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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6.05 15:47 수정 2020.06.13 10:57
[기사 수정 : 13일 오전 10시 57분]
 

영구차로 옮겨지는 플로이드의 관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의 4일(현지시간) 추모식이 열린 뒤 고인의 관이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의 노스센트럴대학교(NCU)에서 영구차로 옮겨지고 있다. ⓒ 연합뉴스/AP

 
그가 마지막 숨질 때 부른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 엄마, 난 끝났어..."  

키 2m의 거구인 그는 풋볼 선수였다. 경비원으로 일하던 식당 겸 나이트클럽은 팬데믹(코로나19 세계적 유행)으로 문을 닫았고 그는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직장을 잃은 지 석 달째 되는 날 담배를 사고 지불한 20불 지폐가 가짜라고 신고돼 경찰에 연행된다. 그리고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에 의해 목이 눌려진다. 8분 46초, 그 거구의 남자가 숨을 거두고도 한참을.

조지 플로이드. 마흔여섯. 흑인 남자. 자신의 목을 누르는 경찰에게 여러 차례 숨이 막힌다고 애원했지만 무시됐다. 지켜보던 시민들의 항의도 무시됐다. 거구의 남자는 2년 전 세상을 떠난 엄마를 부르며 아무런 저항 없이 눈을 감았다. 앰뷸런스가 축 늘어진 그를 옮겨 실은 건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난 후였다.

연행부터 죽음에 이른 모든 순간은 주변 상점 CCTV와 길거리 시민들의 핸드폰에 그대로 녹화됐다. 세상 모두가 목격자가 돼 버렸다. 유색인종을 향한 미국 경찰의 무소불위 공권력에 치를 떨었고, 다음 순서가 자신일 수 있다는 공포와 분노가 영상을 본 미국인들을 움직였다. 
 

체포당하는 자세로 '흑인 사망' 항의하는 미국 시위대 3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의 코먼 공원에서 시위대 수백명이 '흑인 사망' 당사자인 조지 플로이드의 경찰 체포 당시 자세를 취하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AP

  
사건 발생 3주 전, 남부 조지아
     
이 사건이 발생하기 3주 전, 법정에 제출된 차량 블랙박스 영상 하나가 뉴스를 장식했다. 지난 2월 발생한 25살 흑인 청년 사망 당시 피의자의 트럭을 보여주는 '증거자료'였다.

청년의 가족은 그가 평소처럼 조깅을 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를 총으로 쏘아 죽인 백인 아버지와 아들은 청년을 절도 용의자로 생각해 총을 쏜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평소 백인 우월주의자로 의심을 받던 두 부자는 자신의 트럭에 우월주의자의 상징인 '남부군 국기'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들이 뒤따라오던 친구의 트럭에 녹화된 블랙박스 영상을 자진해서 공개한 이유다. 

그러나 영상 속엔 인종차별주의자의 상징보다 더 충격적인 장면이 있었다. 운동복 차림의 비무장 흑인 청년은 트럭을 피해 조깅을 계속 하려 했지만, 집요하게 청년을 쫓던 백인 부자는 트럭에서 총을 쏘아 달리던 흑인을 쓰러뜨렸다. 

사망 사고임에도 당시 2주 넘게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졌고, 이 장면을 목격하고도 침묵했던 블랙박스의 주인도 공범으로 함께 구속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커져갔다. 남부 조지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사건 발생 당일, 뉴욕 한복판

미네소타에서 플로이드가 죽음을 당하던 날, 뉴욕 경찰서엔 한 여성의 신고 전화가 걸려온다. 

"자전거 헬멧을 쓰고 있는 흑인이 나와 내 개를 위협하고 있어. 난 위협을 받고 있다고. 빨리 경찰을 보내줘." 

흥분한 여성이 지칭한 흑인은 맨해튼 센트럴 파크 안 버드와칭 포인트에서 새를 관찰하던 크리스 쿠퍼라는 남성이었다. 그는 공원을 마구 뛰어다니는 개를 발견하고 개 주인에게 목줄을 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정중하고 당연한 부탁이었지만 여성은 목줄 대신 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를 한다. 흑인 남성이 자신과 개를 위협한다고. 여성이 신고하는 모습은 쿠퍼의 휴대폰에 그대로 녹화됐다.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개의 목줄이 매어지는 것을 본 쿠퍼는 비로소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자리를 떠난다. 그래서 경찰과 마주치진 않았다. 

이후 쿠퍼의 여동생은 자신의 SNS 계정에 영상을 올리고 사건은 일파만파가 된다. 40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영상을 봤고 메인 뉴스에 올랐다. 흑인 남성에 대한 백인 여성의 편견과 거짓말에 개 학대 논란까지 보태져 여성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프랭클린 템플턴이란 회사의 부사장이었던 개 주인은 문제가 된 며칠 뒤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는다. 2년 전 입양했던 그녀의 개도 입양기관이 다시 거두어 가기에 이른다. 당연한 결과일 수 있는 센트럴 파크에서의 이 해프닝은, 미국 어느 곳보다 리버럴하고 포용적인 뉴욕의 맨해튼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라 더 놀랍다. 

만약... 그 흑인 남성이 하버드를 졸업한 엘리트가 아니었다면, 자기가 하는 분야의  전문가로 확고한 사회적 지위가 없던 이였다면, 센트럴 파크의 신망받던 보드 멤버로 지인들의 적극적 응원을 받지 않았다면... 그도 앞의 다른 흑인 남자들과 같은 운명일 수 있었을 거라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신고를 받고 온 경찰에게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다는 두려움이 드는 건 당연하다. 

미국 땅에 살고 있는 흑인들이 느끼는 일상의 위협과 선입견은 뿌리가 깊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그 정도가 심해지고 노골적이 되어간다는 것은 여러 지표에서 보여진다. 

해소되지 않고 쌓여온 울분 속에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도화선이 되어 버렸다. 다음이 나일 수 있다는 공포는 흑인뿐 아니라 목격자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전염병으로 인한 실업과 가난으로 인한 편견은 범죄자를 만들어낼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누구든 플로이드가 될 수 있다는 절박감의 발로이다. 

다음은 나일 수 있다는 공포... 목숨을 건 시위
  

경찰 폭력으로 흑인 남성이 사망한 데 항의하기 위해 저지시티 시청앞에 모인 시위대. ⓒ City of Jersey City

  

경찰 폭력으로 흑인 남성이 사망한 데 항의하는 저지시티 시민들. 유모차를 끌고 나와 무릎을 꿇는 시위를 하고 있다. ⓒ City of Jersey City


지난 주말,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뉴저지와 맨해튼에서도 다른 여러 도시처럼 시위가 벌어졌다. 유모차를 몰고 온 젊은 엄마와 10대 어린 청소년들, 골판지를 뒤집어 구호를 적어 온 젊은이들도 있다. 시청 앞 광장에 모인 1000여 명 이웃들은 조용하지만 비장하게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했다. 팬데믹 와중에 이 정도의 사람들이 모이는 건 목숨을 건 일에 가까웠다. 결연한 얼굴의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현실에 분노했다. 

"I can't breathe(숨을 쉴 수 없다)." 조지 플로이드가 절규했던 그 말이 우리 동네에선 더 낯설지 않다. 기차로 15분 거리의 뉴욕시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6년 전 '에릭 가너'라는 흑인이 숨지기 전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2014년 뉴욕과 2020년 미네소타에서 똑같은 말을 하며 그들은 숨졌다. 에릭 가너는 거리에서 낱개 담배를 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제압돼 목이 눌려졌다.

숨을 쉬지 못하겠다는 말을 열 번 넘게 했지만 경찰의 압박은 계속됐고 결국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와 닮은 그의 딸을 버니 샌더스의 대선 광고에서 보았었는데, 몇 해 전 20대의 그녀도 지병으로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에닉 가너의 사망도 지금처럼 전국적인 추모와 분노가 일었지만, 사건 발생 5년 만인 작년에야 문제의 경찰이 비로소 파면됐다 한다. 그동안 그는 내근직으로 여전히 뉴욕시경찰청(NYPD)에 근무했었다. 

다행히 전 세계적인 시위의 원인이 된 미네소타 경찰은 뉴욕과 달리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지난 3일 오후, 미네소타 검찰총장은 조지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경관을 3급에서 2급 살인으로 격상한다고 밝혔다. 나머지 세 명의 경관들도 기소한다고 발표한다. 2급 살인의 경우 최대 40년형까지 가능하다. 에이미 클로버샤 미네소타 상원의원은 "이것은 정의를 향한 중요한 한걸음"이라고 말했다. 여론이 그 걸음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번 시위의 진정한 배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을 나와 라파예트 공원을 지나 '대통령의 교회'로 불리는 인근 세인트 존스 교회로 걸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옆의 건물 벽에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낙서가 적혀 있다. ⓒ AP=연합뉴스

 
한 주 전만 해도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19였다. 10만 명이 사망했고 그래프는 여전히 치솟는 중이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고질병이었던 인종차별 문제가 전염병을 압도한다. 눈앞에 펼쳐진 더 큰 쓰나미로 팬데믹은 잠시 뉴스에서 가려졌지만, 저렇게 많은 시위 대열 속에서 앞으로 2주 후 더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세계 최악의 의료보험과 세계 최악의 인종차별과 그 속에 더 심화되는 빈부격차가 지금 2020년 한복판에 미국이란 나라에서 자웅을 겨룬다.

화산처럼 터져 나온 미국사회의 민낯에 사람들의 분노와 자괴감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정치는 부재를 넘어 사람들 감성에 화합 대신 휘발유를 뿌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시위의 배후를 극좌 '안티파'라고 하지만, 미국인들 모두는 알고 있다. 이 시위의 진정한 배후는 분노하는 미국인들이라는 것을.

누군가 말했다. '코로나19'와 '인종차별20',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믿고 싶어 하지 않는 두 가지 재앙이 미국땅에 벌어지고 있다고. 같이 살기를 거부하고 탐욕에 찬 그 '백인'들이 이 분노의 진정한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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