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게 소개하지 말고 나만 갖고 싶은 책

-심인보 <곱게 늙은 절집>(지안출판사,2007)

등록 2007.11.01 12:22수정 2007.11.0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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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모순된 말로도 표현이 모자란다"라는 찬사의 글을 책 소개 맨 첫머리에 내놓게 만든 책이 <곱게 늙은 절집>이다. 이 책은 칼럼니스트이자 디자이너인 심인보가 우리나라 여기저기에 있는 아름다운 산사를 직접 발로 찾아가 빼어난 사진과 유려한 문장으로 소개한 것이다.


책의 구성은 모두 4부, 25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곱게 늙은 절>에는 '하늘이 천장이고 천장이 하늘이다'(불명산 화암사), '눈으로 보는 천상의 소리'(팔공산 은해사 백흥암), '구름 위에 절을 짓고'(팔공산 은해사 운부암), '외롭고 또 외로우면 여기에 묻고 가자'(지리산 화엄사 구층암), '마음이 풍경 되는 천 년의 곰삭음'(천등사 봉정사), '가슴에 사무치는 첫사랑'(봉황산 부석사)이 놓여있고, 2부 <해우하시지요>에는 '마음을 여니 꽃사태가 일어난다'(상왕산 개심사), '담아 오고 싶은 달빛'(비봉산 대곡사), '똥이나 꽃이나'(조계산 선암사), '묵은 근심 마저 비우시지요'(운달산 김룡사), '오는 이는 주인 가는 이는 손님'(월출산 무위사)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3부 <풍경 속의 풍경>에는 '노을 속 숨은 노을'(달마산 미황사), '빈 손바닥에 긴긴 봄날'(무릉산 장춘사), '돌구멍 속에 숨은 절'(팔공산 은해사 중앙암), '구름 언덕에 바람 꽃'(청량산 청량사), '너는 똥 나는 물고기'(운제산 오어사), '소나무 숲에 딱딱구리 법문'(봉수산 봉곡사), '바람소리면 어떻고 빗소리면 어떤가'(능가산 내소사)가 빼어난 자태를 내뿜고 있고, 4부 <이야기가 그리우면>에는 '천 년의 전설을 숨긴 비밀의 사원'(영귀산 운주사), '마음을 널고 세상을 잊고'(만수산 무량사), '깍깍이 동자, 보리도령 그리고 계룡산신'(계룡산 신원사), '기생 매창을 아시나요?'(능가산 개암사), '게으르게 걷는 아름다운 명상길'(선운산 선운사), '용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교룡산 선국사), '대웅전이 탑 안에 있어요?'(사자산 쌍봉사)가 그리운 이야기를 가득 담은 채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심인보의 사찰 여행기 <곱게 늙은 절집>의 기본 색조는 '곱게 늙은'이라는 수식어에 담겨져 있다. 그의 곱고도 깊은 문채(文彩)는 '곱게 늙은 절집'을 닮아 편안하고도 아름답다. 볼썽사나운 것이나 잘못된 점을 따끔하게 질타하는 글은 독자의 심정을 시원하게 해주면서 참된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게 해준다. 책 본문 속 수백 장의 빼어난 사진은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하고 저자의 글을 분명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또 옛 사람의 한시(漢詩)나 요즘 시인의 유명한 시구는 그 산사(山寺)가 갖는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그리고 책을 펼쳐나가면서 만나는 사찰 내부의 이런 저런 지식은 독자의 안목을 틔워주고 있다. 덤으로 얻는 유익한 앎의 즐거움이다. "사찰 건물의 이름을 보면 전(殿), 각(閣), 루(樓), 당(堂) 등 끝에 붙는 말이 다르다. 무슨 뜻일까. 알아보니 전은 대웅전, 명부전, 극락전 등 부처나 보살을 모신 곳, 각은 불교 밖에서 들어온 신, 즉 산신이나 칠성신을 모신 곳, 루는 만세루, 범종루같이 2층 형태의 누각이나 벽이 없는 건축물을 말한다. 당은 심검당, 설선당, 적묵당같이 요사, 강당 등 부속 건물 이름에 많이 쓰인다."-(28쪽)

 

심인보가 새로 펴낸 책 <곱게 늙은 절집> 속으로 들어가 보자. <월출산 무위사>의 백의관음도에 관한 글이다.


"극락보전 안에는 숨어 있는 명작이 하나 더 있다. 백의관음도다. 백의관음도를 보려면 부처님 뒷전으로 돌아 들어가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참배객이라면 불경스럽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방문객이라면 남의 집 내실 들여다보는 실례를 범하는 기분일 테니. 그러나 아무도 막는 이가 없다. 용기를 내서 들어가 보라. 파도인지 구름인지가 넘실대고, 떠내려가는 연잎 위에 버들가지와 감로수병 들고서 흰 옷깃을 날리고 있는 관음보살을 만날 수 있다. 환상이다. 꿈이다.-(중략)-


백의관음도는 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곳은 멀리서 벽화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다. 벽화 바로 밑에서 올려다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속 깊은 화공은 보는 사람의 시점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도록 비례를 왜곡해서 백의관음도를 그린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의관음도 앞에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어 보라. 살아 움직이는 백의관음을 친견할 수 있다. 그림뿐만이 아니다. 우리 절집의 부처상들도 조형적으로 보면 가분수처럼 보이는 것이 많다. 그러나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정상적인 비례로 보인다. 나를 낮추면서 낮출수록 아름다운 부처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절을 하며 올려다보는 부처님이 제일 아름답다. 스스로를 낮추면 아름다운 세상이다."-(221쪽)


또 "노을, 노을에 물든 달마산 암릉 그리고 노을빛에 더욱 찬란한 황금빛을 더하는 대웅전 부처를 세 가지 미황(美黃)"이라고 한다는 <달마산 미황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곳에서 한 문장을 얻는다. "노을을 헹궈낸 바닷물은 눈물처럼 푸른 어둠이다." 그리고 도인(道人) 최치원과 유학자 주세붕, 이황 화가 단원 김홍도의 체취가  묻어 있는 <청량산 청량사>에서도 심인보의 아름다운 문장을 또 읽는다. "어풍대에서 울려 퍼지는 퉁소 소리는 금탑봉을 감싸 돌고는 바람을 따라 경일봉, 연적봉, 연화봉, 의상봉 등 청량의 열두 봉우리를 차례로 휘감고 퍼져 나갔다. 애절한 퉁소 소리에 젖은 구름이 가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바람은 꽃잎처럼 몸을 떨었다. 그렇게 구름 언덕에 피어난 바람 꽃 아래서 단원은 퉁소소리를 <청량취소도>라는 그림에 담았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사찰 <운제산 오어사>를 다룬 곳에 책을 펼쳐보니 "다리를 건너 벼랑에 붙어 있는 길을 따라 원효암 가는 길. 바위에 기대 내려다보니 초록 거울 같은 호수 위에도 오어사, 아래도 오어사다"라는 구절에 밑줄을 그어놓았다. 나는 이 책을 내가 아는 여러 시인들께 읽어보시라 권했다. 이 책을 읽다가 자기도 모르게 여러 편의 시(詩)를 얻는 횡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장담했다. 시 뿐만 아니다. 그림도, 세상살이 삶의 지혜도, 우주 저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큰 바람 소리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마디로 <곱게 늙은 절집>을 이야기하자면, 남들에게 소개하고 싶지 않은, 나만 갖고 싶은 그런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1.01 12:22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곱게 늙은 절집 - 근심 풀고 마음 놓는 호젓한 산사

심인보 글 사진,
지안,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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