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 12:01최종 업데이트 20.07.0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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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아르케>는 눈에 보이는 현상 이면의 본질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추구하는 자리입니다.[편집자말]
 

윤석열 검찰총장 ⓒ 이희훈

 
[기사 수정 : 오후 2시]

윤석열은 아마도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검찰총장으로 그 이름을 남길 것 같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명언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전 정권에서 소신을 지켜 핍박을 받다가 새 정권에서 요직에 발탁되어 다시 그 정권에 맞서고 있는 경우도 흔치 않다. 사상 두 번째로 직속상관인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수사지휘권 통제를 받은 것도 역사에 기록될 만하다.


명성에 걸맞게 최근에는 단숨에 유력 대선후보로 뛰어올랐다. 이제 내후년 선거에 나서 당선되기라도 한다면 파란만장한 그의 공직경력은 화려한 피날레로 장식될 것이다. 아주 극단적인 반대상황을 상상해 본다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곧 설치되고 '공수처 1호 피의자'로 수사 받고 기소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역사에 이름이 길이 남는 건 마찬가지이다. 지금 윤석열 총장이 사력을 다해, 정말로 최선을 다해 열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본인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에 남을 이름

공수처를 하루빨리 설치해 윤석열 총장을 기소하자는 주장을 단지 극성스런 몇몇 반 윤석열파의 감정적인 복수심으로 치부하기에는 사연이 간단치 않다.

당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불러일으킨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부터 살펴보자. 이 사건은 언론인인 채널A의 이○○ 기자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없는 죄를 만들어서 뒤집어씌우기 위해 조작된 증언을 확보하려했던 정치공작이다. 이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이 사실상 공작을 위한 취재지시를 내린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녹취록이 공개되었다. 한동훈 검사장은 한동안 실명보다 '최측근'으로 언론에 수없이 보도될 정도로 윤 총장의 최측근 인물이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은 적극적인 수사의지를 보였으나 윤 총장과 대검찰청은 수사를 방해하려는 듯한 행보를 계속 보였다. 특히 윤 총장은 대검 감찰부가 아닌 인권부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는가 하면 이○○ 기자의 진정을 받아들여 기소여부 등을 논의할 전문수사자문단 구성을 주도했다. 지난달 초 이번 사건의 지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본인의 약속을 스스로 뒤집은 셈이다.

추미애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향하는 곳이 여기이다. 윤 총장에게 자문단 심의절차를 중단하고 수사팀으로부터 수사결과만 보고받도록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 연합뉴스

 
기자가 검찰 고위간부와 공모하여 없는 죄를 창작해내는 정치공작을 실행한 일도 충분히 놀랍지만, 검찰총장이 이를 '덮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의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력자가 측근의 비위를 덮으려고 자신의 권력을 남용했다는 스토리는 사실 굉장히 낡고 흔한 레퍼토리이다. 이 낡은 클리셰가 지금 흥미로운 이유는 작년에 우리가 겪었던 비슷한 사건 때문이다. 이른바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 청와대 민정수석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비위혐의를 포착하고도 감찰을 중단한 것이 직권남용과 권리행사 방해 등에 해당한다고 기소돼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해당 민정수석은 다름 아닌 조국 전 장관이다.

당시 민정수석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법원에서 이제 밝힐 일이다. 지금 나의 관심사는 감찰무마 의혹으로 기소돼 재판받는 전 민정수석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으로부터 직접 수사를 방해하지 말라는 항변을 듣는 현 검찰총장이다.

대조실험

다이내믹 코리아는 참 다양한 방식으로 '대조실험'을 만들어낸다. 나는 법률전문가가 아니라서 자세한 법리는 전혀 모른다. 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비위 혐의가 있는 측근을 감싸기 위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검찰총장의 혐의가, 강제수사권도 없는 민정수석이 감찰을 무마했다는 혐의보다 가볍지는 않을 것 같다. 열린민주당의 최강욱 대표와 추미애 장관 등은 이미 윤 총장이 직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키워드인 형펑성이나 공정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윤 총장도 기소돼 재판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 연합뉴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현실에서는 검찰총장이 직권남용이나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수사 받고 구속되고 기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동화 같은 일은 설령 법이 허용한다고 해도 한국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멀쩡한 고화질 동영상을 보고서도 자기네 집안 식구에 대해서는 집단 안면인식장애인 게 한국의 검찰이다. 그래서 공수처가 꼭 필요하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강직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윤 총장이 자신의 측근은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나서니 참 혼란스럽다. 이미 알려졌듯이 비리혐의가 있는 자신의 장모님 사건에 대해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검찰의 편파적인 수사야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윤석열 검찰'은 좀 다르다.

이전까지는 '권력의 시녀'라 불릴 정도로 정권의 손발이 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챙겨왔다면, '윤석열 검찰'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어디에 위탁하지 않고 직접 전면에 나서는 방식을 택한 것 같다. 말하자면 검찰의 조직이기주의를 전면적으로 최우선에 두는 '검찰주의', 또는 '검찰 최우선주의'라고나 할까. 여기에는 검찰의 독립을 보장하려는 진보정권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검찰의 독립성 보장과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윤석열의 철학은 '검찰주의'를 극대화하기에 최상의 궁합이다. 검찰 독립의 이런 역설이라니.

아마 검사들도 자기 선배들이 청와대 불려가서 '쪼인트' 까이고 재벌 회장님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데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사리사욕이나 개인적인 출세만 탐한다면 모를까, 검찰이라는 조직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철대오로 만들고 싶은 조직보위의 '로망'을 가진 검사들에게는 윤석열이라는 인물이 영웅이었을 게다.

윤 총장은 2013년 여주지청장 시절 국정원 여론조작사건을 열심히 수사해 정권과 검찰 수뇌부의 눈 밖에 나 좌천당하기도 했다. 권토중래한 뒤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한동훈 전 검사장과 함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를 수사했다. 국정원이든 삼성이든 범죄자를 쫓아 일망타진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전에 없던 영웅적인 정의의 화신이다.

불행하게도 윤석열의 검찰은 여기서 더 나아가 선을 넘어 버렸다. 작년 여름 윤 총장이 조국 전 장관후보자에게 대대적인 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무력화하며 국민이 선출한 권력에까지 정면으로 도전한 검찰주의의 극치였다. 유력한 범죄혐의에 대한 합당한 수사였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냐만, 사상 최대 물량을 투입한 사상 최고 강도의 수사결과가 확실한 물증도 없는 표창장 위조 혐의였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조국 부부의 사모펀드 실소유주 논란은 조카 조범동씨의 1심 재판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결났다.

만약 윤석열의 검찰이 이후 비슷한 사안에 똑같은 물량과 강도로 수사를 진행했다면 정의구현이라는 자신들의 해명이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경원 전 의원의 자녀를 둘러싼 의혹 등에 대한 검찰의 대처와 비교해 보건대 (이 또한 훌륭한 대조실험의 역할을 했다) 검찰의 관심은 진정한 정의구현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서초구 대검찰청. ⓒ 연합뉴스

 
여총장윤석열시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이 최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윤 총장은 이미 '조국 낙마'라는 결론을 손에 쥐고 있었다. 수사를 통해 의혹을 파헤쳐 범죄 혐의를 소명했다기보다, 유죄라는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 조국 일가를 괴롭혔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사안은 다르지만 최근 새로운 증언들이 나온 한명숙 전 총리사건이나 현안인 이○○-한동훈 커넥션은 검찰이 언론과 결탁해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비일비재했는지를 방증한다. 검찰주의가 최우선인 윤 총장에게 검찰개혁을 들고 나온 장관 후보자가 곱게 보였을 리가 없다. 윤 총장은 수사가 아니라 정치를 했던 걸까. 대권후보로 급부상한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자면 유력한 정적을 미리 제거한 효과까지 챙겼다.

수사권과 기소독점권 등 막강한 권한을 한 손에 쥐고 있는 '법 기술자'들이 이 모든 행위를 불법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법에 따른 조치라고 해서 모두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법 적용을 언제 어떻게 어떤 강도로 하는가의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검찰이 김학의 전 차관을 기소하지 않았다고 해서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생활고로 삶은 달걀 18개를 훔친 40대에게 검찰이 1년6월의 실형을 구형했다고 해서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수사관들이 압수수색하면서 먹은 음식이 짜장면이 아니라 한식이었음을 해명하는 일엔 그렇게 신속하고 열심이었으면서, 총장 직인파일 관련 공중파의 오보는 몇 달째 방치한 것도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견제장치 없이 집중된 권력을 가진 집단을 그들의 선의에만 맡겨두면 이런 모순이 생긴다. 아니, 합법과 불법을 판단하는 일차적인 권한이 검찰에게만 있으니까 애초에 '검찰의 불법행위'라는 상상이나 가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직속상관인 추미애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두고 윤 총장이 '족보'에도 없는 검사장 회의까지 소집했다는 것은 의도했든 아니든 순순히 그 명령을 따르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직전 법무부장관을 후보자 시절부터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물량을 동원해 만신창이로 만들어 법정에 세운 총장이다. 대통령 인사권도 뭉개버린 마당에 추 장관 정도가 무서울 리 없다.

윤 총장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의 통제를 우습게 알고 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검찰주의는 결국 국민에게 충성하지 않는 검찰을 만들고 있다. 국민을 이기려는 권력은 결국 패퇴한다. 검찰도 예외는 아니다. 하나회를 척결하고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기틀을 다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은 아직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검찰에 대한 문민통제는 21세기의 시대적 사명이다.

윤석열의 검찰은 지금 검찰쿠데타를 감행하고 있다. 이미 탱크까지 몰고 나선 마당에게 그 무슨 말이 귀에 들릴까마는, 그래도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는 윤 총장의 마지막 충정을 기대하며 고언을 전하고 싶다. 글재주가 없다보니 옛 선현이 남긴 시 한수를 베껴 대신한다.
 
여총장윤석열시(與總長尹錫悅詩)

신비한 책략은 언론을 꿰뚫었고 神策究言文
오묘한 계산은 법리를 통달했구나 妙算窮法理
정쟁에서 이겨 이미 공이 높으니 政勝功旣高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랍니다 知足願云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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