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15
원고료로 응원하기
본문듣기 등록 2020.02.08 19:48 수정 2020.03.26 10:59
 

동백동산 ⓒ 고제량

     

동백동산 ⓒ 고제량

    
2018년 12월 31일 "섭섭행 어떵허코게 애써수다, 자주 생각날 거 닮다 고맙수다"라는 인사말에 정겹게 악수를 나누고 끌어안기도 하면서 고제량은 주민들과 아쉬운 송별연을 마쳤다. 근 10년 가까이 몸을 담았던 동백동산 습지마을(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이었다. 그는 미련이 남아선가 집으로 향하기 전 다시 한번 동백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천 번은 되겠지, 아냐 못돼도 오백 번은 넘을 거야, 일주일에 두세 번은 기본이고 하루에 두 차례나 오른 적도 있으니...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제량은 한발 한발 내디뎠다.
 
입구에 들어서면 이름은 동산이지만 제주 중산간지대 곶자왈답게 깊은 숲이 나타난다. 곶은 '숲'을 말하고 자왈은 '나무와 덩굴이 어우러진 덤불'이란 뜻으로 제주 고유어다.

초입부터 반겨주는 것은 황칠나무와 구실잣밤나무다. 조금 더 걷노라면 나무마다 푸른 이끼에 덩굴까지 어우러지고 길 위에는 물기마저 촉촉하다. 2km 남짓 되는 먼물깍까지는 숲길을 에돌아 에돌아 가야 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숲 내음은 홀연 깊어지고 어둑한 기운이 몸을 감싸 마치 어머니의 몸 속으로 깊이 한발 한발 들어서는 느낌이다.

돌아보면 10년 세월이다. 동백동산 습지사업에 뛰어든 것이. 2010년 말 고제량은 국립습지센터 이현주 연구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국립습지센터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 예정인 제주 선흘리 동백동산을 주민 참여 하에 키워보는 '주민역량강화사업'을 기획중이었다. 수소문 끝에 이 사업을 이끌어줄 활동가로 고제량을 선택하고 연락을 한 것이다. 
 

생태운동가 고제량 그의 민박집 이을락 서재에서 ⓒ 민병래

 
"람사르가 무시거꽈?" "습지가 물통이꽈? 그거행 얼마 벌엄수과?"

고제량이 선흘마을에 나타났을 때 이장을 비롯 마을 어르신들이 던진 질문이었다. 선흘리는 그 당시 300여 가구 700여 주민들이 살고있는, 동백동산 습지지대의 마을이었다.
 
질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신은 누군교?"라는 물음이 아프게 다가왔다. 고제량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1990년 제주대학교 해양환경과를 졸업한 이래 제주의 생태환경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91년 '푸른 이어도의 사람들' 결성에 참여했고 제주참여환경연대 환경교육팀장, 한라생태길라잡이로 활동했다. 동백동산에 들어갈 무렵에는 제주생태관광협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 드신 선흘 주민들에게는 40대 중반의 듣도 보도 못한 풋내기 여자였을 뿐이다.
 
고제량은 서두르지 않았다. 기껏 한 명의 활동가가 끌고 갈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주민들이 주체로 나서야 되는 일이기에...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은 "동백동산에서 놀아보자"였다.
 
이장과 부녀회원들과 함께 부지런히 오가며 "맞다, 여기 먼물깍 물 길어당 먹었주게. 저 조끄띠 봉근물도 이서나서. 이디가 옛날 숯가마였주게. 그 당시엔 순번 정행 동백동산 지키레 댕겨신디..."라는 옛 기억들을 떠올렸다.
 
동백동산은 마을과 이웃해 있지만 곶자왈 특성상 돌 무더기가 많아 산책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71년에 공동 수도가 들어와 곶자왈 습지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도 없어졌다. 벌목이 금지됨에 따라 땔감을 구하거나 숯 굽는 일도 없어져서 마을과 동산은 이웃해 있어도 나이 든 주민들에게는 먼 존재였다. 그런 상황에서 고제량과 함께 한 '동백동산 놀이'는 이 습지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멸종위기 비바리뱀이 사는 곳
 

동백동산 ⓒ 고제량

   
동백동산의 사계절은 신비하고, 나무와 풀이 들려주는 생명의 얘기도 풍성하다.
 
봄에는 10만 그루의 동백이 시리도록 붉은 꽃을 3월까지 지켜낸다. 질 때는 꽃잎 한 가닥씩이 아니라 제 몸뚱이를 통째로 떨어트리기에 제주 사람들에게 동백은 4.3의 아픔과 맞닿아있다. 수많은 생명들이 통꽃으로 툭 떨어졌던 아픔을 못 잊게 해준다.
 
5월이 넘어 여름을 맞이할 때의 길잡이는 때죽나무다. 잎겨드랑이에서 두세 송이씩 아래를 향해 꽃을 피운 모습에 내음까지 더해지면 숲길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제주사람들은 때죽을 정갈하게 여겨, 가지에 띠를 엮고 물을 받아 이를 '참받음물'이라 했다.
 
그런가 하면 낙엽수들이 잎을 떨군 11월, 제주고사리삼이 싹을 틔운다. 땅속 줄기가 옆으로 힘겹게 기어가며 싹을 낸다. 그 곁에는 별 모양의 꽃을 지닌 옹긋나물, 화사하고 은은한 참새외풀도 친구하겠다고 얼굴을 내민다. 고맙게도 고사리삼은 세계 어디에도 없고 오직 제주 곶자왈에만 있다.
 
겨울에 딸기를 맞이한 적이 있는가? 흰 눈이 내리는 날, 빨갛게 익은 녀석은 동백동산의 숨은 매력이다. 산딸기 중 키가 제일 작은 놈이지만 겨울에도 달걀 모양 잎을 달고 있다. 제주에서는 '저슬탈'이라는 고운(?) 이름으로 불리운다.

이렇게 동백동산은 4계절이 신비롭고 평화롭다. 비가 오면 수백 개의 습지가 생기고 비바리뱀, 두점박이 사슴벌레, 왕은점표범나비 등 수많은 생명이 어울려 산다. 
 

동백동산에서 해설하는 고제량 그는 해설가로 조사자로 감시자로 여행가로 수백번 동백동산을 올랐다 ⓒ 고제량제공

 
그렇게 동백동산을 오가며 선흘리 주민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먼저 이장님이 "그래, 한번 해보자"며 고제량과 습지마을사업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물꼬가 트였다. 제주도와 환경부의 예산이 투입되고 동백동산습지센터가 만들어지면서 고제량과 지방정부, 마을주민이 함께 하는 협치가 탄력을 받아나갔다.
 
2012년 마을 축제가 부활되었고 2013년에는 부녀회가 중심이 되어 특선음식을 선보였다. 동백동산이 내어주는 재료로 할머니가 해준 음식들이 되살아났다.
 
"지금도 봄 되민 꿩마농 캐당 국 끓여먹고 부침개도 행 먹고 안 먹엉 넘어가민 서운해"라는 꿩마농무침. 달래무침을 말한다. 톡 쏘는 매콤함에 달콤한 쑥범벅과 짝궁이다.
 
"어머니가 바닷물에 동지를 절이고 만들어 봄에 만난 반찬 중 최고주게"라는 동지김치. 겨울을 넘긴 '퍼대기배추' 한가운데서 올라오는 꽃동, 이 새순을 제주에선 '동지나물'이라 부르며 겉절이도 해 먹고 익혀도 먹는다.
 
이렇게 잊혀졌던 음식들과 함께 도토리칼국수·고사리불고기·메밀범벅같은 선흘 특선 메뉴가 개발되었다. 닭고기 국물로 육수를 낸 도토리칼국수는 특히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마을축제는 더욱 풍성해졌고 탐방객은 2015년에 2만5000명에 이르러 생태관광을 체감하게 되었다.
 
덩달아 폐교 위기에 놓였던 선흘분교가 2012년 전교생 18명에서 2015년 29명으로 학생수가 늘었다. "학교가 마을 안에 있고 자연과 가까이 있어 좋다"며 젊은 부부들이 모여든 것이다.
 
 

그의 민박집 이을락에서 고제량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고 평생 제주생태운동을 해왔다. ⓒ 민병래

 
그렇다고 마냥 순조롭지는 않았다. 고제량이 제일 힘들었던 점은 "피부에 와 닿는 게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사실 2000년대 들어 제주에는 큰 변화가 일었다. 한 해 관광객이 천만을 돌파하며 들썩이던 땅 값은 중국자본까지 가세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다. 이런 상황임에도 한 해 관광객을 4000만까지 늘리자며 제2공항이 추진되고 있으니 "피부에 와닿는 것"은 "땅값이 얼마나 오르냐"와 비슷한 말이고 "람사르 마을이 되어 재산권 행사가 어렵다"는 푸념이기도 했다.
 
고제량이 선흘마을에 들어와 세운 원칙은 "마을 주민이 함께"였다. 초기에 간담회와 설명회를 열었지만 관심도 없었고 참석을 꺼려했다. 그래서 찾아가는 주민설명회를 추진했다. 부녀회, 노인회, 청년회를 여러 차례 만나면서 공감대가 넓어졌고 동백동산 놀이까지 더해져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어갔다.
 
그렇지만 문제는 "어떻게 마을주민들 총의를 모아 결정할 것인가"였다. 그래서 과감하게 원탁회의를 추진했고 2014년 2월 15일 첫 번째 회의를 열었다. "마을상징을 무엇으로 할까?"라는 주제였는데 고제량은 근심이 많았다. 토론도 익숙하지 않은 시골 노인들이 백여 명 이상이나 모여 결론이나 낼 수 있을까? 토론 수준은 의미 있을까? 몇 가지 안을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복잡했지만 그대로 가기로 했다.
 
선흘리의 상징은...
 

가을 먼물깍 ⓒ 고제량

 
그날 마을 상징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자 놀랍게도 체육관 안은 갑자기 활기가 넘쳐났다.
 
"먼물깍 최고주게, 물통도 젤 크고 빨래도 했던 곳이난."
"무신 소리여 고망물에서 소영 말이영 물 멕이고 해나시녜게"
"동백동산이난 동백이 최고주 눈 내리는 날 동백 안봐봐샤."
"겅 곧지말라. 이디 중산간 도틀굴서 사람덜 얼마나 죽어신디. 뭐랜고라봐도 4.3이여"

 
그렇게 원탁마다 활발한 토론이 있었다. 그 열기를 모으고 모아 '동백꽃·제주고사리삼·제주4.3·가시낭도토리·두점박이 사슴벌레·순채'가 선흘의 상징이 되었다. 
 

선흘리에서 열린 원탁회의모습 앞에 마이크를 쥔 이가 고제량이다. ⓒ 고제량제공

 
또 "삼춘, 선흘이 꼭 지켜야 할 건 뭐우꽈"를 주제로 한 원탁회의도 있었다. 마침 동북곶자왈에는 개발 자본이 들어와 "10년간 100억 사용료를 내고 사파리를 만들겠다"는 제안이 흘러다닐 때였다. 이때 주민들은 "미래의 손주들을 위해서 동백동산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성명서를 만들고 기자회견까지 했다. 마을주민들이 "피부에 와 닿는게" 없어도 '개발 반대'를 선언한 것이다.
 
이런 결정 과정을 보면서 고제량은 기뻤고 소름이 돋았다. 모든 정보가 누구에게나 진실하고 공평하게 전달되면 공동체는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때 고제량은 활동가로서가 아니라 선흘주민으로서 함께 살아가면 행복하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한편 이제는 선흘리를 넘어서 조천읍 전체를 람사르 습지도시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센터장 자리를 비롯 여러 역할들을 성장한 주민들에게 넘겨주고 2018년 12월 31일부로 선흘리 활동의 한 매듭을 지은 것이다.
 
착한 여행자와 제주를 잇는 '이을樂'
 

동백동산의 동백꽃. ⓒ 고제량

 
송별연을 마치고 아쉬운 마음에 다시 오른 동백동산에서 고제량은 오후 늦게 내려왔다. 동백동산에서 가장 깊은 먼물깍에서는 눈을 감고 태고의 숨결같은 고요를 들이마셨다. 돌아나오는 길에는 젖은 낙엽에 떨어져있는 동백꽃 한 송이를 고이 손에 안았다. 들머리 나무마다 손길을 한 번씩 주고 동산을 벗어날 때는 돌아서서 합장 인사를 했다.
 
고제량은 동산 입구에서, 말일이건만 늦게까지 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까 봐 조심조심 주차장으로 갔다. 10년을 넘게 몬 아반떼에 시동을 켜고 감사패를 조수석에 놓았다. 지난 10년간 세 번씩이나 받은 감사패다. 오늘 헤어질 때 받은 손길과 눈물까지 합하면 과분한 사랑이었다.
 
무엇보다 동백동산이 자신을 품어줬음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안내자로, 해설가로, 조사 기록자로, 감시자로, 여행자로, 교육자로 셀 수 없이 올랐던 동백동산. 그는 특히 도틀물을 좋아한다. 4.3때 도틀굴(용암동굴)에 숨었던 사람들이 그곳에 물을 뜨러 나왔고 그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있어 그 사연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동백동산에서 그가 운영하는 민박집 이을락까지는 불과 10분 거리. 이을락이 가까워지면 멀리 함덕해변이 보인다. 제주의 바다 빛깔은 풍부하다. 특히 함덕바다는 하얀 모래밭과 검은 현무암, 해조류를 품고 있어 비취색에서부터 짙은 청색까지 그 색깔이 다양하다.
 
함덕해변을 오른쪽에 두고 언덕을 넘어서니 이을락 표지판이 보인다. 이어가는 즐거움 '이을樂', 착한 여행자들과 제주사람들을 이어준다는 소박한 바람이 담겨있다. 마당에 들어서니 까맹이가 컹컹댄다. 마당 화단엔 새벽 찬 서리에도 얼굴을 내밀었던 수선화가 화사하다. 텃밭에는 겨울 무싹도 고개를 빼꼼 들었다.
 

이을락 한가운데 있는 자귀나무 모습. ⓒ 이을락

 
멀리 한라산 쪽에서는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고제량은 노을을 마주하면 지금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어릴 적 아버지는 감귤나무를 가꿨는데 가을에만 수확하니 수입은 1년에 한 번뿐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감귤나무 사이에 고추· 가지· 열무를 재배해 십리 길을 걸어 동문시장 한 켠에서 팔았다. 고제량은 노을이 질 때면 감귤나무 옆에 서서 가만히 엄마를 기다렸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5남매를 기르겠다는 엄마가 땅거미가 져도 안 오면 불안했다. 그날의 장사도, 엄마의 귀가 길도...

 

동백동산으로 들어가기 전 제주생태관광협회 고제량 대표로부터 설명을 듣고있다 ⓒ 제주다크투어

 
  
육성으로 듣는 고제량의 동백숲 해설
  우리 동백동산을 들어가면서 우선 동백동산에 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우리가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보고 들어가면 어떨까요?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 경건한 자세로 숲을 향해 "동백동산아 우리를 받아줘"라고 인사하겠습니다.

모두 함께 시작...얼른 들어와도 좋다고 하니 우리 마음 놓고 들어가면서 최대한 조용조용하게, 훼손하지 않고 약 두 시간 정도를 걷겠습니다.
 
동백동산은 제주 화산활동 중에 용암이 흐르면서 굳어 깨진 용암 바위언덕 위에 형성된 상록 숲이며, 습지입니다. 용암의 성질이 묽은 파호이호이 용암이 흐른 관계로 숲의 기저가 넓적한 판 같은 지질구조입니다. 그래서 빗물이 고일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래서 습지보호지역입니다.
 
이 물 덕분에 선흘리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물이 있으니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거지요. 동백동산을 걷다 보면 군데군데 습지가 있는데 거의 가 주민들이 이용했던 곳입니다. 사람이 먹었던 물, 소와 말에게 먹였던 물, 빨래나 목욕했던 물 등 ... 다양한 쓰임새가 있습니다.
 
 습지를 형성한 주변을 살펴보면 쓰임새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1971년 마을에 공동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전적으로 동백동산의 물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물통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먼물깍, 도틀물, 새로판물, 봉근물, 혹통, 어둔궤게우물, 반못 등등
 
현재는 주민들이 이용이 없어 발길이 뜸하니 습지가 사라지고 있어 지난 4년간 습지를 주민들과 조사하여 <동백동산에서 습지를 만나다>라는 책을 엮기도 했습니다. 동백동산은 현재 습지보호지역, 문화재보호지역, 세계지질공원, 산림보호지역입니다.1971년 제주도 기념물 10호로 지정되면서 지속적으로 보전되어온 곳입니다. 생물다양성이 높아 식물은 약 370여종, 동물은 900여종이고 나무는 약 100종을 기록합니다. 양치류는 50종 가까이 발견됩니다. 우리나라 환경부 보호종만 15종이나 됩니다. 팔색조, 제주고사리삼, 제주 비바리뱀, 참개구리, 개가시나무 등등이 보호종입니다. 식물하나 멸종되는 것이 머그리 중요하겠냐 싶겠지만 식물 하나가 사라지면 현재 우리가 접하는 환경이 변합니다. 아주 조금씩 느낄 수 없을 만큼씩 변해 가지만 시간이 흐르면 우리 인간과 더불어 그 어떤 생명들도 살 수 없는 지구가 되어 갈 것입니다.
 
한번 크게 숨한번 쉬어 봅시다. 따라해 보실레요? 숨 들이마시고 ~~~ 내쉬시고.... 한번 더 ~~~
가슴이 시원하시죠? 살 것 같으시죠.
 
우리를 살게 하는 이 공기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이 만든 공동창작품입니다. 그 창작자 하나둘 없어지면 이런 공기가 만들어지지 않겠지요? 그래서 풀 한포기를 소중하게 존중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연결되어 사는 것 우리가 자연에서 배워야 하는 첫 번째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 

1. 동백동산습지보호지역은 2010년 습지보호지역, 2011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고 남방계식물과 북방계식물이 함께 자생하는 독특한 생태계로 남한 최대의 상록활엽수지대다. 생물다양성이 높아 식물은 약 370여종, 동물은 900여종이고 나무는 약 100종이 기록되고 있다. . 양치류는 50종 가까이 발견됩되고 환경부 보호종만 15종으로서 팔색조, 제주고사리삼, 제주 비바리뱀, 참개구리, 개가시나무 등등이 해당된다.

2. 원탁회의에서 고제량의 가슴을 뜨겁게 한 얘기는 또 있었다. "마을이 생태관광을 해서 수익이 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회의할 때 선흘1리 고진협 영농회장이 "어르신들의 복지가 최우선이다"며 "우리마을 요양원에 간 사람이 21명이다. 이들을 다 데려오자, 그러면 이장이고 부녀회장이 들여다볼 수 있지 않냐, 마을주민이 돌보자"라는 제안을 했다. 마을공동체가 노인을 돌보자는 제안이었고 이 사업은 마을에 수익이 쌓여가면서 실제 추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3. 고제량은 현재 선흘리 이후 그 경험을 토대로 선흘리라는 습지 마을을 넘어서 선흘리가 있는 조천읍을 람사르습지도시로 운영을 위해 자문 및 지원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프로필>
1986 : 제주여자고등학교 졸업
1990 : 제주대학교 해양환경학과 졸업
2016 : 제주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자연문화유산 교육학과 석사 수료
 
-경력
1991 : '푸른 이어도의 사람들' 결성 참여
2004~현재 : 제주참여환경연대 한라생태길라잡이
2003~현재 : ㈜제주 생태관광 기획이사
2011~현재 : 제주 생태관광협회회장
2011~2018 : 선흘1리 생태관광 컨설팅
2013 ~2018 : 제주도 생물권 보전지역 분과위원회 위원장(2015년부터)
2013~현재 : 유네스코 산하 한국 인간과 생물권계획 15~18대 위원
2016~현재 : 제주생태관광 지원센터 센터장
2019~현재 : 지질공원 전문위원
댓글1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 줄여서 '사수만보'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 민초들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일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조명을 비추고 의미를 부여코자 할 것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밥 짓는 일이 내 천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