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님은 어느 대학 나오셨나요?"

'국졸' 학력자가 본 신정아-이지영 사태

등록 2007.07.22 11:50수정 2007.07.2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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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하지만 앞날은 장맛철의 먹구름만큼이나 그 전도(前途)가 무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초등학교 졸업만이 학력의 전부인 명실상부한 무지렁이였기 때문이다.

그같이 불학(不學)의 내 처지에 맞는 직업으론 새벽마다 공사장에 나가 막일을 하는 게 제격이었다. 재수가 좋으면 오전 공사만으로도 일이 끝나는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고 공사장 일의 거개는 땅거미가 완전히 져야만 비로소 끝나는 목수와 미장의 보조(건축현장에선 이를 일제 용어의 잔재인 '데모도'라 불렀다) 일이 태반이었다. 하여간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공사장에서 종일 땀을 흘리며 일을 마치고 귀가하자면 피곤이 마음 속 가득까지 물 먹은 솜으로 들어차곤 했다.

그런데 공사장의 일은 자주 있는 편도 아니었고 또한 비가 오는 날엔 공사가 원천적으로 일시 중단되는, 이른바 '데마찌'라는 또 다른 일제 용어로 표현되는 공(空) 치는 날이었다. 그러니 당최 돈벌이로선 적절치 못했다.

한 달에 고작 열흘 남짓 일해서는 편부와 먹고살기에도 버거웠다. 당시 사랑하는 애인과 결혼도 약속해 둔 터였기에 나의 마음고생은 컸다.

학력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직장을 찾다

'다른 직장을 찾아보자!'

며칠 동안 전신주와 벽에 붙은 구인광고를 샅샅이 훑어 마침내 눈에 쏙 들어오는 직장을 하나 발견했다.

<학력제한 없음! ○○ 주식회사 창립사원 모집…>

어떠한 직장이든 최소한 고졸 이상의 학력을 원하였기에 나와 같은 무지렁이는 아예 서류조차 제출치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 직장은 나와 같은 불학의 필부에게도 문호를 열어 주었기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이력서를 한 장 써 들고 그 직장을 찾아갔다.

나를 면담한 소장은 "우린 학력보단 능력을 중시하는 회사니 열심히 해 보시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며칠 뒤 입사동기 일곱 명과 함께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다. 이어 그 회사서 만든 영어회화 교재와 테이프 견본을 받아들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홍보하고 주문을 받는 세일즈맨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세일즈맨의 길은 가시밭길 험산준령을 넘는 역경이었다. 잡상인 취급을 하며 문전박대하는 이가 부지기수였으며 그 더운 날 냉수 한 잔은커녕 마치 벌레라도 대하는 양 노골적으로 홀대하는 고객을 만나면 당장에 때려치우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 같은 시련은, 담금질해야 더 강한 쇠로 태어나는 쇠붙이처럼 평소의 성정(性情)이 부사리와도 같은 내 오기를 더욱 자극했다. '어쨌든 끝까지 가 보자!'

밤마다 친구를 찾아가 영어를 배웠으며 서점에 가서 마케팅에 관한 책을 사 읽었다. 회사에서의 조회(朝會)때 만날 소장이 열강하는 '많이 파는 노하우' 역시 일일이 기록하며 뇌리에 입력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입사동기들이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모두 그만두었지만 나는 톱 세일즈맨으로 부상하였고 이어 주임과 소장으로도 거푸 승진했다.

소장이 되자 비로소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편입이 될 수 있었으며 대졸사원 십여 명까지 관리하게 되었다. 나보다 현저하게 많이 배운 대졸사원들을 관리하고 독려하자면 하루라도 책을 안 보면 안 되었기에 서점과 도서관을 무시로 들락거렸다.

그렇게 쌓은 지식적 내공은 후일 이런저런 문학공모전에서 수상하게 하는 근저도 되었으니 하여간 독서는 다다익선(多多益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의 승승장구는 얼마 뒤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막을 내려야 했다.

나의 정규직 생활은 그러니까 '한여름 밤의 꿈'처럼 너무도 짧았다. 이후 이런저런 영업을 하여 돈도 많이 벌어봤지만 사업과 장사를 한답시고 깝죽대다가 망하고 죄 까먹어 이젠 적수공권(赤手空拳)이다.

비록 '국졸'이나 책을 통해 지식의 공백을 메워

하여간 소장으로 근무를 할 당시의 에피소드다. 하루는 회식을 하는데 대졸사원 하나가 물었다. "박식하신 소장님의 조회는 늘 감동입니다. 근데 소장님은 어디 대학을 나오셨나요?"

순간 숨이 탁 멎는 것 같았다. '대학은 무슨 얼어 죽을 대학?' 그렇지만 굳이 속일 것만도 아니었다. 그래서 담담하게 이실직고했다.

"나는 고작 국졸(당시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기에)의 학력이고 나머지는 독학으로 공백을 메웠습니다."

그러자 직원들 모두 놀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학력 콤플렉스를 실력으로 극복하고 자신들의 상관이 된 나를 우러러보는 분위기가 여실히 느껴졌다.

최근 모 대학의 여교수와 라디오에서 유명 영어강사로 활동하던 유명인이 연달아 학력을 속인 것으로 드러나 강제퇴직과 중도사퇴라는 충격파를 던졌다.

그 같은 사단을 보면서 나는 다시금 우리 사회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고루하게 진득한 '먹물관념'에 썩어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즉 아무리 실력이 출중할지언정 우리 사회에선 대학을, 그것도 속칭 명문대 내지는 유학파가 아니고선 좀처럼 입지의 기틀을 다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란 주장이다.

이러한 어떤 불유쾌한 신드롬 때문으로 여름방학을 맞은 지금 철모르는 초등학생들까지 그 부모의 과잉교육열에서 비롯된 대거의 해외 어학연수 등을 떠나는 것이리라.

나는 지금도 비정규직으로 힘겨운 삶의 능선을 넘고 있다. 헌데 그건 바로 불학(不學)이란 주홍글씨가 남긴 파편이자 후유증이다. 그렇지만 지금껏 누구에게도 학력을 속이거나 등쳐먹는 짓은 안 했다.

그간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리고 지금도 천착하는 건 바로 이거다. 그건 바로 학력보단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의 착근이야말로 진정 건강한 사회라는 것이다.

허나 우리 사회엔 아직도 그러한 토양이 정립되지 않았기에 모 대학 여교수와 라디오 유명 영어강사의 가짜 학력파동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인생은 어쩌면 한여름 밤의 꿈이다. 좋은 날이 있으되 하지만 잠시잠깐의 어떤 한단지몽(邯鄲之夢)과도 같은.

여하튼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은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삶이, 사실은 안분지족과 자긍심의 보루가 될 터이다.

장마가 끝물인 때문인지 오늘은 아침부터 더욱 후텁지근하다. 이런 때 소나기라도 시원스레 쏟아져준다면 농작물들도 해갈이 되어 기분이 좋아질 게고 우리네 사람들의 기분도 덩달아 상쾌해질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법무부 교정국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법무부 교정국에도 송고했습니다
#인물 #학력차별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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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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