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보기 위해 그곳에 간다

한국인 아내가 된 '월남국수'식당 주방아줌마, 강희씨

등록 2007.09.11 19:35수정 2007.09.11 19:4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녀의 이름을 아는데 1년 넘게 걸렸다 ?

 

가끔 들리는 부산 해운대 장산역 근처, 월남국수 식당에서 그녀를 처음 본 것이 벌써 2년이 휠씬 넘은 것 같다. 몇 번 들르면서 눈인사만 주고 받았는데, 그녀가 식당 주인인 줄 알았다. 베트남인으로 보이는 그녀에게 내가 주인이냐고 물으니 주인이라고 했다.


새내기처럼 보이는 여학생과 줄곧 일을 하고 있어서 난 또 저 여학생이 딸이냐구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딸이라고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또 들렀을 때, 여학생이 보이지 않길래, 딸이 안 보이냐고 물으니 고개만 가로 저었다. 그녀가 보이지 않는 날은 왠지 크지 않은 식당이 빈 듯했고, 나오는 월남국수 맛이 다른 듯했다. 또 시간이 흘러 몇 번이나 월남국수를 사 먹으면서,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영화 <파이란>을 떠올리며 갖가지 상상을 했다. 아니 소설을 썼다.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을까. 큰 딸을 가질 나이는 아닌데, 큰 딸이 있으니, 도대체 몇 살일까.

 

a

강희 씨가 일하는, 월남국수 식당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가끔 그곳에 간다 ⓒ 송유미

▲ 강희 씨가 일하는, 월남국수 식당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가끔 그곳에 간다 ⓒ 송유미
 
양파 까면서 웃는 그녀의 '눈물'에 이끌리는 우정(?)
 
나는 그녀에 대해 많이 알고 싶었지만, 그녀는 늘 주방일로 분주했다. 그리고 그녀는 주방 안이 환히 보이는 데서, 월남국수에는 꼭 들어가는 양파즙을 얻기 위해 양파를 강판에 갈아 즙을 내면서,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으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곤 했다.
 
알싸한 양파를 한 두 개 까서 즙을 내는 것이 아니라, 고무 함지에 가득 양파즙을 내곤 했다. 저렇게 많은 양파를 넣어 끓여야 '월남국수' 국물 맛이 시원하구나, 라고 알게 될 쯤에야 나는 그녀의 이름이 '강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아버지도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이라면 파월장병이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녀의 눈치로 봐서는 나의 접근이 그리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도 알 수 없었다. 왜 그녀에게 관심이 자꾸 가는지…
 
a

월남화폐 강희씨가 일하는 월남 식당 안은 월남화폐로 가득하다. 월남인들은 돈을 부적으로 삼나 ? ⓒ 송유미

▲ 월남화폐 강희씨가 일하는 월남 식당 안은 월남화폐로 가득하다. 월남인들은 돈을 부적으로 삼나 ? ⓒ 송유미
 
한국사람이 되었으나 언어의 불소통의 피해는 얼마나 많을까 
 
얼마전 그녀에게 줄 선물 하나를 갖고 그곳에 갔을 때 그녀는 없었다. 다른 분이 그녀가 휴가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서야 나는 그 가게의 진짜 주인을 만난 것이다. 그녀는 그러니까 요리를 책임지는 주방아줌마였다.
 
아뿔싸...그리고 그녀에게는 큰 딸이 아니라, 이제 서너살 밖에 안되는 아기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그녀가 한국말을 곧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잘 알아 듣지 못하면서 대충 대답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들은 것이 하나도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 불소통이 있을 수 있는가.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내가 느끼는 불소통의 쓸쓸함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한국에 와서 살지만, 언어의 장애로 인한 피해뿐일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나는 다음날 또 다음날 찾아가서야, 강희씨의 얼굴을 찍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못 생겨서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기를 쓰고 얼굴을 외면했지만. 찰칵 셔터를 눌렀다. 그녀는 내 행동을 이제 싫어하면서도 싫어하지 않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린파파야 향기'에 나오는 '무이'처럼 일을 좋아하는...부지런한 강희씨
월남을 소재 로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월남 영화는 <그린파파야 향기>다. 다 알지만 이 영화는 월남 전쟁이야기가 아니다. 성실하고 말이 없는 소녀의 침착성과 그리고 조용한 마음의 사랑이, 그야말로 근사하게 완성된다. 
 
월남은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비슷한 환경, 그리고 월남전쟁은 우리나라에 '월남치마' 바람을 불게 했다. 많은 젊은이가 그곳 월남전에서 죽었고, 우리나라 민간인들도 많이 이주해 간 월남. 또 월남여자들이 현재 많이 와서 한국남자의 아내가 되어 살지만, 그들은 여전히 외로운 혼자 같은 이방인이 아닐까. 
 
a

주방에서 일하는 '강희' 씨 한국인의 아내가 되어, 아기가 둘이란다. ⓒ 송유미

▲ 주방에서 일하는 '강희' 씨 한국인의 아내가 되어, 아기가 둘이란다. ⓒ 송유미
"남편은 무슨 일을 해요 ?" 물으니 그냥 빙긋 웃는다. 아기는 누가 돌보고, 일을 하느냐 물으니, "심심하고 외로워서 남편한테 승낙을 얻어서 일을 한다. 정말 일하니까 하나도 안 심심하다"고 말한다.
 
심심하지 않기 위해서 일을 시작한 것이 진짜 맞는 것일까 나는 고개를 가웃거린다. 이제 그녀의 말은 믿을 수 없는 말인 것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방인 여자 강희씨와 친구가 되기는 멀고 먼 길인듯 하지만, 오늘도 그 강희씨를 보러 그곳에 갔다.
 
<그린파파야 향기> 같은 순수한 그녀의 웃음을 만나기 위해, 아닌 내 기억 희미한 저편, 숱한 위문 편지를 주고 받은 적 있으나 소식을 알 길 없는 그 얼굴 모르는 참전 용사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같은 것으로...
 
얼마나 많은 벼가 논에서 자라야 할까
얼마나 많은 강물이 굽이쳐 흘러야 할까
숲 속에 낙엽지면 누가 쓸어 담을까
바람아, 나뭇잎을 떨구지 말아다오
얼마나 많은 나뭇잎을 누에가 먹어야
색색깔의 비단을 짤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려야
빗물이 눈물로 바다가 넘칠까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깊은 밤 달님이 떠올라 내 곁에 머물까
내 마음 훔친 그대를 위하여
영원토록 기쁨의 노래 부르리
<베트남의 옛 노래> 中
2007.09.11 19:35 ⓒ 2007 OhmyNews
#월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