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 07:39최종 업데이트 20.06.10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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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 휴지'가 된 조선일보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아 5일 오전 서울 광화문네거리 조선일보사 부근 원표공원에서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청산 시민행동'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과 함께 오종선 작가의 '조선일보 백년전'이 열렸다. 오종선 작가는 일제강점기 때 1월 1일이 되면 1면에 일왕 부처의 사진을 싣고, 제호위에 일장기를 올려 놓은 조선일보를 '두루마리 휴지'로 만들어 전시했다. 2020.3.5 ⓒ 권우성

 
"...언론 망국론이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군부 독재정권에 빌붙어 온갖 굴종과 왜곡으로 군부독재 정권의 수명을 떠받쳐온 수구언론,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면서 조폭적 행태를 일삼는 세습 수구언론의 사주들, 이들 사주들에게 충성을 바치는 중간 보스들의 노예근성과 이들이 휘두르는 붓의 폭력성, 관할영역 확대를 위한 피투성이 싸움처럼 판매부수 1위를 위해 벌이는 살인적인 판매 경쟁 양태, 이런 수준의 신문들이 신문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면서 이 땅을 황폐화하고 있는 이 처절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이 땅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공동체 건설을 바라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20년 전, '한국신문의 조폭적 행태'(1)(한겨레 2000.10.11 '정연주 칼럼')에 담긴 내용이다. '조폭언론'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첫 글이다.

'조폭언론'이라 표현한 이유는 당시 여론시장을 독과점하던 조중동의 행태가 조직폭력배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자기 관할영역을 지키기 위한 무지막지한 폭력 행사(언어폭력뿐 아니라, 1등 신문 판매경쟁을 하면서 실제로 살인사건까지 벌어졌다), 중간 보스들(언론사 중간 간부)의 두목(족벌 언론사주)에 대한 노예·아부 근성, 조직에 대한 충성심 등 족벌언론과 조폭의 행태는 닮은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1978년 가을, 동아투위(동아일보사 해직언론인) 동지 9명과 함께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나는 조폭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당시 서대문 구치소에는 우리나라 조폭계에서 이름을 떨친 조직의 인물들이 들어와 있었다. 교도관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 중 일부는 청와대 경호실과 검찰 등 당시 권력기관에서 '보호 차원'에서 감옥에 잠시 '모셔다 두었다'는 것이다.

권력기관이 정치 목적에서 조폭들을 동원하여 폭력을 행사하게 하는, 권력과 조폭 간 유착이 보통이 아니었다. 야당 행사장 또는 유세장에 폭력배들이 난입하여 난장판을 만드는 일이 흔했는데, 그 과정에 권력과 조폭의 검은 밀착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얘기였다. 실제 '잠시 쉬러' 감옥에 들어온 거물급 조폭들은 여러 면에서 '특별대우'를 받았다. 교도소 안에서 모두가 갇혀있는데, 그들은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녔다. 함께 들어온 부하들은 보스를 하늘처럼 섬겼다.

"청와대 경호실과 검찰의 높은 분들이 어제 교도소장 방에서 조폭 거물 누구를 특별 면회하고 갔다"는 얘기를 교도관들이 종종 전해주었다. 그들이 일정 기간 '쉬고 나서' 풀려나곤 했는데, 출소할 때의 풍경은 영화의 한 장면 그대로였다. 서대문 구치소 앞에는 수십 대의 검은색 승용차와 부하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는 것이다. 교도관들이 얘기해준 그들의 세계는 말 그대로 '별 세계'였다.

우리나라 조폭 역사를 보면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명동의 '신상사파'가 건달 세계를 지배했다. 당시 신상사파는 주로 주먹을 사용한, '신사적' '낭만적' 깡패였다는 것이다. 그 신상사파가 주먹이 아닌, 칼과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는 신종 '조폭'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면서 깡패 세계가 매우 잔인해졌다는 것이다. 내 옆방에 수감되어 있던 조폭 중간 보스에게 들은 얘기다.

영역 싸움 벌이는 신문

2000년 6월 11년간의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포함해 18년간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귀국했다. 귀국하자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일보>는 본격적으로 냉전의 전사답게, 극우와 수구 기득권의 중심세력답게,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핏발이 선 것처럼 느껴졌던 그들의 언어와 가학적 공격은 신상사파를 칼과 몽둥이로 제압한 신종 조폭들의 폭력을 연상시켰다.

<동아일보>는 추석 언저리인 2000년 9월 9일 자에 '대구 부산에는 추석이 없다'는, 지방색을 부추기는 기사를 썼다. 당시 <미디어오늘>은 동아일보의 '정부 때리기' '영남 달래기'의 원인이 열세에 몰린 영남권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지방색을 부추기는 기사를 썼다고 분석했다.

실제 그즈음 나는 옛날 함께 근무했던 현직 동아일보 기자 한 명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가 이런 얘기를 했다. 지방색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극하면서 사세를 확장하려는 동아일보의 이 '작태'가 '나와바리'(영역) 싸움을 벌이는 조폭과 뭣이 다른가, 라고.

20년 전, '조폭언론'을 처음 썼을 때, '언론망국론'을 얘기했다. 그때나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이나 '언론망국론'은 여전하다. 지금은 오히려 온갖 종류의 '매체들'과 '기자들'이라 칭하는 존재들이 넘치는 데다, 포털의 선정성과 상업주의, 거의 무한 반복·재생의 기능으로 '망국 언론'의 패악은 훨씬 더 증폭되어 있다. 그 행태를 보면 마치 방화범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불을 지르며 때로 린치를 가하는 망나니짓 같다.
 
최근 2년간. 거의 패턴이다... 망신준다. 들춘다. 쑤신다. 법과 윤리를 섞는다. 헤드라인으로 자극한다. 입증되지 않은 걸 퍼뜨린다. 청와대를 거론한다. 반박하면 발끈한다, 뭐가 있으니 저러겠지 조롱한다. 의혹 터뜨리는 건 언론의 책무라고 지껄인다. 진실이 아님...상관 없다. 다음 대상, 다른 의혹으로 이동한다. 찔러본다. 망신준다...
- 최경영 KBS 기자의 페이스북 글

마포 쉼터 소장의 죽음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 앞에서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과거 여론시장을 독과점하면서 좌우했던 조중동의 장악력은 종이신문의 급격한 쇠락과 다매체 시대에서 크게 떨어져 버렸다. 그렇게 쇠락한 처지로 전락해서인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폭력의 수준, 논리와 행태는 조악하다. 그리고 이들 논리를 추종하는 대부분 언론의 수준과 행태도 별로 다르지 않다.   

정의기억연대의 마포쉼터 '평화의 우리집' 손영미 소장이 목숨을 잃었다. 정의기억연대는 고인이 "무엇보다 언론의 과도한 취재경쟁으로 쏟아지는 전화와 초인종 벨소리, 카메라 세례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며 '인권침해적인 무분별한 취재경쟁의 중단'을 요구했다(관련기사: '언론 촬영과 취재 일체 금지'... 비공개 된 손영미 소장 추모제 http://omn.kr/1nv40).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할머니들의 손과 발이 되어준 활동가"(한겨레 6.8)로 알려진 손영미 소장이 기자들의 취재경쟁과 검찰의 압수수색에 힘들어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신주고 들추고 쑤시는 언론, 자료제출 요구만 해도 될 것을 압수수색이라는 강압적인 방식을 쓴 검찰, 둘의 집단 린치가 또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구나 하는 분노를 다시 느끼게 된다.

두 집단을 정상으로 바꾸기 전에 우리 공동체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바뀌는 일은 불가능하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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