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닦아주겠다더니 이렇게 잔인할 수가"

[이랜드노동자의 편지 ①] 노무현 대통령에게

등록 2007.09.22 17:35수정 2007.09.23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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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노조의 파업이 지난 17일로 100일을 맞았습니다. 비정규직 싸움의 상징이라던 이랜드 사태는 방송화면과 신문지면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이랜드 노조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추석을 가족과 보내지 못하는 이들이 <오마이뉴스>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이랜드 그룹, 그리고 시민들에게 보내는 편지 3편을 차례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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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

 

이 글이 어떻게 전달될지, 전해지기는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가슴이 먹먹하기도 합니다. 남의 나라 대통령도 아니고, 우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남의 나라 국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소외감이 드는지, 서운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대통령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그리고 믿고 싶었던 것은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말씀과 민주화운동세력의 일원으로서 그래도 노동자들의 편에서 정치를 하실 거란 기대였습니다. 그런데 비정규직보호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은 그 법의 많은 맹점 때문에 그 법을 막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뜻이 같은 많은 국회의원들이 우리를 보호하겠다고 만든 그 법 때문에 저희 이랜드일반노동조합의 많은 여성조합원들은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은 용역회사 직원으로 편제되어 임금은 낮아지고 고용은 더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실 텐데, 당신께서 만든 이 법이 정말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보이고 그렇게 느껴지시는지요? 적어도 '보호'라 말할 수 있으려면 당사자인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보호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그리고 당사자들이 원하는 내용을 담는 것이 진정한 '보호법'이 아닌지요!
 

정말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느끼시나요?


당신께서 만드신 '훌륭한 법' 때문에 사장님들은 엄청 신났는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많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내 나라인 대한민국이 떠나고 싶은 나라, 온통 비정규직뿐인 나라가 돼가고 있습니다. 마치 저희가 일하고 있는 홈에버의 상품처럼 저희들이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서글프고 화가 나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혹시 이 법이 이렇게 사용될 줄 모르고 만드신 것으로 믿고 싶을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아시고 만들었다면 너무나 잔인하단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내세울 자존심도 없습니다. 저 밑바닥의 노동조건 속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 없어서 '투쟁'이란 이름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외치고 끌려가고 경찰에게, 구사대에게 두들겨 맞아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당신께서 만든 이 법은 분명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자본(경영자)은 그 법을 더 교묘하게 악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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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 점거 20일째였던 지난 7월 19일, 한 노조원이 동료들이 보내온 격려편지 낭독을 들으며 젖은 눈가를 닦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바로 보시고 판단하여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희들의 투쟁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옳지 않은 일은 거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것을 고집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저희는 적어도 이 땅의 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름으로,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되고 차별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길 희망합니다.

 

지금의 비정규직 법 아래에선 노동자들은 희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노동자, 국민에게 희망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 이유는 저희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시니까요!

 

저희들이 힘겹게 싸우고 있다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들은 지금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으니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희 사업장 홈에버(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에서 용역으로 일하고 계신 늙으신 어머님이 회사가 고집하여 입힌 하얀 앞치마와 빨간 치마를 입고 바닥에 주저앉아 바닥의 때를 벗기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눈물이 납니다.

 

비정규직 법은 그런 분들과 지금 비정규직 차별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마음 속 설움의 눈물을 닦아 주려했던 것이 아닌지요!

 

2007년 9월 22일(추석 즈음)  

 

이랜드일반노동조합 박순흥 드림

2007.09.22 17:3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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