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20
원고료주기
등록 2019.10.08 13:36 수정 2019.10.08 13:36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 [편집자말]
  

퀴어축제에 펼쳐진 무지개 물결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무지개 현수막을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뒤에서 붙잡고 있다. ⓒ 이희훈

 
아마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겠지만, 2016년과 2017년에 걸쳐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에 참가한 일은 내게 인상적인 경험으로 남아있다. 연이어 밝혀진 부정으로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수준에 이르렀고 시위대의 압도적인 숫자와 여론 때문인지 경찰 또한 집회 참가자들에게 폭력적으로 굴지 않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처음 시위에 참가한 나로서는 이렇게나 안전하게 집회에 참석을 하고 행진을 했던 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집회의 구성원들은 정말이지 다양했다. 시위를 하러 가면 익히 보이던 노조와 단체들의 깃발도 있었지만 개인들이 각양각색의 개성 넘치는 깃발을 들고나오기도 했고, 새롭게 탄생한 페미니스트 모임들도 함께 했다.

당시 매주 토요일이면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결합해 집회에 참여했다. 사람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늘 여섯 색깔 무지개 깃발 아래에서 행진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활동하던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함께, 혹은 다른 성소수자 단체에서 만든 집회참여 모임을 신청해서, 때로는 별 생각 없이 약속을 잡았던 성소수자 친구들과 마침 시간이 맞아서 함께 했다.

퀴어문화축제도 아니고 아이다호데이(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 행사도 아닌 곳에서, 특히나 대통령의 탄핵이 걸린 집회에서 무지개 깃발 아래에 서는 것이 생소하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복했다. 성소수자인 우리가 광장에서 사람들에 섞여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연대할 수 있다는 점이 말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한 것들
 

'동성애 반대' 문재인 사과 촉구한 성소수자 기습시위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6일 오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천군만마(千軍萬馬)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마친 직후 성소수자 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레인보우 깃발을 들고 문 후보를 향해 기습시위를 벌인 이들은 전날 TV토론에서 "동성애 반대 뜻을 밝힌 것에 대해 문 후보의 사과를 촉구했다. ⓒ 남소연

 
결국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 넘어가고 연말을 맞이한 12월의 어느 날 밤, 나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주최한 송년모임에 참석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다음 해에는 활동가와 회원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계획하고 전망했다. 나는 내년이면 많은 것이 바뀔 거라고, 지금의 대통령은 결국 탄핵되고 정권이 바뀔 것이며, 그러면 그 공간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 했다. 다소 희망에 들뜬 말이었는데, 운동을 오래한 활동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정권이 바뀌고 정치 지형이 달라지면 아마 연대가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어요. 사람들과 충돌하거나 이견이 갈리거나 혹은 배제되는 일도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은 덤덤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당혹스러웠다. 아닐 것 같다고, 이제 큰 적폐가 청산이 되면 성소수자인 우리에게도 좋은 세상이 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치 예언처럼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대선토론회에서 당시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홍준표 후보의 질문에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단호히 답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2월에도 '성소수자 혐오'에 앞장서온 보수 개신교계 인사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도 토론회 당시와 비슷한 발언을 했다. 상황이 이러니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공약에서 빠진 것은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문제의 토론회가 있었던 다음 날,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무지개 깃발을 들고 문재인 대통령의 앞으로 걸어가는 시위를 했다. 그리고 몇 주 동안 나는 자주 가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발길을 끊었고 인터넷 자체를 잘 보지 않았다. 발목을 잡는다는 지탄과 '무지개 조폭단'이라는 조롱이 혐오와 한데 섞여 인터넷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광장에서 사라진 우리의 자리
 

조국 장관은 후보자였던 지난달 6일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박지원 의원과의 질의응답중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건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르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군형법 92조의6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도 "영외에서 동성애를 한 것까지 형사제재를 하는 것은 과하다"면서도 "만일 내무반에서 근무 중 동성애를 한 경우에는 보다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 공동취재사진

  

동성애반대 단체 및 서울대 트루스포럼 소속 학생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암담했다. 왜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까. 그럼 무엇을 해야 했을까. 존재를 반대한다는데 말이다. 그저 웃으면서 '이해합니다, 나중에라도 챙겨주세요'라고 했어야 한 걸까. 수치심과 모멸감을 견디면서? 세상이 갑자기 벽으로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사람을 피해 다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기도 그렇다고 침묵하며 참기도 힘들어서 그랬다. 그렇게 세상에 갈 곳이 점차 적어졌다.

그리고 얼마 전 기시감을 느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한 발언을 들은 후였다. 조 장관은 그 자리에서 박지원 의원의 질문에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르며 군대 내 동성애(근무중)는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또한 단계적 도입을 주장해 이전의 개혁적인 입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까 조국 법무부 장관은 성소수자인 우리는 평등하지 않게 대해도 괜찮고, 유독 '동성애'는 제재가 필요하며(그렇다면 이성애는 괜찮다는 의미인가?), 단계적으로 나중에 차별로부터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여기에 반발했지만, 조 장관을 둘러싼 논쟁이 점점 커지면서 이 사실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아니 사실 인사청문회 당일에도 온도차는 이미 극명했다.

요즘 성소수자인 친구들을 만나면 학교 동기나 오래 알던 친구들이 모인 단체 메신저 방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러면 대부분은 '너도 그랬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우호적이든 아니든 그 모든 대화에서 성소수자들이 설 자리는 없다. 서초동과 광화문광장을 양축으로 나라가 갈라졌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이지만, 나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다. 나는 조국이다? 너희는 다르게 취급받아도 괜찮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입이나 지지가 가능하겠는가. 그렇다고 성소수자를 아낌없이 혐오하며 세상을 다시 이전으로 돌리고자 하는 보수 정치인들과 목사들이 있는 광화문광장이 우리의 자리겠는가.

슬프게도 서초동 집회에 참여했던 사람 중 현장에 노조와 시민단체의 깃발이 보이지 않아 좋았다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순수한 시민들의 시위 같아서란다. 그들에게 각양각색의 모든 다른 사람들이 모인 2016년과 2017년의 탄핵 집회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삶을 살기에 입장도 목소리도 다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 어떤 광장에도 설 수 없는 우리를 무엇이라 생각했을까.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
 

퀴어락 홈페이지 ⓒ 퀴어락 캡처

 
내가 일하는 비온뒤무지개재단은 부설기관으로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을 두고 있다. '퀴어락'은 한국성적소수자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기록들을 수집 정리하여 오프라인과 온라인상으로 공유, 검색, 열람이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탄생했다. 또한 퀴어락은 누구나 열람이 가능한 공공 아카이브를 지향한다.

퀴어락은 이미 2009년에 2000여편이 넘는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고 지금은 더욱 방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퀴어락의 공간은 다소 협소한 편이다. 조그만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사무실 한 쪽, 가장 좋은 방에 퀴어락이 위치하고 있다. 아마 사무실이 있는 망원을 오가는 사람 중 한국 성소수자들의 살아있는 역사가 그곳에 있음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면 망각이 반복되기에 소수자들에게 기록과 수집은 사실상 의무다. 하지만 한편으로 퀴어락을 바라보면서 양가적인 감정이 들 때도 있다. 성소수자들이 설 자리가 늘었다 줄었다가를 반복하고 결국은 어느 광장에서도 환대 받지 못하는 와중에 이 외딴 공간에 우리의 역사가 쌓여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결국 우리가 나이가 들고 활동을 멈추면 이 공간과 자료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까. 세상은 우리를 멸시하거나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을 때가 많은데.

하지만 한편으로 퀴어락은 점차 나이를 먹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는 전시도 현재 합정지구에서 진행 중이다. 즉 퀴어락은 사라지 않고 성장하여 이제는 외출까지 된 셈이다.

세상의 풍파와 심란한 일들 사이에서도 누군가는 묵묵히 노동하고 그 결과물은 자기의 자리를 넓히며 걸어 나간다. 편이 나뉜 세상에서 누군가는 설 곳이 사라지고 어떤 존재들은 보이지 않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묵묵히 자기의 공간을 찾아 나선다. 세상이 우리를 여기저기 내친다는 느낌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다.
댓글2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앞으로도, 더 용감하게

이 기자의 최신기사 문재인 대통령이 모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