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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8.04 08:23 수정 2020.08.10 16:44
 

비온뒤무지개재단은 2016년 이래로 성적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선언을 받는 '나는 앨라이입니다'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 비온뒤무지개재단

  
한국 최초의 성적소수자를 위한 재단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은 현재 망원동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있다. 여느 비영리단체의 사무실들이 그렇듯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 아늑하고 얽힌 추억도 많기에 애착이 가는 그런 공간이다.

몇 주 전 출근을 한 나는 우리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의 주인이 바뀔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전 주인이 건물을 팔고 싶어 했던 걸 알았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마 세입자라면 건물주가 바뀌었을 때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임대료를 갑자기 크게 올려버리면 어떻게 해야할까,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디로 가야 할까 등등.  

하지만 건물주의 대리인이 사무실을 방문한 날, 나는 걱정거리가 거기서 그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대리인은 나에게 내가 일하는 단체의 이름과 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다른 방문객이었다면 부담 없이 설명했겠지만, 건물주 대리인의 앞에 서자 문득 걱정거리 하나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사람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이면 어쩌지? 대리인이 아니더라도 건물주가 성적소수자를 기피하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당신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건물을 임대할 수 없으니 나가라고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진짜 이유는 뒤로 숨긴 채 갖은 트집을 잡아 우리를 쫓아내는 건 아닐까?

솔직하게 말해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닐까, 적당히 두루뭉술하게 둘러대는 게 나을까 고민을 하다, 결국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설명하는 편을 택했다. 대리인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식은땀이 흐르는 경험이었다.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
     
사실 활동가로 살아가다 보면 주변 사람의 태반이 나와 비슷한 위치에 있거나 같은 신념을 공유하기에 혐오나 차별을 직접적으로 마주할 일이 아주 많지는 않다. 하지만 곰곰이 떠올려보면 그런 내게조차 앞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일들이 결코 드물게 일어나진 않았다. 한 번은 단골로 방문하던 세탁소의 한켠에 성경 문구를 새긴 액자가 걸려있고 그 아래에 교회 소식지가 쌓여있는 걸 발견한 적이 있었다.
 
물론 교회를 다니는 모든 사람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도 눈앞에서 마주하면 치명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필 그날 나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여섯 색 무지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결국 엉거주춤하게 팔짱을 끼고 점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집에서 가까운, 멀쩡히 잘 쓰던 세탁소가 불편한 공간이 되길 바라지 않았다. 나는 요즘도 그 세탁소를 들를 때는 옷이나 액세서리 착용에 주의한다. 그리고 식당에서, 카페에서, 미용실에서 이와 비슷한 일은 종종 일어난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 이희훈

 
이런 움츠러듦이 지나친 기우일까. 사실 개인이 지닌 혐오의 감정은 차별적인 말과 행동을 통해 실천으로 옮기기 전까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성적소수자들의 축제나 행사에 쫓아와 훼방에 가까운 방식으로 증오를 표출하는 이들의 수가 '대중적'이라 할 만큼 많은 것도 아니다. (이들이 만드는 해악을 과소평가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때로 성소수자들의 두려움이 지나치게 과장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종종 마주하곤 한다. 하지만 위험이 표시되지 않았다는 게 그것이 사라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나 무방비 상태에서 자신을 드러냈다 혐오에 크게 덴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상대방이 드러내기 전에, 표시하기 전에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지뢰밭인 셈이다.
 
성소수자가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나설 때 벌어지는 일

문제는 이런 '확신할 수 없는 낯선 상대방'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앞서 서비스 이용이나 재화의 구매를 사례로 들었지만, 이런 일이 주거·노동·의료와 연관되면 상황은 더욱 암담해진다. 가령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발간한 자료집 '나, 성소수자 노동자'에는 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구직 과정이 등장하는데, 사실상 '수난사'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사례집에 따르면, 주민등록번호에 표시된 성별과 실제 성별정체성이 다른 상황에서 당사자가 트랜스젠더임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드러나는 일이 계속 발생해 왔고, 인사담당자들은 상대방이 이를 이유로 취업이 되지 않을 것이라 경고하거나 불합격 통보를 보내길 반복했다. 겨우겨우 서류전형을 통과해 면접을 보러 가도 모욕적인 질문이 던져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세상 그 누구도 이런 모독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계라는 게 그렇다. 당장 생활비와 월세를 생각하면 취직을 하려는 곳이 어떤 공간인지 알 수 없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구직 과정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만연한 혐오를 일거에 해소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존재를 이유로 상대방을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일을 금지할 대책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로 21대 국회에서 다시금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이야기다. 이 법은 성별, 장애, 나이에서부터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등 다양한 이유로 합리적 이유가 없는 한 차별을 금지·예방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영역에는 고용, 재화·용역 등의 공급이나 이용은 물론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이 포함된다. 또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특정 개인 및 집단에 대하여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나 차별의 표시·조장 광고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또한 차별행위의 시정과 구제 대책 또한 법의 내용 중 하나다.

더 미룰 수 없는 차별금지법   
  

한 수구 단체가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 사무실에 난입해 욕설을 하고 낙서를 하는 등 난동을 부린 것으로 7월 26일 전해졌다. ⓒ 정의당 제공

       
물론 형법의 존재가 범죄를 사라지게 만든 것은 아니듯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세상의 모든 차별과 배제가 일거에 종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법률의 존재는 적어도 우리가 해도 괜찮은 일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최소한의 기준을 제공한다. 한때는 인터넷상의 개인을 향한 모욕적인 댓글과 악성 게시물이 단순한 악행인지 범죄인지 애매했던 적이 있지만, 이제 우리는 그것이 법으로 금지되는 일이라는 상식을 가지고 있다.
 
나는 마찬가지로 '차별행위'가 그러한 일 중 하나라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무엇보다 차별을 금지하는 동시에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누구도 법을 거슬러서 내게 차별행위를 하거나 증오를 표할 수 없다는 최소한의 안정감을 줄 수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실질적으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과 배제를 막는 것을 넘어서 소수자들이 보다 안심하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는 뜻이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지만,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배제는 딱히 수그러들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증오나 모멸을 보다 직접적인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얼마 전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발의자로 나섰던 심상정 의원의 사무실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난입해 폭력을 저지르고 원색적인 모욕을 낙서로 남겼던 일이 있었다. 서울교통공사와의 지난한 다툼을 거쳐 신촌역에 게시되었던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기념 광고는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처참하게 훼손되었다. 차별행위를 방치했던 지난 시간이 이 사회가 소수자에게 더욱 위험해진 결과로 되돌아온 셈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 차별금지법은 2007년 발의된 이래로 입법이 무산되거나 철회되길 반복해왔다. 보수 개신교계 혐오집단이 차별금지 사유 중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문제 삼으며 훼방을 놓았고, 정치권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이 이에 굴복하며 만들어진 역사였다. 시간이 흘러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아주 평범한 글귀조차 수용하지 못해 이를 찢어버리는 이들이 등장했다.

묻고 싶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면 다음은 무엇인가? 아직도 시기상조인가? 차별금지법이 여전히 '나중에'여야 할 이유가 있는가? 
    

2일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게시된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대형 광고판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찢어진 상태로 발견돼 임시 철거됐다. 광고판에는 캠페인 참가자들의 얼굴 사진을 이어붙여 만든 '성 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진은 훼손된 신촌역 '성 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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