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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6.18 07:16 수정 2020.06.18 07:16
많은 이들이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대면 경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말한다. 이 판단은 옳을까? 30만 년 인류 역사는 끊임없는 전염병과의 싸움이었으며, 유럽 인구 절반 가까이가 사망한 14세기 흑사병 이래, 홍역, 콜레라, 소아마비, 말라리아, 폐렴, 천연두, 에이즈 등을 겪으면서도 접촉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접촉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소통을 연구하는 커뮤니케이션학자로서, 우리가 코로나 사태에서 놓치고 있을지 모를 몇 가지를 살피고자 한다.[기자말]

어린이가 마스크를 쓴 채 그네를 타고 있다. 사람들을 쉽게 접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동과 청소년들의 공감교육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다. ⓒ vperemen

지난 학기에 예상치 못한 감투를 썼다. 소속된 대학의 '학업컴퓨팅위원회' 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이 조직은 강의, 연구, 학습에 필요한 디지털 기술을 지원한다.

비록 등 떠밀려 수락한 자리이긴 하나, 소득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과거에는 보기 어렵던 정보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됐고, 필요하면 조사를 요청해 원하는 자료를 확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궁금해 하던 통계자료는 학기가 끝난 뒤에야 구할 수 있었다. 원격강의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각이었다.

미국 대학은 가을에 첫 학기를 시작하고, 한참 겨울인 1월에 '봄학기'라 부르는 2학기 개강을 한다. 따라서 3월에 코로나 대유행으로 미국 대학들이 온라인 강의로 전환했을 때에는 학교 대부분이 봄학기 절반을 끝낸 상태였다. 비록 달갑지 않은 사태 때문이었으나, 지난 학기에 학생들은 같은 과목을 오프라인과 온라인 두 형태로 체험해볼 수 있었다.

이 드문 기회를 누린 학생들이기에,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교실수업과 원격수업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이들의 견해가 매우 궁금했다. 물론, 학생들이 교실수업을 더 좋아하리라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학생들이 15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등록금 반환을 위한 교육부에서 국회까지 5박6일 대학생 릴레이 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학생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부실수업에 따른 등록금 반환, 원격 수업 대책, 학생안전, 인권 보장 등을 촉구했다. 2020.6.15 ⓒ 연합뉴스

 
한국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에 실망해 등록금 환불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지켜봤고, 시카고대학을 비롯한 몇몇 미국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피켓을 든 채 등록금 할인을 요구하는 장면도 지켜봤다. 하지만 나 자신도 원격수업의 근본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학습효과와 효율성 면에서 원격수업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가르치고 평가하는 교수들이 더 잘 알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라. 안 그래도 따분한 강의를 저화질 영상으로 바꿔 전송한다고 재미가 폭발할 리 없잖은가? 실시간으로 묻고 답하면서 원격수업을 진행한다 해도, 교실 내 상호작용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원격수업에서는 엄밀한 의미의 '실시간 소통'이 불가능하다.) 학생들 틈을 비집고 다니며 확인해도 강의내용을 숙지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판에, 평면화면에 손톱만하게 뜨는 학생들 표정만으로 사방에 흩어진 개인의 '현지 상황'을 살피기는 더욱 어렵다.

원격으로 지식을 평가하기는 더욱 어렵다. 학생들이 교재, 필기 내용, 인터넷 검색 등을 동원해 답하는 방식으로 전체적 지식을 느슨하게 측정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나, 엄밀한 시험으로 세부 지식을 평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격강의에서 교육자가 가장 무기력해지는 순간은 학생이 접속하지 않고 '잠수'를 타는 경우인데, 이게 단순히 인터넷 연결 문제인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문제인지, 학생이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수업을 거부하는 것인지,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에 나도 겪은 일이다. 한 학생이 집에 머물면서도 수업에 나타나지 않으며 계속 '결석'을 했는데, 답장 없는 이메일을 수없이 보내낸 뒤 학기 말이 되어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 집에 다시 모였는데, 좁은 공간과 가족들 사이의 갈등 탓에 수업에 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강의실 수업이 단지 모아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집중하기 좋은 환경으로 초대하는 일임을 알게 됐다.
 

한 초등학교 교실의 온라인 수업 장면. ⓒ 연합뉴스


원격수업, 누가 더 싫어하나

마침내 학기가 끝났고, 원하던 통계자료가 손에 들어왔다. 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가 먼저 나왔고, 며칠 뒤 교수들의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같은 문항에 대해 학생과 교수의 반응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학생들은 원격강의에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학생들이 대면수업에 더 후한 점수를 주리라는 사실은 예견한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매우 놀랐는데, 그 비율이 90%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교실수업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답한 학생이 73%, '그렇다'가 15%였다.

교수들의 교실수업 선호도 뚜렷했다. '매우 그렇다(60%)'와 '그렇다(23%)'를 합해, 83%가 오프라인 수업이 더 좋다고 답한 것이다. 학생은 물론 교수들까지도 원격강의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학생과 교수가 서로에 대해 엇갈린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교수가 자신들보다는 원격수업을 덜 싫어할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교수들은 학생들이 자신들보다 원격수업을 덜 싫어할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경향은 교수들에게서 더 분명히 드러났는데, '학생들이 교실수업을 선호하느냐'고 물었을 때 48%만이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학생들의 실제 답변인 73%보다 25%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여기서 고개를 갸웃하는 교수들도 있으리라.

'학생들이 언제부터 강의실 수업을 그렇게 좋아했나?'

머리 싸맬 것 없이, 화상수업을 그만큼 싫어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내 동료는 '교수님이 그립다'는 학생의 메일을 받고 '오래 살다보니 이런 말도 들어본다'고 신기해했다. 요약하자면, 교수와 학생 모두 온라인 수업을 싫어하지만 학생들이 더 싫어하며, 교수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싫어한다.

거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단지 불편하고 학습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이 아니다.
  

줌의 화상회의 장면. 지난 몇달간 다양한 분야에서 화상회의 시스템이 대거 도입되었으나, 사용자의 두뇌와 정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 Zoom

 
줌을 둘러싼 전문가들의 경고

코로나 사태로 원격수업과 화상회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뜻하지 않은 '대박'을 터뜨린 회사가 있다. 2011년 설립한 '줌 비디오 커뮤니케이션(Zoom Video Communications)'이다. 전 세계가 폐쇄, 격리, 자택대기의 늪에 빠지면서, 별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이 회사에 사용자와 투자자가 밀려들었고, 주가와 매출도 덩달아 뛰었다.

줌의 하루 최대 접속자 수는 작년 12월까지 고작 1천만 명이었다. 불과 두 달 뒤인 3월에는 이 수가 2억까지 치솟았다. 이로 인해 매출과 수익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 회사의 작년 ¼분기 수익은 19만8천 불(약 2억 4천만 원)에 머물렀지만, 올해는 2700백만 불(약 325억 원)을 기록했다. 수익이 136배 폭등한 것이다.

얼마 전, 줌 서비스의 보안에 치명적 결함이 발견되었고, 화상통화 내용을 암호화해 전송한다고 사용자를 거짓으로 안심시킨 사실도 드러났다. 해킹으로 개인정보를 빼내거나 화상회의에 불쑥 등장해 난동을 피우는 '줌바밍(Zoobombing)'도 골치를 썩였지만, 지난 몇 달간 이 회사는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물론, 코로나 대유행이 지난 후에도 줌이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이처럼 줌이 한참 주목을 끌던 4월 말, <내셔널지오그래픽>지에 "'줌 피로'가 두뇌에 가하는 충격"이라는 특집기사가 실렸다. 며칠 뒤 <뉴욕타임스>는 "줌은 왜 끔찍한가"라는, 한층 더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를 내보냈다. 비록 '줌'을 제목에 붙였지만, 이 기사들은 특정 서비스가 아니라, 팀스, 하우스파티, 스카이프, 페이스타임 등 화상대화 시스템 일반의 해악을 다루고 있었다.
 

화상회의 시스템이 지닌 근본적 한계를 분석한 <뉴욕타임스> 기사. ⓒ NYT


이 분석기사에는 각계의 신경과학자, 임상심리학자, 사회심리학자, 컴퓨터 공학자, 교육심리학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화상회의를 통한 소통이 두뇌와 심리상태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화상회의 시스템은 현실의 대화를 재현하는 듯한 착각을 주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말뿐 아니라 표정과 몸짓으로도 대화한다. 비언어적 소통이 대화에서 오가는 정보의 70~93 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포착하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상대방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며 생각지도 않던 이야기보따리를 풀기도 하고, 상대방 미간에서 살짝 접히는 근육 하나로 반쯤 꺼냈던 말을 슬그머니 삼키기도 한다.

현실에서 우리가 상대 표정에 반응하는 시간은 말 그대로 찰나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특히 기쁜 표정을 읽어내는 재주가 뛰어난데, 이때 걸리는 시간은 대략 25밀리 초, 즉 0.025초 정도다. 화상회의는 대화 상대의 섬세한 얼굴근육을 충분한 속도, 크기, 선명도로 재현하지 못한다.

카메라에 잡힌 모습이 디지털 신호로 바뀌어 압축되고 전송되는 과정에서 짧은 지체현상이 발생하고, 신호는 다시 해독되어 상대의 화면에 작은 모자이크 이미지로 재생된다. 연결 상태와 컴퓨터 처리속도의 문제로 이미지가 추가로 깨지거나 정지하는 일도 잦다. 모든 화상시스템이 안고 있는 지연, 축소, 해상도 저하가 비언어적 소통의 흐름을 끊고 차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격 화상수업, 왜 위험한가

말은 정보를 담지만,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가는 상대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읽어내는 능력에 달려 있다. 대화에 몰입한 두 사람은 무의식중에 표정을 흉내 낸다. 이 전이현상은 영장류가 지닌 공감능력 때문인데, 우리는 상대 표정에 담긴 비언어적 신호를 해독함으로써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공감을 토대로 대화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간다.

상대의 표정을 읽는 능력에서 유쾌하거나 불쾌한 대화, 기쁘거나 슬픈 대화, 소통 가능 또는 소통 불가능 여부가 결정된다. 문제는 비디오 영상으로 매개된 '비대면 소통'이 공감을 끊임없이 방해한다는 점이다. 컴퓨터 화면에서 다른 컴퓨터 화면으로 전송되는 영상이 상대의 미묘하고 섬세한 표정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상을 통한 '비대면 대화'가 어색하고 피곤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위스콘신대학 심리학 교수인 폴라 니덴탈 박사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뇌는 언어와 비언어적 소통 사이의 간극을 자신의 오류로 간주해 자꾸 수정하려 든다고 설명한다. 화상대화 시스템의 문제를 뇌기능의 문제로 착각하고, 그 결과 혼란과 과부하가 발생하는 것이다. 셰릴 브라넘 박사 역시 원격의료 역시 동일한 한계를 안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갑작스레 도입된 화상회의 시스템을 "비공식 사회실험"으로 묘사한다. '비대면' 대화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교실, 거실, 사무실, 병원 진료실에 도입되어 소통을 주도하게 됐지만, 이것이 우리의 뇌, 정서, 사회에 어떤 장기적으로 누적적인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는 탓이다.
 

화상회의의 문제점을 다룬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사. '줌 피로증후군'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 National Geographic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교육에 도입된 화상회의 시스템이다. 문제의식 없이 원격수업을 늘려갈 때 학생들, 특히 아동과 청소년들이 공감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공감능력은 소통능력과 뗄 수 없으며, 남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기본 토대가 된다. 다음 글에서 살피겠지만, 나는 성착취물 범람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밀어내기 시작한 '대면 소통'의 부재와, 그로 인한 공감능력 상실에 큰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현재로서는 불가피하게 원격수업 시스템을 이용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고민이 따라야 하며, 이를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과 의료를 '비대면 서비스 강화'라는 산업 중심적 사고에서 접근하고 확대하려 해서는 안된다. 기술과 산업이 수단이고 학생과 환자가 목적이지,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이 문제에 대해 몇 가지 대안을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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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