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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6.30 17:53 수정 2020.06.30 17:53
 

20일 자유연대 집회에 욱일기가 등장했다. ⓒ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 중단'과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보수단체 회원들. 2020.05.20 ⓒ 주옥순TV 화면 캡처

 
지난 17일과 24일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있었던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해체를 요구하는 '자유연대'의 집회를 보면서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 정의연 해체를 요구할 수도 있고, 소녀상 철거를 위해 시위를 할 수도 있다. 28년간 수요일마다 한 자리에서 집회를 해왔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반대 집회를 못할 이유는 없다. 일부 언론은 '28년 만에 자리 뺏긴 수요 집회'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피해 할머니의 온기가 스민 자리를 빼앗겨 안타깝다는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화난 이유는 이것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 17일 정의연 해체를 요구하는 집회에서 주최 측은 욱일기가 들어간 펼침막을 내걸었고, 참가자가 든 알림판에는 욱일기와 '일본군 < 더나쁜 윤미향'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일제 강점기 수탈과 성 착취를 일삼은 군인들보다 윤미향 의원이 더 나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전범기로 인식되는 욱일기 아래서 부끄러움도 없이 정의연 해체를 요구하는 극우 단체. 그들은 일본군보다 윤미향 의원이 더 나쁘다고 하지만, 정작 더 나쁜 건 그들이다. 아픈 역사에 대한 공감이나 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 망나니짓이나 다름없다. 독일에서는 전범기를 걸면 당장 처벌받는다.

이용수-정의연 틈새 파고드는 친일·극우

눈 뜨고 못 볼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극우 단체 때문에 연합뉴스 앞으로 밀려났던 수요 집회가 7월 29일 이후 또다시 자리 문제로 곤욕을 치르게 생겼다.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7월 29일 연합뉴스 본사 앞에서 집회를 하겠다며 집회신고서를 제출했고 관할 경찰서인 서울 종로경찰서가 이를 수리했다.

이 단체는 인터넷 매체 〈펜앤드마이크〉와 한 인터뷰에서 7월 29일 연합뉴스 앞에서 여성가족부 해체를 요구하는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 전시관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에 진실과 동떨어진 자료들을 게재해 역사 왜곡을 하고 있어 여성가족부 해체를 요구한다"는 게 공대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자유연대와 공대위가 집회 자리를 선점해 일본대사관 앞 수요 집회는 1449차를 끝으로 더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이 단체의 호언이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의 의혹에 친일·극우 단체들이 옛 일본대사관으로 집결하는 모양새다. 그동안 눈엣가시 같았던 수요 집회를 끝내는 건 물론 소녀상까지 철거할 기세다. 더 가관인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을 열어 역사를 왜곡한다고 여성가족부 해체까지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집회 선점이 합법적이라 할지 모르지만 이는 수요 집회 무산을 목적에 둔 폭력 행위나 다름없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2014년 7월 EBS 지식채널e는 조선총독부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발언으로 추정되는 말을 소개했다. 학계에서는 실제 그의 발언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지만, 그것을 떠나 위의 말이 현실이 될 것 같아 섬뜩하고 기분 나쁘다. 윤미향 의혹으로 정의연을 해체하고 소녀상 철거에 이어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 운동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친일 극우 단체들은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의 잔재와 다를 바 없다.

이들이 하는 말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윤미향 의원이 일본군보다 나쁜 것이 아니라 싫은 것이고, 윤 의원보다는 정의연이, 정의연보다는 정의연이 28년간 해왔던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 운동이 싫은 것이다. 그래서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는 상반된 두 집회는 윤미향 의원 의혹 규명과 윤미향 의원 구하기의 대치가 아니라 독도 문제, 역사 왜곡 문제와 다를 바 없는 '친일'과 '친일 청산'의 대립이다.
 

반아베반일 청년학생공동행동 소속 대학생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서 수요시위 중단과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보수단체들의 시위를 막으려고 소녀상과 자신들의 몸을 끈으로 묶은 뒤 3일째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그러나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시각은 단편적이다. '수요집회, 28년 만에 소녀상 앞자리 뺏겼다'(조선일보). '28년 만에 자리 옮긴 수요집회'(중앙일보) 등 대부분의 언론은 극우 단체의 집회를 스포츠 경기 보도하듯 한다. 정의연 해체를 요구하는 친일 극우 단체 집회와 한쪽으로 밀려난 정의연의 수요 집회를 승자와 패자의 엇갈린 희비의 장면처럼 사진으로 내걸었을 뿐, 욱일기를 내건 행위나 그들의 악의적 음모에 시시비비를 가려보려는 노력은 없다.

옳고 그름의 비판에 눈 감고, 단지 두 개의 집회에 같은 지면을 할애해 중립성을 지켰다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편파보도이고 정론직필을 망각하는 행위다. 언론이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좀더 적극적인 비판·감시자 역할을 했으면 한다.

26일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과 이용수 활동가가 만나 수요 집회 지속, 역사교육관 설립, 지역 방문 등을 논의하고 합의했다고 한다. 당장 모든 앙금이 사라지고 그간의 갈등이 없는 것처럼 될 수야 없겠지만 많은 국민의 우려를 생각하면 잘된 일이다.

정의연과 이용수 활동가가 만났다고 해서 그간 제기된 의혹이 모두 없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의혹은 의혹대로 규명해야 하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녀상 철거 주장을 넘어 28년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부정하려는 친일 극우단체에 수요 집회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7월 1일 수요일 1446차 수요 집회가 열릴 것이다. 극우 단체들도 장소를 선점해 장기간 집회 신청을 해 놓았으니 다시 두 목소리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건 이념의 대립도, 자리다툼도 아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독도 영유권 주장에, 역사 교과서 왜곡에 모인 분노가 다시 모여야 할 때다.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하겠다던 결의가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위안부의 고통을 자발적 매춘이라고 억지 주장을 해온 친일 극우 세력들은 소녀상 철거, 정의연 해체가 할머니 뜻이라고 한다. 할머니 뜻의 왜곡이자 역사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어떤 국민도 정의연을 해체하고 소녀상을 철거하고 수요 집회를 끝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소녀상 앞을 점령한 친일 극우 단체들의 소녀상 철거, 정의연 해체의 야망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걸 바라는 국민들은 없다. 식민 교육에 찌든 세력은 그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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