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4 12:57최종 업데이트 24.05.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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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보고서를 두고 상반된 내용의 제목으로 보도하고 있는 <연합뉴스>와 <조선일보> ⓒ 보도 화면 갈무리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에서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회복 탄력성'이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연합뉴스>와 <조선일보>가 기사를 썼는데 전혀 다른 느낌의 제목이 나왔습니다.

2032년 한국의 전 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 19%…역대최고치 전망 – <연합뉴스>
"美 약진에 10년 뒤엔... "韓, 최첨단 반도체 점유율 31%서 9%로 급락" – <조선일보>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우리 반도체가 성장을 거듭해 전 세계 반도체 생산 부문에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밝은 미래가 보이는데,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점유율이 22%포인트나 줄어드는 악몽 같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보고서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제가 대통령님이 헷갈리지 않도록 보고서 내용을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려고 합니다.

역대 최고치 vs. 점유율 급락
 

[표 1] 보고서 내용 중 종류별 반도체 생산능력 예상 도표. 한국의 경우 전체 생산능력은 늘어나고, 10나노 이하의 로직 반도체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 보스턴 컨설팅 그룹


제목이 정반대로 나왔지만, 역대 최고치의 생산 점유율과 점유율 급락은 모두 보고서에 있는 내용입니다. 같은 보고서에서 각 매체가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만 키운 겁니다. '표 1'에서 Y축은 반도체별 종류를 나타내고 X축은 지역별 점유율을 나타냅니다. 반도체 별로 2022년의 점유율과 2032년의 예상 점유율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맨 아래에 있는 전체 점유율(Total)을 제목으로 올린 겁니다. 한국은 2022년에 17%의 점유율을 기록했는데, 2032년에는 19%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이 24%에서 21%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1위이며, 한국이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 차이는 7%에서 2%로 아주 가까워집니다. 좀 더 잘하면 1등을 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다음이 대만(17%), 일본(15%), 미국 (14%) 순입니다.

<조선일보>는 여기에서 10나노 이하의 로직 반도체만 가져와서 기사를 썼습니다. 이 경우 한국은 2022년 31%에서 2032년 9%로 점유율이 22%포인트 급락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만 역시 69%에서 47%로 22%포인트가 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지금은 전혀 생산을 못하고 있는 미국이 28%, 유럽연합(EU)이 6%, 일본이 5%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선일보>는 이 내용을 두고 사설까지 동원해서 첨단 반도체의 국내 생산 비율이 급감하면 "국가적 재앙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와 <조선일보>의 분석이 다른 상황에서 대통령님은 이 표에서 어떤 걸 봐야 할까요? 보고서에 있는 그대로를 보면 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잘 하고 있는 메모리 분야에서는 D램의 경우 57%, 낸드플래시의 경우 42%로 한국의 점유율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좋은 일이죠. 10나노에서 22나노급의 로직 반도체와 22나노 이상의 로직 반도체의 점유율 역시 조금 늘거나 지금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큰 폭의 점유율 감소가 예상되는 건 10나노 이하의 로직 반도체뿐입니다. 아날로그 반도체와 센서가 포함된 DAO의 경우 2%포인트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사실 반도체 공정 미세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중에 10나노 이하의 최신 팹을 한국과 대만에서만 독점 운영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10나노 이상의 반도체를 생산하는 수많은 반도체 회사가 언제까지나 그 수준에서 안주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반도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 각국의 보조금 지급으로 인해 더 빨라진 것일 뿐, <조선일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주 52시간 근무제,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온갖 "규제"로 우리 반도체 기업들을 얽어매서 그런 게 아니란 이야깁니다.

참고로 우리 기업들이 주로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커패시터를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하는 제품 특성상 아직 10나노 이상의 기술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용 반도체나 통신용 반도체 등 일부 로직 반도체가 10나노 이하 최신 공정으로 생산하고 있지만, 전력반도체나 자동차용 반도체 등 제품에 따라 10나노 이상의 공정에서 안정성을 더 중요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첨단 반도체만 중요한 게 아니고, 반도체 종류에 따라 공정 미세화 정도가 다르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표 2] 지난 10년 한국의 생산능력은 90%가 늘어서 2위를 차지했고, 향후 10년은 129%가 늘어서 역시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 보스턴 컨설팅 그룹

 
보고서는 2022년부터 2032년까지의 우리나라 반도체 생산능력 증가율이 124%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는 중국이 1위였고, 한국이 2위였는데, 2032년까지는 미국이 1위, 중국은 3위로 밀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격변하는 반도체 지형 속에서 한국은 지난 10년도 2위, 향후 10년도 2위를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반도체, 칭찬해 줘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보고서 내용 중 한 대목만 뽑아서 "첨단 반도체의 국내 생산 비율이 급감하는 시나리오"가 나왔다며 그게 곧 "국가적 재앙"이 될 거라고 말하는 건 너무 나간 겁니다.

<연합뉴스>와 <조선일보>가 외면한 보고서 핵심 내용

해당 보고서에는 이것 말고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있는데 오늘은 <연합뉴스>와 <조선일보> 모두 굳이 외면한 내용 하나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왜 '굳이 외면'이라고 표현했느냐 하면 두 매체가 약속이나 한 듯 외면한 내용이 각국의 반도체 보조금 현황이었고, 보고서에서도 맨 먼저 등장하는 도표라 제일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표 3] 국가별 지역별 정부 인센티브 현황. 중국이 가장 많고 한국이 두번째입니다. ⓒ 보스턴 컨설팅 그룹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라별(지역별)로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직간접적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한국은 550억 달러의 세제 혜택을, 중국은 투자펀드를 통해 1420억 달러를, 미국 보조금으로 390억 달러를, 일본은 보조금으로 170억 5000만 달러를, 대만은 160억 달러의 세제 혜택을 준다는 겁니다.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개정 이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가장 많은 보조금을 주면서 각국의 반도체 제조시설을 끌어들이는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보조금을 많이 주는데 왜 우리만 반도체 보조금을 안 주느냐 하는 언론 기사가 쏟아지는 중입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한국이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반도체 회사에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미국보다도 많고, 일본의 두 배가 넘고, 세제 혜택이라는 같은 방식의 대만에 비해 세 배가 넘습니다. 미국과의 갈등으로 인해 자체적으로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키워야 하는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반도체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인 겁니다.

대통령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시간이 보조금이라는 생각으로 규제를 풀고 속도감 있는 사업 진행을 도와주려고 한다"고 했고, "세액공제를 하면 (사실상) 보조금이 되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보조금이라며 마구 규제를 풀다가는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동해안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세워 경기도까지 전기 공급하는 걸 서둘러 봐야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조건을 맞출 수가 없어서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됩니다. 제품을 생산해도 팔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에서 펴낸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회복 탄력성' 보고서 ⓒ 보스턴 컨설팅 그룹

 
<조선일보> 주장대로 "주 52시간 근무제,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걸 풀어야 할 "규제"라고 생각하고 허물었다가는 세계의 인재를 끌어모아야 할 반도체 팹이 모두가 꺼리는 죽음의 공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풀어야 할 규제와 지켜야 할 규제를 구분하는 게 중요합니다.

"세액공제를 하면 (사실상) 보조금이 되는 것"이라는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문제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경쟁국에 비해 너무 많은 보조금을 준다는 겁니다. 반도체 기업에 천문학적인 보조금이 사실상 지급되면서 우리 재정은 바닥이 나고, 민생 회복을 위해 국민에게 25만 원씩 지급하자는 야당 제안에 돈이 없어 못 한다는 구차한 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보조금을 세액공제 형식으로 지급하고 있는 걸 어떤 식으로든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까 봐 <연합뉴스>와 <조선일보>가 보고서의 보조금 내용을 보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고서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반도체 기업에 사실상 이미 차고 넘치는 보조금을 주고 있습니다. 제한된 재정을 가지고 우선적으로 필요한 곳을 찾아 배분하는 게 정부가 할 일입니다. 틈만 나면 기업 편에 서서 반도체 보조금 지급을 외치는 언론 기사 대신 삶의 기반이 무너져 내려 지원이 급하다는 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이기를 기대합니다. 반도체도 중요하지만 민생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더 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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