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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9.24 12:07 수정 2020.09.24 12:16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1인시위 중인 장혜영의원. 국회본회의장 입구에서 기타를 치며 <그 쇳물 쓰지마라>를 불렀다. ⓒ 장혜영의원실

 
3년을 알고 지냈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일도 했으니 그를 잘 아는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어떤 사람이냐?'라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그를 몇 마디 말로 온전히 그려낼 자신이 없다. 그는 부드럽고 예리하다. 여린 꽃잎처럼 더없이 세심하고 온유하지만, 서슬 퍼런 기백과 단호함이 때로 칼처럼 섬뜩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에서 '연약하다는 것은 용감하게 산다는 것/ 한 가닥 실바람에도 온 마음을 내주는 것'이라며, '세상 모든 것들을 살며시 감싸' 안는 '연약한 존재들의 아름다운 비밀'에 대해 노래한다.

내가 아는 장혜영은 '연약한 자들의 아름다운 비밀'과 같다. 큰 소리로 겁박하지 않으면서 낮고 작은 존재들의 부드러움으로 정곡을 찌르고 들어온다. 그 힘은 거칠지 않고 달콤하다. 그래서 투과율이 높고 심금을 울린다. 지난 16일 세간의 화제가 된 그의 국회 대정부 질의 모두발언을 들으며, '더없이 그 다운 연설'이라고 느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87년생인 저는 독재의 두려움을 피부로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른 두려움을 압니다. 무한한 경쟁 속에 가루가 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나날이 변화하고 복잡해지는 세상 속에 내 자리는 없을 것 같은 두려움, 온갖 재난과 불평등으로부터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누구를 타도해야 이 두려움이 사라지는지, 알 수 없는 두려움입니다. - 장혜영, 국회 대정부질의 모두발언 중, 2020.9.16. 
 
장혜영은 1987년생 정의당 초선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그는 영화를 만들고 노래를 지어 부르고 책을 쓰고 유튜브를 통해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건 2017년 9월 <한겨레>에 실리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는 한 살 아래인 발달장애 동생을 장애인시설에서 데리고 나와서 함께 살기 시작한 지 4개월 차였고, 장애인 동생과 사는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제작 중이었다. 영화는 호평을 받고 이듬해 국제여성영화제에서 '박남옥상'을 수상했다.

다큐멘터리 작업이 끝난 뒤, 나는 장혜영에게 함께 일하기를 청했고 그는 2018년부터 지난해 말 총선 준비에 돌입하기 전까지 재단법인 와글의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지난 17일 오전 9시 국회의원회관 516호실에서, 3년 만에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로 그를 다시 만났다.
 
노래하고 영화 만들고, 책에 묻혀 사는... '신종 국회의원'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업무 중인 장혜영의원 ⓒ 와글

 
- 3년 전 쓴 인터뷰 기사를 다시 뒤져보니, '2017년 9월 26일 추석 연휴를 앞둔 때였다'라고 썼더라고요.

"아아, 딱 3년 만이네요."
 

- 3년 만에 다시 추석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그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죠. 와글 사무국장 장혜영과 정의당 국회의원 장혜영의 가장 큰 차이는 뭐죠?

"음… 훨씬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하하하."
 

- 그렇네요. 아침 9시에 인터뷰를 하게 될 줄이야.(웃음)

"와글에서 일할 때는 외부행사 있을 때를 제외하면 잠옷을 입고 출근해도 출근으로 인정이 되었는데...(웃음) 일하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죠."
 

- 일과가 어떻게 돼요?

"(새벽) 2시쯤에 자서 7시 반 출근해요."
 

- 다섯 시간 남짓 잔다는 얘기네요? 의원실 비서진들도 그렇게 일해요?

"출근은 9시고요. '9 to 6'를 기본으로 하고 야근할 사람들은 알아서 하고요."
 
- 그러면 다른 분들 출근하기 전에 먼저 출근하는 거예요?

"네. 제가 먼저 와서 필요한 준비를 해요. '월급 많이 받는 사람이 더 많이 일한다.' 그런 암묵적인 룰이 있는 거죠. (웃음)"
 
깔깔 웃는 장혜영 의원 옆으로, 화이트보드 한구석에 '꺄~악, 의원 살려'라는 장난스러운 낙서가 보였다. 소파 위에는 기타가, 바닥에는 요가 매트가 한 장 깔려있고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할 때 쓰는 장비와 전선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책상 위, 소파 테이블 위, 원형탁자 위까지 켜켜이 쌓여 있는 책들이었다.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경제학>,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가치의 모든 것>, 통 빙험의 <법의 지배>, 조나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과 같은, 경제학, 법학, 정치학, 철학책들이 색색 가지 인덱스를 빼곡히 달고 여러 메모지와 노트 사이에 뒤섞여 있었다.
 
"그래도 나름 있어야 할 자리에 제대로 놓인 거예요. (웃음)"

보는 사람에게는 어지러워 보이겠지만 자신에겐 다 이유가 있는 배치라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노래 부르고 영화 만드는 장혜영과 여느 연구자 못지 않게 책더미에 묻혀 사는 장혜영은 다른 인물이 아니다. 치열하게 고민한 화두를 가볍게 풀어낼 줄 아는 장혜영 특유의 언술은 깊은 사색과 감성적 소통 능력의 산물이다. '신종' 국회의원이다.
 
"86세대에 독재가 도전 과제였다면, 다음 세대엔 기후 위기"
  

지난 9월16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의 중인 장혜영의원. 그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 장혜영의원실


- 16일 장혜영 의원의 국회 대정부질의 모두발언이 큰 주목을 받았어요. 여러 언론 매체가 이구동성으로 '기득권자가 된 586정치에 돌직구를 날렸다,' 이런 식으로 제목을 뽑았던데, 이게 원래 하려던 얘기의 의도와 핵심을 잘 짚은 건가요?

"절반만요."
 
- 절반만?

"네. 그리고 사실 돌직구가 아니라 굉장히 부드러운 변화구를 던진 거라고 전 생각하는데... (웃음)"

- 그런가요? 

"사실 제가 중요하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연결'이었어요. 세대 간의 갈등이나 싸움이 아니라 연결!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과제와 시대적인 도전이 있는데, 그게 86세대에게 '독재'였다면 지금 우리 세대에게는 '불평등'이고, 이미 우리 세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다음 세대에게는 '기후위기'일 것이다라는..."
 
- 그래서 독재에 저항했던 87년 당시 청년들이, 예전의 기백을 되살려 오늘날 청년들이 마주한 불평등과 기후위기 문제 해결에 동참해 달라?

"그렇죠."
 
- 장 의원은 젊고, 신선하고, 호소력 있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뒤집어서 보면 나이가 어리고, 정치 경험이 일천하고, 감성적이고 나이브하다는 부정적 평가의 근거가 될 수도 있어요. 국회의원을 하기에는 어리고 아마추어적이라고 비난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보는 방식에 따라서 같은 사람을 완전히 다르게 서술할 수 있어요. 그게 무슨 뜻일까요? '본질적이지 않다'는 거겠죠. 제게 주시는 말씀은 귀담아들어야 하지만 저에 대한 평가는 각자가 보고 싶은 대로 바라보고 내리는 것이니, 비난이든 찬사든 그 자체로 내 행동의 기준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 칭찬에도 덤덤해지겠다?

"칭찬해주시는 건 고맙지만 그 칭찬에 한 번 매달리기 시작하면 일을 할 때마다 '이게 그 사람으로부터 다시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런 게 기준이 돼버려서 팬덤 정치로 갈 수도 있겠단 느낌이 들어요. 국회의원의 역할이 일을 하는 거지, 칭찬받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물론, 칭찬받으면 좋죠. (웃음)"
 
정의당 혁신을 바라보는 관점 
 

지난 8월13일, 정의당 혁신위원회 혁신안발표 기자간담회장에서 장혜영(가운데) ⓒ 장혜영의원실

 
- 지난 5월 14일부터 8월 13일까지 3개월간 정의당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셨습니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긍정적 평가부터 "혁신위 활동이 계파 안배용 권력 나누기에 그쳤다"는 혹평까지, 이견의 폭이 큽니다. 이제 혁신위원장으로서의 공식 활동이 끝났으니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요?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의미 있는 성과와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이었는지?

"저도 아쉬운 점이 많아요. 솔직히 저는 가치의 문제를 깊이 다루고 싶었거든요. 가령 '변화하는 산업환경 속에서 노동의 미래를 위해 정의당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와 같은 문제들이요.

그런데 어떤 조직이든 핵심은 예산권과 인사권이잖아요. 제가 맡은 혁신위원장 자리는 이 두 가지 없이, 사람까지 다 세팅된 상태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권리 이외에 달리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집중해서 얘기하고 싶은 가치를 논하기보다는, 한분 한분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존중하면서 가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조건에서 저는 그래도 정의당이 이 다음 리더십을 어떻게 만들 건지에 대한 과제는 의미 있게 다뤘다고 생각하고. 그 성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드러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요?

"청년 정의당을 만들기로 했는데, 원내 정당들 가운데서는 청년정치에 대한 일관된 비전을 가지고 정의당이 제일 먼저 스타트를 끊은 거예요. 개인 중심의 리더십에서 시스템 리더십으로 정의당의 리더십이 변화하는 토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지금 시스템 리더십이라고 얘기하는 것, 그리고 혁신위 성과를 부정하는 측에서 '계파정치의 제도화'라고 말하는 것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죠? 시스템 리더십과 계파정치의 다른 점?

"저는 '개방성'과 '투명성'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 안 모든 사람의 생각이 균질하다고 가정하는 건 비상식적이잖아요? 당 안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를 하고 무리를 형성하는 것, 이건 민주주의에서 당연한 거죠. 정파라는 존재 자체가 나쁜 게 아니에요.

다만 정파 간의 개방적이고 공개적인 토론과 논쟁을 통해서 가치의 승부, 즉 열린 승부를 통해 이뤄져야 할 일이, 밀실에서 따로 만나 이익을 협상해서 나누는 식으로 결정된다면 문제가 되겠죠. 무조건 '정파가 문제야'라고 단정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정파적 이견이 정당의 민주적 논의를 북돋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해요."
 
- 장혜영 의원은 정파가 뭐예요?

"저는 정의당파입니다. (웃음)"
 
- 이번에 혁신위 안을 통해서 부대표 수를 늘린 것은 어떤 각도에서 봐야 합니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이건 '실무형' 부대표를 늘린 거예요. 그러니까 당대표의 권한이라고 하는 건 여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정의당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아젠다(과제)를 가지고 사업하는 부대표들을 분야별로 두고 서로 긴밀히 협의해 나간다는 의미죠.
 
- 지난번 박원순 시장 조문을 둘러싸고 당 안팎으로 큰 격론이 일었습니다. 당시 장 의원과 류호정 의원의 선명한 태도 덕분에 정의당의 정체성이 분명해졌다는 입장도 있지만, 그 때문에 대거 탈당사태가 벌어졌다는 우려도 있어요.

"당원들이 떠나는 것만큼 아픈 건 없어요. 더구나 떠나는 이유가 나의 정치적 행동과 어떻게든 연결돼 있다고 하는 건 사실 너무너무 아픈 얘기죠. 일각에서 '전혀 그런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되게 서운해요. 너무나 아픈 일이지만, 떠난 데는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그분들이 왜 정의당에 있었는가. 결국에는 우리 사회가 한 발짝 더 진보하기를 바라고, 이 작은 정당에 오랫동안 당적을 갖고 기여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여전히 우리 당 안에 살아 있고 현재적인 의미로 실천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면, 떠났던 분들도 정의당이 우리 사회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상기하실 거라고 믿어요."
 
-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그렇게 만들어야죠. 그리고, 한번도 정의당이 자신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사람들에게도 '그렇지 않구나',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구나'라고 느끼실 수 있게끔 제가 더 잘 해야죠. (웃음)"
 
가장 연약한 사람들의 존엄과 평등을 지켜야 내 삶도 지켜져요
   

지난 6월29일 장혜영의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했다. ⓒ 장혜영의원실

 
21대 국회의원 임기 개시일은 5월 30일, 그로부터 한 달이 채 못 되어 지난 6월 29일, 장혜영 의원은 1호 법안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했다. 지난 13년간 6번이나 발의되었다가 번번이 무산된 법안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정부입법으로 발의된 첫 법안은 2008년 17대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폐기되었고, 이어서 18~19대 국회에서 노회찬·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회기만료), 김한길·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자진철회),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회기만료)이 각각 대표 발의를 했지만 모두 회기 만료나 법안 자진철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아예 법안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 6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88.5%는 차별 금지 법제화에 찬성한다고 답했지만, 아직도 차별금지법의 국회 통과를 낙관하기엔 갈 길이 멀다.
 
- 지난 13년간 차별금지법이 발의될 때마다 보수기독교계의 극렬한 반대와 압력에 못 이겨 많은 의원들이 미온적 태도를 취했어요. 이번에 차별금지법을 발의하면서 그런 직간접적인 압력을 받지는 않았나요?

"왜 없겠어요?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었죠. (웃음) 전화가 정말! 종일 의원실 전화가 불이 났어요. 문자 폭탄도 2000통 가까이 쇄도하고. 이렇게 시달리고 있단 얘길 소셜미디어에 썼더니, 응원문자를 보내주신 분들도 되게 많고요."
 
- 차별금지법 앞에 '포괄적'이라는 용어가 붙었단 말이에요. 그간 남녀고용평등법이라든가 연령차별금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개별적인 참여금지법이 존재해왔는데, 이걸 '포괄적'으로 묶어서 차별금지법을 내놓는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같은 법안들은 개별적 속성을 가진 차별에 대해서 어떻게 금지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법들인데, 그 외에도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차별, 상대방의 도덕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일들이 숱하게 일어나잖아요. 오래된 차별일수록 문화 안에 녹아들어 잘 긁어내지지 않아요.

사람들은 나름의 도덕을 지키며 살고 있다고 여기는데,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문화 안에 차별이 존재하진 않았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을 하나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시민적인 성찰을 위한 법. 사법적인 처벌보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중재에 의해 다뤄지는 일상적 차별을 차단하기 위한 법이죠. '차별하는 사람, 다 벌주고 싶어'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좀 '기운 빠지는 법'일 수도 있어요. (웃음)"

-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에는 성별·나이·장애·종교 등 23개 차별금지사유가 적시돼 있지만, 이 가운데 가장 쟁점이 되는 건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입니다. '코로나로 국민의 생명·생계가 위협받고 있는 시점에 성소수자 문제에 매달릴 때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어요. 지난 수십 년간 '경제'와 '인권'을 대립적 구도로 해석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인권은 잠시 유예해도 좋다'는 입장이 주류적 시각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살아왔던 시기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서도 인권은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세계가 나아가고 있다고 보는데요. 예를 들어 교육을 생각해 보세요.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 사회의 교육수준이 높아져야 고부가가치 산업도 발달할 수 있는 거잖아요?"
 
- 그렇죠. 교육을 통해 인적 자원이 확보되는 거죠.

"인적 자원이 불균등하게 발달해 있다고 한다면, 그 사회의 산업적인 도약이라는 건 큰 한계를 가질 거예요. 부당한 차별을 통해서 개개인이 가진 재능과 장점을 살릴 기회를 차단당하는 건,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서도 굉장히 큰 손실이죠.

차별금지법 제정은 특정한 사회적 약자만을 위한 일이 아니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을 지킨다는 절대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 효용의 문제와도 깊이 결부돼 있는 거죠. 사실 2007년, 2008년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나선 건 재계거든요. 국가인권위원회에 가장 많이 접수되는 차별도 고용에 대한 차별이에요."
 
"차별금지법, 이번엔 가능할 것... 함께할 동료가 필요해요" 

- 차별로 부당한 이득을 얻는 구조를 개선하자는 것인데, 이번엔 통과가 될까요?

"쉽지는 않겠지만, 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코로나 이후, 누구든지 이 사회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을 시민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요. 가족이 확진자로 분류되고 나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평소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제게 긴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도 계셨어요."
  

인터뷰를 한 이진순 와글이사장(좌)과 장혜영의원(우) ⓒ 와글

 
- 마무리할 시간이에요. 제가 3년 전 인터뷰 때 "장애인 동생을 돌보고 사는 게 고단하지 않냐"고 물었던 거 기억해요? 그랬더니 그때 "동생이라는 존재는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존재 자체로 가이드가 돼준다"는 답을 했어요. 지금도 그런가요?

"그럼요.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고, 저를 정치 시작하기 전처럼 대해주는 사람은 제 동생이에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안내해 주는 소중한 가이드죠. '불쌍한 내 동생'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 동생과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어요. '내가 왜 여기 있지?'란 생각이 들 때마다 우리가 같은 시민이라는 걸 증명하고 만들어나가기 위해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하죠.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많이 배워요. 집요함 같은 거, 같은 얘길 1500번씩 하고.(웃음)"
 
-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아, 있어요. 저, 동료가 필요해요. 불평등과 기후위기 문제를 제기해야 된다는 것에 대해 논리적인 설득이 필요 없을 정도로 공감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동료. '독재를 타도하자!'라고 할 때, 동료라면 '왜 독재를 타도해야 하는지' 논리적인 긴 설명이 필요 없었을 것 아녜요? 그것처럼 이미 불평등이나 기후위기가 '나의 문제'인 사람들이 정치판에 훨씬 많아져야 된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해요.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현실정치에서 뛰는 더 많은 정치인들을 만나고 싶고, 정치를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더 활짝 문을 열고 달려올 수 있게끔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당장 2년 후에 지방선거가 있는데,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될 거예요. 그래서 와글 같은 플랫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아이쿠,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희 내년에 지방선거아카데미 열 거예요.

"저도 와글과 함께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과 뭔가를 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 진짜 외로워요. (웃음)"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진순씨는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으로, 와글 간행 <듣도 보도 못한 정치>, 인터뷰집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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