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8 15:32최종 업데이트 20.02.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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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88년생이 만든 캔막걸리, 현기증이 나네 (http://omn.kr/1mins)

집 앞 편의점의 음료 냉장고에 캔맥주가 가득 들어있다. 속이 훤히 보여, 일본 캔맥주가 있는지 살펴보았더니, 진짜로 하나도 없다. 술은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마시는 음료임이 틀림없다. 한일관계의 외교 통상 마찰로 시작된 자발적인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가장 치열하게 관철된 게 맥주와 사케 분야일 것이다. 역시 술은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상품이다.

그런데 맥주 냉장고 안을 다시 살펴보니 수입 캔맥주가 더 다양해졌다. 나는 수입 캔맥주들을 보면서, 막걸리도 캔에 담기면 훨씬 더 잘 수출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형 캔막걸리 주입기로 막걸리를 담다. 몸통을 그대로 있고, 뚜껑을 돌려 담는다. ⓒ 최효진

 
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겸, 막걸리학교에 캔막걸리 주입기를 하나 들여놓았다. 한 대에 300만 원 정도 하고, 빈 캔 하나에 300원이 넘는다. 캔 하나 값이 페트병 하나보다 5배는 더 비싸다. 그래도 알루미늄 캔은 재활용이 가능하니 친환경적이다. 캔의 둥근 표면에 선명한 디자인을 담을 수 있어서 좋다.

문제는 생막걸리를 캔에 담기 위해서는 압력 양을 조절해야 한다. 살균을 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데, 생막걸리의 질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완전 발효하여 탄산 발생을 최소화하는 것도 대안이다.


알루미늄 캔 주입기도 진화하여, 처음에는 술을 담은 몸통이 돌아가서 뚜껑이 닫혔는데, 지금은 몸통은 그대로 두고 뚜껑이 돌아가면서 닫히는 신상품이 나왔다. 몸통이 돌아가지 않으니 훨씬 안정감 있게 술이 담긴다. 뚜껑이 닫히는 데 1~2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 개를 담는 데 10초를 잡아도 3시간이면 충분히 1천 개의 캔막걸리를 만들 수 있다. 이쯤 되면 작은 양조장의 경우에 페트병을 대체하여 캔을 사용해도 되겠다.

캔막걸리 제조장에 가다

그렇다면 양조장들의 캔막걸리 사용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캔막걸리라면 캔맥주처럼 수출하기가 용이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고, 또 주문 제작되어 뉴욕으로 수출되는 캔막걸리 막구(Makku)를 맛보고 싶어서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에 있는 ㈜우리술을 찾아갔다. 잣막걸리로 명성을 얻은 곳이다.

㈜우리술의 박성기 대표는 사단법인 한국막걸리협회 회장을 4년 동안 역임했고, 지금까지 100종이 넘는 막걸리를 개발했으며, 가장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를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 양조인이다.

박성기 대표는 2003년에 기존 양조장을 인수하여 ㈜우리술로 법인 등록하여 양조업을 시작했다. ㈜우리술의 전신은 1928년에 조종면 소재지에 설립된 조종양조장인데, 조종양조장은 1994년에 주식회사 농주로 인수되었고, 농주는 2000년에 운악산술도가로 인수되었다가, 2003년부터는 박성기 대표가 인수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박 대표는 회사 연혁을 직원들과 정리하다가, 양조 기술과 직원 그리고 양조 설비와 균주까지 모두 앞선 양조장들로부터 이어받아 왔으니 양조 역사를 조종양조장부터 시작하는 게 맞겠다는 의견을 좇았다. ㈜우리술이 다양한 캔막걸리를 만들 수 있는 저력도 주식회사 농주에서 1994년에 국내 최초로 캔막걸리를 제조했던 경험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술 공장은 큰길을 사이에 두고 두 개로 나눠져 있다. 제1공장은 주식회사 농주와 운악산술도가 터인데 그곳에서 막걸리를 발효하고 숙성시키고, 길 건너 제2공장에서는 살균, 병입, 포장, 보관 작업이 이뤄진다. 술은 지하에 매설된 관을 타고 이송된다.
 

해썹인증을 받은 ㈜우리술의 생산라인 ⓒ 우리술

 
현재 국내에서 캔막걸리를 제조하는 곳으로 충북 진천의 서울장수주식회사, 강원 횡성의 국순당, 전북 부안의 동진주조, 그리고 가평 ㈜우리술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캔막걸리 제조장이 적냐고 물으니, 박 대표는 웃으며 말한다. 캔막걸리를 만들려면 20~30억 원의 예산이 들기 때문에 영세한 규모로는 엄두를 낼 수가 없다고 했다. 왜 그렇게 돈이 많이 드냐고 물으니, 캔막걸리 제조 과정을 설명해준다.

"경쟁력 있는 캔막걸리 설비를 갖추려면 1분당 300캔에서 500캔 정도를 만드는 설비를 갖춰야 합니다. 알루미늄 캔 상표 디자인은 실크 인쇄와 수축 필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수축 필름을 붙이는 경우는 1만 캔 정도의 소량 제조도 가능하지만, 실크 인쇄된 일반적인 캔은 20~30만 개씩 주문해서 사용하니 목돈이 듭니다.

캔은 쇠 냄새를 막고 유해 성분을 차단하기 위해서 이중 코팅된 것을 사용하는데, 우선 세척을 합니다. 캔에 담기 전에 술을 섭씨 85도에서 2분간 1차 살균을 합니다. 그래야 효모에 의한 후발효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술을 섭씨 4도로 냉각시켜서 탄산을 주입한 뒤에 세척한 캔에 담습니다. 캔에 들어간 막걸리의 온도가 4도로 차가운데, 이를 다시 60도로 올려서 뜨거운 물에 담가 소독하고 다시 냉각시키는데 모두 80분이 소요됩니다. 캔에 95%의 술과 5%의 공기가 들어있는데, 5%의 공기를 살균하고 병입 과정에 노출된 면들을 소독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렇게 하면 1년 동안은 충분히 맛을 유지하는 제품이 나옵니다."

캔을 운반하고, 캔을 씻고, 술을 소독하고, 술을 주입하고, 다시 완제품 캔을 소독하는 이 모든 공정을 자동화하려면 20~30억 원이 쉽게 든다는 것이다. 부부가 운영하는 동네 양조장이 절대다수인 상황에서, 캔막걸리를 통해서 막걸리 세계화를 추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나는 그제야 인지할 수 있었다.

낯선 땅에서 낯선 술을 파는 법

㈜우리술은 막걸리 수출이 호황을 누렸던 2011년과 2012년 시기에 400만 불 수출탑을 받았고, 일본 수출이 줄어서 중화권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고 있는 지금에는 1년에 100만 불 정도를 수출하고 있다.

현재 ㈜우리술은 세계 20여 개국에 막걸리를 수출하고 있다. 그 나라들을 꼽아보면, 아시아에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싱가포르, 라오스, 인도, 네팔, 북미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에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중남미에 도미니카공화국,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 그리고 호주 등이다. ㈜우리술 상표로 나가기도 하고, 주문자가 요구한 상표 디자인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캔막걸리는 용기가 가볍고 박스에 담아 선적하기도 쉬워서 수출이 훨씬 많을 줄 알았는데, 박 대표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캔막걸리를 하려면 설비를 갖출 자본력도 있어야 하지만, 탄탄한 유통 구조를 확보해야 하는 게 더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캔맥주의 특징은 내용물이 보이지 않고, 높은 가격을 책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캔막걸리는 대량생산하여 박리다매를 추구하게 된다. 또 술은 병에 담기면 고전적이고 일반적이며, 캔에 담기면 예외적이고 유별하게 여겨진다. 캔맥주나 캔막걸리가 음식점보다는 소매점에서 잘 팔리는 이유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병에 담긴 술은 술잔에 나눠 마실 수 있지만, 캔에 담긴 술은 용량이 적어서 대개가 개인용으로 술잔 없이 그대로 마신다.
 

수출을 위해서 제조된 ㈜우리술의 캔막걸리 완제품들. ⓒ 막걸리학교


2010년대 초반 막걸리 붐이 일면서 서울장수주식회사에서 만든 월매 캔막걸리가 일본에서 잘 팔릴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여행을 한 일본인들이 막걸리를 맛본 선경험이 있고,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던 배우 장근석이 텔레비전에서 하얀색 배경에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막걸리 이미지를 홍보한 효과가 컸기 때문이었다. 일본 여성들은 캔막걸리를 딸 때 탄산가스가 쑤와쑤와 나오는 것을 즐기면서, 막걸리를 사서 '쑤와쑤와'를 마시자고 할 정도였다.

어쩌면 낯선 땅에서 인지도가 낮은 술을 판매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판매하거나 소개하는 사람의 신뢰에 의존하는 방법이다. 술이란 사람을 취하게 하고, 그 취함의 뒤끝을 예측할 수 없기에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고 정체도 모르면 소비되지 않는다. 술은 쓴맛을 지닌 드문 음료이기도 해서, 독이 들어가도 구분하기 어렵다. 더욱이 메탄올과 에탄올의 맛을 구분하지 못해서 생사를 가르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 본 술은 특별한 호기심이 있지 않고서는, 믿을 만한 사람이 권할 때라야 비로소 마시게 된다. 고로 그 지역과 친밀한 사람이라야, 새로운 술을 팔 수 있고, 내용물이 안 보이는 캔막걸리까지도 팔 수 있다.

박성기 대표는 ㈜우리술의 막걸리 수출량 중에서 캔막걸리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30% 정도 되고 성장세에 있다고 했다. 캔막걸리는 해외 사업자와 소통을 잘해야 하는데 그들의 특징을 보면 한국 문화를 좋아하면서 현지 유통망을 잘 관리하고 있는 이들로, 인도와 네팔 사업자, 베트남 사업자 그리고 새로 뉴욕에 판매를 시작하고 있는 막구의 주문자 캐롤 박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가 현지에서 판매하기 좋은 디자인과 이름으로 수입해가고, 알코올 도수와 단맛의 정도도 다르다고 했다.

예컨대 뉴욕에서 막구 캔막걸리를 맛본 한 국내 양조인은 이렇게 평했다.

"미국인에 맞춘 듯합니다. 한국인인 저에게는 싱거웠고 스파클링 음료처럼 톡 쐈으며 밀키스 맛? 외국인들은 쉽게 마실 듯했습니다. 제 취향과 달랐지만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는 한몫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우리술 마당에 막걸리 배송 차량이 들어와 있다. ⓒ 막걸리학교

 
캔막걸리를 잘 팔려면, 병막걸리를 충분히 팔거나 제품에 대한 신뢰가 많이 쌓인 다음에라야 가능하겠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캔맥주를 쉽게 마실 수 있는 것은 그 술에 대한 정보를 이미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처럼. 알루미늄 캔의 매력은 가벼워서 많은 양을 담아 멀리 보낼 수 있고, 재활용이 가능하여 친환경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페트병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요소이긴 한데, 아직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여럿 있다.

큰 트럭이 드나드는 ㈜우리술 양조장 마당을 돌아나오면서 캔막걸리로 막걸리의 세계화를 도모하는 일도 우선 국내에서 다양한 캔막걸리 문화가 확대된 뒤라야 넉넉하게 진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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