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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5.30 19:53 수정 2020.07.03 12:43

코로나19 출현을 처음 알린 중국인 의사 리원량의 사망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2020년을 우리는 거대한 질병과 함께 맞이했다. 그 전조가 지난해 말 예고돼 있었다. 새해 이틀 전인 2019년 12월 30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는 "원인 미상의 폐렴 치료에 관한 긴급공지"를 발표했다. 다음 날인 31일 우한시 거주 27명의 원인 모를 폐렴 감염 사실이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됐다. 그전까지 반신반의하며 언론계와 과학계가 우려하던 21세기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의 서막은 그렇게 열렸다.
 
코로나19는 2002년 중국에서 처음 출현했던 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사스)의 새로운 변종이다. 하지만 그 확장 규모와 파장 효과는 사스는 물론 또 다른 변종인 중동 호흡기 증후군(메르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WHO의 공식기록으로 사스의 전 세계 확진자 수는 8096명, 그로 인한 사망자 수는 774명이었다. 또한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컸던 메르스의 경우, 전 세계 공식 확진자 수는 2494명, 사망자 수는 858명이었다.
 
두 경우 모두 전 세계 확진자 수는 1만 명을 넘지 않았고, 사망자도 두 경우 모두 1000명을 넘지 않았다. 반면 코로나19의 경우 첫 발생 후 4개월여 만에 확진자 수는 100만 명을, 사망자 수는 1만 명을 넘어섰으며 6월을 목전에 둔 현시점에 확진자는 570만 명을, 사망자는 35만 명을 넘어섰다.
 
분명 훗날 역사는 코로나19를 21세기 초 창궐한 세기적 전염병으로 기록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기록할 코로나19의 의미가 역학 차원의 규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19의 피해 규모가 사스나 메르스보다는 훨씬 크지만 지난 세기 초 지구촌을 뒤덮었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전염병(스페인 독감)에 비할 만큼은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이 이 독감으로 인해 또는 그것과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한반도 역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18년 당시 조선인 총인구가 1670만 명이었는데 그중 44%에 해당하는 742만 명의 독감 환자가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그중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하니 피해 규모 차원에서 말하면 분명 코로나19보다 훨씬 심각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국내 언론은 '악성 유행병', '돌림감기' 등의 표현으로 지역사회와 한반도의 피해 상황에 관심을 가졌지 지구 반대편에서 하루 몇 명씩 확진자가 발생하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언론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이웃집 아들이 독감에 걸렸다는 사실이 정보(information) 차원이나 소통(communication) 차원에서 더 가치 있는 소식 아니었을까?

시대 전환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알마티 시내에 설치된 한국형 '드라이브 스루' 검사 센터. 알마티 주재 한국 보건산업진흥원 지사는 한국 해외의료사업 전문기업 '메디컬파트너즈코리아'(MPK)가 현지 보건부로부터 국가지정 코로나19 전문 검사기관으로 선정돼 대규모 검사를 시행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100년이 지난 후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실시간으로 지구촌 반대편까지 감염병 확산 정보를 속속들이 파악을 할 수 있지만 정작 옆집 아들이 독감이 걸렸는지는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의 경우와 비교해 지금의 코로나19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공간적으로 훨씬 확장적이다. 불과 한 세기 만에 인간의 인지반경은 적게는 수천 배, 많게는 수십만 배 넓어진 셈이다. 코로나19가 인류에 미치는 어마어마한 영향은 바로 이러한 인지반경의 확장과 관련이 있다. 그만큼 심리적 영향도 실제 삶에서 부딪히는 구체적 영향에 배가되어 작용하게 된다.
 
코로나19가 인류에 미칠 영향은 그런 의미에서 과거 어느 팬데믹보다 병리적, 역학적 차원을 넘는 문화사적, 인류사적 차원의 단절과 전환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인류사에서 대부분의 시대 전환은 내부 균열을 봉합하던 체제 응집력이 예기치 못한 외부의 충격으로 와해되면서 그렇게 붕괴된 체제를 다른 체제가 대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중세의 균열은 신앙의 힘으로 오랜 시간 봉합이 시도돼 왔지만 흑사병이라는 외부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면서 체제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르네상스다. 19세기 유럽 팽창주의의 위험성도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를 의미 - 편집자말)의 화장술로 감춰지는 듯했지만 양대 세계대전을 막아내지는 못했고 그렇게 유럽 제국들은 무너졌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시대다.
 
시대 전환은 이렇게 시간적 패러다임의 교체로 나타나기도 했고 공간적 패권주의 이동을 초래하기도 했다. 어떤 것이든 확장되는 위기 앞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대정신의 교체가 요구됐던 것이 사실이다.

포스트 코로나

그렇다면 코로나19가 바꿔놓을 세상, 즉 포스트 코로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존의 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일까? 그리고 그 패러다임의 전환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로의 전환일까? 그렇지 않다면 과거에 존재했던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순환일까?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그 변화에 적극적으로 올라타야 하는가? 그렇지 않고 저항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야마다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소속된 집단에 따라, 종사하는 분야에 따라 다르게 나오게 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지구촌의 많은 지역이 권위를 강화하려는 정부와 그에 저항하는 시민 간의 정면충돌로 소용돌이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시민의 건강을 수호한다는 명목 아래 지구상 대부분 정부는 감염병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격리와 봉쇄, 감시를 강화했다. 비상 상황이라는 이유로 시민에 대한 통제가 명분을 얻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 위기에는 권위주의로의 회귀뿐 아니라 폐쇄주의로의 회귀 가능성도 포함된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 이후 국제사회는 제국주의적 고립정책이라는 새로운 양태의 전횡을 목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19의 확산은 많은 국가들이 국경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자유로운 이동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역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절호의 기회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이 21일 전 재외문화원 32곳의 외벽 등에 코로나19 사태를 함께 이겨내자는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의 '코로나19 함께 극복' 메시지. ⓒ 연합뉴스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전망은 분명 어두운 면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이 이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최소한의 범위로 국경을 통제하면서 성공적인 방역을 하고 있다는 것은 지구촌의 실낱같은 희망이 되고 있다. 그것이 한국형 코로나 방역 모델의 가장 큰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형 코로나 대응 모델을 더 개발하고 뜻을 같이하는 지구촌 국가들과 공유하면서 다듬어 나가야 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선명성을 가지고 견지해야 할 역할이다.
 
포스트 코로나가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인류가 방역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동안 수십 년 이래 가장 깨끗한 지구를 보게 된 것은 뜻밖의 성과다. '인간이 아프니 지구가 건강해진다'는 환경의 역설은 지금까지의 산업정책에 대한 반성의 기회로 삼고 적극적으로 친환경적 정책 전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조금만 억제하면 환경은 바로 화답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와 화상수업은 산업과 교육 분야에서 인간의 공간에 대한 재고의 기회를 제공했다. 분명 우리는 산업현장에서 필요 이상의 공간을 낭비하고 있다. 교육 현장, 특히 고등교육을 위한 캠퍼스라는 이름의 과도한 도시공간 점유는 더더욱 지나친 특혜다. 거의 강제적으로 내몰리듯 늘어난 재택근무, 화상수업 등 비대면 소통이 없었다면 이처럼 산업과 교육 현장에서 공간에 대한 낭비를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유례없는 종교활동의 온라인 활용 역시 주목할 만한 변화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종교는 정치, 교육과 더불어 공간적 특혜를 가장 많이 받아온 분야다. 위압적 공간으로 교세를 자랑하는 종교관은 중세 이래 전혀 변화가 없는 민망한 종교의 전통이다. IT분야의 발전으로 가상 공간이 물리적 공간을 일정부분 대치 또는 보완할 수 있다면 그것은 4차산업의 긍정적 효과이고 포스트 코로나의 긍정적 측면일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가 무엇을 남기게 될까? 주어지는 것은 예기치 못한 위기이고 그에 대한 극복은 순수한 인간의 의지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세계를 인위적으로 구상해보는 것은 어쩌면 코로나19와 같은 위기가 남길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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