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27 14:57최종 업데이트 19.08.27 14:57
경기도 평택 천비향 막걸리 양조장에서 사십대 중반의 이정욱씨를 만났다. 그는 전통주 산업 발전에 기여한 열정을 인정받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기념패까지 받은 아홉 명 중 한 명이었다. 그 중에서도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선정된 '찾아가는 양조장' 34 군데의 스탬프 투어를 완주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어떤 의도와 생각으로 양조장을 돌아다녔는지 궁금했다.
 

찾아가는 양조장 34군데를 모두 완주하여 기념패를 받은 이정욱씨. ⓒ 막걸리학교

 
그는 야구를 좋아한다. 리틀야구연맹에 소속되어 1년에 150일 정도 심판을 본다. 2012년에 처음 겸업으로 시작했는데, 평일 낮에도 심판을 보고 싶어서 그 이듬해에 전업 심판이 되었다. 그는 또래의 친구들보다 연봉은 적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만족스러워 한다.

그는 제주도를 좋아한다. 대학교 3학년 때 제주 여행을 처음 한 뒤로 제주도에 매료되었다. 2015년부터는 해마다 너댓번 제주를 여행하고 있다. 올해는 1월에 2주 동안 제주에서 지냈고 3월부터는 2박3일로 매달 제주를 찾아가고 있다. 지난 4월 24일에는 제주 친구와 함께 우연히 성읍마을에서 가까운 제주 고소리술익는집을 찾아갔다. 그 집 며느리가 양조장 지도를 내주며 도장을 찍어주었다.


6월 30일까지 양조장 34군데 중에서 24군데만 찍으면 선물을 준다는 약속이 담겨있었다. 마감 시간이 두 달 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힘들겠다고 여겼다. 이튿날 제주 공항을 가는 길에 양조장 제주샘주를 들러 도장을 하나 더 받았다. 남양주 덕소 집으로 돌아와서 양조장 지도를 보니, 갑자기 새로운 욕심이 생겼다. 집에서 가장 먼 두 군데를 갔다왔는데 다른 곳도 못 갈 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유통업을 한 경력도 있어서, 돌아다니는 일이라면 이력이 나있었다. 주변으로부터 역마살이 있다는 말을 듣지만, 그렇다고 전문적인 여행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돌아다니는 수준이었다. 그는 집에서 가까운 데부터 동선을 잡아, 파주 감악산 머루주, 포천 배상면주가, 가평 우리술을 하루만에 돌아보았다. 경기 남부 지역의 용인 술샘, 대부도 그랑꼬또, 평택 호랑이배꼽 막걸리 양조장은 야구 심판을 보러 지방을 갈 때에 들렀다.

멀리 떨어진 경부선 구간은 부산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놓고 동선을 짰다. 청주 조은술 세종을 들렀다가 옥천 이원양조장을 거쳐 부산 친구 만나고, 금정산성 마을에 올라 막걸리를 맛보고, 서울 올라오는 길에 경북 영천 고도리와이너리와 한국와인을 거쳐 안동 소주 제조장을 돌아보았다. 마치 야구 선수가 공을 치고 달리듯이, 그는 질주했다.

그는 운동과 술은 교집합이 크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체력이 좋고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면 술자리가 잦아지니 자연히 술과도 친해지기 쉽다. 그는 물론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주 맥주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에 양조장 여행을 하면서 양조장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보니 우리술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양조장 여행 하면서 알게 된 우리술의 매력
 

2019년에 새롭게 4개가 추가되어 38군데가 된 찾아가는 양조장. ⓒ 막걸리학교

 
청주 조은술 세종을 찾아가서는 술 제품 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있는 줄 알게 되었다. 청주 초정약수터에 세종대왕이 치료차 찾아온 적이 있고, 세종대왕의 이름이 이도(李祹)인데 그 이름을 따서 42도 이도 소주를 만들었다는 사연을 인상 깊게 들었다.

명인 안동소주 제조장에는 업무가 끝날 무렵에 찾아갔는데, 양조장 대표를 만나게 되어 생산 설비와 숙성 저장고를 둘러볼 수 있었고, 고려 시대에 한반도에 소주가 유래된 이야기와 소주를 만드는 원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술을 좋아하면서도 우리 술에 무지했던 것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그는 운 좋게 양조장 대표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양조장을 방문하면 꼭 도장을 받아야 했기에, 오전에 찾아간 충주 청명주 제조장에서는 한창 일하고 있는 대표에게 지도를 내밀며 도장을 찍어달라고 말하기가 미안했다. 양조장 사진을 찍고 지도를 펼쳤더니 흔쾌히 도장을 찍어주던 양조장 대표 모습이 떠오른다.

한산소곡주 제조장은 휴일에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 있어 난감했다. 마침 트럭을 몰고 들어오는 양조장 관계자가 있어서 도장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도장을 찍어줬다. 고마워서 명함을 한 장 받았는데 양조장 대표였다. 양조장 대표는 오히려 멀리까지 찾아와서 고맙고 수고한다면서 소곡주 한 병을 선물로 주셨다. 그 뒤로 그는 소곡주 팬이 되었다.

그에게 양조장을 3군데만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인심 좋고 인상 좋은 해창주조장은 멀리 가보라는 뜻에서, 울산 복순도가는 스파클링 막걸리 맛이 좋아서, 33번째로 들른 미소 생막걸리를 빚는 울진술도가는 동해안 풍경과 함께 즐길 만하다며 추천했다.

그가 아쉬웠던 것은 함께 다닐 친구를 만들지 못했던 점이었다. 늦게 양조장 투어를 알게 되어, 여유있게 양조장을 돌아보지 못했다. 혼자서 차를 몰고 갈 때는 시음하기도 쉽지 않았다.

양조장 정보도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서 지인들끼리만 공유하는 정도였는데,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정보를 공유했다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도 새롭게 양조장 투어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걷는 것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한다면 시간을 넉넉하게 갖고 양조장을 돌아다녀보라고 권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양조장을 통해서 지역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그는 진도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진도 홍주가 있는 줄을 양조장 여행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함양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함양 솔송주 때문에 찾아갔더니 조선시대 전통마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술 속에 시간과 문화와 이야기가 담겨있는 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짧은 기간 양조장 34군데를 돌고 보니, 그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주점이나 양조장을 할 생각은 없지만, 새로 터잡게 될 제주에서 술을 빚어 지인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의지가 대단하다', '열정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뭐랄까. 홈런을 치고 야구장 그라운드를 돌고 들어오면서 박수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찾아가는 양조장'을 완주한 첫 번째 '선수'라는 점에서 도장 찍은 지도를 액자로 만들어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두고 싶어졌다. 그의 인생에 야구처럼 제주처럼 재미난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찾아가는 양조장 모바일 스탬프 투어 QR코드. 이 속으로 들어가면 양조장 방문 인증을 핸드폰으로 받을 수 있다. ⓒ 막걸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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