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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18 13:14 수정 2019.06.18 13:14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편집자말]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이 작품을 망친다', 주로 대규모 상업 영화에서 '출연진의 다양성'에 힘을 쏟을 때 종종 등장하는 비판이다. 이들은 '동양인', '여성', '성소수자' 캐릭터가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리즈에 등장할 때, 이는 무리한 캐스팅이며 개연성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물론 소수자 캐릭터들이 주류 영화계에 등장할 때에 그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영화가 망가진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통념과 달리 사회적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선택할 때, 작품이 다룰 수 있는 갈등과 서사의 폭은 비교적 넓어진다. 보다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뜻이다. 여성·성소수자·이주민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이들이 현실에서 겪는 갈등과 마주하는 부조리함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캐릭터가 공허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즉, 소수자들이 영화에 등장할 때, 작품을 제대로 만든다면 작가들은 우리에게 기성 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밖에 없다.

가령 천하의 '캡틴 마블'도 지구로 떨어지면 낯선 남자들에게 '웃어보라'라는 무례한 요구나 듣지 않는가. 비슷한 캐릭터가 남성이었다면 분명 보여줄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유튜버 박막례
 

박막례 할머니 ⓒ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캡처

 
그런데 주류와 보편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 자체만으로 새로움을 만들어가는 분야가 과연 영화나 드라마에만 국한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나 유튜브와 같이 진입장벽이 기존 미디어에 비해 훨씬 낮은 영상 플랫폼이 생기면서 이를 더욱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여기에 해당하는 가장 좋은 사례가 바로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에서 '박막례'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70대의 그녀는 병원에 갔다 치매 위험군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이 소식을 접한 손녀 김유라씨는 할머니와 함께 호주 여행을 떠난다. 그것이 '박막례 할머니' 채널의 시작이었다. 시간을 거쳐 이 채널은 9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게 되었고 박막례는 유튜브 CEO와 구글 CEO까지 모두 만날 정도로 스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단 몇 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었을까? 물론 '박막례 할머니' 채널의 성장 뒤에는 기획자이자 작가, 편집자인 김유라 PD의 탁월한 안목이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박막례'만 놓고 본다면 특별한 것은 없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선다. 대신 노년의 여성이 하지 않으리라 여기던 일을 하고 가지 않으리라 생각하던 공간에 등장할 뿐이다. ASMR, 브이로그, 뷰티 콘텐츠, 요리 콘텐츠 등 다양한 형식의 영상 속에 박막례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녹아들어 간다. 마치 자신의 팬들을 본인이 부르기 쉽게 '편'이라고 호칭하는 것처럼.

이 때문에 콘텐츠의 형식이 아무리 익숙해도 결과물은 늘 새롭고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가령 박막례와 김유라 PD가 패스트푸드점을 찾아 무인주문기를 통해 햄버거를 주문했던 영상을 떠올려보자. 이 과정에서 박막례는 무인주문기를 사용해 햄버거를 고르는데 난항을 겪는다. 패스트푸드점의 주된 고객으로 고려되는 '젊은 층'이 아니라 '할머니 박막례'가 그 공간에 등장할 때,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무인주문기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셈이다. 이 문제점은 동시에 '할머니 박막례'의 고군분투라는 드라마와 심지어 유머러스한 순간까지도 함께 만들어낸다.

꾸준히 살고 싶은 대로 사는 마돈나
 

미국의 가수이자 작곡가 그리고 배우인 마돈나 ⓒ 연합뉴스/EPA

 
한국에서 70대의 유튜버 박막례가 화제를 모으는 동안 물 건너 외국에서는 60대의 여성 가수가 새로운 앨범을 냈다. 바로 마돈나다. 마돈나는 컴백과 함께 소소한 논란을 만들었다. 지난 6일 SNS를 통해 자신을 밀착 취재한 뉴욕타임스 기자를 비판한 것이다. 마돈나는 자신을 취재한 기자가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으며 동년배의 남자 가수라면 같은 질문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 또한 그녀는 뉴욕타임스가 '가부장제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며 이를 부수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돈나가 겪은 일은 아마 성공한 그리고 나이 든 여성이 마주할 수 있는 전형적인 차별 사례일 것이다. 특히나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은 외모와 몸매에 대한 질문에 자주 시달리며 이는 필연적으로 노화와 나이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내가 보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마돈나의 대응 방식이다. 자신을 둘러싼 어떤 이슈이건 간에 마돈나는 이를 논란과 논쟁으로 폭발시키기를 반복해 왔다. 그렇게 소란이 벌어지면 그녀의 팬이 아닌 사람조차도 그 중심에 선 마돈나의 존재를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방식으로 마돈나는 항상 대중들의 관심 속으로 들어왔다. 섹스와 종교, 성차별을 거쳐 이제는 그 주제가 '나이'로 옮겨진 것뿐이다.

물론 사람들은 마돈나가 60대에 접어든 것을 두고 계속해서 조롱을 반복한다. 사실 이미 40대부터 그녀는 팝가수로서는 너무 나이가 많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사람들은 마돈나가 60대 여성으로서 보다 성숙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이기를 요구했지만 그녀는 이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것은 음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팬들은 마돈나가 디스코 음악으로 돌아와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상업적 성과를 거두길 바랐다. 마치 <컨페션 온어 댄스 플로어>(Confession On A Dance Floor) 앨범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후 마돈나는 늘 새로운 음악인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형식을 실험해나갔다. 새로 발매된 음반 <마담 엑스>(Madame X)도 마찬가지 결과물이다.

이러한 마돈나의 행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마돈나는 사람들의 예상과 요구에 맞추어 행동하고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놓았을 때, 마돈나는 끊임없이 새롭고 흥미로운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우리에겐 더 많은 마돈나와 박막례가 필요하다

예상하건대 마돈나는 70대, 80대가 되어서도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며 아주 소란스러운 커리어를 이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마돈나는 끝났다'고 말했던 모든 이들이 '세상에 저 늙은 여자는 아직도 죽지 않고 여전히 저렇게 시끄러운 거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존재를 못 본 척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유튜버 박막례씨가 출간하여 화제를 모은 자서전의 제목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이다. 사회는 나이 든 여성에게 지나가는 세월을 기다리며 조용히 사라지기를 암묵적으로 요구해왔다. 같은 연령대의 남자들이 여전히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그 공간에서 정말 '살고 싶은 대로 산다'는 내용이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것과는 반대로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 그대로, 자기만의 방식대로, 무엇보다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이 든 여성의 존재는 소중하다. 그리고 그들이 존재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곳에 불쑥 나타날 때 새롭고 재미있는 일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겐 더 많은 마돈나와 박막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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