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2 19:00최종 업데이트 20.08.2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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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동물의 DNA 정보 총체인 유전체(또는 게놈)는 개별 유전자의 기능을 이해하는 것 외에도, 종(種)별로 특이적인 기능들을 이해하는 것을 돕는다. 유전체는 논쟁의 영역에 있던 역사적 사실들을 파악하는 데에도 활용된다. 범죄 수사에 DNA 확인 기법이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강력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늘어났던 것에 견줄 만하다.

최근에는 사해문서(死海文書, Dead Sea Scrolls)를 둘러싼 논쟁에 유전체학이 활용됐다. 개신교와 가톨릭교에서는 '구약성서'로, 유대교에서는 '히브리어 성경'으로 부르는 경전은 수십 권의 개별 경전들을 모아놓은 책으로, 유대민족 사이에서 구전 전승하던 이야기를 문자로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히 언제 기록되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는 각 권별-학자별로 주장이 다르지만, 대략 기원전 수세기 전부터 기원후 수세기 사이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손으로 옮겨 적은 필사본의 형태로 전해지던 것이 최근으로 오면서 활자 보급에 따라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해 문서의 일부. 구약성서의 '창세기'가 쓰인 부분. ⓒ 위키커먼스


사해문서 해석

사해문서는 1947년에서 1956년 사이에 이스라엘의 소금호수인 사해(死海) 주변 '쿰란'이라는 유적지의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필사본 구약성서다. 양가죽을 무두질 해 글자를 새기는 두루마리 형태(양피지)의 이 기록물들은 대략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세기에 걸쳐 전해져온 구약성서의 원본과도 같은 것이며, 현존하는 구약성서 사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문서다. 사해문서가 모두 구약성서인 것은 아니고, 구약성서를 포함한 기원전후 수세기에 걸쳐 기록된 유대인들의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유산이다.


사해문서는 등장과 함께 역사적, 종교적 논쟁들을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 이를테면, 히브리어 원본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었지 실존 여부가 불분명해 개신교에서는 경전 목록에서 제외되었던 '토빗기'나 '집회서' 등의 히브리어 판본이 사해 문서에 포함되어 있어, 그간의 논쟁을 불식시켰다.

또 사해 문서들이 발견된 쿰란 외의 장소 중 하나인 '마사다' 지역은 기원전후로 로마의 통치를 받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로마군에 의해 무력진압을 당하던 당시 최후의 격전지 중 하나다. 이곳에서 일부 유대교인들이 예루살렘 땅 밑 수로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함께 가지고 나온 사해 문서를 동굴에 숨겨두었다고 이야기로 전해지던 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고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해 문서를 둘러싼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사해 문서 발견 당시 일부가 도굴꾼들이나 골동품 상인들을 통해 경로를 알 수 없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수집되다보니, 더러는 가짜 문서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워싱턴 성서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던 고가의 사해문서 조각 16종 중 5개 조각이 가짜로 밝혀진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16종 모두가 최근에 만들어진 가짜문서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물론, 일부 가짜 문서가 섞여 있더라도 이제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문서들은 진본이다. 그러나 수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연 부패되는 등 보존상태가 나빠 문서에 따라서는 몇 개의 글자나 문장 정도만 알아볼 수 있는 수준으로 훼손되기도 했다. 전체 사해문서는 대략 1000여 개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들이 총 2만 5천개의 크고 작은 조각들로 남게 된 것이다.

그 조각을 어떻게 맞춰서 경전의 각권을 구분하고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신학자, 고고학자들의 토론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사해 문서는 종종 '가장 맞추기 어려운 조각 퍼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짜 조각이 퍼즐에 섞여 들어가거나, 진본과 가짜가 한판을 이루는 순간 이에 대한 해석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일 <셀(Cell)>지에 발표된 논문. 사해문서의 양피지 조각들을 표본삼아 유전체를 해독하고 분석했다. ⓒ 셀 논문 캡처

 
해결의 실마리는 양피지에

지난 6월 2일 <셀(Cell)>지에 발표된 논문은 이 조각들을 분류하는 데 유전학적 통찰을 제공했다. 사해문서의 양피지 조각들을 표본삼아 유전체를 해독해내고 이를 분석한 것이다.

양피지 가죽이 양의 피부인 데에 착안해, 거기에서 DNA 서열을 읽어내고, 이것들을 알려져 있는 양의 유전체와 비교해 그 가죽조각들이 양의 것이 맞는지, 맞는다면 같은 종류의 양인지, 양가죽이 아니라면 어느 동물의 가죽인지를 알아내는 방식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각 문서 조각들은 어느 두루마리에 속하는가?' 또는 '각 두루마리는 어느 지역에서 온 것일까?'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에 접근했다.

이 연구에는 오래된 가죽에서 부러지고 변형된 DNA 조각들을 채취해 서열을 확인하는 최신 '고대 DNA 시퀀싱' 기술이 사용됐다. 이 기술의 특징은 오랜 시간 변형되고 박테리아 오염 등에 노출된 DNA를 감지해 그 서열을 알아낼 뿐만 아니라, 표본 손상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유산인 고문서를 다루는 데에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연구진은 사해문서 중 구약성서의 '예레미아서'와 비성서인 '안식일의 제물을 바치는 노래(the Songs of the Sabbath Sacrifice)' 등을 연구시료로 삼았다.

먼저, 쿰란의 동굴들에서 발견된 예레미아서 사본 여섯 개 중 네 개 사본에서 채취한 조각들이 사용됐다. 이들 4개 사본은 각각 4Q70, 4Q71, 4Q72a, 4Q72b로 표시되고 이 중 4Q72a와 4Q72b는 같은 두루마리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DNA서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중 4Q70과 4Q72b는 소가죽, 4Q71과 4Q72a는 양가죽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같은 두루마리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었던 4Q72a와 4Q72b 조각들이, 사실은 서로 다른 두루마리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에 더해, 지난 2천 년간 유대 사막은 소를 기르는 데에 적합한 기후였던 적이 없는 만큼,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두루마리인 4Q70과 4Q72b는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져 들어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유전학적 증거들을 통해 당시 예레미아서의 여러 사본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아가 어떤 사본들이 쿰란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어떤 사본들이 외부에서 유입된 것인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
 

사해 문서가 발견된 주 동굴들이 있는 쿰란의 전경 ⓒ 위키커먼스


'안식일의 제물을 바치는 노래'는 총 열 개의 사본 중 네 개의 사본에 속하는 조각들이 시료로 사용되었다. 연구에 사용되었던 대부분의 사해문서 조각들은 '양가죽'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126개 품종의 양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를 비교 분석할 때 관찰되는 총 다섯 개의 하플로그룹(같은 종 내에서 갈라진 서로 다른 계통의 양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계통 특이적 돌연변이 조합)을 사용해 각각의 양가죽이 같은 계통의 양들인지를 더 깊이 연구했다. 네 개 사본 샘플들 모두 중동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세 개의 하플로그룹 A, B, C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중에서도 쿰란에서 채집된 세 개의 샘플들은 하플로그룹 B에, 마사다 지역에서 채집된 샘플은 하플로그룹 A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유전학적 분석을 통해 양의 계통을 기준으로 양피지 기록물을 구분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안식일의 제물을 바치는 노래'가 쿰란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방대하게 읽혔다는 문화적·사회적 해석의 맥락도 제공하는 것이다.

서서히 맞춰지는 퍼즐 조각

논문에서는 그 외 다른 맥락의 문서 조각도 다루고 있다. 이를 테면, 개인 간의 채무관계에 대한 확인증과 같은 문서인 4Q344을 보자. 이 문서는 쿰란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다른 지역에서 온 것일 거라는 학계의 추측이 많았다.

유전학적 분석 역시 이 문서가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에 따라 쿰란의 문서들보다 훨씬 이후인 기원후 1~2세기의 문서로 보이는 다른 법적 문서들에 가깝다는 것이 드러났다. 특히 쿰란의 문서가 대부분 종교관련 문서들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법적 문서가 쿰란에서 온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의 일부인 '이사야서'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문서 4Q59의 25번 조각으로 분류되었던 조각이 같은 문서의 다른 조각들과 유전적으로 확연히 구분된다는 것도 이번 연구에서 밝혀졌다. 유전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잘못 분류된 퍼즐 조각이 확인된 것이다.

2천여 년 전 양피지에 기록되었던 기록들. 지금은 조각으로 작게 부서져 같은 책에 속하는 조각들을 솎아내기 어렵고, 어느 지역에서 유래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운 이 같은 문서들을 양피지의 DNA 채취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이스라엘 고대유물 관리국의 사해문서 부문 책임자인 프니나 쇼어는 이번 연구를 두고 6월 <내셔널지오그래픽>에 "퍼즐 조각에의 접근에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게 도와주게 될 거예요. 이번 연구는 그 시작일 뿐인 거죠"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고대 DNA 연구는 각 문서 조각들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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