게 표현했다.

"종교의 이름 아래 수도사라는 명찰을 달면서부터 나는 편안히 자고 배불리 먹었다. 그러나, 내 편안함과 포만감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알지도,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비단 에코의 진술뿐일까. 종교(신)가 인간존재를 밟고 서서 '내세'와 '사후의 행복' 따위 터무니없는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빈곤과 고통에 빠뜨린 중세의 불행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오죽하면 '중세=암흑의 시대'(Dark Age)라는 신랄한 등식까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을까.

그렇다면, 신을 인간보다 우위에 놓음으로써 발생했던 수많은 불합리와 부조리는 이제 해결된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주선이 달을 오가는 시대를 지나, 돈만 있으면 한 개인의 우주여행까지가 가능해진 21세기지만 '신이 강제하는 인간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종교'가 초래한 비극이 지속되고 있음을 우리는 미국과 이라크간 전쟁을 부른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충돌' 그리고, 살인과 폭력·강간으로 점철된 '인도-파키스탄 분리 과정'을 통해 이미 확인했다.

'종교'와 함께 인간의 불행을 부르는 또 하나의 난제는 '인종간 편견'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그 사람의 지향을 지향으로 인정할 수 없게 만드는 '인종 편견'의 뿌리는 깊고도 단단하다. 피부의 색깔, 혹은 태어난 지역의 다름으로 인해 결정되는 '운명'이 그 사람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합리적이지 못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세계.

'제노사이드'(인종청소)라는 단어로 축약되는 '인종 편견에 의한 비극'은 아프리카와 발칸반도 등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 현실화되어 나타났다. 거기서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숫자가 수만인지 또는, 수십만인지 여기서 중언부언 재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대체 무엇이 인간의 공포와 열패감을 부르는가?

ⓒ 영화홈페이지


최근 프랭크 다라본트의 신작 <미스트>(The Mist)가 개봉됐다.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깨고 부수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보는 당시의 즐거움'만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할리우드 영화의 식상한 문법에서 슬쩍 비켜서 있다.

<미스트>의 원작자와 연출자는 단순히 '보여주는 즐거움'에서 한발 더 나가 인간의 공포와 절망, 열패감을 야기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로 지목되는 것이 '종교'와 '인종 편견'이다.

폭풍이 지나간 한 도시.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치 밀려든 안개와 분주하게 등장한 군인들의 출현은 무언가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한다.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대형 슈퍼마켓을 들렀던 수백 명의 시민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의 공격에 발이 묶인다.

다양한 성격과 종교를 지닌 각기 다른 인종의 사람들. 그들이 타의에 의해 갇힌 슈퍼마켓은 또 다른 '한 세계'이며 '축소된 사회'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부조리하고, 예측불가능한 사건들. '맹목을 향해 있는 종교'와 '극단적 인종 편견'이란 악덕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데….

여타 스티븐 킹의 소설이 그러하듯 <미스트>는 명쾌하고 명료한 답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결말은 '세상과 인간을 섣불리 정의하지 않는다'란 소설가 특유의 열린 철학에서 연유한 것일 터. 자신이 해답을 제시하는 대신 '과정'과 '열거'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해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허나, 굳이 길을 알려주지 않아도 눈밝은 영화팬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스티븐 킹과 프랭크 다라본트가 <미스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을. 영화는 마침표(.)나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로 끝을 맺는다. 엄혹한 동시에 끝간 데 없는 두려움을 부르는 질문.

"대체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이며, '인종 편견'이 만들어내는 처절한 고통은 언제 마감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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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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